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핑 버스에서 당신이 만날 수 있는 사람
슬리핑 버스에서 당신이 만날 수 있는 사람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1.06.21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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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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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는 즐거움

사람들마다 여행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각기 다를 테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동하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이동할 때면, 어딘가를 향해 떠나고 있다는 기분과 어딘가로 부터 떠나는 기분이 동시에 든다. 움직이는 사람은 늘 어딘가에 가까워지고 있는 동시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느낌이 오래 쌓이다 보면 결국 이동 자체만 남는다. 그저 움직일 따름. 출발지와 목적지도 잊고 그저 버스나 기차의 좁은 공간만이 앞에 남는다. 어디에 속하는지도 모르겠는 시간과 공간의 감각. 각각의 행선지를 향해 내렸다가 타는 사람들, 옆자리에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 간단한 끼니를 위한 음식물 냄새, 사람들의 체취. 떠나는 사람들의 북적거림, 보내는 사람들의 아쉬움. 그럼에도 덤덤히 나아가는 차. 다시 사람들. 다시 이동. 창밖으로 저벅저벅 흐르는 풍경.

12시간 넘게 무언가를 타고 있다 보면 마치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고, 멈춰있는 것들이 특이해 보인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도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저 모든 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라는 감상적인 통찰에 이르기도 한다. 인생을 길에 비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어딘지 모를 곳으로 향하는 것 같은 인생살이를 사람들은 길에 빗대 이야기하고 싶었겠지만 굳이 이 비유를 다시 꺼내야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길 뿐이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궁금해 하다 종국에는 그저 길 위에 있는 것. 긴 길이구나. 인도 슬리핑 버스에 구겨 누워 나는 생각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그저 먼지를 뒤집어쓰고 무념무상 했다는 말이다. 창밖과 무관한 채로.

여행하며 긴 시간 이동해야하는 경우가 잦았다. 오로지 이동만을 위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탄 적도 있고, 인도나 터키 같은 비교적 넓은 나라를 갔을 때도 10시간 정도 버스나 기차를 타야하는 일은 흔했다. 바깥의 풍경을 사파리 보듯 구경하는 것은 잠깐이다. 바깥의 풍경은 바깥으로 남고, 결국 버스 ‘안’의 세계가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나는 참 이동 중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는데, 그 인상이 묘하다. 어디 멈춰있는 곳에서 만난 게 아니라 움직이는 중에 만난 사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공간인 듯 나아가는 버스와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 우리는 이동 중에 만났어. 버스에 있다 보면 현지 주민부터 사업하는 사람들, 같은 여행객들, 노인부터 꼬마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할 일도 별로 없으니 많은 대화를 하게 된다. 기억할 수 있는 이동-대화의 기억은 참 많지만, 이번에는 인도의 슬리핑 버스에 대한 기억들부터.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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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관 속의 당신

인도는 넓다. 누구나 아는 사실일 텐데, 내가 느낀 인도는 넓다고 하기에는 ‘빽빽했다.’ 러시아와 미국의 오지처럼 도시와 도시 사이의 간격이 넓은 게 아니라 도시 다음에 도시가 있고, 마을 다음에 마을이 있다. 계속 무언가가 사이에 놓여 있는 느낌이었다. 황야를 가로지르는 이동이 아니라 풀숲을 헤쳐 나가는 이동이라고 해야 할까? 모든 도시를 방문할 수야 당연히 없으니, 몇몇 도시들을 골라 다녔는데 보통 버스를 이용했고 10시간 정도 걸렸다. 낮에 10시간을 그대로 버티는 일은 아무래도 고역이고(나는 사실 좋아하는 편이다), 사람들은 많은 경우 ‘슬리핑 버스’를 이용한다. 버스에서 어떻게 자나 싶겠지만, 내가 주로 탔던 슬리핑 버스는 버스 내부에 유리관 같은 것들이 줄지어져 있어서 그 안에 딱 사람 몸이 누울 수 있는 구조였다. 완전히 앉아서 가는 저렴한 버스들도 있긴 한데, 그런 경우에는 의자를 최대한 젖히고 의자와 사람들이 사선으로 포개지듯 누워서 간다. 밤 버스의 최대 장점은 잠에 잘 들 수만 있다면 눈을 뜨는 순간 마법처럼 도착해 있다는 것이고(버스에 탈수록 몸이 피곤해지고, 피곤해지면 다시 졸리는 구조.), 숙소 비용을 아꼈다는 기쁨에 더해 ‘순간이동’을 했다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이동 중의 가장 즐거운 이동 중 하나는 바로 순간이동.

처음 슬리핑버스를 탄 것은 바라나시에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로 향할 때였다. 나는 이때 버스 2층에 놓인 내 몫의 유리관을 처음 목격했고, 생각보다 넓다고 생각하며 즐거운 밤잠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어떤 인도 남자 한 명이 내 유리관을 열고 들어왔다. 내 자리라고 설명하자, 그는 자기 자리이기도 하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 관은 2인용이었던 것. 한 명에게는 넓지만 두 명에게는 다소 꽉 맞는, 나란히 누우면 어깨가 그대로 닿는 공간이었다. 밤 11시에 버스는 출발했다. 몸이 불편한 것은 고사하고, 생판 모르는 사람과 몸을 맞대며 밤을 보내야하는 것에 놀랐다. 불이 꺼진 버스에는 노래방에서나 볼 법한 보라색 조명이 반짝였다. 이따금씩 울리는 괴상한 클락션 소리와 묵묵한 침묵.

그와 많은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다만 영어에 익숙해보이지는 않는 그는 내가 무언가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분위기를 풀어주려 했고, 자신이 바라나시에서 자전거 상점을 하는 사람임을 전달하고 동네의 사진을 보여주고, 친구들의 사진도 보여주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은 핸드폰 불빛 속에서 반쯤만 드러났다. 어릴 때 친구들과 이불을 뒤집어 쓰고 놀 때 봤던 얼굴들처럼. 그는 내게 먹으면 잘 잘 수 있다며 술을 권했고(새 병에 담겨 있던 것이니 먹었다) 살짝 홀짝이다 둘 다 잠들었다. 깨어나니 그는 이미 내린 이후였다. 버스의 최종 목적지는 수도인 델리였는데 나는 아그라로 가기 위해 홀로 고속도로에 내려야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행 버스가 수원 가는 사람을 태우고, 수원 옆 고속도로에 승객을 내린 느낌이랄까. 텅 빈 고속도로에서 릭샤를 잡을 때까지 나는 간밤에 그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스치듯 만났다. 스치듯 잠깐 몸을 맞대고 있었다. 이런 만남도 있구나, 별 다른 대화도 없이, 그저 잠깐 같이 잠든 사이.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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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에 변호사 탔어요

대화를 많이 한 경우도 있었다. 너무 많이 한 경우.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인도의 바라나시까지 국경을 한 번에 넘어가는 버스였고 28시간이 걸렸는데 유리관이 아니라 의자 버스였다. 혼란한 좌판에서 밤에 버스에 올랐고 하루를 꼬박지난 다음날 밤에 인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 내 옆에는 지적으로 보이는 작은 안경을 쓴, 키 작은 인도 남자 아비셰가 타고 있었는데 나는 그를 ‘인도주의자’라고 부르고 싶다. 휴머니스트가 아니라, 인도를 지구최강국으로 믿는 사람. 그는 바라나시의 상류층 변호사였고 카트만두에 사는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긴 시간 동안 적적할 테니 말이나 좀 하자고 그가 내게 대화를 건 결과 우리는 결국 거의 하루 종일 대화했다. 그는 해박한 동시에 편협한 지식을 지닌 사람이어서, 모든 이야기를 인류의 기원에서 시작해 인도인의 현재로 이어지다 인도의 위대함으로 끝냈다. 나는 한 번 시작된 그의 열변을 차마 막을 수가 없었고 이동의 피로함 속에 노곤하게 지쳐 그저 라디오를 듣듯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도’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음과 동시에 인도인의 어떤 ‘인식’을 들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 그의 말의 극히 일부를 추려보자면,

우리가 흔히 아는 인도의 4개의 카스트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굳이 치자면 나는 귀족 계급인 크샤트리아이다, 인도 사람들이 이마에 찍는 점은 사원에 방문해왔다는 표식도 있고 장식용 보석인 ‘반디’인 경우도 있다, 왜 인도인들이 밥을 손으로 먹느냐 하면 철저한 위생의식 때문인데, 인류의 기원을 따져보자면... 그의 이야기는 이어졌고 버스는 무감하게 덜컹거렸다. 그의 인도 사랑은 가공할만한 것이어서 요약하자면 인도는 일견 더럽고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인류의 기원과 영적인 지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가장 놀라운 나라라는 것이다. 많은 종교와 민족들이 인도라는 틀 안에 섞여 인간의 모습을 강렬하게 분출하고 있는 세계. 그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인도를 여행한 후 그의 말의 골조 정도는 동의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인도의 위대함보다는 인도를 위대하게 생각하는 그의 열변이 더 기억에 남는다. 내내 이야기를 하고 쿨쿨 자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는 번뜩이는 눈빛. 허술한 논리인 동시에 편협하지만 강렬한 사랑이 느껴지는 인도 상류층 젊은이의 귀여운 오만함. 물론 하루였으니 망정이지 하루를 넘겼다면 나는 앞 문장에서 ‘귀여움’을 뺐을 것이다. 넓은 나라를 여행할 때의 즐거움 중 하나는 ‘이동’이고, 이동 중에는 정말 별의 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어디서 아비셰의 일장연설을 또 들을 수 있었을까. 나란히 눕거나 앉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버스와 기차 속에는. 아비셰는 중간 중간 휴게소 같은 곳에 내릴 때마다 내게 짜이(인도의 차茶)를 사주었다. 뜨거운 차를 홀짝이는 나를 자랑스레 쳐다보며.

한국에 돌아온 한참 후 아비셰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한국의 코로나 상황을 물으며, 한국의 안녕을 빌었다. 인도에서 사람이 수없이 죽어나간다는 뉴스를 보던 참이라 그에게 인도의 상황과 안부를 묻자, 인도는 정상화되었다고 답해왔다. 한국도 인도처럼 안녕을 찾기를 바란다며. 그는 정말 안녕한 것일까. 혹은 그만 안녕한 것일까. 그가 얼마나 정확하게 세상을 이해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코로나 통에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안녕을 빈다. 그때 나와 함께 움직였던 사람들 이제 모두 어디로 움직이고 계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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