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탐방기] 서울독립영화제 2편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지난 1편에서는 ‘독립’의 의미를 중심으로 서울독립영화제를 소개해보았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넓혀 가는 독립영화를 지원하고 현주소를 조망하는 장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편에서는 다시 평소처럼 편하고 쉽게 서울독립영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저마다의 빛으로 반짝이는 무수한 독립영화들이 그 주인공이다.

 

출처 영화제 홈페이지
ⓒ위클리서울/ 출처 영화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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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전의 마지막 영화제일 줄 알았다면

지난 제 45회 서울독립영화제는 2019년 11월 28일부터 12월 6일까지 9일간 열렸다. 이듬해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직전이었다. 그 해엔 전국을 돌아다니며 가장 많은 영화제를 탐방했고, 연말의 서울국제영화제는 좋은 마무리가 되어주었다. 나에게는 코로나 이전의 마지막 영화제였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더 많이 방문해 더 많은 영화를 보았을 텐데, 그땐 처음 방문하는 영화제라 단편모음집 정도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열리는 영화제라 앞으로 더 많은 날이 남아있을 줄 알았다. 짙게 배인 아쉬움만큼 2년 전 마지막 영화제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영화를 예매하던 날도 기억이 난다. 한국 독립영화에 집중하는 영화제인 만큼, 다른 영화제에 비해 섹션이 많지는 않았다. 보통의 영화제들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섹션이 있고, 해당 영화제의 개성과 그 해의 키워드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매년 새롭게 선보인다. 그런데 서울독립영화제는 개막작, 본선 경쟁, 새로운 선택, 특별 초청, 아카이브, 해외 초청이 전부였다. 욕심을 내어 섹션을 마련하고 프로그램을 준비하기보다는, 그저 독립 영화들을 종류별로 분류한 것에 가까웠다. 해외 초청도 제각각의 다양한 국가들이 아니라 홍콩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우직한 신념이 느껴질 정도의 선택과 집중을 보며 왠지 이곳에서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집중해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욕심내어 많은 영화들을 한꺼번에 보았다가 기억이 혼재되고 쉽게 휘발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편 영화 3편을 묶은 하나의 상영 프로그램만 예매했다. 여전히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탓이기도 하고, 단편 모음이야말로 영화제가 아니면 찾아보기 어려운 작품들이어서다.

 

ⓒ위클리서울/ 출처 영화제 홈페이지
영화 '후쿠오카' 포스터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후쿠오카 포스터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후쿠오카'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후쿠오카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후쿠오카'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서울에서 느껴진 정동진과 부산의 흔적

먼저 개막작부터 살펴보자. 장률 감독이 연출하고 권해효, 윤제문, 박소담 배우가 출연한 <후쿠오카>(2020)다. 출연진만 보면 스케일이 큰 영화인 것 같지만, 독립영화인 데다 기생충의 그녀인 박소담 배우가 선택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장률 감독의 전작들이 그렇듯 이질적인 서사와 리얼리티가 독특하게 섞여있는데, 배우들의 실제 이름이 캐릭터에 그대로 쓰였다는 점부터가 이를 방증한다. 소담은 헌책방의 단골손님이고, 제문은 그 책방의 주인이다. 소담이 제문에게 후쿠오카로 여행을 가자고 하는데, 그곳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해효와 만나 세 사람이 과거를 추억하고 서로에 대한 애증을 풀어나간다. 다짜고짜 책방 주인과 손님이 단 둘이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과거에 알던 사람을 만난다는 설정부터가 이해가 되지 않는데, 단순한 줄거리만으로 어떤 영화인지를 파악할 수 없는, 난해할 정도로 독특한 영화이기 때문에 직접 감상하기를 권한다. 다양성과 아이디어의 관점에서 독립영화제와 아주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그 뒤로는 폐막작 ‘입문반’(2019)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독립영화들이 상영되었다. 그중에는 다른 영화제에서 본 반가운 영화들도 있었다. 지난 정동진독립영화제 탐방기에서 다룬 ‘갓건담’(2019), ‘기대주’(2019), ‘해미를 찾아서’(2019), ‘박미숙 죽기로 결심하다’(2019)가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고, 부산국제영화제 탐방기에서 다룬 ‘안부’(2019), ‘낙과’(2019)도 마찬가지였다. 영화제는 신작을 선보이는 자리라서 낯설고 새로운 영화들이 많은데, 이미 본 영화를 여러 개 발견하며 2019년에 얼마나 많은 영화제를 다녔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당시엔 신기하고 뿌듯한 마음이었는데, 앞으로도 그런 날이 또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후쿠오카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기대주'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기대주 포스터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안부'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안부
영화 '낙과'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단편 영화와 독립 영화가 계속 존재해야하는 이유

이 작품들은 이미 지난 탐방기에서 다룬 영화들이니 추천작 몇 개만 골라 간단히 소개하고 넘어가려 한다. 먼저 2019년 영화제에서 본 단편 영화 중 가장 좋았던 ‘기대주’다. 중년 여성인 명자는 열심히 수영을 배우다 아마추어 수영대회 팀원을 뽑는 최종 시합까지 오르게 된다. 모두가 중학생 소녀 지규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종용하는데, 심지어 선생님은 대놓고 지규에게만 코치를 해주기까지 한다. 명자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기회를 포기하고 싶지 않고, 뜻밖에도 지규가 자신만 배운 노하우를 명자에게 공유해준다. 만약 내가 지규라면 양보하지 않는 명자를 욕심이 많고 배려심이 적다고 생각하며 노하우를 공유하진 않았을 것 같다. 앞으로 수영 선수로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너무나 많고 막막하게 느껴질 것 같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나이로 인생을 제한하고, 나이에 맞는 행동 따위가 있다고 생각해온 것을 인지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물과 아이디어 자체가 신선한 영화인데다 메시지 역시 오래 남는 명작이었다.

두 번째 작품은 학교 내 미투 사건을 다룬 ‘해미를 찾아서’다.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하냐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비현실적인 내용인 것 같지만, 실제 현실을 덤덤한 톤으로 재현해냈다. 문제적 사건을 재현하거나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연출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감상하기에 괴로운 부류의 영화도 아니다. 인물이 처한 상황과 변화를 따라가며 감상하다보면 피해자, 그리고 함께하는 연대인들이 변화를 부르짖는 이유를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추천할 영화는 ‘안부’와 ‘낙과’다. 두 영화 모두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들의 이야기다. ‘안부’는 사라진 친구를 찾아다니는 주인공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낙과’는 실직자인 아버지와 공시생 아들의 관계성을 통해 두 세대의 문제를 연관해서 보게 된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인물과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과장하지 않고 묘사한 점이 인상적이며, 개성적인 연출 혹은 욕심을 부리지 않은 담백한 연출을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다. 무엇보다 고시생의 치열한 흔적이 남은 방이 천천히 그려지는 장면이나 떨어진 과일을 두고 자신의 처지를 대입해볼 수밖에 없는 N수생의 모습은 단편 영화와 독립 영화가 계속 존재해야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작품들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올라온 경우도 많으니 꼭 감상하기를 권한다. 단편이라 큰 부담도 되지 않을 테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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