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그 사람의 집이 있다
그곳엔 그 사람의 집이 있다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1.01.22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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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안면도에 있는 천상병 시인의 옛집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새해를 맞아 안면도에 다녀왔다.

왜 하필 안면도냐고 물으신다면. 그곳엔 그 사람의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번엔 이렇게 묻겠지. 그 사람이 누구냐고.

그 사람은 바로 천상병 시인입니다.

그렇다. 그곳엔 천상병 시인의 옛집이 있다.

천상병 시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의 집이 떡하니 안면도에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많다. 왜냐면 시인님 살아생전 안면도에서 조개 구워 막걸리 마셨단 소린 들어본 적 없었으니까.

인사동의 찻집 ‘귀천’ 근방 어디메쯤 시인님의 거처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를 빌려 천상병 시인이 어디서 태어나 어디서 사셨는지 알려드리려 한다. 왜? 그러고 싶으니까요.

천상병 시인은 일본에서 태어나 중 2때까지 일본에 살다가 해방이후 마산으로 옮겨와 학교를 다녔다. 그때 국어교사였던 김춘수 쌤을 만나게 된다. 이런 걸 운명적 만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손예진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현빈을 만나게 되듯. 뭐 그런 운명이었던 거다. 천상병 시인의 재능을 한눈에 똭 알아본 국어쌤이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을 테고 중학생이던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른 등단을 하게 된다. 현빈이 얼굴 천재였다면 천상병은 시 천재였던 셈이다. 거기다 공부 천재. 하지만 서울대 상과대에 들어갔던 그는 이 길이 아닌갑네…라며 결국 때려치고 나온다. 그 뒤로 직장생활도 잠시 했지만 그 역시 그의 길은 아니었던 모양. 좋은 직장까지 확 걷어차고 나와버린다. 그때부터 시인의 가시밭길 고행이 시작되었으니 이름하야…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동백림 사건.

이에 연루돼 극심한 고문과 옥고를 치르게 된다.

친구에게 막걸리 사먹으려고 몇 푼 받아쓴 게 간첩 공작금으로 둔갑해 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전기고문을 받았던 거다. 그 후로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게 되고 급기야 사람들은…

천상병이 죽은 거 아냐?

죽지 않고서야 이렇게 오래토록….

아무래도 죽은 거 가터….

그렇게 그는 죽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시집 한 권 남기지 못하고 죽은 그의 삶을 애도하기 위해 친구들은 그의 흩어져있던 시를 긁어모아 책을 냈는데 그게 바로 첫 유고시집 <새>였던 거다. 살아서 유고시집을 낸 최초의 시인인 셈이었다. 그의 시집이 나오자 사람들은 그의 시에 반했다. 애도의 물결이 일었고 천상병이라는 이름이 그제야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가 막힌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살아있다고 했다. 전기고문의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갇혀 정신줄 놔버린 채로 살고 있었던 거다. 아이같이 천진했던 시인은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망가진 몸이 되어 그렇게 사람들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여전히 가난했지만 그런 시인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친구의 누이였던 목순옥.

처음 그녀가 천 시인을 만났던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처음부터 눈에서 불꽃이 파박 튀는 그런 만남은 아니었다. 오빠를 만나러 갔다 몇 번 보게 된 오빠 친구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 여성들에게는 불꽃보다 위험한 감정주머니가 하나 있었으니 이름하여 모성애.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그를 곁에서 간호해주고 위로해주다 보니 연민을 동반한 모성애 주머니가 터져버린 거였다. 그렇게 그 둘은 결혼을 하게 되고 수락산 초입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달동네를 옮겨 다니며 가난한 삶을 이어갔다. 아내에게 매일 2000원을 받으면 고작 담배 한 갑과 막걸리 한 통을 살 수 있는 돈이었지만 그래도 시인은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니, 시에 그렇게 썼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나의 가난은/ 천상병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의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가난을 반찬처럼 먹고 산 그였지만 따뜻한 밥 한 그릇과도 같은 아내가 곁에 있어서 천상병 시인은 그래도 행복했으리라….

1993년 4월 28일. 그는 이승의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해. 그의 진짜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가 나왔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자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천상병 시인의 옛집이 왜 안면도에 있는지를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모종인 씨라는 분이 천상병 시인의 옛집을 안면도로 옮겨놓았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시를 좋아했던 그는 천상병 시인 부부와 생전에 가까이 지낸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날. 목순옥 여사로부터 수락산 자락에 있는 집이 아파트를 짓기 위한 재개발 때문에 없어지게 됐다는 말을 들었고 이대로 놔둬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는 천상병 시인의 옛집을 자신의 고향인 안면도로 옮겨와 그가 운영하는 펜션 ‘시인의 섬’ 옆. 바다가 보이는 풍광 좋은 곳에다 복원해 놓은 거였다. 그리고 거기서 계단 몇 개를 내려오면 아담한 갤러리가 하나 보이는데. 거기엔 이외수 소설가와 중광스님 그리고 천 시인의 작품과 소장품이 전시돼 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관리가 잘 되지 않아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곳을 만든 모종인 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아마도 조금씩 그렇게 녹슬어가지 않았을까….

천상병 시인의 옛집은 가난으로 치장해 궁핍으로 마무리해 놓은 듯 초라했다. 조그마한 방 두 칸. 양 팔을 뻗으면 이 쪽 벽에서 저 쪽 벽에 닿을 만큼 작은 집. 두 사람 이불 깔고 누우면 꼬옥 붙어 잘 수밖에 없는 좁은 방바닥. 주인 없는 집에 도둑고양이처럼 기어 들어가 시려운 발바닥을 오므려 붙이고 살금살금 그의 체취를 더듬어본 시간….

나는 좋았고
나는 좋았다.

뜨끈한 방바닥에 누워 배부른 빵을 뜯어 먹으며 글을 쓰고 싶다는 헛소리만 하는 나에게 천상병 시인이 따끔하게 한 말씀 하셨다.

정신차려 이년아!

부끄러운 가슴을 여미며 그곳을 돌아 나오는 길.
집 앞. 하얀 눈밭에다 발자욱을 꾹꾹 눌러가며 천상병 시인에게 문자하나 날렸다.

술 한 잔 같이 마시고 싶네요, 아저씨….

그곳 안면도에는 천상병 시인의 집이 있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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