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탐방기를 연재하는 이유
영화제 탐방기를 연재하는 이유
  • 김혜영 기자
  • 승인 2021.04.29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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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탐방기] 외전
ⓒ위클리서울/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지금까지 영화제 탐방기를 통해 총 여섯 개의 영화제, 약 스물 한 편의 글을 써왔다.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무엇보다도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가끔 다른 글로 환기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영화제 탐방기와 이렇게 중간 중간 끼어들 외전을 모두 재밌게 읽어주시기 바란다. 시작은 당연히 이 시리즈를 연재하는 이유가 되겠다.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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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좋아하세요?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어렵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이 정도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걱정이 될 때가 있고, 영화제를 자주 다니지만 이 정도로 잘 안다고 말하기엔 겁이 날 때가 많다. 내가 나를 100% 알고 있다는 확신도 불가능한데 무언가를 알고 또 좋아한다고는 어떻게 단언하겠는가. 만약 ‘싫어함’, ‘좋아하지는 않음(보통)’, ‘좋아함’의 세 가지 분류 기준만 있다면 간편해지겠지만, 이것만으로 걱정과 불안이 종식되지는 않는다. 이건 스스로 어떤 절대적 수치에 이르지 못했다는 자기객관적인 평가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한 어떤 부류의 사람’과의 상대적 비교를 통해 얻는 감각에 가깝다. 나는 영화를 이것밖에 보지 못했고, 저 정도로 좋아하지는 못한다는 서글픈 결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면, 추측컨대 보통의 씨네필들은 어떤 영화에 꽂혀서 그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찾아보고, 그러다 이 시대의 영화들에 영향을 끼친 고전 영화들을 찾아보고, 보다 보니 자연스레 대학에서도 영화를 전공하게 된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그만큼 수적으로, 또 다양성의 면에서도 많은 영화를 봤다는 것이 일반 대중과의 차이일 것이다. 무엇보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멈추지 않고 계속 더 나아가며 영화를 찾아봤다는 적극적인 능동성이 있다. 나는 거기서부터 그들과의 차이가 벌어지고, 의기소침해진다. 그러한 서사가 없는 이유는 내가 무언가를 꾸준히, 깊게 좋아하기에는 게으르고 산만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감독의 딸로 태어난 탓도 크다(고 말하고 싶다).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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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확률이 높아서 좋다

자신을 소개할 때 부모님의 직업을 말하는 것만큼 멋없고, 비윤리적인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다만 영화를 공부하는 내가 영화계 종사자였던 아빠 이야기를 꺼내는 건 어쩔 수 없는 유전적, 환경적 영향력이나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결코 자랑이 될 수 없다. 이런 말은 최대한 줄이고 다시 본래의 이야기를 이어가보자면, 감독 출신인 아빠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많은 영화를 봐왔다. 독서를 즐기는 엄마를 따라 책을 자주 읽었던 것처럼 아빠의 영향으로 영화를 자주 보면서 자랐다. 그만큼 스스로 찾아서 영화를 본 경험은 적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중에서도 어떤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정립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 영화란 아빠의 것, 그러니까 나만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문화라는 인식이 너무 깊었다.

전에 영화제를 찾는 즐거움 중 하나가 우연성이라고 쓴 적 있다.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어떤 영화인지 수많은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일반 극장의 영화들과는 다르다. 감독의 이름과 국가부터 낯설고, 인터넷에 영화 이름을 검색해봤자 한 줄짜리의 줄거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직 정식 개봉을 하기 전이거나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독립 영화가 많아서 그렇다. 그러니 영화제에서는 예매 전에 정보를 샅샅이 뒤져보고 꼼꼼하게 고른다 한들, 입맛에 맞는 영화를 성공적으로 관람하기 어렵다. 왠지 영화제까지 가기엔 꺼려진다는 사람들의 대부분 이유가 이러할 것인데, 나는 오히려 그 우연성과 높은 실패의 확률 때문에 영화제가 좋다. 스스로 영화를 찾아보며 탐구했던 씨네필들과 달리, 아빠의 추천으로 좋은 영화를 쉽게 봐온 나는 어쩌다 우연히 좋은 영화를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우연성과 능동성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누군가 떠먹여주기만 한다면 그게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지를 알 수 없다. 처참하게 맛이 없고, 조금 먹을 만한 정도는 되고, 종종 떠오를 것 같은 다양한 음식들을 먹다가 우연히 기가 막히게 맛이 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비로소 그 맛의 가치를 알 수 있다. 다양한 음식을 직접 찾아 먹어봐야 한다는 필요성도 그때야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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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즐겨야 용기와 자유가 생긴다

별점이 높은 영화만 계속 보다 보면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깐깐해진다. 좋은 말인 것 같지만, 안목이 생기는 과정이라기보다는 편협해지는 단계로 보는 것이 맞다. 안목은 내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영화, 모든 사람들이 혹평을 쏟는 영화까지 다양하게 볼 때 생긴다고 믿는다. 그래야 좋은 영화가 왜 좋은 영화인지 알 수 있고, 내 기준이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으며, 진정한 나만의 취향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영화제를 다니면서 비로소 아빠의 추천 리스트가 아니라 위험성이 있는 모험을 즐길 줄 알게 되었고, 누군가의 기준과 별점에 흔들리지 않은 채 나만의 안목으로 영화를 찾아보는 용기와 자유가 생겼다.

그러니까 이 모든 사설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단 하나다. 사실 나는 영화제를 돌아다닌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혹여 ‘영화제 전문가’가 쓰는 글로 오해될까 두려워 마음을 졸이면서 이 탐방기를 연재하고 있다. 이 시리즈를 한 편이라도 읽어본 이는 알겠지만, 대단한 정보 전달보다는 이렇게나 좋은 것이 있으니 같이 누려보자는 영업과 직접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적어내리는 일기에 가깝다. 영화란 본래 대중오락에서 출발하지 않았는가. 나처럼 전문가가 아닌 어린(?) 학생도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장르라는 것, 우연히 본 영화 한 편이 마음을 적시고 내 좁은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늘 강조하듯, 도전과 모험과 우연히 있는 영화제가 그러한 영화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취향과 맞지 않아도 2시간 동안 꼼짝 않고 갇혀있어야 하는 고문형 엔터테인먼트, 그런 영화의 시간에 맞춰 여행을 조율하게 되는 이상한 관광. 이 모순적으로 즐거운 현장에 여러분을 초대하기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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