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은 절대 존재 들키지 말아야 하는데, 영화나 현실 모두 비극으로 끝나”
“기생충은 절대 존재 들키지 말아야 하는데, 영화나 현실 모두 비극으로 끝나”
  • 최규재 기자
  • 승인 2021.07.0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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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기생충의 벗’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1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의학자는 병을 박멸하는 게 아니라 병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병을 박멸하는 건 ‘킬러’ 의사의 몫이다. 기생충 학자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기생충을 박멸하는 게 아니라 연구할 따름이었다. 어쩌면 기생충의 영혼도 탐구해야 했을지 모른다. 기생충과 함께하며 한때는 기생충을 관조하듯 사회를 관조하고 조롱하는 정도의 입장에서 글을 써왔는데 요즘은 전과 다르게 다소 수위 높은 정치사회적 발언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한국사회 ‘진보’를 박멸할 기세다. 학교에서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교수가 병원 현장으로 달려가 시범을 보이겠다며 메스를 든 격이다. ‘나쁜 기생충’들을 박멸하겠다며. ‘나쁜 기생충’도 박멸 말고 이성을 잃지 말고 연구해야 할 터, 말리려 해도 우리 사회를 향해 ‘이 정도면 막가자는 거 아니냐’라며 메스를 들고 칼침 놓겠다며 통곡하는 상황이다. 과거 특유의 반어법으로 정세를 비판했던 서 교수. 이제는 반어법을 넘어 ‘막 가보자’는 식으로 현 정부와 정치 현실을 비판한다. 내편 니편 없다. ‘모두까기 인형’ 진중권 교수와의 ‘불화설’과 관련해선 잠시 동업자 정도의 관계였다고 비꼰다. 비꼬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그의 복잡한 심정은 일반 국민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거리에서, 찻집에서, 술집에서, 일터에서 우리사회를 비꼬는 건 일상이 되어버렸다. 현재 지저분하고 복잡한 정치 현실 때문이다.

 

서민 교수(2013년 위클리서울과 인터뷰 당시 모습)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서 교수는 한 때 진보의 아이콘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제는 대한민국 진보에겐 희망이 없다고 토로한다. 문재인 정부의 방향성, ‘조국 사태’ 등이 서 교수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서 교수의 평소 화법을 다소 거칠게 비꼬자면 ‘우리 조국은 서민들을 버렸다’. 서 교수는 현 정권 출범 초기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인 ‘문빠’를 비판한 적도 있다. ‘문빠’들의 활동을 우려했었는데, 결국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는 지적을 이어간다.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게 과거 내가 쓴 ‘문빠 비판’ 내용들이다. 무조건적인 지지가 정권에 해가 된다는 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조국이 장관으로 지명되고 비리가 터져나올 무렵, 임명을 강행해야 한다는 응답이 30%대 후반이었다. 그게 4%였다면 어땠을까. 지지율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는 문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랬다면 진중권 선생님은 여전히 동양대에서 조용히 살고 계셨을 테고, 조국흑서도 없었다. 하지만 광적인 지지는 조국을 내치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 문재인 정권은 그 민낯을 드러냈다.”

서 교수도 문재인 대통령을 처음부터 비판하지는 않았다. 이전 정권 때는 보수를 악으로 보다시피 했다. 어차피 개과천선은 안 되는 집단으로 간주했기에 조롱이나 일삼았다. 지금은 입장이 180도 달라졌다. 모든 ‘진보’를 향해 분노하는 것은 아니다. ‘기생충보다 못한’ 진보를 향해 울분을 토했다.

서 교수는 “지금까지 살면서 보수에 표를 던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평생 진보를 내가 지향해야 할 가치로 알고 살아왔는데, 그걸 조국이, 그리고 문재인이 깨준 것”이라며 “내년 대선부터 시작해 앞으로는 쭉 보수만 찍을 것이다. 물론 문재인만큼 엉망인 보수정권이 들어선다면 그때는 좀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다시 진보로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서민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기생충 전문가다. 요즘 학계 분위기는 어떤가.

▲ 원래 1년에 두 번씩 학회를 연다. 거기서 같이 식사하고 술도 마시며 친목을 다지는데, 코로나 때문에 학회가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내가 뜬 시점이 2020년 초반인데, 그 이후 학회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대략적인 분위기는 응원하는 분위기다. 명색이 기생충학회다 보니, 사회의 기생충에 대해 나랑 같은 견해를 갖고 있지 않겠는가? 어쩌다 메일이나 문자로 연락할 때 “응원한다” “팬이다” “내가 너랑 친하다고 해도 괜찮냐?” 같은 말들을 듣는다.

 

- 과거에 비해 기생충으로 인한 환자가 보기 드문 만큼 업계(?) 활력도 잃은 것은 아닌지?

▲ 처음 학회에 가입한 1992년에도 이미 기생충은 멸종됐다는 정서가 팽배했다. 어차피 학자는 기생충을 박멸하는 사람이 아니라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연구는 국가의 역량과 정확히 비례한다. 돈과 장비가 있어야 연구를 하지 않는가. 그때랑 비교하면 지금은 세계와 견줄만한 연구를 하고, 해외학술지에도 논문을 많이 싣는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 기생충학은 마이너 학문이고, 일반인들도 한물 간 분야로 인식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더 열심히 연구한다. 존재감을 보여서 우리 학문이 왜 필요한지를 알게 해주려고. 교수 한 명이 1년에 열편 넘는 논문을 쓰는 경우도 제법 있고, 내 지도교수 같은 경우엔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700편이 넘는 논문을 쓰셨다. 나도 최소한 걸림돌이 되진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연구를 한다.

 

- 좋은 기생충도 있고 나쁜 기생충도 있다고 한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 기생충은 원래 숙주에 빌붙어 살아가는 생명체다. 자신이 약자인 걸 알고 숙주를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이걸 꼭 좋은 기생충이라 할 수는 없지만, 분수를 아는 건 기특하지 않은가.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기생충은 사람을 종숙주로 삼지 않는 것들이다. 기생충의 목표가 자손번식이고 번식은 오직 종숙주에서만 이루어지니, 사람 몸에 있는 기생충이 한곳에 얌전히 있는 대신 종숙주에게 가려고 여기저기 쏘다니다 증상을 일으키는 거다. 이게 좋다는 건 아니지만, 바이러스나 세균처럼 사람을 괴롭히는 걸 취미로 하는 애들이랑은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 기생충이 홀대받는 분위기인데,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다면. 겁을 주라는 얘기가 아니다.

▲ 우리나라는 개회충이라는 기생충이 널리 유행하는 나라다. 그리고 개회충은 사람이 종숙주가 아니어서 여러 치명적인 증상을 일으킨다. 망막박리나 뇌수막염, 간염, 폐렴 등등인데, 이게 소간을 생식하는 습관 때문이다. 여기에 관해 굉장히 여러번 얘길 했지만, 사람들은 잘 듣지 않는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생충이 무섭다며 별 효과도 없는 봄가을 구충제를 먹는 사람들이, 왜 소간을 포기하지 못하는지.

 

- 영화 ‘기생충’이 화제를 모았었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 소외받는 학문이다 보니 기생충이 주목받는 건 어찌 됐건 좋은 일이다. 이건 나만의 주장인데, 그 영화의 성공엔 ‘기생충’이란 제목이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도 있다. 여기엔 10여년 전부터 기생충의 대중화를 위해 열심히 떠든 내 공도 있다. 그게 아니었다면 영화제목을 기생충으로 쓰는 게 가능했겠는가. 그런 면에서 봉준호 감독님이 ‘서민에게 고맙다’ 같은 말을 해주길 바랐는데, 안하더라. 아쉬운 점이 하나 더 있다. 네이버에서 기생충을 검색할 때 그전까지는 내가 가장 먼저 나왔는데, 이젠 봉준호. 송강호 등이 검색된다. 구글에서 기생충 사진을 가져다 쓰려고 기생충을 검색해도 영화 장면만 나온다. 아, 이건 다 그냥 하는 말이고, 진짜로 서운하다고 믿으시진 않았으면 한다.

 

- 영화에서는 인물들을 기생충에 비유했다. 비유가 잘 되었다고 평가하는지.

▲ 기생충은 종숙주로 가려고 하고, 그러기 위해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내는 애들이다. ‘연가시’를 보라. 곤충을 물가로 가게 하려고 목마르게 하지 않은가. 영화에서도 그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반지하에 사는 송강호네 식구들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내가며 종숙주에 해당하는 박사장네 집에 취업하는 게 바로 그거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기생충은 벽장 안에 숨어사는 분이다. 있는 티도 내지 않고 조용히 살며, 박 사장이 지나갈 때마다 전등을 켜주면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 이게 바로 기생충의 정의에 부합한다.

 

- 영화에서 주요 인물들은 좋은 기생충인가 나쁜 기생충인가. 혹을 불쌍한(?) 기생충인지.

▲ 숙주를 빈사상태로 모는 대신 자신이 이득을 취하면서 숙주에게도 도움을 주는 존재, 이게 바로 기생충이다. 원래 박 사장 집에 취직한 이들은 모두 그 집에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싸가지 없던 아들이 송강호 딸의 과외 덕에 정신을 차리고, 송강호는 운전을 잘 하고, 뭐 이런 식으로. 다만 기생충은 절대 존재를 들키지 말아야 하는데, 영화에서 송강호네 식구들과 벽장 속 인물은 그 존재를 들켰다. 그 결과가 비극으로 끝나는 건 영화나 현실 모두 마찬가지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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