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영화 ‘나는 전설이다’

ⓒ위클리서울/ 왕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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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 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뤘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 포스터ⓒ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한창이다. 코로나19는 세계적인 팬데믹을 일으키며 1년여 사이에 수백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20세기 최악의 바이러스인 셈이다. 다행히 작년 말부터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이제 코로나19 백신은 바이러스를 극복할 인류의 마지막 보루이자 희망이 됐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작년 말 첫 접종이 시작됐던 영국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발견됐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 개발된 백신이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코로나19 백신은 기존에 백신 개발에 걸리던 5~1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단기간에 개발된 터라 안정성 문제가 계속 대두되어왔다. 더욱이 화이자와 모더나 제약에서 개발한 백신의 경우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의 백신이 아니라 인류 최초로 메신저 리보핵산 백신(mRNA 백신) 방식으로 개발된 백신이라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백신이 문제가 되어 변종 바이러스가 확산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러한 이 상상은 70여 년 전 미국의 극작가 리처스 매드슨(Richard Matheson)에 의해 제시됐다. 그가 1954년에 내놓은 걸작 <나는 전설이다>는 암 백신으로 개발된 약이 변종 바이러스를 일으켜 사람들을 변종 인간으로 변화시키고 세상의 종말이 시작된다는 허무맹랑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SF소설이다.

이를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이 다시 영화로 만든 작품이 2007년도에 나왔다. 당시 소설이나 영화를 만들 때만 해도 현재와 같은 상황을 예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코로나19를 겪고 백신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단순히 상상에서 끝날 것 같지 않아 무서워진다.
 

획기적인 암 백신이 만들어낸 변종 바이러스, 인간 멸종의 시작이 되다

세상이 끝났다. 주변에 인간은 보이지 않는다. 로버트 네빌(윌 스미스 분)은 세상이 끝난 지금 몇 남지 않은 생존자 중 하나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생명체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변종 인간들뿐이다. 인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인간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려 부숴버릴 수 있는 괴력을 지닌 변종 인간이 바로 그가 함께 숨 쉬며 살고 있는 ‘이웃’이다.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인간이다.

인류가 멸종하기 3년 전, 암을 정복했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된다. 획기적인 암 백신이 개발된 것이다. 인류가 암을 정복하다니. 사람들은 너도나도 새로 개발된 암 백신을 접종했다. 하지만 이 백신은 오히려 변종 바이러스가 되어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인간은 죽고 새로운 변종 인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감염자가 득실대는 뉴욕을 버리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뉴욕은 곧 사람들이 없는 유령도시가 됐다.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은 텍스트로 존재하던 소설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했다. 인간이 사라진 도시의 모습은 이런 모습일까. 아무도 없는 폐허가 된 도시에서 개 한 마리와 홀로 살아가는 네빌의 모습은 처연하다.

그가 연출한 영화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 2007)’은 단순히 좀비 영화가 아니다. 영화 인간이 왜 살아야 하고 왜 서로 어울리며 살아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묻는다. 로버트 네빌이 아무도 없는 끊어진 다리 위에서 허공을 향해 골프공을 치는 장면이나 침대가 아닌 욕조에서 홀로 쪼그려 잠드는 모습은 우리에게 인간이 왜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는 명장면이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나는 전설이다’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나는 전설이다’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인간이 없는 지구,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여야만 할까

주인공 로버트 네빌은 군인이자 과학자다. 그는 변종 인간이 가득 찬 미국 뉴욕에 남았다. 변종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그가 홀로 이 세계에 남아있는 이유다. 하지만 그는 외롭다. 인간은 홀로 살아가기 어려운 존재라는 것이 영화 곳곳에 남는다.

네빌의 목표는 한시라도 빨리 치료제를 개발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종 인간을 잡아 혈장을 채취해야 한다. 위험천만한 일이다. 변종 인간은 사람을 물어 피를 빨고 사람들을 먹는다. 더욱이 이 변종 인간은 보통 생각하는 좀비나 뱀파이어와는 다르다. 두 종의 혼종이라고나 할까. 보통 좀비는 느리게 걷는다. 생각하는 지능도 낮다.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과는 다른 점이다. 또한 이들은 뱀파이어처럼 밤에만 활동하지만 뱀파이어처럼 홀로 다니지 않는다. 뱀파이어는 괴력을 가지고 있고 높은 지능으로 인간들을 사냥하고 인간들을 피해 다니지만 군집 생활을 하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홀로 움직인다. 하지만 이 변종 인간은 괴력을 가지고 있고 피를 빨고 밤에만 움직이지만 지능이 인간 이상으로 뛰어나며 리더에 의해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 고도의 훈련병처럼 움직인다. 네빌이 홀로 변종 인간을 사냥해 치료제 개발하기 어려운 이유다.

네빌은 낮에 활동하지 않는 약점을 노리기로 한다. 그는 마네킹을 이용, 어두운 그늘로 변종 인간을 유인해 생포하는 데 성공한다. 그가 잡은 변종 인간은 우두머리의 부인이었다. 변종 인간 무리의 수장인 리더는 자신의 아내가 실험대상으로 잡은 것을 알고 분노한다. 그는 인간과 같이 생각하고 부하들을 움직인다. 인간보다 더 강력한 괴력과 체력으로 집을 둘러싸고 벽을 타고 오르며 네빌을 위협한다.

영화에서 변종 인간은 인간 중심의 시각으로 봤을 때 무서운 ‘괴물’이다. 하지만 괴물이라는 정의 자체가 인간 중심의 사고로 만들어진 용어일 뿐이다. 하지만 정말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른 지적인 생명체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사랑하는 이를 잃은 변종 인간의 울부짖음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람이 전부 죽고 변종 인간만이 살아 있다면 홀로 남은 네빌도 변종 인간이 되어서 살아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영화는 관객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쏟아낸다. 하지만 이런 철학적 질문은 관객들에게 맡긴 체 영화는 지극히 ‘인간적인’ 결말을 도출한다. 네빌은 변종 인간의 혈액을 채취해 치료제를 만들고 사람들을 구한다. 물론 그는 이 세상에 없다. 변종 인간들과 함께 화염 속에 사라진 뒤다. 네빌을 변종 인간들에게서 구해준 또 다른 생존자인 안나와 그의 어린 아들 에단이 인류의 희망이 됐다. 그들은 네빌이 생명을 다해 구한 변종 인간의 혈액을 안전지대의 의료진에게 건네고 의료진들은 혈액으로 치료제를 개발한다.

원작의 결말에서 네빌은 변종 인간들에게는 바로 자신이 괴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반전이다. 하지만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 공식 그대로 인류를 구한다는 시시한 영웅 서사시로 서둘러 결론 낸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지금과 같은 현실 상황에서는 영화 속 ‘뻔한 해피엔딩’이 맘에 쏙 든다. 무엇이든 현재 코로나19를 퇴치할 수 있는 백신과 치료제만 성공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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