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힐링 전도사’ 주철환 교수-1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우정의 무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을 연출한 주철환 교수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스타PD 출신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2004), OBS 경인TV 사장(2007), JTBC 제작본부장을 지냈고 지난해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직에서 정년했다. 이 외에도 MBC 〈퀴즈 아카데미〉(1987), 〈TV 청년내각〉(1994),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1996), 〈21세기 위원회〉(1998) 등의 작품을 했다. OBS 〈주철환과 김미화의 문화전쟁〉(2008), JTBC 〈옐로우박스〉(2012), 〈행쇼〉(2013)에 출연했고, 1997년 제 12회 한국방송위원회 대상, 2000년 제12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이런 이력에 대해 주 교수는 스스로 “그저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위클리서울/ 주철환 제공

“화려한 이력? 글쎄. 화려하다기보다 다채롭다. 80년대부터 활동했으니 작품이 많을 수밖에 없다. 사실 PD들은 다들 자기 작품들이 많다. 이를테면 저를 비롯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거쳐 간 PD들이 엄청 많다. 그걸 갖고 이력에 대해 말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저는 또 과대포장 된 점이 없잖아 있다.”

그러면서 재주가 좋은 게 아니라 재수가 좋았다고 강조했다. 운만으로 인생이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다. 실로 재주가 아무리 좋아도 재수가 좋은 사람에게 못 당한다. MBC 입사할 때만 해도 운이 좋았다는 주 교수. 당시 시험이 국어, 영어, 상식이었다. 카투사 출신이어서 2년 동안 영어만 했었고 게다가 국어교사 출신이었다. 신문을 자주 읽는 편이어서 상식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 이미 갖추고 있었던 상황. 최적화 된 상황에서 시험을 치렀다는 게 그의 변이다.

그 이후에도 술술 풀렸다. 이화여대, 경인방송, 중앙일보 등을 거쳐 훗날 아주대에서 정년을 했다. 인생에서 변화가 있을 때마다 운이 뒤따랐다고 한다. 요즘 주 교수는 강단에서 그리고 신문칼럼, 책 등을 통해 시대와 소통하고 있다. 그 누구보다 힐링 전도사로 활동 중이다.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물론 누가 보증 서달라고 하면 거절할 것이다(웃음). 근본적으로는 제게 뭔가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물질을 위해 저를 약간 이용할 수 있다. 이용당할 수는 있는데 제 전부를 이용당할 수는 없지 않는가. 어쨌거나 우호적인 대화를 거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게 제 철학이다. 그런데 사람들과 친해서 뭐하게? 이렇게 물으면 난감하다. 친하면 좋지 않은가?”

무거운 주제들에 대해서도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부드러운 언어로 일관했다. 그럼에도 무거운 질문은 피하고 싶다는 주 교수. 그래서인지 정치사회적인 질문에는 대답이 다소 짧다. 대중들에게 그저 유쾌하고 온정이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은 게 그의 작은 욕심이다.

주 교수는 “이를테면 병원에서 병원비가 없는 환자를 방치해버리기보단 무료로 치료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제가 무슨 주의자냐고 묻는다면, 저는 온정주의자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인기영합주의일수도 있다. 좋은 말 따뜻한 말만 많이 하니까”라며 “그래도 남들이 뭐라고 하든 저는 따뜻한 말을 건넬 것이다. 제가 그동안 억세게 재수가 좋았던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런 것”이라고 했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는 코로나 시대. 주철환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힐링' 하는 시간을 가졌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요즘 무슨 생각으로 사나.

▲ 매일매일 감사하며 산다. 1978년 3월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모교에서 국어교사생활 2년 반을 하고 입대했다. 제대 후 학교에 복직하지 않고 방송사(MBC)에 PD로 들어갔고 2000년부터는 대학교수(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생활을 하다가 2007년에 방송사(OBS) 사장으로 갔다. 그만둔 후에는 JTBC 본부장, 대PD로 일하다가 2014년에 대학(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으로 돌아갔다. 재직기간 중 2년 간 휴직하고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2016-2018)로 일했다. 대학에 복직해 2년 더 강의한 후 작년에 정년퇴직을 했다. 건강하게 은퇴해서 정말로 행복하다. 더구나 작년에 하나뿐인 아들이 결혼했다. 큰 숙제를 마친 기분이다. 퇴직 후 아내와 제주에서 한 달 살기도 해보았다. 건강하고 화목하게,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사는 게 나의 인생목표다.

 

- 환갑을 훌쩍 넘겼다. 동안이라고 불린다. 특별한 비법은 있는지.

▲ 오랜만에 만난 후배나 제자에게선 거의 동일한 말을 듣는다. “어떻게 늙지를 않으세요.” 세상에 늙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나. 고마워서 웃음으로 받아들인다. “빈말이라도 듣기 좋네.” 어쩌다 처음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도 비슷한 덕담을 건넨다. “늙지 않는 비결이라도 있으세요?” 이쯤 되면 살짝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된다. 내가 진짜 그렇게 젊어 보이나. 하기야 오십대 중반에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서 ‘10년 더 젊게 사는 법’이란 제목으로 강의를 한 적도 있긴 하다. 내가 우쭐할 때마다 나를 착각의 늪에서 구해주는 분이 계시니 바로 친애하는 나의 아내다. “그걸 믿어?” 결혼 36년째인 우리 부부는 동갑내기다. 오래전 일이다. 아파트 단지에 액자 대여하는 가게가 있었다. 주말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서는데 아내가 그림 앞에서 주인과 얘기하는 게 보였다. 외출한다는 말을 건네려고 막 들어서는데 주인이 하는 말. “어머 이렇게 장성한 아드님이 계신 줄 몰랐네요.” 그 순간 아내의 표정은 글자 그대로 황당함과 당황함 그 자체였다. 아들 녀석이 외출하면 난 그의 옷장에서 맘에 드는 걸로 하나 꺼내 입는 일이 잦았다. 신장의 차이 때문에 바지는 못 빌려도 웃옷은 거의 내 사이즈에 맞아서다. 그날도 나는 청바지에 아들의 밝은 색 티셔츠를 꺼내 입고 선글라스에 챙 달린 모자를 쓴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꾸몄어도 남편과 자식을 혼동하다니. 의문의 일패를 당한 아내는 겉으론 웃어넘겼지만 기분이 썩 좋았을 리 없다.

 

- 아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아들 기분도 썩 좋았을 리 없었을 것 같다.

▲ 사실 이런 일화는 최근에도 있었다. 아들 결혼식에 입을 양복을 내가 대신 찾으러 갔는데 직원이 나를 보더니 “본인이세요?”라고 물은 적도 있다. 물론 마스크와 모자가 일조를 하긴 했다. “신랑 아버지예요”라고 답할 때의 쾌감이 무척 좋았지만 아내에겐 차마 이 미담(?)을 공개하지 않았다. 젊어 보인다는 건 잘생김과는 무관하다. 잘생긴 건 타고나야 하지만 젊어 보이는 건 습관으로 이룰 수 있다. 문제는 그런 노력을 왜 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짐작해 보라. 스스로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선 자꾸 노인으로 대우하려고 한다면 왠지 서글플 것 같다. 말이 대우지 실상은 제외, 아니 소외다. 젊어 보이면 일할 기회도 조금 늘어난다. 나는 일곱 개의 직장에서 일곱 번의 퇴직금을 수령했는데 마지막 두 번은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다는 게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추측한다. 이제부터 즐거운 은퇴자의 일상을 공개한다. 나의 하루는 거울과 저울로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관찰한다. 내가 나에게 처음 말을 거는 시간이다. ‘자세히 보면 아름답다’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이 순간 잊어야 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아직은 괜찮다. 그래서 주름살이 아니라 구김살 위주로 체크한다. 표정 속의 어둠을 몰아내고 밝은 주문을 불어넣는다. 저울 위로 올라간다. 기준은 어제의 체중이다. 어제보다 늘어났는지 줄어들었는지 확인한다. 표준은 그해 1월 1일의 체중이다. 많이 줄면 그날은 보충하고 많이 늘면 그날은 소식을 한다. 이렇게 실행한 지 십년이 넘었다. 그런 후에 의자에 앉아 차분히 혈압을 잰다. 의사의 소견대로 80과 120을 목표로 하는데 숫자가 출렁이면 어제의 삶을 한번 돌아본다. 쓸데없는 일에 흥분을 한 건 아닌지, 화내지 않아도 될 일에 분노를 낭비한 건 아닌지 가늠해 본다. 이 세 가지가 오전의 정성평가, 정량평가다. 물 한잔 마신 후엔 핸드폰의 일정표에서 오늘 만날 사람을 확인한다. 퇴직한 후에 나는 원칙을 정했다. ‘즐겁지 않으면 만나지 않는다.’ 즐거운 만남이 되려면 나도 즐겁고 상대도 즐거워야 한다. 나는 만나고 싶은데 상대는 원하지 않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상상할 수 있다. 오해나 착각은 경계한다. 만남의 경비는 일단 내가 지출한다는 게 기본이다. 얻어먹기를 즐기면 못 얻어먹을 때가 반드시 오지만 대접하기를 즐기면 그 만남은 꾸준히 이어진다는 게 내 경험칙이다. 만남은 직접만남과 간접만남으로 구성된다. 그동안 못 읽었던 책, 못 들었던 음악, 못 보았던 영화들을 접하며 그 창작자와 구연자를 만나는 기쁨이 어마어마하다.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나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정말이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루가 짧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 딱 한 단어가 떠오른다. 감사다. 사실 어떤 음식을 먹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을 먹는지가 더 중요하다. 오늘도 억울하고 분해서 복수심으로 하루를 마감한다면 아침의 내 얼굴은 늙고 낡아 있을 게 틀림없다. <2회로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