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정의가 무너진 현실, 교회의 정치 참여도 필요”
“공정과 정의가 무너진 현실, 교회의 정치 참여도 필요”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21.03.18 08: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층인터뷰] 이헌주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2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1회에서 이어집니다.>

이헌주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이헌주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 교회의 권력 유착에 대해 ‘권력추구’냐 ‘정치참여’냐의 논란도 있다.

▲ 종교와 정치를 한 마디로 분리하기란 어렵다. 기독교인도 일반사회에서 한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시민사회에 대한 정치참여가 뒤따른다.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인은 기독교적 가치를 가지고 정치참여를 해야 한다. 기독교인의 정치참여를 ‘옳다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온당 치 않다고 본다. 기독교인의 정치참여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기독교적 가치를 품고 정치참여 하는 내용과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교회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가치를 추구하듯이 시민사회 속에서도 공정과 정의가 추구되고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일을 해야 한다. 특히 권력에 물든 정치참여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가난하고 억울한 이들과 함께 하며 불공정한 세상에 대한 예언자적 외침과 행동이 있어야 한다. 물론 지금의 교회가 이런 방향을 잃어버린 듯 보이는 것이 안타깝다.

 

- 한국이 경제선진국이 된 배경에는 한국전쟁 직후, 나라 경제를 일으키는데 교회의 역할이 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치 권력과 긴밀하게 되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 종전 이후, 한국교회와 정부가 밀착된 면에 대해서 가볍고 간단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의 밀착된 면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복잡한 배경을 가진 사건을 단순하게 생각하여 옳고 그름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당시 어떤 기여가 있었는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면밀히 파악해 가는 것이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자세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종교와 정치의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있어서 과거든 현재든 혹은 미래든지 권력에 빌붙어 ‘소수의 이득을 극대화’ 하기 위한 동기를 가진다면 이것은 옳지 않으며, 또한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정치 결과물은 폭력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 교회의 사회참여를 보자. 최근 ‘코로나 양극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교회 역할이 어느 때보다 막중한데.

▲ 팬데믹 시기에는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진다. 특히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도 등장한다. 교회는 모든 이들이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위로를 받고 모두가 평등하게 될 수 있는 공정한 나라를 지향해야 한다. 소외되는 자가 없도록 보호하면서 정책을 세우는 일에 목소리를 내고 앞장서야 한다. 팬데믹 상황이 종료되도록 방역에 협조하는 일도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방역지침의 허점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그 틈새에서 방역을 어렵게 하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모두 함께 이 위기를 잘 이겨내면 좋겠다.

 

- 팬데믹 상황에서 교회가 보이지 않게 헌신한 것으로 알고 있다.

▲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는 정부의 방역지침에 대한 불만 섞인 목소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을 인지한 많은 교회가 새로운 방법들을 찾았고 또 찾고 있는 여정에 있다. 코로나 상황에서 교회가 할 일을 망각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면, 전체가 아닌 일부 교회가 할 일을 하지 못한 것이다. 어떤 교회는 자신의 수양관을 격리시설로 내놓기도 했고, 지난 연말부터 치료에 부족한 혈액을 지원하기 위해 헌혈운동도 지속하고 있다. 또 기후위기와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움직임도 있다. 이런 일들이 언론에 보도되거나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질문하신 것처럼 나름대로 역할들을 ‘보이지 않게’ 하고 있다는 말이 정확하다 할 것이다. 물론, 교계 리더십의 관리적 아쉬움은 크지만, 그럼에도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교회들이 있다는 점은 알아주시길 부탁드린다.

 

- 얼마 전 일부 교회에서 대면 예배 강행으로 집단감염이 있었다. 보건위생과 공공안전에 앞장섰던 초기 교회와 비교할 때, 비상시국에서의 교회의 역할 어떻게 보나.

▲ 한국교회가 과거 독립운동, 근대화와 민주화, 문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변질되고 말았다. 자본과 권력에 물들어 공정과 정직을 상실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기독의 윤리는 기본적으로 ‘타인 중심이어야 한다’ 소극적으로는 이웃에게 해를 끼치거나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것이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이웃을 돌보고 안전을 지켜 주어야 한다. 이런 윤리적 모습이 뚜렷하게 보여지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또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팬데믹 시기에 한국 사회는 극도의 불안을 경험하고 있다. 그 불안은 신뢰를 무너뜨려 시민사회를 갈라지게 한다. 이런 사회적 위기에 교회가 우애와 연대의 실천을 잘하지 못한 것이 교회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만남이 우선시되면서 비난도 많았는데.

▲ 교회가 가진 독특한 문화와 지향하는 바가 있다. 성경의 가르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라는 대전제 아래에 있다. 이것은 하나님 혹은 이웃이라 불리는 타인과의 '관계성', '사회성', '민주성'에 대한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이런 특징은 자연스럽게 '실재성'과 '현장성'을 요구하는데. 즉 대상이 있어야 사랑하고, 그 사랑의 실천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적이고 현장적이어야 한다. 이런 기독교적 특징은 결국 실재적인 모임과 한 공간에서의 만남, 식사를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로 발전했다. 이런 만남과 식사를 통해서 사랑, 우애, 타인에 대한 존중, 배려, 공동체성이 실재가 되고, 살아가는 현장에서 사랑을 실천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의 문제는 무엇인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는 그 실재성과 현장성을 추구하면 할수록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우애를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 위험한 상황이 종식될 때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를 연결하는 방식을 새롭게 도모하고, 이후 우리가 다시 함께할 날을 기다리면서 인내하는 시기가 필요하다. 이것이 현장에서 또는 정서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위기를 대처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기초로 하는 신앙심 유지를 모색하고 전환하는 일들이 필요하다.

 

- 한국은 과거에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뤘다. 한국교회가 급속 성장한 그 기저에는 그 같은 사회적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가.

▲ 한국교회의 리더십이 한국 사회와 연동되고 있다는 점은 이미 많은 분들이 이야기 하고 있는 바다. 한국교회의 초기부터 지금도 상당히 많은 교회에서 목회자 중심의 전통적인 리더십이 통용되고 있다. 이에 대한 폐단이 목사 중심주의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후 기독교인의 종교중독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 목사의 결정과 판단이 교회와 교인을 움직이는 것인데, 이런 리더십은 한 개인의 잘못된 판단으로 함께하는 모두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개인의 존재와 자율 특히 민주사회로 발돋움하면서 교회의 리더십은 두 가지 특징이 더해지는데 하나는 전문성을 가진 리더십의 등장이다. 그러면서 교회는 어떤 전문성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전문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소외되는 구조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 능력에 따라 서열화를 부추기고 경쟁하는 구도로 발전했다. 또 하는 관계적 리더십이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주체성에 대한 강조는 개별신앙인으로서의 주체성과도 닿아 있어서. 서로의 존재와 특징을 존중하면서 함께 연결되어 연대해가는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리더십이 등장했다.

 

- 양극화 모습은 교회 안에서도 보이는데.

▲ 부족한 교회의 모습을 자꾸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 교회에서 신앙이 좋은 사람 또는 직분을 수여받기 위한 조건들이 존재하는데, 특정한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거나, 예배당에 주기적으로 나와야 하거나, 또는 일정한 헌금을 해야 하는 식이다. 이런 조건은 맞벌이 부부나 노동자로서 빡빡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조건이다. 결국은 많은 이들이 교회 조직에서 제시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게 되어 소외되기 일쑤다. 이런 상황이 심화되어 ‘하나님의 한 백성’이라는 개념은 희미해지고, 효율적이며, 확장을 위한 구조를 만든다. 이 가운데 서열화는 필수 아이템으로 등장한다. 더 높은 서열을 보장하면서 교인들의 헌신과 헌금을 우회하여 강요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높은 서열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는 면도 없지 않다. <3회로 이어집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