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무슬목에서
여수 무슬목에서
  • 고홍석 기자
  • 승인 2021.07.0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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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세상] 고홍석
ⓒ위클리서울/ 고홍석 기자

[위클리서울=고홍석 기자] 제 경우도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면서 그 일탈로 사진을 접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터와 쉼터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숨가쁘게 살아오다가 문득 뒤돌아보면 아무 것도 해놓은 것이 없다는 허망함과 상실감에서, 이제라도 자신의 삶의 궤적을 담아야 할 그릇을 찾게 되고, 이 때 사진의 '기록성'이라는 속성이 삶의 궤적을 담는 그릇으로는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예술적 재능과 자질이 필요할 것 같은 회화, 서예, 공예 등의 취미 활동과는 다르게 사진은 카메라만 구입하여 셔터만 누르면 쉽게(나중에 쉽게 시작한 것에 대한 후회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믿음도 있습니다. 이제 사진 입문의 정해진 코스를 살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코스에서 과연 나의 좌표는 어디인가, 포기하고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과단성있게 헤쳐나갈 것인가를 냉정하게 따져보려고 합니다. 

1. 카메라를 구입하는 단계입니다. 어떤 카메라를 살 것인가. 렌즈는 어느 것으로 시작할 것인가. 비자금의 규모 내지는 신용카드의 허용 한도 내에서 경제적 고민을 하고, 똑딱이와DSLR 사이에서 망설임을 겪게 됩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어느 광고 문안처럼 이 과정에서 버벅거리면 나중에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게 됩니다. 제 경우에는 필름 카메라 소장 변천사는 캐논 FTb, AE1, 니콘 FM2 그리고 중형카메라인 Mamiya RB67이 아직도 골동품으로 남아 있고, 디카로는 코닥, 올림푸스, 캐녹스, 그리고 캐논 5D, 1Ds Mark III, 5D Mark II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필름 카메라는 15mm 광각에서 50mm 표준렌즈와 100mm 망원렌즈, 105mm 매크로 렌즈가 있고, DSLR에서는 16-35mm 광각줌렌즈, 70-200mm 망원중렌즈, 50mm macro 렌즈, 28-300mm 망원줌렌즈, 24mm TS-E 렌즈, 15mm 어안렌즈, 800mm 반사망원렌즈를 구비하고 있습니다. 기타 장비로는 삼각대, 모노포드, 카메라백, 스토로보, 가방, 릴리즈, 2X 망원 컨버터 그리고 여러가지 필터 등 입니다. 그러니까 장비만으로 보면 필요한 것들은 거의 대부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그 다음 단계는 사진 입문서를 통해서 뒤늦게 공부를 하고, 인터넷 사진 사이트를 서핑하는 것이 예정된 순서입니다. 하루에서 수십만장의 사진들이 인터넷에 공개되는 상황에서 남들이 찍은 사진을, 그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소재를 중심으로 주의깊게 살피는 것은 사진에 대한 안목 을 넓히고 더 나아가 사진 비평의 단초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찍은 사진을 보면 나라고 저런 사진을 못 찍는 법은 없다며 은근한 자신감도 키워나가곤 합니다. 

3. 그러나 막상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 할 지 어렵기만 합니다. 그 동안 잘난 척하면서 남의 사진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비평하였던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완전 자동으로 놓고 찍어보니 어딘가 노출도, 초점도, 색감도, 그리고 구성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사진의 내용도 기념/엽서사진과 비교하면 별 볼일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제 슬슬 사진 찍는 작업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럴 때마다 책을 들여다 보지만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니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책을 보게 되고, 머리 속에 정리된 것이 없으니 막상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를 마주하게 되면 그나마 조금 알았던 상식적 수준의 사진 기법 내지는 기술도 아예 캄캄해집니다. 사진의 선배들에서 이런 고충을 털어놓고 조언을 부탁해보지만, "많이 찍어보면 안다.(문자로는 백문이불여일찍)"는 알쏭달쏭한 답변만을 듣게 됩니다. 

4. 체계적인 사진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어려운 가운데 틈을 내서 시간나는대로 카메라를 메고 촬영 사냥감을 찾아 고독한 슨례자의 걸음을 시작합니다. 그나마 카메라를 메고, 삼각대를 한 손에 들고 경치 좋은 곳을 주말이나 휴일에 나들이 가는 것은 마치 고독한 예술을 지향하는 작가라도 되는 듯한 자기 최면에 빠져서 흐믓한 마음으로 뿌듯함에 부풀기도 합니다. 게다가 주변에서는 이런 모습을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으로 보아 주면 괜히 어깨도 으쓱거려집니다. 많은 이들이 이 수준에서 자기도취에 빠져 스스로 만족하고 맙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독한 순례의 길은 순탄하게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으로 남게 하지 않습니다. 폼만 그럴 듯하였지, 폼잡기 전의 사진이나 어깨 으쓱거리면서 다니면서 찍은 사진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거기다가 사진의 소재도 걸리는대로 제멋대로 찍어대니 주제가 뚜렷하지 못합나디. 자신이 찍은 사진은 겨우 소위 '이발소 사진'과 다름없다는 자괴감이 들기 시작합니다. 고독한 사진 작업으로는 한계를 느끼고, 사진 강좌를 듣거나 사진 동호회에 가입하여 적극적인 사진활동을 모색하게 됩니다. 사진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는 고독한 사냥꾼이 적극적인 동지를 얻은 셈이니 또 다른 재미와 깊이를 느끼게 됩니다. 사진 촬영의 기회도 늘어나게 되고 서로 애정어린 비평과 비판을 통해서 점차 사진 실력이 쌓여지게 됩니다. 이제 더 이상 탈출할 수 없는 사진이라는 감옥에 수감되어 버린 것입니다. 

6. 사진에 몰두하게 되면, 거리를 걸으면서 또는 차를 몰고 가면서까지도 스치는 모든 사물들이 촬영대상으로 보이게 되고, 이를 찍으려면 어느 정도의 조리개와 셔터 스피드가 필요한지 가늠하게 됩니다. 세상을 눈이라는 창을 통해서 보아 왔었는데, 이 단계에서는 그 세상을 뷰파인더를 통하여 사각 프레임으로 잘라서 보는 습관이 생기게 됩니다. 어떤 이는 잠들어서 꿈까지도 사각 프레임 안에서 꾸게 됩니다. 거의 사진에 미쳐버린 상황까지도 벌어진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조금만 더 정진하면 다음 단계로 껑충 도약할 수 있고, 아니면 이로써 충분하다면서 주저 앉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단계가 어디인지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때 누군가 저에게 "쉼표, 당신은?"하고 묻은다면, 저는 큰 소리로 주먹 불끈 치켜 세우면서 "못 먹어도 고!"라고 힘차게 외쳐야겠지요? 왜냐하면, 제 성이 '고'가이니까요..... 

여수 무슬목은 새벽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많은 사진가들이 그 시간대에 몰려가서 찍는 일출 명소 중의 하나입니다. 이 날 순천에서 개인적인 일을 보고 여수 무슬목에 도착하였을 때는 정오였습니다. 소위 '찍사들의 휴식'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곳에는 사진가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각대를 설치하고 , ND400 필터를 붙이고 장노출로 바다를 찍었습니다. 내가 테마로 정하고 찍고 있는 <바다, 보다 (See The Sea)> 프로젝트가 주로 일몰 시간을 중심으로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정오 시간대의 바다를 또다른 시각으로 담고 싶었기 때문에 촬영 시간대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위 사진처럼 그 시간에 찍은 사진은 마치 엽서 사진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 성이 '고'가이니, "못 먹어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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