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사람 이야기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세계여행’이라는 말은 참 예쁜 말인데도, 그 안에는 숨겨진 굴곡이 있다.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세계는 동그랗지도 않다. 세계는 울퉁불퉁하다. 울퉁불퉁한 사면에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잘 보이지 않은 채 놓여 있다. 드러나지 않은 얼굴들이 그 안에는 빼곡하다. 지난 1년간 짧고 긴 여행으로 몇몇 아시아 국가들을 여행하며 나는 그 사실을 매번 느꼈다. 무언가를 ‘보러 온’ 서구의 배낭여행자들과 ‘보여 지는’ 아시아인들의 사이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얼굴들이 너무 많았다. 인간이면 다 비슷하게 사는 줄 알았는데 인간은 너무 다르게들 살았고, 또 여전히 인간이라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것을 여행하며 알았다. 선망을 넘어 이젠 자연스러워진 서구적 문화 바깥에, 다른 삶의 모습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힌두교와 이슬람, 티베트 불교와 유목민의 천막, 터키 동부와 코카서스의 소수민족들과 각 지방 고유의 문화들. 낡거나 특이한 것으로 치부되어 잊히거나 구경거리로 전락한 삶의 양상들. 짧은 여행을 통해 내가 그들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었을까. 알아봐야 표면적인 것들뿐일 수 있다. 나는 내가 우연찮고 변변치 않게 경험했던 사람들과 장소에 대해서 어설프게 이야기할 뿐이다. 잘 몰랐던 사람들의 삶과 문화는 신기한 이야깃거리이기 이전에, 그냥 사람 이야기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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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에서 새해를 보내고 돌아 온지 6개월쯤 되었을까, 씨커르에게 연락이 왔다. 돈을 좀 보내줄 수가 있습니까? 서툰 한국어 문장이 이어졌다. 코로나 때문에 일을 나갈 수 없게 되었고, 가족들은 굶고 있고, 더 이상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내게 한 번 연락을 해본 것이라는 말이었다. 돈을 보내주면 반드시 갚겠다고. 나는 그와 단 4일간 얼굴을 마주했을 뿐이다. 짧지만 잊을 수 없는 며칠을 함께 보낸 것도 아니었다. 그는 카트만두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단기 계약직으로 일하는 직원으로, 한국에서 일을 하기 위해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는 내 또래의 청년이었다.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미국인이 필요하듯 그는 나의 이층 침대로 찾아와 자신이 틀린 한국어 시험 문제를 풀어달라고 했다. ‘보증금’의 뜻을 물어보는 문제였나. 그렇게 내가 길바닥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는 저녁이면 그는 내게 찾아와 말을 붙였다. 한국의 날씨는 어떤지. 한국의 사람들은 좋은지. 한국에 가서 돈을 많이 벌어 꼭 행복해질 것이라는 말을 하는 그의 눈에서 열의가 느껴졌다. 나는 적당한 호의로 그를 대했다. 한국어를 배운다니 돕고 싶어, 물어보는 문제에 답을 해주고 내가 아는 시답지 않은 단어들을 공책에 또박또박 써준 것이 전부다. 나는 그때 긴 여행을 하고 피로에 지쳐 연말을 맞이했고, 장기 여행자가 흔히 빠질만한 여행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어 사람들에게 부러 친근하게 다가설 힘이 없었다. 황색 먼지로 뒤덮여 붐비는 타멜 거리 구석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씨커르와 나는 그렇게 잠깐 소소하게 앉아있었다.

며칠이 지나 2019년의 마지막 밤이었다. 친절한 얼굴을 한 게스트하우스 사장이 마당에서 작은 파티를 열었을 때 씨커르는 거기 없었다. 산행을 위해 네팔에 막 도착한 네덜란드인과 담요를 두른 프랑스인 무리가 불콰하게 취해가는 모습에 적당히 섞여 이상한 어색함을 느끼고 있던 나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어두운 방에 빼곡하게 놓인 얇은 원목의 이층침대가 삐그덕 거렸다. 술기운인지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창밖으로는 옆 게스트하우스의 파티에서 에미넴 노래가 줄지어 이어졌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지만 한 해의 마지막이라면 으레 기뻐야할 것 같았고, 여행자라면 더 즐거워야할 것도 같아 이상하게 더 슬펐다. 포카라에서 만난 네팔 사람들도 에미넴을 들었었는데. 네팔 사람들은 힙합을 유독 좋아하나? 일어나니 아침이었다. 유럽인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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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날을 마당에서 커피를 마시며 보내고, 저녁때쯤 다시 인도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짐을 쌌다. 산행을 위해 찾았던 2주간의 네팔 비자는 오늘이면 끝이고, 오늘 버스를 놓치면 체류비로 돈을 더 내야했다. 인도의 바라나시까지 직행으로 26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인도에서 주로 이용했던 누워 가는 슬리핑버스도 아니고, 앉아서 가는 버스라고 했지만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저렴한 비용으로 인도로 다시 돌아가야지, 하루 종일 버스에서 뭘 하고 보내지, 네팔의 사람들은 어딘지 시선이 밑을 향해있는 기분이 든다, 인도와 다르게 조금 더 차분하고 수더분하고 또 왠지 손을 대면 차가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고 게스트하우스 마당에 앉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버스 시간이 다 되어갔을 때쯤 설거지를 마치고 나온 씨커르가 오토바이로 정류장까지 태워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나와 나만한 배낭을 뒤에 태우고 나를 정류장에 내려주었다. 뒤에서 잡은 그의 외투가 차가웠다. 한국에 돌아가면 연락할게요.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하세요. 한국에. 게스트하우스의 친절한 직원으로, 조용히 묵다 가던 손님으로 우리는 가볍게 작별했다.

씨커르의 연락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그의 눈빛이었다. 그의 눈빛은 무언가를 열망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활기를 지니고 있었다. 꼭 무언가를 해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이 그의 눈에서 읽히는 동시에 살짝 쳐져있는 눈매와 옅은 눈동자는 그가 원래 그런 열의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씨커르가 왜 그렇게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지 자세한 전후사정을 듣지는 못했지만 씨커르는 분명 절박해보였고 절박한 만큼 힘들어보였고 힘든 만큼 한국이라는 희망을 굳게 붙들고 있는 것 같았다. 씨커르가 보여준 한국어학원의 동영상에서 네팔인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한국어와 네팔어를 섞어 소리치고 있었다. 하루에 14시간 이상 한국어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한국에 갈 생각도 하지 마라. 정신을 단단히 챙겨라. 고등학교 때 내가 줄곧 들었던 말과 거의 같았다. 동영상을 찍고 있는 씨커르와 수강생들이 대답하는 목소리가 강사의 소리치는 목소리보다 더 크게 울렸다. 그에게 차마 한국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꿈같은 곳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가 모르진 않았을 것이나.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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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씨커르에게 결국 돈을 보낸 것은 그의 눈빛이 눈에 밟혔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이미 여행을 해오며 숱한 사람들의 요청을 거절해왔다. 최대한 돈을 아끼며 여행을 중이었기에 가끔 마주 치는 도움의 요청에 응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돈이든 시간이든 여행자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현지의 사람들과 여행자들은 그렇게 구별된다. 여행할만한 돈과 시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과 여유가 없어 그곳에 계속 남을 수밖에 없는 사람. 돌아올 만 한 집을 남겨두고 색다른 여행지를 찾는 사람과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곳으로 가야만 하는 사람으로.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싶었던 것 같다. 먹고살만해서 외국이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 한 번 구경나온 사람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섞여 지내보고 싶었다. 결국 잠깐 지나치는 여행자일 뿐일지라도. 나는 씨커르의 목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씨커르에게 며칠 점심을 걸러 모은 5만원을 보냈다. 여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적선이 아니라, 아픈 말을 들어줄 수 있는 동료이고 싶었다. 나도 다른 여행자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네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왜 그렇게 살아가는지는 전혀 관심 없이 장대한 산맥만을 구경 오는 관광객들에게 그때 나는 왜인지 지쳐있었고, 힌두교에서 이마에 왜 점을 찍는지에 대해 설명했던 씨커르와 좌판에서 티베트 불교를 어떻게든 설명해보려고 노력했던 할머니를 생각했다. 그들이 거기에 있었는데. 그들의 삶과 문화와 역사가. 아주 잠깐이었지만 당신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어 감사했다는 마음으로 씨커르에게 돈을 보냈다. 내가 잘한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연락을 했는지, 또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나는 모른다. 씨커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역시 모른다. 씨커르가 나의 둘도 없는 네팔 친구였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그때 씨커르의 이야기를 더 물어보고 듣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그의 앞에서 이상한 동정심을 느끼며 도와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냥 그의 이야기를 더 들으며 그와 친구가 될 수도 있었다. ‘여행’의 의미는 사람들마다 가지각색이겠으나 내게 여행은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내가 잘 몰랐던 이들의 문화와 생각, 그들이 사는 공간을 체험하는 일이다. 나는 장대한 자연 앞에 감탄하는 여행자도, 멋진 공간을 찾아 정보를 전달하는 여행자도, 꼭 먹어봐야 할 맛집을 찾아가고 알려주는 여행자도 아니었다. 다만 변변치 않은 귀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 사이에 섞여 앉아있던 그 경험이 내게는 여행에서 가장 소중했다는 것을, 여행이 끝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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