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노동자들의 친구’ 권영국 변호사-3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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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 권영국 변호사 제공

- 대선에 나서겠다는 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 나는 윤석열씨가 검찰총장에서 물러나던 날 다음과 같이 페이스북에 썼다. 이 글로 평가를 대신한다. “윤석열 그는 물러났다. 조용히 물러난 게 아니라 아주 요란스럽게...그는 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원 댓글부대 운영사건을 수사하면서 당시 정권의 수사 외압에 맞서다 좌천되는 고통을 겪었다. 정권의 수사 개입에 맞서 분투한 공로를 인정한다. 삼바 회계조작 사건과 이명박 뇌물수수 사건에서 보인 재벌과 권력에 대한 검찰의 수사 성과를 인정한다. 표창을 받을만한 일이었다. 반면 그는 검언유착 사건에서 자신의 측근인 검사를 보호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하는 등 해프닝을 벌인바 있다. 검찰의 비위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관대한 태도를 유지했다. 검찰의 수사는 보편적이 아니라 매우 선별적이었다. 검찰이 선택한 사건에서는 개인을 파멸시킬 수 있을 만큼 막강한 수사력을 발동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절차를 무시할 수 없는 권력자 앞에서 그는 무한대로 대항했다. 그는 제도개혁에 저항하면서 권력에 맞선 투사인 것처럼 행동했다. 정권이 보호해주는 무대 안에서 말이다. 그런데 말이지 검찰의 절대 권력을 분산하기 위한 제도개혁에 맞서는 것이 어찌 국민 보호를 위한 것인지,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해 검찰권의 남용을 막으려는 제반 시도들에 저항하는 것이 어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는 중수청이 만들어지고 검찰의 수사권이 이전되면 국가의 반부패시스템이 붕괴된다고 거품을 물었지만 검찰의 부패구조와 개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윤석열 그는 철저한 검찰주의자였고 칼잡이였다. 그 칼잡이 권력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든지 베임의 대상이었다. 기소권과 수사권을 한 손에 쥔 검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어떻게 분산할 것인지, 검찰의 권한 남용과 비위행위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견제하고 처벌할 것인지 그는 침묵했다. 그는 검찰 권력이 약화되는 것을 우려했을 뿐 검찰의 절대 권력을 분산시키려는 국민들의 요구와 제도개혁에는 저항했다. 그는 철저히 조직이기주의 행보를 보였다. 검찰총장이 자신의 거취에 앞서 공개적으로 대구를 방문해 대국민 언론플레이를 하고, ‘검찰 권력 사수’의 속내를 ‘법치 사수와 국민보호’로 포장해 마치 살아있는 권력에 맞선 정의로운 사퇴인 것인 양 멋진 그림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정치적 입문을 위해 총장의 지위를 이렇게도 잘 활용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감탄이 절로 났다. 하지만 반사적 지지율에 기댄 그의 정치적 욕망은 추락하고 말 것이다. 그가 말하는 법치 사수란 현 검찰 체제의 사수이고, 그가 말하는 국민보호란 자신의 입신출세를 위한 정치적 수사였음이 곧 드러날 테니까. 정치란 참 공학적이다.”

 

- 지난달 윤석열 측 대변인이 사퇴하기도 했다. 이유를 가늠해보자면.

▲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이라 생각한다. 대통령 후보 출마를 공식화하지도 않은 사람이 대변인을 두고 간접화법을 동원한 것이다. 대변인의 말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간보기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시건방지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민의 힘 입당 여부를 두고 요리조리 견주어보다가 국민의 힘 입당 여부 및 시점을 언급한 대변인의 말로 인해 논란이 확대되자 대변인을 사퇴시켰다. 대변인의 입방정으로 책임을 전가한 느낌이다. 정치적 지도자로서는 무책임한 태도다.

 

- 검찰 개혁도 요원해 보인다. 대안이 있다면.

▲ 그동안 검찰의 문제는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권력을 분산하고 상호 견제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검사를 수사할 수 있는 다른 수사기관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현재 법제화된 공수처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엉뚱하게도 해직교사를 특채한 교육감을 1호 수사대상으로 삼았다. 검경수사권 분리도 과연 국민들의 기본권을 보장해줄 수 있는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경찰의 수사역량을 고려할 때 로드맵이 좀 더 정교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국민들이 검찰행정에 참여하는 폭을 확대하고 직접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검사장을 직접 선출하는 방법도 그 중 하나라고 본다.

 

- 시민사회 활동으로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정치권에 다시 뛰어들 생각은.

▲ 시민사회 활동이 제도정치와 연계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제도정치를 견제하고 제도정치를 견인해 활동의 결과물을 입법과 정책으로 제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제도정치와 시민사회 활동이 서로 협력과 견제가 활발할 때 정치와 사회는 함께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총선에서 득표율이 후퇴해 내상을 입었다. 총선 후 변호사 업무를 재개하고 일부이지만 사회 활동을 재개했다. 정치 활동의 전면에 나설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정의당 당원이다.

 

- 요즘 대선 후보를 놓고 말이 많다. 혹자는 뽑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한다. 떠오르는 인물은 없는지.

▲ 뽑을 사람이 없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대선 후보란 백마 탄 왕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우리 시대를 살고 있는 누군가가 나서게 되는 것이고 그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은 우리 정치 구조가 보수양당체제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구도라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가 경쟁할 수 없는 구도이다. 보수의 땅은 넓고 넓으나 진보가 설자리는 너무나 협소하다. 다수득표로 결과를 독점하는 체제로는 참신하고 창의적인 인물의 정치입문과 성장이 불가능하다.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이 절실하다고 본다.

 

- 나름 진보 정권이라는 문재인 정부를 두고도 말이 많다. 현 정권을 평가하자면.

▲ 문재인 정부가 진보 정권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부동산 정책, 노동정책, 조세정책, 공정거래 정책 등을 보면서 재벌과 기득권의 눈치를 보면서 우유부단하게 끌려 다니는 정권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공시과 상위 2% 종부세 부과와 양도세 비과세 기준 12억원으로 상향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서민과 노동자들의 박탈감을 생각하고 하는 정책인지 분노가 치밀었다. 공기업을 통해 땅장사를 하고 아파트 가격을 고가로 유지하는 것을 보면서 중도정권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회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증세를 고려해야 함에도 언급 자체가 없다. 개혁입법 과정에서도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맞서 그 저항을 극복하기보다 입법의 취지를 훼손할 정도로 타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상법 개정에서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 합산 3%에서 개별 3%로 완화하고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소수주주의 자격을 지분 0.01%에서 0.5%로 무려 50배나 높인 것이다.

 

- 존경하는 법조인이 있다면.

▲ 내가 직접 겪은 법조인 중에서는 김선수 대법관이다. 변호사 입문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떤 자리에서도 노동권과 소수자 인권 보장이라는 자신의 소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법리전개에서도 뛰어나며 늘 공부하는 성실한 자세를 갖고 있다.

 

- 조금 어려운 질문이다. 대한민국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가. 평등하지 않다면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지.

▲ 누군가에게 대한민국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가라고 질문을 했더니 만명에게만 평등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참 명쾌한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국민들에게는 사활이 걸린 재판들이 청와대와 거래대상이 되었던 사법농단을 생각하면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질문이 얼마나 우문인지 실감하게 된다. 법은 정치세력간의 타협의 산물이다. 결국 대다수의 입법은 다수 정치세력의 입장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이루어진다고 보면 된다. 노동으로 돌아와 보면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고 있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조차 명문화에 실패하고 있다. 중복휴일에 대한 대체공휴일조차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됐다. 얼마나 불공평한가? 대한민국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차별금지법 제정이 더 미뤄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 노동자들은 한 가정의 가장일 수도 있고 자식일 수도 있다. 노동 현장을 두루 다녀본 법조인으로서, 노동 문제와 관련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노동 문제를 떠올릴 때 가장 서글픈 점은 우리 사회가 노동자를 산업역군이라고 치켜세우면서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점과 노동 내의 차별을 능력의 차이로 간주하면서 육체노동을 천시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인간이 서로 평등한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불평등한 존재라면 1등 인간에게 2등 인간의 존엄은 인정되지 않는다. 인간이 평등하려면 인간의 속성을 지닌 노동에서 차별적인 구조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노동에서의 차별은 결국 그 노동을 하는 인간에 대한 차별로 전이된다. 결국 노동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고 그것을 능력의 차이로 몰고 가는 사회는 인간에 대한 차별을 용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사회다. 노동의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근로자로 대상화하는 것을 멈추고 권리의 주체를 인정해야 한다. 노동자의 단결권은 차별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방어막이다. 선진복지국가일수록 노동 내의 차별이 적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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