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예전에(결혼 전) 압구정동 H아파트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우리 가족이 거기서 살게 된 이유는 돈이 많아서였다거나 8학군, 혹은 투자를 위한 목적이 아닌 순전히 택시 기사의 실수 때문이었다. 압구정동이 지금처럼 유명한 동네가 되기 전,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됐는데 그때 집을 보러 서울에 올라온 엄마가 서울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 분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살기)좋은 동네가 어디죠?”

택시기사는 그 말을 ‘잘 사는 동네’로 오인해 엄마를 압구정동의 한 부동산 앞에다 내려줬고 그 부동산 사장은 어리버리 순진해 보이는 엄마에게 집 하나를 보여준 뒤 지금 놓치면 평생 후회한다고 무조건 사놓고 보라며 계약금을 걸게 했다. 그 때문에 빼도 박도 못하고 우리는 그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 거였다.

사람들은 강남에 산다고 하면, 다들 배가 부르고 자기 밥그릇 챙기는 거 밖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 서울 시장을 뽑을 때도 강남 쪽 사람들이 몰표를 주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 말들이 ‘맞네, 틀렸네’ 뭐 그런 걸 따져보기 위해 이 글을 쓰려는 건 아니다. 강남하고도 압구정동, 그러니까 가장 부자들이 모여 산다는 그곳에 한때는 적(籍)을 두고 살았고, 그러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한 내 생각을 그냥 적어보려는 거다.

아파트에서는 종종 이런 방송이 나왔다.

“오늘은 나무에 약을 치는 날이니 창문을 닫아주시기 바랍니다.”

“복도 청소가 있는 날이니 집 앞에 내놓은 것들을 모두 치워주시고….”

대부분은 이런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한 번은 이런 방송이 흘러 나왔다.

“관리비가 미납된 세대는 관리비를 조속히 납부해주길 바랍니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반상회에서도 관리비 체납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고 했다. 관리비를 몇 달이고 체납한 세대가 한두 집이 아니고 그로인해 단수 단전된 집들도 간혹 있다고 했다. 우리야 어쩌다보니 거기서 살게 됐지만 서울에서 그 동네에 산다고 하면 적어도 관리비를 내지 못해 전기까지 끊기는 집이 있다는 생각을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그 동네에도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거기다 한번은 엄마를 따라 은행에 갔을 때 일이다.

엄마가 집을 살 때 대출을 (잔뜩)받았고 그 일부를 상환하러 간 길이었다. 그 은행에는 대출을 상담해주는 방이 따로 있었는데 거기서 울음 섞인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안 되면 저희 집 넘어가요 진짜….”

“꼭 좀 부탁드릴게요. 제발….”

이런 내용이었다. 엄마는 평소 알고 지내던(같은 성당 신자) 은행직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그 직원은 소곤거리듯 작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종종 있는 일이에요. 이 동네….”

부자들만 모여 사는 곳이라 생각하지만 집 잡고 대출을 받아 그걸로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였다. 그러다 이자가 연체돼 집이 경매로 넘어가기도 한다고.

“대출 받을 게 집 밖에 없는데 더 이상 대출이 안 나오니까 저렇게….”

은행에서 돈이 안 나와서 결국은 경매로 넘어가는 집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거였다. 은행직원의 말을 들으며 ‘무늬만, 껍질만 부자인 사람들. 속 빈 강정, 속으로 골병드는 강남파…’ 등등의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대출과 빚으로 근근이 버티면서도 남들 눈 때문에, 애들 8학군 때문에 그곳을 벗어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은행에 와서 집을 맡기고 갚지 못 할 돈을 빌려가고 있었다. 거기다 8학군이라는 과열된 경쟁 속에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성적이 나오는 그 즈음엔 새벽에 앰뷸런스 소리가 잠결에 들려오기도 했다.

‘몇 동에서 애가 하나 뛰어내렸대….’

내가 고3까지 살았던 부산에는 그다지 과열경쟁 같은 건 없었다. 공부 잘하는 애들은 서울로 대학을 가고 그저 그렇게 하는 친구들은 적당히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갔다. 대학을 위해 학군 좋은 곳으로 (무리하면서까지)이사하는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기에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 바로 옆에는 현대고등학교가 있었는데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보면 하교 후에 공을 차거나 할 일 없이 어울려 노는 아이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학원들이 모여 있는 대치동으로 수업을 하러 가거나 집에서 과외를 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서울에서 좋은 대학을 나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던 큰 언니의 수입은 웬만한 직장인들의 월급보다 훨씬 많았고 그런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까지 과외를 시키려는 부모들이 그 동네에는 널려 있었다. 학원비에 과외비,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부모들은 비싼 수업료를 치러야 했고 학군을 따라 무리하게 이사 온 사람들에게는 강남에서 생활이 녹록치 않았을 거다. 그러니까 대출을 받기도 했을 테고….

물론. 그쪽에 사는 사람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집에다 돈 쌓아놓고 애들 유학 보내고 비싼 차 몰면서 행복하게, 배부르게만 사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듣고 보아서 조금 안다. 집값에 집착하는 이유 중엔 집값이 오르지 않고서는 빚을 갚을 대안이 없는 사람들도 적잖기 때문일 거다. 밟고 사는 땅이 다르다고 고민까지 다른 건 아니다. 비싼 땅에 둥지를 틀고 사는 사람들은 전깃줄 위에다 둥지를 튼 새들처럼 위태롭고 저릿저릿한 삶의 고통을 느끼며 사는지도 모른다.

한때 내가 살아본 강남의 한복판은 그다지 팔자 편한 사람들만 모여 사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 슬리퍼 끌고나가 저녁 찬거리를 사올만한 재래시장 하나 없이, 헉 소리 나게 비싼 장바구니 물가에 콧구멍을 파고드는 시커먼 매연과 회색의 텁텁한 공기, 동호대교로 진입하기 위해 늘어선 차들 속에서 화병이 걸릴 만큼 짜증나던 기억… 그런 것들이 남아있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아침에 우리 똥개(애칭)를 데리고 산책시키러 나온 길.

할아버지 한 분이 내가 앉아있는 벤치 쪽으로 오더니 우리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하셨다. ‘이렇게 점잖은 개는 처음 보네. 주인이 핸드폰만 하고 있는데 짖지도 않고 얌전히 앉아있구먼. 근데 얘 순종 아니지? 딱 보니 섞였네. 섞였어. 그래도 이런 똥개들이 더 영리해.’

개를 산책 시키러 나오면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이 다가와 자꾸 말을 건다. 벤치에 앉아 할아버지나 할머니, 아주머니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며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고 저기서 저기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자식 걱정, 돈 걱정, 발정 난 강아지 걱정까지….

내가 좋아하는 영화 ‘왕의 남자’에 보면 공길이가 장생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사람 사는 게 눈을 가리고 보면 모두 광대 줄타기 인지도 모른다. 내가 여기 살고 네가 거기 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걱정을 가진 사람들은 아닌 거다.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냐는 장생의 말에 공길이 흐느끼며 말한다.

“다시 태어나도 광대, 광대지이~~!!”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하려나.

다시 태어난다면 뭐가 되고 싶습니까.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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