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주나 – 세계여행] 뉴욕2

오전11시 타임스퀘어 광장. 도착하자마자 늦었다는 걸 깨달았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김주아 기자]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네, 안녕하세요. 뉴욕에서 세계여행 103일째를 맞이한 국제 나이 30세 김준아 입니다.”

“세계여행이요??? 우와! 너무 멋있으시네요!”

“감사합니다.”

“여행은 어떻게 시작하신 거예요?”

“그냥요. 그냥 하고 싶어서 했어요.”

“네??? 그냥이요?”

“네. 어느 날 세계지도를 봤는데 그냥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하고 나면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도 조금씩 이유를 알아가는 중이고요.”

 

빌보드에서 촬영하는데 바로 뒤에서 손을 엄청 흔들었다. 한국 뉴스 볼 때마다 손 흔드는 분들보다 굉장히 용감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렇게 신이 났었다니. 여행의 힘이 아닌가 싶다.
빌보드에서 촬영하는데 바로 뒤에서 손을 엄청 흔들었다. 한국 뉴스 볼 때마다 손 흔드는 분들보다 굉장히 용감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렇게 신이 났었다니. 여행의 힘이 아닌가 싶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사진 속 가운데 건물 꼭대기에 보이는 크리스탈 공. 쟤가 떨어지는 걸 보려고 13시간을 서 있었다니! 잘했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2018년 12월 31일, 뉴욕에서 한국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와의 인터뷰로 아침을 맞이했다. 세계에 있는 별밤 특파원들이라는 주제로 12월 31일을 장식하는 인터뷰를 했는데 마지막 순서였던 나는 시간 관계상 사전 인터뷰 때 했던 말들을 다 하지 못했다.

“여행을 하고 있는 매순간 신기해요. 꿈꾸던 도시를 걷고 있다는 사실에 자꾸 웃음이 나고요.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울 때마다 또 새로운 꿈이 생기고 있으니 참 신기하죠? 무엇보다 저에 대해 알아가고 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황 대처는 어떻게 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하루를 살아가는지 등을 알게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에 집중하게 되고, 매일 하루가 시작된다는 자체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어요. 아! 멀리 떨어져 있으니 가족들에 대한 소중함과 사랑도 느끼고요. 사실 여행을 해보니 어떤지 이야기 하라고 하면 밤새 할 수도 있어요. 2018년도는 저에게 정말 최고의 해였고요! 2019년도에도 가족들의 건강했으면 좋겠고, 모든 사람에게 매일 굿뉴스만 생기는 세계 평화가 꿈이에요. 그래야 제가 여행을 계속 할 수 있거든요. 오늘은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27번을 위해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 볼드랍(ball drop)에 참여할 예정이에요. 마지막으로 2019년도에 바라지 않는 유일한 것은 귀국입니다!”

같은 계절에 같은 도시를 재방문한 이유, 그것도 그 추운 날 다시 찾은 이유, 가장 비싼 시기에 가서 1주일 동안 한 달 여행 경비를 소비했던 이유. 그게 바로 볼드랍(ball drop) 행사였다.

볼드랍(Ball drop)은 1907년에 시작한 뉴욕의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이다. 6톤짜리 크리스탈 공을 원 타임스 스퀘어 건물에 설치하고, 신년이 되는 순간 43m 아래로 내리는 행사이다. 그와 동시에 1300kg의 색종이가 휘날리고 전 세계인들이 함께 새해를 맞이한다.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13시간과 가장 짧았던 60초가 지난 직후 세상이 멈춘 거 같았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볼드랍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언제인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도 1월 1일을 맞이하며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 타종 행사를 하는 것처럼 뉴욕에도 그런 행사가 있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버킷리스트를 적을 때도 최우선순위는 아니었다. (버킷리스트는 83가지가 있다.) 우선순위는 아니었지만 꼭 경험해보고 싶었고, 누구보다 멋진 연말을 보내고 싶었다. 세계여행을 하는데 그 정도 경험은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12월 31일 하루 종일 비에 젖은 샌드위치 반 개로 배고픔을 달래며 물 한 모금 못 마실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새해 카운트다운이니까 당연히 밤12시 무렵 행사를 진행하고, 축하 공연은 31일 저녁 6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모든 커뮤니티에서 오전 일찍 행사를 가야된다고 했다. 타임스퀘어 7번가 쪽이 통제되면서 행사가 진행되는데 그 정도면 꽤 큰 면적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전 일찍 가서 기다릴까? 의아했지만 여러 후기를 찾아보고 나름대로 양보한 시간인 오전 11시에 타임스퀘어에 도착했다. 그런데 세상에.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걸 도착하자마자 깨달았다. 이미 무대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날 약 2백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다들 시간도 돈도 많은가보다. 그래도 생각보다 좋은 자리를 잡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서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무서운 뉴욕 경찰이 재정비를 하더니 쫓아냈다. 이미 한 시간 동안 경찰들과 그곳에 서있었는데 이제야 그곳은 비워둬야 한단다. 진작 말해주지… 억울했지만 뉴욕 경찰은 무서우니까 빠르게 다른 쪽으로 이동을 했다. 이동하는 것도 죽을 맛이다. 양 옆, 앞, 뒤에서 사람들이 누르는데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서 있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 그냥 끼어 있었다. 겨우겨우 빠져나와서 짐 검사를 받고 가라는 쪽으로 갔다. 또다시 계속 사람들이 밀어댔다. 끝까지 버텼다. 거기서 버티지 못하면 오전 11시에 온 수고가 물거품이 되기에 덩치 큰 서양인들 사이에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잘 나온 사진이 없어서 여러 매체의 사진을 찾아봤는데 이날은 비가 너무 내려서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찍은 사진도 다 내 사진 같았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겨우 자리를 잡고 서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니, 폭우다. (역시 내가 도착하는 곳엔 비가 온다.) 짐 검사를 하는 이유가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인데 우산도 금지 품목 중 하나이다. 배낭을 메고 있어도 절대 입장 불가이다. 워낙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평범한 물건도 무기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우산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건 그곳에 서 있으면 1분 만에 깨닫게 될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 예보를 알고 있어서 우비를 챙긴 덕분에 바로 우비를 입었다. 핸드폰 유심도 없어 할 일이 없었기에 그냥 서 있기 시작했다. 31일 행사 날엔 타임스퀘어 7번가 가게들은 전부 문을 닫는다. 주변에 사용 가능한 와이파이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전 날 미국여행 커뮤니티에서 동행을 구해서 한국인 동생과 함께 서 있었다. 종종 수다를 떨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로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말도 아꼈다.

점심시간쯤 6번가와 8번가에서 들어오는 골목도 막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후기를 찾아보니 운 좋게 뒤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찰나의 순간에 진입한 분들도 있다고 한다. 내 생각이지만 그 정도 운이면 복권을 사야 한다고 본다. 그냥 무조건 일찍 가서 기다리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 무대 앞 쪽에 있는 사람들은 전날 그곳에서 잤다고 한다. 대단하다. 그리고 자리를 이탈하면 다시 진입하지 못한다. 이 말이 무엇이냐. 화장실을 못 간다는 말이다. 화장실을 못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마시지도 먹지도 못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사실이다. 샌드위치 반개를 먹고 내내 버텼다. 근처에 있던 한 외국인은 밤 11시쯤 도저히 안 되겠는지 자리를 빠져나갔다. 내가 다 안타까웠고 샌드위치만 먹고 버티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행사가 끝나고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너무 고생을 해서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축제에 참여 했을 뿐인데 해볼만 하다고 표현하다니.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못 먹고, 못 마시고, 화장실도 못 가는 건 예상했던 일이라서 어떻게든 참을 수 있었다. 그 날 가장 힘들었던 건 꼬박 12시간 내내 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서 있기 너무 힘들어서 바닥에 잠시 앉았다가 옷이 홀딱 다 젖어서 결국 일어날 정도였다. 볼드랍 역사상 12시간 내내 비가 내린 건 처음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 비가 많이 내렸냐면… 겉옷 안쪽에 안고 있었던 카메라가 비에 젖어 고장이 났고, 목욕탕에 다녀온 것처럼 손가락이 불었다. 추위에 대비해 하의 4겹, 상의 7겹을 껴입고 갔었는데 속옷까지 젖었으며 넷째, 옷 안에 들고 있던 크로스백에 숨겨져 있던 여권까지 젖었다. 그냥 거지꼴이 되었다.

6시가 되면 크리스탈 볼에 불이 들어오고 행사가 시작된다. 낮에는 리허설도 진행되기에 나름 버틸 만하다. 그 해를 가장 빛낸 뮤지션 스타들이 행사에 참여하는데 역대 볼드랍 행사 중 우리나라에서는 싸이, 유재석, 방탄소년단이 참석했었다. 내가 갔던 해에 한국 스타가 없는 건 아쉬웠지만 운이 좋게도 가수들 이동 경로 옆에 서 있었다. 무대는 멀어서 손가락 크기 정도로 보였지만 내 앞으로 전부 지나갔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스팅, 스눕독 등이 내 옆을 지나간 것이다! 빌보드에서 나와 가수들을 인터뷰 하는데 바로 뒤에서 손을 신나게 흔들었다. 한국 뉴스 볼 때마다 손 흔드는 분들을 보며 굉장히 용감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렇게 신이 났었다니. 그 후 방송에 나왔는지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지 못했다.

 

이 사진 한 장이 그날의 13시간을 말해주고 있다. 수많은 인파, 비에 젖은 생쥐 꼴, 그래도 행복.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그렇게 음악 듣고, 춤추다보면 6시부터 매시 정각, 앞으로 몇 시간 남았다고 폭죽을 터트리며 알려준다. 마치 “너희 지금 그 꼴로 놀 시간이 얼마 남았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13시간이 지나가고 오지 않을 것 같은 밤 12시가 왔다. 카운트다운은 60초 동안 진행된다. 60초라니! 원래 카운트다운은 10초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짧은 60초로 느껴졌다. 정말 순식간이다. 눈물이 찔끔 났다. 내가 이거 보려고 이 고생을 했구나!!!

정말 오만가지 감정이 들었다. ‘13시간이 드디어 지났구나! 60초가 이렇게 짧았나? 와! 대박! 해피뉴이어! 앗? 새해야? 정말 새해 인거야? 말도 안 돼!’

행사가 끝났고, 너무 지쳐서 배고픔도 잊었다. 행사 중간에 큰 트럭이 와서 선물로 나눠준 우스꽝스러운 모자와 장갑, 목도리를 받았다. 여행하면서 짐을 늘리지 않으려고 약 40일 동안 똑같은 옷을 입은 내가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물건이다. 평생 기억하고 추억할 것이다. 2017년 뉴욕 여행을 위해 샀던 카메라가 2018년 뉴욕 여행에서 사망했지만 당분간은 가볍게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기뻤다. 그 외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무사히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 했을 뿐. 그날 함께 한 한국인 동생이 이런 질문을 했다. “언니, 히말라야가 더 힘들었어요? 오늘이 더 힘들었어요?” 대답할 수 없었다.

 

행사 중간에 협찬사에서 모자와 목도리, 장갑을 던져 주었다. 짐을 늘리지 않으려고 약 40일 동안 똑같은 옷을 입은 내가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물건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숙소에 돌아가 씻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넘어졌다. 멍이 들었다. 도대체 여행하기 전에 적은 김준아의 고생 버킷리스트가 몇 개 인건지… 메모장을 봤다. 그리고 또다시 적은 새로운 버킷리스트. 비 때문에 제대로 된 사진 못 찍었으니까 ‘뉴욕에서 카운트다운 사진 찍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순간의 나를 저주하며 뉴욕에 서 있겠지? 정말 힘들지만 다시 가고 싶다. 새해가 되는 순간 폭죽이 터지고,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성 그리고 음악까지. 시끌벅적 했는데 신기하게 모든 게 멈춘 기분이었다. 흩날리는 색종이는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천천히 떨어졌다. 세상의 중심이 나인 것만 같았고, 덩그러니 제 3세계 어딘가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다시 경험하고 싶다. 그날을 고대하며 오늘도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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