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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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얼마 전이었다. 난타 연습실의 조명이 어두워서 전기공사를 의뢰했다. 작업이 끝나간다고 연락이 와서 급히 연습실로 향하던 길이었다. 집에서 연습실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빠른 걸음으로 5분, 천천히 걸어도 1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 다만 도로를 하나 건너야 한다. 그 날도 급하게 잰 걸음으로 걸어서 큰 길 횡단보도 앞에 도착했다. 신호등은 빨간 불이고 오가는 차량은 제법 되었다.

보행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길 건너편의 차로로 걸어가고 있는 초로의 노인이 눈에 띄었다. 행색은 남루해 보였고 굽어진 허리 때문에 똑바로 걷지 못했다. 몸집마저 왜소한 노인은 조그마한 수레 하나를 밀면서 차로의 한 차선을 점령하고 있었다. 노인이 밀고 가는 수레에는 온갖 파지들이 켜켜이 쌓아올려진 채 굵은 고무줄로 두어 번 감겨져 있었다. 수레를 앞으로 밀고 가는 노인은 파지의 높이와 굽은 허리 때문에 앞을 분간하기 힘들어 보였다. 무게도 상당했던지 몇 걸음 걷고 쉬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가장 위험한 것은 곧 바스러질 것 같은 몸집의 이 노인이 인도가 아닌 차로를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 비록 사람들 앞에서 북을 치고 춤을 추는 난타 강사를 하고 있지만 사실 성격은 그렇게 활발하지 못하다. 남 앞에 나서는 것도 두렵고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크나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마트에서 내가 찾는 물건이 보이질 않아 직원에게 물어봐야 할 때나 길을 헤매어서 누군가에게 위치를 물어봐야 할 때는 온 몸에 식은땀이 다 난다. 상대방이 바쁠까봐 신경 쓰이고 거절할까봐 두렵다. 그렇다. 나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참 친절하다. 마트 직원도 내가 찾는 물건이 있는 곳을 상냥하게 안내해 주고 길 가던 사람들도 친절하게 내가 찾던 그 목적지를 알려준다.

그런데 길 건너 노인은 내가 찾던 마트의 물건도 아니고 목적지도 아니다. 그냥 지나쳐도 되지 않을까? 그러는 동안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었다.

노인의 옆을 지나치는 동안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도와드려야 할까? 거절하면 어쩌지? 그냥 가도 되잖아.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잖아.’

천사와 악마는 이런 식으로 싸우는구나 싶었다. 결국 나의 악마는 이기지 못하고 노인에게 다가갔다. 도와드릴 의향을 내비쳤더니 어라, 나의 걱정과 우려와는 달리 이게 웬 횡재냐 싶은 표정으로 얼른 수레를 나에게 넘긴다. “이~이, 그려.”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한 신혼 여행길에 오르면서 로맨틱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첫날밤을 꿈꾸다가 기분에 취해 술에 취해 첫날밤이고 뭐고 온통 엉망이 된 느낌.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강의노트에 빨간 줄 친 부분, 형광펜으로 색칠해 놓은 부분, 가릴 것 없이 외우고 또 외워서 긴장감 가득 안고 시험지를 딱 받아 들었는데 지도 교수의 이름을 쓰라고 할 때의 느낌.

자다가 갑자기 느껴지는 아침 햇살의 섬뜩함에 깨어보니 일어나야 할 시간보다 한 시간은 더 지나버려 부랴부랴 씻고 준비하면서 다시 한 번 시계를 확인하는 순간 시계를 잘 못 봤음을 확인할 때의 허탈한 느낌 같은 것. 내 도움을 거절할 수 있을 거란 두려움은 기우였다.

수레의 무게는 상당했다. 오래도록 어깨 통증이 있어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는데 괜히 나섰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악마의 유혹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묵직한 수레를 밀며 도로 한 차선을 걸아가야 했다. 노인은 인도로 가는 것을 거부했다. 아마 보도블록이 울퉁불퉁하니 쌓아올린 파지들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듯 했다. 노인은 허리를 굽힌 채 내 뒤를 따라 오고 옆으로는 차들이 쌩쌩 지나간다. 무섭다. 수레의 무게 탓에, 뒤따르는 노인의 걸음이 빠르지 못한 탓에 나도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이 파지들을 모으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조그마한 체구와 굽어진 허리로 파지들을 어떻게 쌓아올리고 묶었을까. 내가 끌기에도 무거운 이 수레를 노인은 어디서부터 끌고 오기 시작한 걸까.

200미터 쯤 되는 길을 걷다보니 연습실에 다 달았다. 전기공사가 잘 마무리 되었는지 확인도 해야 하고 마무리도 지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수레로부터 내 어깨를 탈출시키는 것이 급했다. 그런데 이 노인의 반응이 전혀 예상 밖이다.

난타 수업을 하다보면 내가 가르친 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꼭 한 두 명씩 있다. 나이가 들어 몸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혹은 그이들이 살아 온 습관이나 고집들이 나의 가르침을 넘어서는 것이다. 조곤조곤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강하게 밀어 붙일 필요도 있다. 그들의 신체가 위험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내가 원하는 동작과 타법이 나올 때 까지 스파르타식 훈련을 계속한다. 군무는 마치 한 사람이 움직임처럼 느껴지는 다수의 동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반말도 하게 되고 좀 싸가지 없이 굴기도 한다. 감사하게도 나의 열정이라고 이해해주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싸가지가 넘치다 못해 어버버하기 바쁘다.

“이~ 볼일 보구 와. 내 여기서 기다릴게. 조금만 더 가면 되야. 올 때 음료수 하나만 사 와. 아침을 못 먹어서 배가 고파.”

이건 뭐 거절할 수 있는 눈빛이 아니었다. 내 안의 악마는 예고 없이 출장을 가버렸고 어버버 하는 사이에 노인은 다정하게 나를 배웅했다.

전기공사는 깔끔하게 잘 되었다. 덕분에 어두컴컴했던 연습실 내부가 환해지고 한결 밝아졌다. 사다 둔 두유가 몇 개 남은 게 있어서 하나를 챙겨 나왔더니 노인은 인도에 걸터앉은 채 내가 들어 간 연습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두유를 노인에게 건네고 다시 수레를 잡았다. 이번에는 내가 노인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노인은 허리를 굽힌 채 앞장서서 걸었다. 끌고 갈 수레도 없는 가벼운 몸이지만 노인의 걸음걸이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오히려 뒤따르는 나의 걸음이 점점 무거워졌고 어깨도 결려오기 시작했다. 잠깐의 거리에도 내 육신은 지쳐 가는데 노인은 이 수레를 얼마나 밀고 끌고 살아왔을까 싶었다.

신호등만 건너면 금방이라고 했다. 한참을 걷다가 만난 횡단보도의 빨간 신호등이 내 어깨에 쉴 틈을 주었다. 덕분에 노인도 허리를 펼 수 있었다.

“한 2000원이나 줄랑가 몰러.”

수레의 파지들을 고물상에 팔면 받을 수 있는 예상 금액이 2000원이라고 했다. 지금 가고 있는 고물상이 인근에서는 제일 잘 쳐주는 집이란다. 이 무게의 값이 2000원이라 내게 음료수 하나를 요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횡당보도를 건너는 동안 나의 집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노인이 가고자 하는 고물상까지 이 수레를 끌고 가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생겼다. 내 안의 악마는 다시는 살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천사가 승리를 거둔 것도 아니다. 다만 끌고 온 그 무게의 값 고작 2000원이 내 발걸음에 모터를 달아준 듯 했다. 그 노인이 어디서부터 끌고 왔을지 모르는 인생의 무게가 한없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 날도 노인은 조그마한 수레에 넘치도록 2000원어치의 인생을 끌고 갈 것이다. 그 때도 누군가를 만나 2000원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굽어진 허리를 한 번이라도 더 펼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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