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살같이 달려갔다
세월은 살같이 달려갔다
  • 이선희 작가
  • 승인 2021.05.1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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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어느 삶, 75년 : 2회, 모두가 사랑을 위해 종을 울린다

[위클리서울=이선희]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딸에 대하여,

1970년 6월 20일 딸을 낳았다. 그 시절에는 웬만하면 집에서 애를 낳았다. 올케가 와서 도와주었고, 순산이었다. 다행히 산모도 아기도 건강하게 잘 회복했다. 아이가 백일 정도 지났을 때 나는 돈을 벌어보겠다고 택시 운전을 배우러 자동차 학원에 갔다. 운전면허를 막 따고 연수도 별로 받지 않은 상태에서 중고차를 샀다. 그렇게 운전을 시작하다 하인천 파출소 앞에서 지게를 지고 머뭇거리는 노인을 치었다. 다행히 2주 진단이 나왔으나 이를 엄마가 알자 내 운전면허증을 찢어버리고는 다시는 운전하지 말라 호통을 쳤다. 나는 참, 내가 생각해도 철딱서니가 없었나 보다.

그러는 중에도 세월이 흘러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고,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나는 일주일이 멀다고 학교를 찾아다녔다. 아이는 학교에서 유명해졌다. 예쁘고 착한 내 딸. 초등학교를 가볍게 졸업하고 동인천에 있는 인천여자중학교, 문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에 갔다.

딸애는 인기가 좋았다. 대학에서는 친구들도 많고 컴퓨터 전산과를 졸업했지만 사회는 그렇게 만만치 않아서 조금 어려웠다. 이 무렵 딸애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일용직으로 일을 다녔다. 딸애는 취업을 했고, 남자가 생겼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 좋다고 쫓아다니는 남자는 아직 어려서 안 된다는 엄마의 반대도 무릅쓰고 찾아다니며 임신까지 했다. 어쩔 수 없이 양가 부모 상견례를 마치고 약혼식을 치르고 가정을 꾸렸다.

 

어느 날 삶에 찾아온,

그러나 역시 나이가 너무 어려 잘 꾸려나가지를 못했다. 여기저기 빚만 지고 2년 만에 파경에 이르게 되었다. 시골에 좋아하는 여자까지 있다는 것이다. 90년대에 빚이 수억이면 엄청난 것이다. 내게로 7, 8000만 원을 빚으로 안겨주었으니, 미운 마음에 이혼을 시켰다. 딸애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돌아다녔다. 아이를 낳아서 내게 맡기고, 두 살이 되어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는데 딸애는 어린이집에 취업을 하고 아이와 같이 근무했다.

2003년 나는 성모자이병원에서 목디스크를 수술하고 치료를 받고 있었고, 딸애는 학습지 학원에 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나는 사십칠 세에 할머니가 되었고, 그때부터는 손녀를 위해 사는 삶이 되었다. 손녀는 어린이집에 다니며 내가 일을 갔다 퇴근할 시간이면 어린이집에서 돌아왔다. 손녀는 어린이집을 좋아했다. 선생님들이 참 사람이 좋았다. 그때만 해도 마을이 남아있었다. 어린이집은 늦은 시간까지 밝게 빛을 비추었고,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오면 옆집 이웃이나 집 앞 슈퍼 주인이 선생님이 되어 애를 같이 봐줬다. 어느 날은 아이를 데리러 가면 아기가 양념 묻은 얼굴로 남은 치킨 봉투를 안고 있는데 그렇게 신이 나 보일 수가 없었다.

손녀도 무럭무럭 자라서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아니 대학을 졸업했다. 어언간 딸애 나이도 오십이 넘어갔다. 손녀도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우리 살림은 늘어나지는 않고 여전하다. 딸애랑 손녀가 출근하고 홀로 집에 남아있을 때면 생각에 잠긴다. 생이 무엇이고, 삶은 또 무엇인가. 그동안 평탄만 했을까? 산전수전을 다 겪고 세월이 지나갔다. 살 같이 달려갔다. 2012년 즈음에는 어깨 회전근개 파열 수술을 받았다. 또, 척추전방전위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서 지금까지 그냥 진통제만 먹으며 고통을 참고 살고 있다.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순두부 할머니의 벨소리,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시간 새벽기도를 가노라면 교회로 가는 길목에 보이는 할머니가 있다. 이이는 엄청 씩씩해서 겨울철 두꺼운 옷을 입고 있을 때는 가끔 남자로 보이기도 한다. 이 분은 2동에서 3동으로 넘어가는 육교 입구에서 리어카식 장사를 하는 손두부 장수다.

수년 동안 비가오나 눈이오나 자리를 지키며 장사를 하고 있다. 사람이 지나가면 “손두부 있어요, 손두부요”라고 외친다. 어느 날은 다른 곳으로 가려다가도 멀리 돌아가는 게 싫어 다시 육교를 오르면 낑낑거리는 내 모습을 또 보여주게 된다. 그럴 때에도 또 귓전에는 “손두부요 있어요, 손두부요.”

이이의 삶은 참 열심이다. 올적 갈적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너면 또 돌아오는 목소리는 “손두부 있어요, 손두부요.” 한참을 갈 때까지 여운이 남는다. 2동, 3동의 출입자들을 검문하는 사람 같기도 하다.

나는 이 분이 인사하는 얼굴빛만 보아도, 오늘은 두부를 많이 팔았거나 조금밖에 팔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두부 다이를 보고 대충 알게 되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장사가 잘 된 것이고 좀 우울하다 싶으면 두부가 그대로 쌓여있다. 팔지 못 한 두부는 어찌되는지 모르지만 다음 날에도 여전히 “손두부 있어요, 손두부요.”

이이는 73세라 했다. 나는 이 분을 여느 위인 못지않게 대단한 분으로 생각한다. 아들이 둘이고, 딸이 둘이란다. 아들 하나는 먼저 보냈고, 4남매 중 둘은 출가해 둘이 남아있다. 37세에 혼자가 되어 두부 장수를 해왔단다. 여기서 두부를 팔은 지 25년이 넘었단다. 이 할머니는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손두부 있어요, 손두부” 하고 외치며 종을 울린다.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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