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탐방기] 강릉국제영화제 4편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지난 1편과 2편에서는 강릉국제영화제로 떠나게 된 이야기를, 3편은 그곳에서 감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1998) 감상기를 다뤘다. 삶이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정체되고 제한된 나날들을 보내는 요즘, 이 희망차고 아름다운 영화 이야기를 한 편으로 끝내긴 아쉬워 좀 더 이어가볼까 한다. 영화가 곧 삶이 되는 기적을 바라며.

 

영화 ‘원더풀 라이프’ 포스터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

영화의 줄거리부터 다시 짧게 복기해보자. 배경은 죽은 자들이 천국으로 가기 전 일주일 동안 머무는 중간역 림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싶은 하나의 추억을 고르고 이를 바탕으로 직원들이 만든 짧은 영상을 본다. 단 하나의 기억만을 남긴 채 완연한 죽음에 이르는 셈이다.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영상을 보는 사람들과, 그들을 스크린을 통해 보는 관객들의 모습이 점점 겹쳐졌다. 비록 스크린에 펼쳐진 영화가 관객들 개개인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이의 경험이더라도 나의 것에 견주어보고 비춰볼 수 있다는 것이 인간 보편의 삶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영화의 진실성을 위해 연기자와 비전문배우를 섞어 캐스팅한 만큼, 낯선 비전문 배우들의 얼굴로 느슨하게 말해지는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관객을 몰입시키고 또 다른 기억들에 젖어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영화란 그런 것이다. 제멋대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기억의 특성처럼, 영화 역시 실제로 일어난 일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았다하더라도 촬영한 이의 목적, 의도, 시점 등이 담길 수밖에 없으며 공기의 밀도와 세밀한 빛의 세기를 눈으로 보는 것과 완전히 동일하게 영상으로 옮길 순 없다. 진실한 다큐멘터리여도 허구성과 연출이 필연적으로 동반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영화와 누군가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영상은 본질적으로 닮았다. 중간역 림보에서 영상을 만드는 직원들이 감독의 전신으로 보이는 이유다. 죽은 자들의 마지막 기억을 위해 영상을 만든 직원의 마음이야말로 영화를 만든 감독의 마음이 아닐까.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고, 당신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삶엔 언제나 아름다움과 감사할 것이 있었다는 오래된 교훈은 빛이 바랬지만, 누군가가 기억하길 바라는 소중한 추억을 엮어 영화로 만들었다는 진실성과 진심은 오롯이 전달되기 마련이다.

 

6 (GV 현장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GV 현장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

사실 이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다소 튀는 영화에 속한다. 실화를 각색해 영화로 만들거나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가족의 모습을 담아내는 감독이기 때문에, 천국으로 가기 전 머무는 중간역이라는 이 판타지적인 세계가 낯설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현실과 다른 판타지를 설정했다면 철저한 짜임새로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캐릭터의 독보적인 개성이나 별 것 아닌 배경의 디테일을 통해서라도 허구의 세계를 설득시켜야 한다. 그러나 영화는 배경의 전체 구조나 체계를 정확히 묘사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골라야 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하나씩 소개한다. 일주일 동안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과거를 회상하고 기억을 고르는 인물들의 모습은 흥미로우면서도 지루하고, 지나치게 자세한 것 같다가도 중간 설명이 없어 당혹스럽다. 직원들 또한 눈여겨보지 않으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배경을 차지하는 사물처럼 담담하게 묘사되고, 배경적 공간도 인적이 드문 마을의 오래된 폐교처럼 현실적일 뿐 사후 세계의 이미지인 환상성과 거리가 있다. 영화의 모든 요소가 합리적인 규칙이나 단계대로 진행되는 서사극이 아니라 한 순간을 떼어내 자세하게 관찰하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워보인다.

 

영화 ‘원더풀 라이프’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원더풀 라이프’ 포스터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원더풀 라이프’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원더풀 라이프’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원더풀 라이프’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원더풀 라이프’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원더풀 라이프’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오랜 시간 TV 다큐멘터리의 연출가를 맡다가 감독이 되었다. 직접 강릉국제영화제에 방문한 감독은 영화 상영 직후에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GV)에도 참여했는데, 극영화임에도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곳곳에서 느껴진 이유를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먼저 영화 속에서 죽은 사람으로 나오는 사람들 전반은 취재에서 만난 일반 노인들이었다. 비전문 배우인 그들이 실제로 이야기한 인생을 영화 속으로 가져왔지만, 그것이 정말 사실일지는 알 수 없었다. 기억에 착오가 있거나 미화했을 수도 있고, 연출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고 한다. 과거는 직접 가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과거를 이야기할 때 필연적으로 허구가 포함된다는 것, 이를 포함해 카메라로 담는 것이 진짜 다큐멘터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답했다. 그의 평소 작업방식 또한 촬영장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 미리 대본을 완성한 후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지는 공간과 인물을 보며 거기서 무엇을 찾아낼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살핀다. 그렇기 때문에 극영화에도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나 목적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7 (강릉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출처)
ⓒ위클리서울/ 강릉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여전히 반짝이는 삶과 존재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면

한국의 열성팬이 많은 감독인 만큼, 그에 대한 많은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한 깊이있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필모그래피에는 일상이나 현실을 다룬 영화가 많은데. 유독 이 영화에서 현실적이지 않은 공간을 선택한 이유와 착안한 과정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그는 TV 방송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 편집실에서 영상을 편집기에 넣어 누가 어떤 말을 하는지를 계속 체크하며 기록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그때 불현듯, 죽은 뒤에 자신의 인생이 영상으로 계속 상영되는 방에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 이미지와 설정이 떠올랐다고 한다. 실제로 자신이 행했던 작업에서 영감을 얻어 이야기에 살을 붙여나가고,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 취재하며 영화를 완성했기 때문에 그 과정 역시 다큐멘터리적이고 진실적이었다.

 

8 (배우 키키키린)
배우 키키키 린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또한 자신의 뮤즈였던, GV 기점으로는 2018년에 작고한 키키 키린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언젠가 그녀가 일상을 연기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며, 일상은 의식하지 못해도 누구나 늘 반복하는 행동이 있는데 그 안에 매우 시적이고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이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경험하고 알고 있는 일상적인 아름다움을 정확하게 연기로 해내는 것이 가장 어려우며, 일상을 그대로 연기로 표현하는 것 또한 영화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 누구나의 일상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배우와, 그 말에 집중할 줄 아는 감독이 무수한 대화를 통해 만들었을 영화들 하나하나에 애착이 가는 순간이었다.

영화를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웃고 울기 때문에 자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처럼,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이 시기에도 여전히 반짝이는 삶과 존재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면 그보다 현명한 일이 없을 것이다. 지난 편에도 했던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지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당신이 죽기 전 단 하나의 추억만을 기억할 수 있다면, 어떤 기억을 고를 것인가. 영원히 머물고 싶은 순간이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그 순간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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