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홍범도 연구 권위자’ 장세윤 교수-1

‘홍범도 연구 권위자’ 장세윤 교수
‘홍범도 연구 권위자’ 장세윤 교수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최근 역사학계에선 독립운동사 연구에 대가 끊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2019년 3.1운동-임시정부 100주년, 지난해 봉오동-청산리 전투 100주년 효과도 무색했다. 조사에 따르면 독립운동 관련 박사논문은 최근 5년간 11편에 불과하다. 더욱이 근래 신진 연구인력의 양성이 어려워지면서 독립운동사 연구가 위축되는 경향이다. 후속 세대의 명맥이 끊겨가는 상황. 2000년대 초․중반엔 이른바 ‘동북공정’으로 알려진 중국의 연구작업이 진행되면서 중국 동북지역 한민족과 관련된 자료와 유물, 유적, 유적지 등에 대한 접근도 어려워졌다. 한국계 중국 동북 이주민의 후예인 ‘조선족’ 문제까지 한․중 양국의 현안으로 부각되면서 이 지역 관련 독립운동사 연구가 더 어려워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학자나 학계가 국가나 사회의 분위기나 정부 등의 방향에 영향 받지 않을 수는 없다. 더군다나 한국근현대사나 독립운동사 관련 연구 성과는 시국이나 정권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 들어 독립운동사 연구 성과가 더욱 미비하다는 점에 각계에선 의아해 하는 눈치다.


홍범도 장군 연구 권위자인 장세윤 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 역사연구소 교수, 동북아역사재단 명예연구위원)는 “역사학계가 정부나 정권, 특정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관련 연구와 교육 등이 지속될 지는 장담할 수 없다”며 “중요한 것은 연구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적 연구 환경이나 기반 조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정부나 관련 단체의 지원 없이도 학계 스스로 연구․교육하고 성과를 내고, 주변과 국제사회, 국민, 학생들과 소통하는 자율적 시스템과 절실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립운동사 연구 위축과 관련해선 “서양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무려 2500여 년전 그리스인들의 자유를 향한 투쟁의 역사, 곧 페르시아전쟁사를 매우 자랑스럽게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근현대사로 분류되는 독립운동사 조차에도 이해나 관심이 그리 높지 않은 듯하다”고 우려했다.

역사학계의 상황이 이러한데, 한쪽에서는 여전히 ‘식민지 근대화론’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철도나 도로, 항만, 은행, 학교, 의료기관 등 각종 공공시설과 기관이 일본에 의해 개발되었다는 게 요지다. 이들 철도와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의 도입과 설치는 일본이나 조선총독부 주도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일본 정부 당국이나 조선총독부 등에서는 식민지 ‘조선’을 개발했다고 크게 선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장 교수는 “기본적으로 이들 인프라 스트럭쳐와 공공기관 등의 이용은 거의 일본의 침략과 수탈을 뒷받침하는 데 집중되었고, 한국인들을 동원해 완성된 경우가 많았다”며 “그 혜택도 거의 일본인이나 식민지 통치 당국 및 관련기관이나 단체에서 독점했다. 말하자면 식민지의 한국인 민중들은 이용과 혜택에서 소외되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때 설립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자문위원으로 2005년 12월부터 2년간(비상임) 활동했고, 2019년 9월부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종로구 자문위원을 맡아 남북통일 관련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몇해 전 개봉된 영화 ‘봉오동 전투’ 자문을 맡기도 했다. 다음은 장세윤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 역사학계가 기근이다. 조사에 따르면 독립운동사 관련 박사논문은 최근 5년간 11편에 불과하다.

▲ 최근 역사학계의 연구동향 검토 결과 특히 독립운동사 관련 연구는 전반적으로 침체, 또는 퇴조기에 접어든 게 아니냐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일찍이 ‘인문’이란 용어는 공자 ‘주역’의 한 괘에 대한 해석에서 비롯되었다. 공자는 “사람의 무늬(문장 등 표출된 형식)를 관찰해서 천하를 교화하여 이루어나간다”라고 해석했다. 인문학적 글쓰기가 매우 중요한 임무와 기능을 담당한 것을 가리키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인문과학의 한 분야인 역사학을 전공하고 관련 도서 등을 내는 일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양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무려 2500여 년전 그리스인들의 자유를 향한 투쟁의 역사, 곧 페르시아전쟁사를 매우 자랑스럽게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100년 전인 우리의 독립운동사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그리 높지 않은 듯하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 역사학계 전반의 문제인가. 아니면 근현대사 부분에서만 문제인가.

▲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받는 몇 개 대학을 제외하면 역사학계 전반에 걸쳐 사학과 학생들의 대학원 진학이 저조하다는 것이 문제다. 또한 학부과정 사학과나 역사교육과 등 역사관련 학과나 학부의 존재 자체가 위협 받고 있는‘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이나 논리’, 또는 자본주의 사회특유의 경쟁논리가 중요한 배경이다. 특히 지방대학의 경우는 문제가 심각하다. 심지어 학부과정에 개설된 사학과가 없어지거나, 다른 학과와 통합되고, 전임 교수들은 교양학부 등 교양과정 소속으로 개편되기도 한다. 그래도 근현대사 전공 지원 비율이 고대사나 중세, 근세 등 전근대 시기 전공보다는 높은 편이다.

 

​-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학문적 재미의 문제인지, 깊이의 문제인지. 아니면 대중성의 문제인지.

▲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역사학 전공이나 역사학자로서 전업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현실 때문이 아닌가 한다. 평생 역사 관련 직업이나, 연구와 강의, 글쓰기 등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역사학 전공 학생들의 진로나 취업문제, 그리고 최근의 사회 현상과 풍조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무래도 역사학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역사를 업으로 삼기 어렵게 하는 듯하다. 최근 수요가 늘고있는 IT나 컴퓨터, 공학, 의약학 분야 등은 정부나 공공영역, 기업체 등에서 수요가 많고, 재정적 지원이 더 풍부한 것 같다. 열악한 현실적 여건이 주요 원인이 아닌가 싶다.

 

​- 적어도 근현대사나 독립운동 관련 논문은 정부 성향에 따라서 논문수가 증가할 것 같은데. 정부 성향과 무관한 일인지. 결과야 어찌되었든, 문재인 정부 들어 근현대사 논문에 매진하는 학자들이 늘어났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 볼 수 있다.

▲ 물론 학자나 학계가 홀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나 사회의 분위기나 정부 등의 방향에 영향 받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한국근현대사나 독립운동사 관련 연구 성과는 시국이나 정권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학계가 정부나 정권, 특정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19년의 경우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기 때문에 예산을 지원하는 각종 학술회의나 기념사업이 많았고, 관련 논문과 저서 등이 다소 늘었다. 또 작년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독립전쟁 등 항일독립전쟁 100주년이었기 때문에 역시 예산지원을 받는 학술회의와 기념사업, 행사 등이 많았다. 이에 따라 올해 관련 논문과 저서 발간 등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 연구와 교육 등이 지속될 지는 장담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연구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적 연구 환경이나 기반 조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또 정부나 관련 단체의 지원 없이도 학계 스스로 연구․교육하고 성과를 내고, 주변과 국제사회, 국민, 학생들과 소통하는 자율적 시스템과 절실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 최근 젊은 학자들은 운동사에서 생활사로 관심을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생활사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 생활사는 글자 그대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에 관한 역사,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조명하는 역사학의 방법론,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그동안 학계에서 심층적으로 연구되거나 조명, 토론되지 못했다. 아무래도 시대의 분위기가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과거 1980~199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이 활발했던 시기로 한국사나 민중운동사, 독립운동사, 민족해방운동사가 운동권의 주요 이데올로기 제공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 때 이른바 ‘민중사학’이라는 연구방법론이 부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과거와 같은 질풍노도의 시대, 혁명의 시대는 아니지 않은가?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됨에 따라 과거의 ‘거대담론’에서‘미시담론’으로 변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음식이나 향신료, 무기, 침대 등 기호품이나 생활(도구)의 역사는 깊이 연구되지 못했다. 따라서 좀더 다양한 관점에서 여러 가지 생활사 관련 연구가 진작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최근 한국사회에서 커피가 언제 도입되었고, 어떻게 유통되었으며, 다방․카페 등은 언제, 어디에 있었으며, 누가 출입했는가? 또 그 문화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등을 조명하는 논문이나 책이 나온 바 있다. 어떤 면에서는 흥미있는 소재, 이야기거리이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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