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부동산 정책

ⓒ위클리서울/ 그래픽=이주리 기자

[위클리서울=우정호 기자] ‘집값 잡기’ 부동산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재건축 단지 조합원이 분양권을 얻으려면 2년간 실거주하도록 하려 한 규제가 1년 만에 없던 일이 됐다. 이번 정부에서 숱하게 주요 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중요 규제가 철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래된 재건축 단지의 집주인들이 외지에 살면서 임대를 내놓은 집주인들에게 거주 의무를 부여하면 재건축 사업이 중단될 것으로 예측한 정부의 의도와 달리, 강남권 등의 재건축 단지들이 사업 추진을 서두르게 하는 등 부작용을 나았다.

이와 함께 집주인들이 실거주를 위해 집으로 들어오면서 세입자가 내몰리게 되고, 전세가 급감하면서 전세값이 급등하는 등 주택시장의 대혼란이 남았다.

 

재건축 조합원 2년 의무거주 방안 백지화…‘1년 만에 말 바꾸기’

12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이날 국토법안소위를 열어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중 재건축 조합원에게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빼기로 했다.

재건축 조합원의 실거주 의무 부여 방안은 작년 6·17 대책의 핵심 내용이었으나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법 통과가 지연되다 결국 이날 법안에서 빠지게 됐다.

이 법안은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조합원이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해당 단지에 2년 이상 실거주 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재건축 2년 실거주 규제는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과 함께 지난해 발표된 6·17대책의 핵심이었다.

서울 강남권의 오래된 재건축 단지는 집이 낡고 협소해 집주인이 대부분 외지에 살면서 전월세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조합원에 2년 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사실상 재건축 사업의 중단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조합원 실거주 의무 부여 방침은 정부의 의도와 반대로 강남권 등의 재건축 단지들이 사업 추진을 서두르게 하는 결과를 빚었다.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까지 조합 설립 신청을 마친 단지는 거주 요건 규제를 적용하지 않도록 한 예외 조항으로 인해 그동안 조합원 동의율이 낮았던 재건축 단지들의 조합 설립 움직임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초까지 강남구 개포동 주공 5·6·7단지를 비롯해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차, 방배동 신동아, 송파구 송파동 한양2차, 용산구 서빙고동 신동아, 양천구 신정동 수정아파트 등이 재건축 조합설립 인가를 받았다. 압구정동에서도 지난 2월 4구역을 시작으로 5·2·3구역 등이 잇달아 조합설립 인가를 얻었다.

 

압구정 한양아파트_우정호
압구정 한양아파트 ⓒ위클리서울/ 우정호 기자

재건축 실거주 부작용…집주인들 ‘실거주 꼼수’, 전세금 마련에 2조 5천억 대출도

한편, 지난해 6·17대책에서 등장한 '재건축 실거주요건(2년)'는 규제를 피하기 위한 각종 꼼수가 속출하면서 부동산 시장의 혼란을 낳았다.

집주인들이 실거주 뿐만 아니라 세대분리부터 위장전입까지 다양한 편법을 통한 '서류상' 실거주요건 채우기에 혈안이 된 가운데 내몰린 세입자들은 전세난에 부딪혀 주거 불안에 시달리게 됐다.

집주인들은 지난해 6월, 대책 발표 직후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일부 재건축 단지 소유주들은 임차인을 내보내고 실거주에 나섰다.

'꼼수'도 각양각색이다. 세입자를 내보내고 집주인은 전입신고만 한 채 빈집으로 두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자택엔 전입신고만 하고 회사 근처 또는 자녀의 학교와 가까운 곳에서 전세나 월세로 사는 식이다.

세대 분리해서 세대원 일부만 실거주하게 하는 '변칙 이주'도 있다. 실거주하지 않으면 분양권이 없어지는 상황에 처하자 일부 집주인들이 자녀들만 들어가서 살게끔 하는 쪽을 택했다.

임차인의 전입신고를 막는 사례도 나왔다. 주로 단기임대하는 임차인에게 임대료 할인 등의 혜택을 주는 대신 전입신고를 못하게 하거나,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지 않는 대신 세입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소유자가 전입신고를 같이 하는 식이다.

이에 세입자들은 대책 없이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전입신고를 안 하면 향후 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전세보증금을 보호받지 못하는 등의 우려가 있고, 집주인과 합의하지 못해 퇴거한다고 해도 전세값이 치솟아 새롭게 전세 매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중위전세가격은 6억1967만원에 달했다. 지난해 7월 새 임대차법 시행으로 수급이 불균형해지면서 전세난이 나타나 1년 전인 지난해 7월(4억6931만원)에 비해 32%(1억5036만원)나 뛰었다.

전세 가격이 급등하며 다른 지역에 세입자로 살던 사람이 본인 집으로 들어와 사는 사례가 많아지자,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사례가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따르면 올해 1~5월 이들 은행에서 전월세 보증금 반환 목적으로 실행된 신규 주담대 액수는 2조4658억원었다. 이는 전년 동기(1조5127억원) 대비 63% 증가한 것이다.

 

성동구 부동산_우정호
성동구의 한 부동산 ⓒ위클리서울/ 우정호 기자

규제 백지화에 전세값 폭등 진정될까

한편,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 규제가 전면 백지화되면서 전세값 폭등이 진정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되는 가운데, 전세 시장이 당장 안정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공존한다.

전문가들은 집주인들이 이미 입주를 마친 만큼 전세 매물이 당장 늘어나기는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 인기 주거지역 전세난 완화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정부가 재건축 실거주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만으로도 전월세 시장 혼란이 컸다는 측면에선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시장 상황에 대한 면밀한 점검 없이 규제 도입을 공론화해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규제가 예고된 지난 1년 동안 집주인들이 이미 입주를 마치면서 전세 매물이 늘어나기 어렵게 된 데다 향후 추가적인 규제 완화 기대감만 키워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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