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봅시다] ‘가난한 예술가’ 연극배우 홍성수

 ‘가난한 예술가’ 연극배우 홍성수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연극계의 마지막 숨은 보석 연극배우 홍성수! 스스로 대한민국 대학로 연극계에 마지막 남은 ‘천연기념물’이라고 내세운다. 반드시 자기 소개 글을 이렇게 써달라고 안달이다. 티브이에 출연하지 않아 일반인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키 181센티미터 몸무게 78킬로그램에 개성 있는 외모를 갖췄다”라며 눈을 부라린다. 환갑이 넘었지만 여전히 젊은 여인들로부터 유혹을 받고 있다며 너스레다.

젊은 시절부터 강하고 개성 있는, 그러면서도 정체불명의 독특한 역할을 도맡아 해왔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까지는 ‘선달 배비장’이라는 작품에서 사또 역을, ‘신방자전’에서도 춘향을 탐하고 괴롭히는 사또 역을 함으로써, 주변 동료들로부터 최근엔 사또 전문배우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영화는 두어 편 출연 했었는데, ‘크로씽’에선 북한 강제수용소의 악랄한 소장 역을 맡아 주인공 차인표의 아들 역을 발로 차며 괴롭히는 악역을 연기했다. 영화 ‘겨울나비’에서도 북한 보위부 역을 맡아 주인공을 괴롭히는 섬뜩한 악역을 맡았다. 그러니 영화에서는 북한군 악역 전문 배우이기도 했다.

정작 연극무대에서는, 점잖은 체 하면서 은근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코미디 연기를 많이 했다. 다시 말하지만, 수 십년 연극 경력의 동년배 배우들과 비교하자면 일반인들에게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를 스스로 “다른 세상에 눈을 돌릴 만큼 부지런하지를 않아서이며 동시에 실력이 부족해서 일 것”이라고 한다.

80년대 대학로에서 함께 연극을 했던, 지금은 거목이 된 선배 영화배우들과도 인연이 있다. 왜 영화판으로 따라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배우 홍성수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연극배우들은 영화판이나 방송국 주변에 어슬렁거리다가 선배들에게 혼쭐이 났었다. 배우 중의 배우는, 그리고 배우 중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연극배우이기 때문이라는 지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도 그런 지론에 따라 예술 혼을 불태우냐는 질문에는 “다 필요 없다. 돈만 된다면 지옥에라도 가겠다”며 돌변했다.

가볍고 유쾌한 얘기들이 오가다가도 진중한 질문을 던질 때면 인상을 쓰는 배우 홍성수. 경우에 따라서는 대답이 까칠해진다. 어쩌면 인터뷰 상황을 연기로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 그로부터 연극무대 관련 많은 얘기를 들었지만 지금은 유명해진 과거 선후배들 얘기는 일절 기사화 할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왜 그러냐 물었더니, “혹시 그들이 고발 고소 하면 어떡하느냐, 다들 소속사도 있고, 나는 돈도 없는데...”

그는 우리나라 상업 뮤지컬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아가씨와 건달들’을 비롯해서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 그 외에도 ‘인생 제2장’,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 ‘도망중’, ‘연인과 타인’, ‘상어와 댄서’, ‘쿠데타’, ‘어떤 테러’, ‘신 방자전’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주전공이 코미디인만큼, 인터뷰도 유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의 바람을 인터뷰에 담았다.

 

ⓒ위클리서울/ 홍성수 제공

- 유명하지는 않다. 무명이라고 해야 하나. 연극계에서는 유명할 수 있겠다. 경력이 어떻게 되나.

▲ 약 40여년 활동했다. 무명과 유명? 길거리에서 누군가 저를 알아본다면 그땐 연극배우라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영화나 텔레비전 등을 통해서 얼굴이 알려졌다면, 더 이상 연극배우가 아니라 영화인이거나 티브이 탤런트겠지.

 

- 그동안 어떤 작품을 해왔나.

▲ 우리나라 상업 뮤지컬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아가씨와 건달들’을 비롯해서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 외에도 ‘인생 제2장’,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 ‘도망중’, ‘연인과 타인’, ‘상어와 댄서’, ‘쿠데타’, ‘어떤 테러’, “신 방자전‘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이다. 그때 배역이 ‘파라비치니’ 역이었다. 개성이 강력해야 해서 그 때 머리를 100프로 다 빡빡 밀어버리고 마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에서의 ‘커츠 장군’(마론 브란도 역) 같은 음산한 분위기를 했다. 머리를 밀었는데, 허망한 기억 밖에 없다. 반응이 싱거웠기에.

 

- 연극계는 가뜩이나 불경기였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때문에 더욱 어렵게 되었다.

▲ ‘더욱 어렵다’는 표현은 공연 예술, 특히 연극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질문이 아닌가 싶다. ‘완전히 문을 닫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 그럼 요즘 뭐하고 사나.

▲ 전남 고흥의 특산품인 ‘유자차’를 주변에 판매하다가 고생만 하고, 지금은 시간당 9000원에 하루 4시간씩 주5일 근무하는 구청 소속의 공공근로(현 정부는 ‘안심 일자리’라 칭한다)를 하고 있다. 소독약 등의 장비를 갖춰서 어린이 놀이터나 점포의 현관 손잡이 등을 소독하며 돌아다닌다. 그리고 주민센터의 출입구에서 입장 인원에 대한 열 체크 업무에도 투입된다.

 

- 평소에도 코털을 기르나.

▲ 제 몸에 있는 것을 제 맘대로 기를 수도 있고, 깎을 수도 있는 것인데 그런 저급한 질문에는 식상한다. 그러나 작품상 이미지가 맞을지도 모르니 일단 긴 머리나 코털을 기르는 것은 늘 해왔던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오늘, 현재는 코털을 기르고 있는데,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연극 공연은 물 건너갔다는 생각에, 홧김에 애지중지 키우고 있다.

 

- 코로나 사태 이후 예술인 지원금 문제가 있었다. 그때 왜 지원금을 받지 못했나.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2월 8일부터 하루 4시간의 공공근로가 시작되었는데, 이것도 고소득이라 생각을 하는지, 수입이 있다고 제외되었다. 아울러 지급 대상자에서 제외되었다는 ‘친절한’ 문자 메시지까지 받았다. 그 연락을 받는 순간 ‘친절한 금자씨’라는 옛 영화가 떠올라 요즘 한국영화의 위세가 대단하긴 하구나라고 생각했다.

 

ⓒ위클리서울/ 홍성수 제공
ⓒ위클리서울/ 홍성수 제공

- 영화에도 종종 출연했다. 금전적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선, 기회가 되면 그쪽 분야로 진출할 생각도 있었지 싶다.

▲ 돈 때문에 제 직업을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카메라 연기를 접해 보기 위해 몇 작품 해 본 것뿐이다. 길거리에서 노동일을 하면서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 요즘 연극계 분위기 어떤가.

▲ 사실 정확히 모른다. 코로나 터진 이후, 도대체 공연 강행이 가능할까 싶어, 강행 중인 연극 몇 작품을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관람했다. 내 개인적인 느낌과 결론은, 관객이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의 관람은 소위 ‘무대와의 교감’이 거의 어렵다는 것이었다.

 

- 영화나 티브이에서 불러준다면? 예전에는 많은 배우들이 연극에만 고집 부렸다고 한다. 진정한 예술가는 티브이, 영화에서의 배우가 아니라 연극배우여야 한다던데.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한다.

▲ 지금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식의 표현을 안 쓴다. 그냥 유명해지기 위해 연기를 할 뿐 아닌가?

 

- 전문 배우로서 ‘메소드’ 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연기 자체가 메소드인데 무슨 메소드 같은 용어를 붙이느냐 하는 의구심도 든다.

▲ 도대체 무슨 뜻인지 나도 모른다. 커튼이 올라가고 무대 천정에 조명이 들어오면 머리가 하얀 상태에서 그냥 할 뿐이다. 메소드 만큼 난해한 단어는 아니지만, 한자어로 내면 연기, 외면연기 운운하는 분들도 상당히 있는 것으로 안다. 전국의 수많은 연기학과 강의실에서 한 학기 시간 보내기에는 좋은 단어일 것이나, 실제로 무대에서 연기 할 때는 그런 구분을 어떻게 할 것이며, 구분이 될 것 같은가? 그저, ‘열심히 한다’라거나 ‘성실한 배우야’라는 등의 표현이 연극배우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 후학 양성 잘 되고 있는지?

▲ 유명하지 않은 무명에게 후학이 존재할 리 없다.

 

- 혜화동올 계속 지킬 것인가. 향후 계획은.

▲ 지킨 적 없고, 젊었을 때 술은 좀 먹고 다녔다. 따라서 앞으로도 지킬 계획이 없다.

 

- 가난한 예술가들 입장에서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이미 지난해가 되어 버렸는데, 저는 서울문화재단에 코로나로 인해 예정된 공연 취소에 따른 피해 구제를 신청 했었다. 당시 개인이나 단체 중 약 13퍼센트가 구제,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안다. 나는 탈락한 87퍼센트 안에 들었지만 화를 낸다거나, 그 13퍼센트 안에 들어간 누군가에 대해서는 의혹이 들었으나,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이 초유의 재난을 극복해야 하는 국가, 정부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충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하고 싶지도 않지만 대통령의 아들이 지원금을 받는 상황을 보며 많은 갈등이 생겼다. 그것은, 신분이 어떻든 대통령의 아들이라 해서, 그도 예술가인데, 역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제 생각이다. 그렇지만, 저 역시 보통 어려운 사람이 아닌데, 심사에 제출한 몇 백 만원 짜리 대관료 영수증만이라도 보전해 주었다면, 마음의 상처가 조금은 덜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엔 하루 일당 3만6000원 번다고 재난지원금도 받질 못하니, 그냥 노느니 만도 못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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