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전진우 민주사회네트워크 회장-1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장편소설 ‘그대의 강’, 골 깊은 이념 갈등과 사회세력 간 적대와 반목 등 알려
우리 사회 '반공' 이데올로기 위력 여전히 강력
맹목적 반공 이데올로기 점차 설 자리 잃는 현실 인정해야 

 

‘민주사회’는 민주주의가 이룩된 사회다. 사회발전 단계에서 민주사회와 복지사회는 가장 선진화된 형태다.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했지만, 여전히 이념 대립과 지역갈등, 소득불균형 빈부격차 등의 골이 깊다. 피식민과 해방, 분단, 전쟁, 극심한 이념 갈등과 분열의 상처를 반세기 넘도록 지우지 못하고 있다.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전진우 민주사회네트워크 회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특히 일제 식민지배로 억눌렸던 설움과 민족상잔의 참혹했던 6.25 전쟁, 제주 4.3사건, 5.18 광주민주화항쟁 등 지우지 못한 상흔들이 화석처럼 쌓여 있다. 한 세대, 즉 한 가족이 겪은 시대적 트라우마가 70여 년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현대사에서 한국의 가족들이 겪은 아픔은 유전자처럼 전이되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해직 된 전 언론인 전진우(71) 민주사회네트워크(이하 민사넷) 회장은 격동의 현대사를 몸으로 겪은 세대다. 신동아 편집장과 동아일보 논설실장을 역임한 그는 올해 베트남과 한국을 관통하는 질곡의 현대사, 그 비극의 원점을 찾아가는 장편소설 ‘그대의 강’을 출간했다. “70여 년간에 우리는 너무 큰 비극적 시대를 겪었다. 그 아픔은 곧 가족의 아픔이다. 이제 이 문제를 국가적 사회적 문제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3년 동안 관련 고증과 취재, 자료 조사를 거쳐 탈고(脫稿)한 소설은 강대국이 벌인 전쟁과 분단을 겪은 한국과 베트남의 두 가족사를 병렬로 엮은 작품이다. 전 회장은 “한국과 베트남 현대사는 우리와 닮았다. 지정학적으로도 베트남과 한국은 강대국과 접해 있고, 냉전(冷戰) 시대에 세계 질서가 급변하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도 비슷하다. 베트남은 근세기에 프랑스와 일본군의 식민지였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남북분단과 전쟁을 겪은 역사가 있다. 식민과 이념 대립, 전쟁, 남북분단 모든 것이 우리와 너무 비슷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지금 세대는 현대사를 잘 알지 못한다. 반공 냉전 이데올로기에 갇혀 학교에서 제대로 역사를 가르칠 수 없었고,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고, 점점 망각해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알려야겠다는 뜻에서 이 소설을 쓰게 됐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는 전진우 회장을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민사넷은 재야 사학자로 역사 대중화를 이끌다가 지난 3월 작고한 이이화(李離和) 선생을 중심으로 모인 시민단체. 전진우 초대 회장으로부터 한국 민주주의와 ‘촛불 시민혁명’, 신작 소설 ‘그대의 강’이 우리 세대에게 던져주는 메시지, 미국 민주주의와 바이든 정부의 국제정책, 북미 관계와 한반도 비핵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가짜 뉴스 및 언론 현실 등에 대해 들어 본다.

 

- 한국과 베트남은 현대사에서 큰 고통을 당한 약소국으로 식민주의 시대 ‘희생양’이었다. 그에 따른 후유증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는데.

▲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세계 질서하에서 가장 큰 비극을 겪은 두 나라가 한국과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19세기 중반부터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1945년 이후 일본군이 프랑스로부터 통치권을 빼앗아 잠시 일본의 지배를 받다가 그해 여름에 해방됐지만,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야합으로 다시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된다.

이에 호찌민이 이끄는 베트남 독립동맹, 베트민(우리에게는 오랫동안 월맹으로 알려진)이 프랑스와의 8년 전쟁에 나서 승리한다. 그런데 그 뒤 미국이 개입해서 북위 17도 선을 기준으로 북쪽의 호찌민 정부와 남쪽의 ‘응오 딘 지엠’(또는 고 딘 디엠) 정부로 분단되고 만다. 한반도가 남과 북 38선으로 분단된 것과 같다.

 

- 베트남과 한국의 분단은 어떻게 다른가.

▲ 미국은 중국공산당에 의해 베트남에 이어 동남아시아 전체가 공산화되는 위험(이른바 도미노이론)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미국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치 미국이 일본을 방위하기 위해 남한을 극동의 반공 보루이자 전진기지로 상정한 것과 같은 논리였다. 한국의 경우, 미국은 1945년 일본본토를 점령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 당시 동맹국이었던 구소련(현 러시아)에게 만주와 한반도를 점령한 일본군을 몰아내도록 했다.

그해 8월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원폭(原爆)을 투하한 직후, 소련군이 너무 빨리 남하하자 미국은 이를 막기 위해 38선을 임의로 그었고, 이것이 결국 분단의 근원이 되고 말았다.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분단의 상징인 38선은 예기치 못했던 상황변화에 따라 미국이 임의로 대응하면서 생긴 것이다.

 

신작소설 ‘그대의 강’은 식민지배와 1945년 해방 후 혼란과 전쟁, 좌우 대립, 남북분단을 겪은 한국과 베트남의 두 가족을 병렬시켜 ~
신작소설 ‘그대의 강’은 식민지배와 1945년 해방 후 혼란과 전쟁, 좌우 대립, 남북분단을 겪은 한국과 베트남의 두 가족을 병렬로 엮은 작품이다.

- 신작 소설 ‘그대의 강’에서 ‘강’은 어떤 의미인지.

▲ 장편소설 ‘그대의 강’은 이러한 역사적 시대를 배경으로 두 나라에서 살아가던 가족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다. 제목에서 말하는 ‘강’은 역사의 강이다. 그 시대를 살아낸 당신들의 강이며, 어쩌면 그 후손들인 우리들의 강일 수 있다.

한국과 베트남은 피지배 식민지와 분단, 전쟁의 비극을 겪은 공통의 역사적 경험을 안고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베트남은 끝내 통일 국가를 이룬 것에 비해, 한국은 여전히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분단으로 빚어진 남한 사회의 이념 갈등과 사회세력 간 적대와 반목이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지속해 왔고, 현재도 진행형인 점도 다르다.

이렇게 말하면 당장 베트남처럼 공산화된 통일이 좋다는 것이냐, 그보다는 반쪽이라도 자유민주주의가 좋은 게 아니냐는 맹렬한 반론이 날아들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 내면에 강고하게 자리 잡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위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 왜곡된 역사에 ‘거울 역할’을 한 것 같은데.

▲ 물론 역사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 그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해석의 전제가 되는 사실이 정확하지 않으면 왜곡된 역사가 되며, 왜곡된 역사는 사회 전체에 해소하기 힘든 갈등과 반목의 씨앗이 된다.

나는 소설 ‘그대의 강’에서 부수적이나마 나름의 역사 읽기를 하였고, 그에 대한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부정하고 비판하고 싶더라도 우리 사회의 끝나지 않은 적대적 갈등의 근원에 왜곡된 역사 읽기가 자리하고 있지 않은지 이제 반문하고 성찰해야 할 때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 한국전쟁은 반공(反共)을 국시로 한 군사정권을 태동시켰고, 지금도 ‘남북-남남’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 이제는 우리 사회가 냉철하게 역사를 깊이 보아야 할 때다. 어느 측면에서든 맹목적인 반공 이데올로기는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더구나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져 온 북한의 세습체제는 이제 그 정당성이나 국가 체계, 경제력과 군사력 모든 분야에서 이미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패배했다.

북한 정권이 집요하게 핵에 매달리는 것도 정상적 체제경쟁에서 패배한 저들의 마지막 자구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자유민주주의란 말도 정확히 사용해야 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해방 이후에 들어선 남한의 이승만 정부에서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군사정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였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소위 미국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외양만 띠고 있었을 뿐, 반민주 독재 또는 권위주의 정부였을 뿐이다.

 

- 우리와 비슷한 현대사를 겪은 베트남을 보자. 남베트남이 패한 이유를 무엇으로 보나.

▲ 베트남 얘기를 잠깐 덧붙인다면, 연인원 50만 명이 넘는 미군 참전과 막강한 군사력, 천문학적 액수의 원조에도 불구하고, 결국 남베트남이 멸망했다. 그것은 베트남인들이 공산주의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남베트남 정권의 독재와 부패, 무능으로 절대다수의 베트남인들이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또 북베트남 지도자 호찌민은 공산주의자라기보다는 평생을 베트남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민족주의자로 베트남 인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다시 우리의 얘기로 돌아오면, 왜 한반도가 분단되었고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희생됐는지 등 그 원인에 대한 냉철한 역사 읽기도 이뤄져야 한다.

새삼스레 선(善)과 악(惡)으로 양분해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다. 당시 무슨 일이 벌어졌었고, 어떻게 했으면 전쟁과 분단을 막을 수 있었는지 등을 가능한 객관적 사실대로 읽을 수 있어야하며, 그를 통해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 한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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