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탐방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1편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영화제 탐방기가 다시 돌아왔다. 그동안은 뒤늦은 영화 바람이 들어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느라 연재를 이어갈 겨를이 없었다. 오랜만의 인사인 만큼 다시 소개를 하고 싶다. 이 시리즈는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기 전, 2019년에 다녀온 국내 영화제들의 탐방기다. 5월의 전주국제영화제부터 10월의 부산국제영화제까지 연재했다. 이번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다.

 

2 (출처-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포스터 ⓒ위클리서울/ 출처-서울국제여성영화제
ⓒ위클리서울/ 출처-서울국제여성영화제
ⓒ위클리서울/ 출처-서울국제여성영화제

매년 영화제가 열릴 수 있는 이유

이 시리즈의 문을 연 건 작년 5월의 전주국제영화제였다. 서울을 떠나 큰 규모의 영화제를 방문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어서 시리즈를 시작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영화를 보기 위해 한 도시를 찾아간 것이니 ‘탐방기’라는 굵직한 이름을 붙이기에도 좋았다. 그러나 정말 첫 번째로 방문했던 영화제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다. 벌써 올해로 22회를 맞이한,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우직하게 지켜온 영화제 중 하나다. 처음 방문한 것이 몇 년도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늘 신촌의 한 극장에서 열렸다는 것은 확실하다. 학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극장이기에 수업보다도 자주 들락거리며 꾸준한 출석체크를 했다. 학생의 본분은 학업인데, 얼마나 좋았으면 그렇게 매일 들렀는지 모르겠다.

2018년에 열린 20회 서울국제영화제에 이르러서야 이 영화제가 정말 매년 열린다는 것을 알았다. 신촌의 그 극장은 언제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손님이 없어서 어쩌면 건물 자체가 사라지거나 영화제가 더 이상 열리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침 친구도 자원봉사자로 영화제에 참여했고 당시 듣던 여성학 수업의 교수님도 수업 한 시간을 영화제에 방문해서 영화를 보는 것으로 대체해주셨다. 주변 여성들이 이 영화제에 보이는 관심과 애정을 보며 매년 개최가 가능했던 이유를 알았다. 극장을 뺀 모든 층이 텅텅 비어버린 을씨년스러운 건물에서 유일하게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행사였다. 썰렁하던 극장에 가득 찬 사람들의 온기와 에너지는 매번 찾아갈 수밖에 없는 강렬한 기억을 남기기도 했다.

 

ⓒ위클리서울/ 출처-서울국제여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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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출처-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위클리서울/ 출처-서울국제여성영화제

남겨진 곳에서, 함께 걸어가기

그렇게 2019년, 제 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도 방문했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친척 집에 방문하는 기분이었지만 어딘가 아쉽고 낯선 느낌도 부정할 수 없었다. 신촌이 아닌 상암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서대문구에서 마포구로 옮긴 것이니 거리상 큰 차이는 아니지만 더 이상 친근한 느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극장부터 거대한 월드컵 경기장이어서 입구를 찾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알고 보니 20년의 세월을 지내온 만큼 21회부터는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어 여러 변화를 꾀한 듯 했다. 더 규모가 커졌으니 축하하고 좋아해야 마땅하지만 신촌의 극장에서 추억이 많았기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부산국제영화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본래 남포동에서 출발해 영화의 거리와 비프(BIFF)광장, 주변 상권과 분위기까지 자리를 잡았었지만 해운대에 영화의 전당을 만들면서 거점을 옮겼다. 영화제를 방문하다 남포동을 사랑하게 된 관객들과 주민들 모두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었을 테다. 그렇게 부산국제영화제는 2018년부터 커뮤니티 비프라는 거대한 행사를 시작했다. 부산의 원도심인데다 영화제의 시작을 함께한 만큼,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고 관객이 주도하는 또 하나의 영화제를 만든 것이다. 올해 제 3회 커뮤니티 비프의 청년기획단으로 활동했던 필자는 그 누구보다 가까이서 영화제를 지켜보며 정말 성공적인 영화제, 지역 축제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코로나로 인해 커뮤니티 비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야외 행사들은 모두 취소됐지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다양한 참여방식으로 등장한 영화 상영 프로그램들이 전부 게스트가 참석해 자리를 지켰다는 것과 관객의 점유율도 87%를 달성하는 등의 놀라운 결과를 맞았다. 훗날 제 25회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더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지만, 새로운 혁신과 중요한 가치의 유지를 동시에 이뤄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부에서 기획단으로 근무해본 만큼 무조건적인 칭찬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노력할 것이지만, 남겨진 동네를 가장 효과적이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되살려 함께 걸어가기를 택한 결정만큼은 박수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위클리서울/ 출처-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위클리서울/ 출처-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위클리서울/ 출처-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위클리서울/ 출처-서울국제여성영화제

걱정을 응원으로

물론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영화제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두 장소 모두에서 개최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언제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은 건물과 극장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영화제를 사랑했던 관객으로서, 기존의 장소를 떠나보낼 시간과 기회를 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더 큰 곳에서 문화비축기지라는 훌륭한 장소까지 더 해 날개를 달고 비상할 일만 남았지만, 이전만큼 근처 대학생들의 참여와 커뮤니티 형성은 어려울 수 있겠다는 걱정도 든다.

예전엔 친구들과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영화제 내에서 아는 얼굴들을 마주치고, 교수님의 추천으로 방문하는 등 주변 학교와의 교류가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새로운 곳으로 터전을 옮긴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앞으로 어떤 가치관을 중심으로 어떤 성격의 영화제를 만들어나갈지 걱정과 동시에 기대도 해본다. 앞으로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는 여성영화제의 역사와 특성, 작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방문해 경험했던 후기와 감상한 영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언젠가 이 시리즈도 20주년, 25주년을 맞는 날이 온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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