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만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1.06.03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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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이스탄불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1.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친구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이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못 될 것도 없지만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친구들은 대개 나와 실생활에서 오래 만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인터넷에서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던 내게는 직접 만나보지 못하고 친한 친구가 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일상의 친구들 또한 가까워졌다 또 멀어지기 마련이고, 자주 봤던 이들 중 몇몇은 아예 보지 않게 되는 경우 역시 있었지만, 미지근한 만남부터 극적인 만남, 적당히 요원해지는 관계부터 치고 박고 싸우는 이별 같은 다양한 관계 속에서, 직접 만나지 않고 관계를 오래 지속한 적은 거의 없었다.

여행지의 사람들은 어떤가. 이를테면 그들은 대개 ‘단 한 번만’ 만난 사람들이다.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많이 만나게 되었는데 그 중의 몇몇 좋은 이들은 내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그들을 나의 친구라고 생각했고, 잠깐이지만 그들의 매력에 푹 빠져 지낸 적도 있다. 그러나 그들과 긴 대화를 지속할 수는 없었다. 짧은 시간은 짧은 대화로 이어졌고, 말 보다는 행동이 우정의 지분을 훨씬 더 차지했던 게 사실이다. 이제 나는 그들과 연락을 거의 주고받지 않는다. 여행은 여행지의 기억에 묶여, 우리는 안부를 종종 묻다가, 점점 뜸해지고, 점차 과거의 일부로서 자리 잡았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우리는 일상의 무게에 비하면 아주 잠깐 만난 셈이고, 그게 얼마나 깊은 만남이었던 간에 멀리 떨어져 있다. 다시 볼 날을 기약하기도 어렵다. 여행지에서 함께 만들었던 좋은 기억들을 예쁜 기념품처럼 정산하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기념품에 먼지를 털 날이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가진 기념품들이 얼마나 많은 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사라졌는지를. 물론 그들은 기억 속에서 지워질지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내 기억 속에 남아 있긴 할 것이고, 그럴 때 우리를 친구라고 불러도 충분하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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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번만 만난 것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만났지만 지금은 잠시 만날 수 없는 것도 아닌 사람이라면? 나는 지금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너는 ‘보아즈칼레’라는 터키 중부의 시골 마을에 살고, 이제 막 스무 살이 넘었으며, 그림도 잘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의 말로 이야기할 줄 알고, 그럼에도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일종의 펜팔 친구다. 실시간 펜팔이라고 해야 할까. 특이하게도 내가 그녀와 처음 대화한 곳은 이스탄불이었다.

우리는 오로지 텍스트와 이미지를 통해 만나왔다. 내가 직접 마주하지 않은 너를 얼마나 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알레이나. 나는 너의 통화 음성이 아닌 실제의 목소리와, 함께 서있을 때 보이는 눈높이와, 네가 맛있는 것을 집어 먹을 때의 순간적인 표정을 나는 모른다. 물건을 집을 때 어떤 자세가 되는지, 기분이 안 좋을 때 어떤 식으로 말없이 표현하는지 역시 모른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너는 나의 친구다. 네가 이스탄불에서 미역처럼 흔들리던 나를 구해준 이후로.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2. 보스포러스 해협의 가마우지

여름에 처음 도착한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은 거대한 도시였다. 바다를 끼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강도 아니고, 심지어 호수도 아닌, ‘해협’을 끼고 있는 도시는 역사에 있어서나, 규모에 있어서나 거대하고 활달했다. 지중해로 이어지는 여름의 도시는 지나치게 청명했는데, 사람들은 능글맞으면서도 친절했고 음식은 맛있었다. (나는 지금도 터키의 음식을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여름 햇빛 속에서 빛나는 거대한 건물들은 홀로 있던 나에게 무언가 견디기 힘든 감정을 느끼게 했다. 모든 곳이 밝은 곳에 갑자기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이 도시에 내가 잠시 쉬어갈 자리를 찾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 달 간 낮에 금식을 하는 이슬람의 라마단 기간이었고, 게스트하우스에 12인실에 묵는 4명의 방글라데시인들은 라마단 때문에 새벽에 밥을 먹는다며 새벽 3시에 불을 다 켜고 방에서 밥을 먹었다. 싸우기 싫어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야 했다. 거리에서는 이미 들어 알고 있던 사기 수법을 시도하는 사람들과 얽혔다.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고등어 케밥 아저씨는 타성에 젖어있었고, 어떤 호객꾼은 내 팔뚝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우연히 한국인들을 몇 만났지만 무례한 호객보다도 버티기 힘들었다. 그들은 새벽 4시에 길거리에 주저앉아 맥주를 마시며(터키는 공공장소에서 음주가 금지되어 있다), 김광석 노래를 틀어 놓고 이런 게 낭만이라며 취해갔다. 나는 그들을 모두 대구 동성로의 김광석 거리로 보내버리고 싶었다. 운전하던 터키인이 가운데 중지를 들고 갔고, 취기가 오른 한국인들은 차에 다 고래고래 욕을 퍼부었다. 버티기 힘들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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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이스탄불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들뜬 동시에 침울한 기분이었다. 도시 자체는 내가 소화하지 못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너무 좋은 것도 잘못 먹으면 체한다. 내게는 대화할 사람이, 터키에 대해 말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게스트하우스의 간이침대에 홀로 누워 있던 나는 이왕이면 터키인 친구를 찾기 위해 카카오톡 랜덤채팅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거나 한국에 흥미가 있는 터키 사람들이 몇몇 있어서, 몇 명 연락을 돌렸다. 대부분은 케이팝에 흥미가 있는 소녀들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케이팝을 듣는 사람이긴 하지만, 터키에서 케이팝의 멋짐에 대해 같이 장단을 맞추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무감한 채 빛나는 오후, 보스포러스 해협을 살짝 돈다는 유람선을 타러 가야 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해협은 파도가 거세지 않아 물결이 잔잔히 부서지는 고요한 강과 같았다. 한국의 여름과는 다르게 모든 사물들이 적당한 건조함 속에서 부서질 듯이 반짝이고 있었고, 희고 아름답게 건축된 건물들이 바다의 변을 따라 이어졌다. 새우깡은 없어도 갈매기들이 유람선을 따라 날았고, 떠 있는 배들이 느리게 흘러갔다. 모든 것이 정지한 풍경 같았다. 낮은 다리 위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실루엣을 살피던 중에 나는 먼 거리에 떠있는 가마우지 한 마리를 봤다. 가마우지는 홀로 망연히 둥실거리다가 곧 바다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형태만 겨우 알아 볼 수 있는 작은 점이 쑥, 하고 빛나는 풍경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왜 이 모든 풍경이 버틸 수 없이 슬펐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지금이야 이유를 대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때는 무언가 막을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었다. 여행자의 지나친 감상성 때문이었을까? 나는 유람선에서 내려 구석에 가서 울었다. 그때 나는 울지 않을 수 있는 이유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때쯤, 너에게 연락이 왔다.

 

알레이나의집
알레이나의집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3. 인도 춤

연락은 평범하게 이어졌다. 한국인 친구를 만나고 싶어 방을 개설한 알레이나에게 내가 아까 연락을 했고 ‘Hi-’ 그녀는 대답했다. 그때 무슨 대화를 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이미 나는 힘이 없었고 사람에 대한 기대도 없었다. 너도 그냥 케이팝 팬이겠지, 오만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으며, 케이팝을 좋아하냐는 나의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질문에 아니라고 답했고, 역으로 내게 어떤 외국어 노래를 추천해줬는데, 너무나도 좋은 음악이었다. 나는 호들갑을 떨듯이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추천해주었고, 그녀 또한 좋아했다. 내가 기억하는 대화의 시작은 이렇다. 이스탄불의 하얀 건물들 사이를 알레이나의 음악을 들으며, 채팅에 집중하며 걸어 다녔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타야했던 해협의 배 안에서 나는 가마우지를 보지 못했다.

 

알레이나1
알레이나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알레이나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우리의 대화는 그 후로도 한참 이어진다. 나는 사실상 알레이나와 함께 여행했다. 영화 ‘Her’에서 호아킨 피닉스가 인공지능을 데리고 다니듯이. 그녀는 터키에 대한 정보들을 내게 알려주었고(이를테면 케밥의 종류라든지), 나는 그녀도 가보지 못한 터키의 곳곳을 다니며 그녀에게 여행사진을 보냈다. 하루하루 겪었던 일들과 감정들,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일의 내일인 아득한 미래와, 어제의 어제인 지나간 과거까지도.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를 해야만 하는, 가지 않으면 결혼을 강요받아야 하는 터키 여자애의 커다란 고민을 들었고, 여러 군데 기웃거리는 여행자의 불안한 마음을 말했다. 내가 터키 여행을 마치고 다른 나라로 가고, 또 다른 나라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 여행자가 아닌 일상인이 되었는데도, 우리의 연락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미안한 일도, 고마운 일도 있었다. 그냥 친구처럼. 그녀는 내 생일을 위해 케이크를 만들어 영상을 찍었고, 나는 그녀의 생일을 잊고 있다가 급하게 축하를 전했다. 내가 힘든 일이 있어 술에 취해 전화를 걸었을 때, 우리의 영어는 정확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지만 나는 분명 정확하게 이해받고 있다는 감정을 느꼈다. 때로는 힘들어하는 너를 위로하고, 미래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불안과 터키에서 여성이 살아가기 힘든 상황에 분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그저 일상의 친구처럼, 가끔 연락해 일상을 주고받는다. 힘내라, 힘내 하면서. 내 친한 친구들과 똑같이.

 

어린알레이나
어린 알레이나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요새 너는 인도 춤을 배운다. 터키에서 배우는 인도 춤. 인도 여행에 대한 인상을 적는 중에 나는 네가 인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을 본다. 나는 너를 보며 인도와 터키를 동시에 기억한다. 영상 속에서 너는 환하게 웃고 있다. 사실 나는 터키 여행 중에 무리를 한다면 알레이나를 만나러 갈 수 있었다. 여행 경로가 심하게 어긋나지 않았다면 분명 그녀의 마을에 찾아갔을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왜 가지 않았나 싶다. 아쉽다. 그래도, 한 번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을 계속 기약할 수 있다고, 가보지 않은 곳이 있어야 다시 여행지를 찾는다는 익숙한 말을 덧댄다. 우리 만난 지 2년이 되었다. 몇 년 후에 우리는 실제로 만나 볼 수 있을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우정의 지분이 거기서 자라난 것은 아니니까. 다만 네가 네 길과, 그 길의 행복을 찾기를. 너는 모르겠지만 너는 이스탄불에서 나를 구했다. 언젠가 너와 마주하는 날, 나는 엄청 큰 목소리로 메르하바-라고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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