중국에는 스타벅스가 없다
중국에는 스타벅스가 없다
  • 류지연 기자
  • 승인 2020.12.0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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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류지연의 중국적응기 '소주만리'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중국의 유명한 음악 애플리케이션인 ‘QQ음악(QQ音乐)’을 쓰던 도중의 일이다. 오랜만에 고전록을 들어볼까 싶어 영국의 록밴드 ’퀸(Queen)’의 노래를 찾았다. QQ음악에서는 외국 노래라도 가사를 중국어로 번역해서 제공하는데 가사를 보던 도중 그룹 이름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Queen’이라는 단어 옆에 괄호를 쳐 놓고 ‘皇后乐队(황허우 위에뛔이: 황후 악단)’라고 써놓은 게 아닌가. 물론 뜻은 맞지만 고유명사까지 그네들의 언어로 이름 붙이는 그 기개가 일견 웃음이 나면서도 감탄스러웠다.

우리가 익히 아는 세계적인 상표들의 이름도 예외가 아니다. 기초중국어나 여행중국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이름들이 주로 스타벅스니, 맥도날드니, 케이에프씨니 하는 가게 이름들인데 이들은 모두 중국어 이름이 따로 있다. 스타벅스는 ‘星巴克(싱바커)’, 맥도날드는 ‘麦当劳(마이땅라오), 케이에프씨는 ’肯德基(컨더지), 버거킹은 ‘汉堡王(한바오왕)’같은 식이다.

 

중국어로 쓰인 스타벅스와 맥도날드의 간판. 요즘은 도심가에는 영어로만 쓰인 간판이 많이 보이긴 하지만 반대로 사진처럼 중국어 이름만 쓰인 간판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출처: 바이두)
중국어로 쓰인 스타벅스와 맥도날드의 간판. 요즘은 도심가에는 영어로만 쓰인 간판이 많이 보이긴 하지만 반대로 사진처럼 중국어 이름만 쓰인 간판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위클리서울/ (출처: 바이두)
버거킹의 중국 광고. 내용은 ‘감자의 패왕, 두꺼워서 더 맛있어!’라고 써져 있다. 감자 손가락 옆 하트와 함께 써진 글씨는 칭찬한다는 뜻. (출처: 웨이보)
버거킹의 중국 광고. 내용은 ‘감자의 패왕, 두꺼워서 더 맛있어!’라고 써져 있다. 감자 손가락 옆 하트와 함께 써진 글씨는 칭찬한다는 뜻. ⓒ위클리서울/ (출처: 웨이보)

이름의 조합도 다양하다. 마이땅라오, 컨더지처럼 뜻은 전혀 없지만 비슷한 발음만 차용해서 만든 이름이 있는가 하면, 싱바커(‘싱’=star)/한바오왕(‘왕’=king, ‘한바오’가 ‘햄버거’라는 뜻이긴 하지만 애초에 ‘한바오’라는 단어 자체는 뜻과 상관없이 발음만 차용해서 만든 단어이다)처럼 일부는 뜻, 일부는 발음을 합친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퀸’을 ‘황후 악단’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뜻 자체를 중국어로 해석하여 붙이는 이름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아이폰’을 ‘苹果手机(핑꾸어 서우지: 사과 휴대폰)’라고 부르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상표명을 지을 때 한글보다는 주로 영어나 기타 외국어를 차용해서 붙이고, 일상생활이나 미디어에서 무분별하게 영어 단어를 사용하는 풍토를 생각하면 중국의 이런 현상은 오히려 본받을만하다고 생각된다. 그렇더라도 무작정 발음만 빌리는 이름보다는 제대로 뜻을 담은 이름이 좋을 것이다.

코카콜라의 중국 이름 유래에 대해 널리 알려진 일화가 있다. 코카콜라의 중국 이름은 ‘可口可乐(커커우커러: 맛있고 가히 즐겁다)’이다. 발음과 뜻 두 가지를 모두 잡은 이름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이름이었던 것은 아니다. 코카콜라가 중국(상해)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27년이라고 한다. 당시의 이름은 ‘蝌蝌啃蜡(커커컨라: 올챙이가 밀랍을 먹다)’였다. 발음에만 신경 쓰다 보니 기괴한 뜻이 돼버린 게다. 콜라를 처음 접한 중국인들은 황갈색 액체가 달콤하면서도 쓴 맛이 있고, 뚜껑을 열면 기포가 솟아오르는 게 괴상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에다가 이름까지 요상하니 판매실적이 영 부진했다고 한다. 이듬해 코카콜라사에서는 350파운드의 상금을 내걸고 새 이름을 구했다. 이에 영국에 있던 상하이의 한 교수가 ‘可口可乐’라는 이름을 내어 채택되었다. 이 이름은 지금까지도 중국 광고업계에서 가장 번역이 잘 된 이름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비단 발음을 잘 담았을 뿐 아니라, 뜻마저 본래의 이름보다 더 의미가 있다는 평가이다. 이름에 힘입어 그랬는지 중국시장 진출 22년차인 1948년에는 상해가 코카콜라의 해외 첫 백만 상자 판매 달성 도시가 됐다고 한다.

 

사진 4) 1920년대의 중국 코카콜라 광고 (출처: 코카콜라 중국 누리집)
 1920년대의 중국 코카콜라 광고 ⓒ위클리서울/ (출처: 코카콜라 중국 누리집)

상표명뿐 아니라 우리는 외국어 그대로 사용하는 직업 이름까지도 중국에서는 중국어로 바꿔 부르는 경우가 많다. 예로 바리스타 대신 ‘咖啡师(커피 선생)’, 디자이너 대신 ‘设计师(설계사)’라고 부른다. 우리가 대체할 단어를 딱히 찾지 못해 그대로 사용하는 ‘패션’, ‘컴퓨터’, ‘노트북’, ‘태블릿’ 같은 단어들조차 ‘时尚(스시앙: 시대의 방향)’, ‘电脑(띠엔나오: 전자뇌)’, ‘笔记本电脑(비지번 띠엔나오: 공책 컴퓨터)’, ‘平板电脑(핑반 띠엔나오: 평판 컴퓨터)’이라고 바꿔 사용하는 걸 보면 가히 존경스러울 정도다.

악기 이름은 또 어떤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베이스같은 외국 태생 악기들이 모두 고유의 뜻을 가진 중국 이름이 있다. 일례로 첼로는 중국어로 ‘大提琴(따티친)’인데 며칠 전 소주대 수업에서 회화 선생님이 ‘大提琴’이 영어로 뭔지 모른다고 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첼로는 첼로인 줄만 알고 살았는데 첼로가 첼로가 아닌 세상이 있다니?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와 새로운 세상과 조우한 느낌이랄까.

비슷한 사례로 CD나 USB, 심지어 QR코드 같은 현대 문물도 중국식 이름이 있다. 그뿐이랴, 와이파이 같은 줄임말까지도 ‘无线网络(우시엔왕루어: 무선 인터넷)’라고 친절하게 뜻을 풀어 이름 붙여 놨다.

이러한 배경 덕에 요즘 중국 젊은이들은 비교적 영어를 하는 이가 많아져 영어 단어를 말해도 알아듣는 경우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대개 영어 단어로 말하면 상대방이 머릿속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중국어 어휘가 대략 40만여 개인데 이 중에 외래어는 1만여 개 정도라고 하니, 표준국어대사전 기준 50만 개 어휘 중 외래어 비율이 4.7% 정도인 한국어보다 외래어의 비율이나 사용 빈도가 대략 절반 수준이라고 보면 되겠다.

언어는 문화와 결을 같이하기에 다른 나라와의 문화 교류 속에서 언어를 받아들이는 것은 언어와 문화를 동시에 풍부하게 하는 방편이 된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고유어가 밀려나고 불필요한 외국어가 외래어로 굳어져 자리 잡는 현상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한국어나 일본어는 단어의 많은 부분들이 한자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중국어를 배울 때 서양인들에 비해서 이해도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서양인들이 과연 이게 글자인지, 그림인지 알쏭달쏭해하는 한자 조합들을 우리는 모국어의 경험으로 좀 더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같은 한자 단어라도 한국어와 중국어의 쓰임새가 다르거나 한 단어 내에서 조합 순서가 다르거나 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비록 동일한 한자 문화권이지만 고대 중국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체화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도 간판에 ‘스타벅스’가 아닌 ‘별다방’이 고운 서체로 적힌 걸 언젠가는 볼 수 있을까. 한글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서 그 날이 오면 별다방 앞에서 태극기 인증샷을 찍고 가장 비싼 프라푸치노[중국어 이름은 星冰乐(싱삥러: 풀이하자면 ‘싱바커의 얼음 즐거움’ 정도가 되겠다) 한 잔을 사먹고 말리라. <류지연 님은 현재 중국 소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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