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의 정치쇼 마당이 열리긴 했지만...
역대 최고의 정치쇼 마당이 열리긴 했지만...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1.06.30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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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아수라장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직 사임하고 대통령에 출마하시랏.

-늦기 전에 나도 한 번 대통령 후보 딱지나 이마에 붙여볼까?

-역시 먹고살 걱정 없는 것들은 별 짓도 가지가지로 다 하는구나.

감사원장의 대선 출마용 사직이 발표된 이후 인터넷 공간을 떠도는 댓글 해학이 예사롭지 않다. 여기를 가나 저기를 가나 시끌시끌하다. 그것을 보는 내 눈은 즐겁고, 정신은 어지럽고, 마음은 괴롭다. 내가 이 나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즐겁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하여튼 편안하지가 않다.

대선 쇼의 첫 번째 주자로 기록될 게 거의 틀림없어 보이는 윤석열씨는 처음 가졌던 직장이 검찰이었고, 마지막 직장 또한 검찰이었다. 검찰로 시작해서 검찰로 직장을 졸업했으니 허튼소리 같은 것은 절대로 안할 것 같지만, 뜻밖에도 그는 재미있는 캐릭터를 장착한 사람임이 속속 밝혀져 왔다.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가 하면, 허무하게 웃겨주는 재주까지 지닌 사람이어서 나는 그 이름 석 자를 어디서 우연히 듣기만 해도 저절로 배시시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어떤 행사장에 참석한 자기 자신을 두고 “제가 이제 처음 나타났으니까”하는 식의 표현을 거리낌 없이 구사하는 그 신박함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김대중 도서관 방명록에 쓴 지평선을 열었다는 문장은 너무도 새로워서 나는 요즘도 그 문장을 해석하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단순무식하게 말하자면 그는 언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히고 있다는 느낌이기도 하고, 오랜 세월 몸에 배인 검찰 물이 하나도 안 빠져서 자기가 누구인지 아직 감을 못 잡고 있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오래 전에 지평선을 찾으러 다닌 적이 있었다. 이십 년도 훨씬 전의 일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온갖 곳곳을 헤매던 시절이었다. 다른 목적은 없었다. 여행을 다닌다는 생각으로 헤매기를 즐긴 것도 아니었다. 헤매고 다니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면 목적이었다. 그때가 도시 생활 청산하고 시골로 온 직후였으니, 어쩌면 그렇게 헤매는 방식으로나마 내게 스며들어 있는 도시 물을 빼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전거를 타고 쏘다니다가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면 눈에 띄는 아무 마을로나 들어가서 마을회관에 방 한 칸을 빌렸다. 마을을 만나지 못 하면 숲속이건 계곡이건 아무 데나 일인용 자동 텐트를 던져놓고 하나, 둘, 별을 헤아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그 바람에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휩쓸리는 등 죽음 직전의 상황도 몇 번 경험했고, 깊은 산속 바위틈에서 내림굿을 벌이는 어미무당과 새끼무당이 밤새 불러대는 귀곡성 소리에 까닭 모를 슬픔이 사무쳐서 눈이 퉁퉁 붓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그때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산이 참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고창에서 정읍, 순창, 무주, 진안 등등 가는 곳마다 산이요 계곡이요 바위들이었다. 산 봉오리에서 구름을 내려다보며 내가 혹시 신선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망상에 빠지기도 했고, 손오공처럼 구름을 타고 다니며 산을 내려다보고 있구나 하는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전주를 거쳐 김제에 도착했을 때, 그때 비로소 내가 땅 위에 서 있다는 현실감을 제대로 갖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김제만경 평야, 확실히 넓기는 넓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끝은 있었다. 굳이 달려가서 확인할 필요조차도 없었다. 여기서 저쪽을 보면 보는 순간 벌써 끝이 보였다. 마을이 있거나, 나무가 있거나, 산이 있어서 어디에도 끝이 없는 곳은 없었다.

육지에서 만약에 하늘과 땅이 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을 목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지평선이다. 지평선이란 수평선과 마찬가지로 지구가 공처럼 둥근 까닭에 발생하는 가시거리의 제한, 내지는 착시현상일 뿐 물리적으로 실재하지는 않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만약에 지평선이 물리적으로 실재한다는 생각으로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평생을 그렇게 달리기만 하다가 결국은 수명이 다해 쓰러질 것이다.

착시현상으로나마 제대로 된 지평선을 보기로 하자면 최소한 십 킬로미터 정도는 전방이 초원이거나 사막이거나 하여튼 시야를 차단하는 무엇이 없어야 한다. 때문에 광활한 초원도, 사막도 없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지평선다운 지평선을 볼 수가 없다.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연례행사로 ‘지평선 축제’를 개최하고 있긴 하지만 여기서도 지평선다운 지평선을 볼 수는 없다.

윤석열씨가 김대중 도서관 방명록에 썼다고 하는 지평선은 지평을 일시적으로 잘못 표기한 것이라고 봐줘야겠지만, 그렇게 봐준다 하더라도 이게 뭐지? 하고 따라붙는 물음표가 깔끔하게 해소되지는 않는다. 산골 촌놈이 무엇을 알면 얼마나 알 수 있으랴만, 검찰주의자를 자처하는 윤석열씨에 관한 소식은 알고 싶지 않아도 꾸역꾸역 자꾸 밀려와서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저 유명한 경구를 절로 떠올리게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사람의 세계관 또는 우주관은 무엇일까. 이 사람의 인생관은 무엇이지? 대통령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는 발상의 근본 동기는 무엇일까, 대통령을 시켜주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이른바 정치관이라는 것을 한 번이라도 드러낸 적이 있었던가?

윤석열이란 이름 석 자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의 상황을 아무리 반추해 봐도 검찰주의자 이상의 딱히 사상이라 할 만한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고 있을 당시 ‘걱정된다’는 말을 지인에게 했다는 얘기가 떠돌긴 했지만 무엇이 왜 걱정이라는 것인지 주어는 한 글자도 없었다. 게다가 사흘도 안 돼서 한미 정상회담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성공작이라는 평가가 나와 버렸다. 도대체가 오리무중이다. 온갖 방면의 전문가들을 찾아내서 대통령 시험 보기용 속성 과외 지도를 받고 있다는 황당무계한 정보 이상의 그 무엇도 윤석열씨는 내놓은 바가 없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축제일까
어르신들의 축제일까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이쯤 되면 새정치라는 구호 하나로 호남 민심을 들쑤셔놓았던 안철수의 빈 수레를 소환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때 안철수에 열광했던 사람들은 안철수라는 인물 자체에 관심을 가졌던 게 아니었다. 새 것이라고 하는, 새 정치라고 하는 낭만적인 메시지에 일시적으로 착란이 돼서 오 그래, 하고 덥석 손을 잡았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속이 텅 비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바로 돌아설 수 있었다.

윤석열이 끌고자 하는 수레에 무엇이 담겼는지 안다고 나선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다. 그 수레에 무엇을 얼마나 담을 수 있는지 추론해주는 사람도 아직은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를 대통령으로 밀어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안철수 때보다도 많아 보인다. 그 성향도 확연하게 드러나 있다.

안철수의 빈 수레에 일시적으로나마 열광했던 사람들은 모름지기 정치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해야 한다는 사상을 장착하고 있었던 반면, 윤석열의 수레를 뒤에서 밀고 앞에서 끌고자 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은 글쎄 뭐라고 해야 할까, 문제인 싫어, 문제인 등에 칼을 꽂은 윤석열 좋아,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대통령 문재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인간 문재인 역시 안 좋아한다.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참여하는 등 약한 자를 위로하고자 노력한 죄, 억울한 자를 일으켜 세워주고자 애써 온 죄, 남과 북의 무력통일이 아닌 평화통일을 획책해 온 죄 등등이다. 이 죄가 확연하게 드러난 것은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5.18 관련 유족 여성의 등을 토닥거리며 함께 울어준 바로 그날이었다.

철통같은 경호를 받아야 할 대통령이 홀로 저벅저벅 걸어가서 총탄에 아버지를 잃고 인생이 통째로 슬픔 덩어리가 돼버린 채로 간신히 살아남아 온 여성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먹먹해진 가슴을 쥐어뜯으며 전두환의 만행을 상기했지만,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훗날을 기약하고 있었음이 곧 밝혀졌다.

국회 정론관에서 5.18 관련 단체 회원들을 일러 괴물집단이라고 국회의원 자격으로 일갈했던 그날, 그날을 기점으로 그들은 시중에 유통되고 있던 ‘문죄인’ 혹은 ‘문재앙’이란 용어를 적극 수용하기 시작했고, 대통령 문재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몰아내야 할 공산주의자 내지 빨갱이 낙인을 만들어서 확실하게 찍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어디를 가나 ‘문죄인’ 혹은 ‘문재앙’ 태그가 홍수처럼 범람했다. 이유나 근거 같은 것은 당연히 없었다.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틀을 만들어놓고 그 틀 안에 가두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기술이요 자랑이었다. 역사가 깊었고, 경험도 많았다. 필요하면 언제라도 간첩을 만들어내고, 뇌물사건을 거침없이 조작해내며, 자신의 죄를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우는 등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그들에게 염치나 상식, 부끄러움 같은 것은 먹지도 못할 땡감일 뿐이었다..

만약에 문재인 대통령이 최고 통수권자로서의 권한을 강력하게 휘둘렀다면 그들도 감히, 차마 그런 기술을 발휘할 엄두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그 맛을 알고 또 먹으려 한다는 말도 있듯이, 권력을 조폭의 칼날처럼 멋대로 마구 휘둘러본 경험이 있었기에 그들은 감수성이 풍부해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문재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려야 한다는 선전 선동에 몰두한다.

그들의 선전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잘난 사람도 아니고, 특별히 못난 사람도 아니다. 바로 내 이웃이요 내 친척이며 심지어는 내 형제 자매들일 수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 시대가 되면 나도 곧 부자가 될 거라는 최면에 빠졌던 그때처럼 말이다. 물론 그때와는 상황 자체가 많이 다르긴 하다. 그렇다 해도 권력의 속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출마 선언 현장ⓒ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출마 선언 현장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집에서 큰 개와 함께 오랫동안 살아본 사람은 권력의 속성이 무엇인가를 저절로 알게 된다. 덩치가 크고 성질도 사나운 개는 어린아이나 노인, 몸이 불편한 사람 등 약한 자를 보면 맹렬하게 짖어대며 날뛴다. 하지만 반짝이는 구두에 말쑥한 양복 차림의 젊은 남자를 보면 짖을까 말까 고민하는 자세를 취하며 꼬리를 살살 흔들어댄다. 또한 개 파세요. 개 삽니다. 하고 외치고 다니는 식용 개 장사가 다가오면 금방 알아보고 꼬리를 내리며 끼이낑, 소리와 함께 집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이 구석 저 구석 온갖 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면 약한 자를 괴롭히거나 뜯어먹는 재미로 살아가는 사람이 뜻밖에도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저 악명 높은 나치의 가스실에서 살아 돌아온 한나 아렌트가 주창한 ‘악의 평범성’은 그래서 가슴 떨리게 다가온다. 권력 앞에 굴종하면서 작은 권력을 잔인하게 행사하는 인간은 어디에나 있고, 작은 권력이나마 선망하며 오매불망하는 사람들 또한 숱하게 많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잔머리 굴리기를 매우 잘한다.

검찰총장 직을 내던진 이후 두세 달 동안 보여준 윤석열씨의 언행은 뜻밖에도 잔머리 굴리기의 도사처럼 보인다. 덩치나 목소리로만 보자면 잔머리 따위는 도무지 끼어들 틈이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신기하게도, 정말로 기가 막히게도 그는 개 한 마리까지도 자신의 존재를 빛내주는 도구로 이용할 줄 하는 기술을 갖고 있음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이쯤 되면 대통령은커녕 국회의원도 어렵지 않겠나 싶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혹시 비장의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지켜보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날이 왔다. 그날, 장소도 하필 윤봉길 기념관에서 열린 대선출정식, 그 현장 외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길가에 늘어선 수백 개의 화환들이었고, 깍두기 머리에 검은 옷을 착용한 눈매 형형한 수십 명의 사설 경호원들이었다. 조폭 영화를 찍는 걸로 오해하기 딱 십상인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내용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는 결기로 무장한 윤석열씨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하나에서 열까지 문재인 대통령 헐뜯기에 바쳐지고 있었다. 내용은 크게 봐서 두 가지였다.

하나는 문재인 정권이 국민약탈 정권이라는 것이었다. 무엇이 왜 국민약탈이라는 것인지 이유나 근거는 없었다.

다른 하나는 친일감정 드러내기였다. 일본은 세계사적으로 소중한 존재이고, 그래서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손해를 봤어도 참고 견디며 무조건 잘 지내고자 노력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가 망쳐놓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고 보면 윤석열씨의 부친은 일본 문부성이 선발한 제1호 국비 유학생으로 알려져 있다.

어쨌든 대선 쇼는 시작되었다. 내용이야 무엇이건 흥미가 진진한 것 또한 사실이다.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이 거의 동시에 경쟁적으로 자기를 임명한 자의 등에 칼을 꽂고 대통령 의자는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형국이지 않은가 말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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