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간살 위의 어미새
간살 위의 어미새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새로운 고양이가 내 집에 들어온 뒤로 새로운 구경거리가 생겼다. 구경거리일 뿐만 아니라 일거리이기도 하다. 천적이 많은 작은 새 한 쌍이 창고 어딘가에 집을 짓고 알을 낳아서 새끼까지 까놓았던 모양이다. 나는 창고를 드나들면서도 몰랐던 그 사실을 고양이 녀석은 어느새 알아차리고 공격 포인트를 찾고 있었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았다.

하긴 나도 아주 몰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며칠 전부터 작은 새 두 마리가 어떤 때는 동시에, 어떤 때는 한 마리씩 교대로 빨랫줄에 앉아 초조하게 잭, 잭, 잭 하고 있었다. 새소리 특유의 짹짹도 아니고 잭, 잭, 하는 그 소리가 이채로워서 몇 번 쳐다보긴 했지만 관심을 집중하지는 못했다. 큰 새 작은 새, 시끄러운 새 조용한 새, 등등 온갖 새들이 드나드는 마당에서 그 정도는 뭐 내 의식에 거의 들어오지도 않았던 셈이다.

그러니까 뭐랄까, 무의식이라고나 해야 할 어렴풋한 어떤 예감 같은 것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상적이지 않은, 예사롭지 않은 느낌, 뭔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긴장감이 없었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신속하게 번개처럼 뛰쳐나가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음이 어지러워서 집중을 못 하고 이런 책 저런 책 온갖 책들을 빼 들었다가 도로 꽂아 넣기를 되풀이하고 있을 때였다. 창고 쪽에서 뭔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소리는 아니었다. 가볍지만 덩치는 큰 것으로 여겨지는 어떤 것, 이를테면 스티로폼 상자 같은 것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실제로 우리 집 창고 선반에는 스티로폼 상자가 꽤 많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이유도 없이 쏟아져 내릴 정도로 엉성하게 쌓여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내 신경을 찢어놓는다. 이게 뭔 소리냐.

소리가 들린 순간 나는 벌떡 일어섰고, 문을 박차고 뛰어가면서 새끼 새가 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을 들었다. 고양이도 아마 내가 뛰어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창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는 순간 고양이는 고도로 훈련된 무사처럼 몸을 훌쩍 날리는가 싶더니 내 다리 사이로 쉭, 빠져 나가버렸다.

바닥에는 한눈에 척 봐도 새의 둥지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각종 검불이 스티로폼 상자와 함께 널려 있었다. 둥지의 뼈대를 이루는 작은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있었고, 마른 풀잎이 있는가 하면 알을 낳을 자리에 깔았을 부드러운 천 조각이며 새의 깃털 따위들이 어지럽게 흩뿌려져 있었다. 한 치 앞도 못 본다더니 어미 새는 하필 가벼운 스티로폼 상자 위에 둥지를 틀었던 모양이었다.

비명을 질렀던 새끼 새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도 없었다. 망가진 채로 나뒹구는 둥지만 없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감쪽같았다. 밖에서는 어미 새 두 마리가 잭, 잭 소리를 내며 이쪽에 앉았다가 저쪽에 앉았다가, 그야말로 안절부절 못 하는 형국으로 부산을 떨고 있었다.

 

새라를 바라보는 고양이
새라를 바라보는 고양이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가스통이며 작은 항아리, 소금 자루 등이 질서 없이 놓여 있는 창고 내부 어딘가에 새끼 새들은 웅크리고 있을 것이었다. 이것도 들어보고 저것도 들어보고, 이것도 움직여보고 저것도 움직여보는 동안 한 마리, 두 마리, 숨어 있는 새끼 새를 찾아낼 수 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벽에 머리를 처박은 채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꿩이 쫓기다가 다급하면 머리를 덤불 속에 처박고 나 여기 없어요, 하는 꼭 그런 꼴이었다.

이제 갓 날개가 나오고 있는 중이어서 마치 털을 죄다 뽑아놓은 것 같은 몸으로 웅크리고 있는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웃겼다. 웃으면서도 난감했다. 얘들을 어떻게 하지? 새는 포유동물과 달라서 입으로 새끼를 물어다가 옮기는 재주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일단 작은 바구니 하나를 골라서 망가진 둥지를 그 안에 앉혔다. 그리고 새끼 새들을 한 마리씩 잡아다가 그 안에 넣기 시작했다. 이제 다 했다, 하는 순간 뒤로 나가자빠질 뻔했다. 잡아서 모아들일 때는 아무 소리도 없이 달달 딸기만 하던 녀석들이, 모두 한 곳에 모아놓으니 비로소 뭔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한 마리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둥지를 뛰쳐나와 쏜살같이 달려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싹 다 사라져 버렸다.

전광석화, 그야말로 번갯불에 뭐 어쩐다는 그런 꼴이었다. 아직 날개도 안 생긴 녀석들의 걸음이 어찌 그리도 번갯불 같은지, 사람이나 동물이나 위험에 노출됐을 때는 역시 초능력이란 것이 생기는가보다. 어쨌든 이렇게 되면 내가 할 일은 이제 없는 셈이었다. 어미 새가 알아서 어떻게든 하도록 방치하는 것밖에 달리 방법은 없어 보였다.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할 일이 있었다. 작년 여름 태풍 바람에 창고 문 유리가 깨졌었는데 그대로 방치했다는 잘못이 내게 있었다. 있어야 할 유리가 없으니 새가 그 안으로 들어가서 둥지를 틀었고, 새가 드나드는 것을 발견한 고양이가 몇날며칠이나 공격 포인트를 찾다가 그날 마침내 지금이다, 하고 쳐들어가서 그 난리를 친 것이었다.

새는 자유롭게 드나들되 고양이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방법을 찾다가 간살을 치기로 했다. 대나무를 베어다가 토막토막 잘라서 오륙 센티미터쯤의 간격으로 못질을 해놓고, 그리고 모퉁이에 숨어서 몰래 녀석들의 동태를 살펴보기로 했다.

어미 새는 아직도 빨랫줄이며 이것저것 나뭇가지로 옮겨 다니며 초조하게 잭, 잭,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고양이 녀석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저도 아마 크게 놀라서 멀리, 아주 멀리 달아나버린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어딘가에 숨어서 내가 없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불안해서 잭잭잭
불안해서 잭잭잭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초조해서 안절부절
초조해서 안절부절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우리 집에 새로 들어온 고양이, 그 얄미운 녀석. 내가 마당에서 얼쩡거리고 있으면 나는 어디에도 없지, 하고 꼭꼭 숨어 버리고, 내가 방안에 있으면 밥 달라고 문 앞에까지 와서 앵앵거리고, 내가 멀리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반갑다고, 반가워서 죽겠다는 듯이 쏜살같이 달려오다가는 아 참 이게 아니지, 하고 사오 미터쯤 거리에서 우뚝 멈춰 버리는, 멈춰서 말끔한 눈으로 나를 언제까지나 쳐다보는 녀석.

우리 집에 들어온 지 한두 달도 아니고, 석 달이 넘어 사 개월이 다 돼 가는데도 거리두기 사오 미터를 고수하는 징그럽게도 얄미운 고양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 이렇게도 얄미운 고양이는 처음이었다. 내가 저를 구박하는 것도 아니고, 노려보는 것도 아니고, 가능한 한 선량한 시선을 건네고자 애를 쓰건만 어째서 그렇게도 사오 미터쯤의 거리두기를 고수하며 내 손이 자기 몸에 닿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투의 완강한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가 말이다.

보면 볼수록 맹랑하고, 한편으론 존경스럽기도 한 녀석이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양이가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왔지만 이렇게도 의심이 많은 녀석은 한 마리도 없었다. 게다가 녀석은 밖으로 나가지도 않는다. 내 눈에 띄지 않는 집안 어딘가에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집안 곳곳에 산재한 나무 위나 화초들 사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내가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서면 쏜살같이 달려온다.

신명이 나서 달려오는 그 모양새로만 보자면 내 앞으로까지 바싹 다가와서 깡총거리며 내 몸 위로 올라탈 것도 같지만, 기가 막히게도 사오 미터쯤 거리를 두고 우뚝 멈춰 서버린다. 선 채로 잠시 앵앵, 소리를 내다가 그대로 웅크리고 앉아서 내 눈치를 살피고, 다시 앵앵대는 소리를 내서 나 지금 배가 많이 고프거든 빨리 밥 줘 인마, 한다.

그러면서도 먹을 것을 들고 다가서면 뒤로 주춤주춤 물러선다. 그냥 물러서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여차 하면 홱 돌아서서 뛰겠다는 듯이, 몸을 삼분의 일쯤 옆으로 돌린 자세로 뒷걸음질을 친다. 그러다 보니 나도 이체는 눈치 보기의 달인이 되고 말았다. 먹을 것을 들고 다가서기는 하되 조심조심 가만가만, 다리도 한쪽은 뒤로 빼고, 허리를 한껏 늘려서 거의 엎드린 자세로 먹을 것을 가만히 내려놓고 뒷걸음질을 치는 참으로 기도 안 막히는 방식의 먹이 주기를 하게 돼버린 것이다.

 

무서워서 덜덜덜
무서워서 덜덜덜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새둥지를 망가뜨리고 도망친 고양이 녀석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갑자기 뛰어든 나로 인해 간이 떨어질 정도로 놀란 고양이 녀석은 어쩌면 자신의 선경지명에 감탄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것을 믿지 않고 거리두기 사오 미터 정책을 일관되게 밀어붙였으니 이 얼마나 훌륭한가 하고 말이다.

밖에서 동동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던 어미 새는 내가 창고 밖으로 나온 지 십 분도 안 돼서 안으로 들어갔다. 두 마리가 함께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암컷인지 수컷인지 알 수 없는 한 마리가 유리 없는 창고 문짝에 박아놓은 간살 앞에서 정지비행을 한참이나 하다가 간살에 앉아서 쭈삣쭈삣하는 자세로 들어가는 동안 다른 한 마리는 망이라도 보는 것인지 잭, 잭, 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저쪽으로 한참을 왔다 갔다 부산을 떨어대다가 저도 쏙 들어가고 있었다.

녀석들이 망가진 둥지를 어떻게 수습하는지 매우 궁금했지만 감히 문을 열어볼 엄두는 못 내고, 문 앞에까지 바싹 다가가서 엿보고 싶은 욕망 역시 포기하고 멀리 떨어져서 기다기로 했다. 이십 분쯤이나 지나서 한 마리가 나왔다. 이어서 또 한 마리가 나왔다. 이때다 싶어서 문을 살짝 열어본 결과는 놀라워서, 내가 작은 바구니에 넣어둔 둥지 안에 새끼 새들이 오글오글 앉아 있었다.

하긴 어미 새도 달리 무슨 수를 낼 수는 없었으리라. 둥지를 새로 짓자고 해도 최소한 열흘은 걸릴 것이고, 바구니에 담아놓은 둥지를 다른 데로 옮기자 해도 역시 몇날며칠은 걸릴 텐데 배가 고프다고 끊임없이 징징대는 새끼들을 눈앞에 두고 집이나 고치고 있을 정신은 없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새끼를 기를 즈음의 어미 새들은 완전히 노예의 삶을 살고 있었다.

어쨌든 어미 새들은 이제 다시 평화를 찾았다. 암수가 교대로 입에 벌레를 물고 간살 앞에서 잠깐씩 정지비행을 하고, 간살 위에 앉았다가 안으로 쏙 들어가면 새끼들이 기쁘다 엄마 오셨네 하는 식의 즐거운 소리를 내는데 그 모양과 소리가 내 마음을 썩 기쁘게 해주는 것이어서, 한참을 보고 있다가 이제 됐지?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새끼 새의 혼비백산
새끼 새의 혼비백산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영민한 고양이 녀석은 아마도 그 모든 장면을 어딘가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한나절이 다하도록 코빼기도 안 보이던 고양이가 다시 마당에 나타났다는 것을 나는 방안에 있으면서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입에 벌레를 문 채로 빨랫줄에 앉아 초조하게 잭, 잭, 소리를 내는 어미 새를 문틈으로 보고 있노라니 문득 기가 막혔다.

까치처럼 날카로운 소리와 위협적인 날갯짓으로 고양이와 맞장을 뜨자고 덤비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한 마디 잭, 잭, 소리만 내며 이쪽으로 저쪽으로 안절부절 부산스레 움직이고만 있으니 이게 대체 무슨 꼴인가.

그렇다고 고양이가 새끼 새를 노리는 것 같지도 않다. 기특하게도 고양이는 내 마음을 읽었나 보다. 새끼 새가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다만 하나 배가 고파서 왔으니 밥을 달라는 신호만 앵앵, 보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어미 새는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이때다 싶은 어느 한순간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되풀이 한다.

어미가 밖에서 초조하게 잭, 잭, 소리를 내니 새끼들도 아마 극도의 불안에 휩싸인 모양이었다. 어미와는 달리 제법 날카로운 소리로 불안을 호소하는 새끼 새들의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창고를 뒤집어놓고 있었다. 그러기를 사흘인가, 나흘인가, 아무래도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진 나는 창고 문을 가만히 슬쩍 열어보기로 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무슨 폭탄이라도 떨어지는 줄 알았다. 어미 새들은 그 사이에 새끼 키우기 속성반 같은 것이라도 운영했던 모양이다. 사나흘 전에는 날지도 못 하고 뛰기만 했던 새끼 새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이구동성으로 질러내며 한꺼번에 일제히 총알처럼 날아오는데 심지어 어떤 녀석은 내 얼굴을 들이받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렇게 녀석들은 순식간에 창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다고 뭐 제대로 나는 것도 아니었다. 녀석들의 날개는 아직 뼈대만 갖춰져 있을 뿐 세부 공사가 안 끝나 있었다. 때문에 이삼 미터쯤 날다가 툭 떨어졌다. 떨어진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작은 다리로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지, 무슨 탁구공 같은 것이 굴러가는 것 같았다. 구르다가 다시 날고, 날다가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녀석들은 금방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초조하게 잭, 잭, 소리만 내던 어미 새 두 마리도 그새 어디로 갔는지 안 보였다. 어미들이야 뭐 새끼가 숨은 곳을 찾아서 들어갔겠지만, 새끼들은 어떻게 됐을까. 아니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까. 천적이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날개도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새끼 새들이 살아날 확률은 얼마일까.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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