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영화들, 결과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정치사회에 대한 질문”
“제 영화들, 결과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정치사회에 대한 질문”
  • 최규재 기자
  • 승인 2021.08.06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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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저널리즘 아티스트’ 정지영 감독-2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1회에서 이어집니다.>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정지영 감독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 사회고발적인 영화들을 주로 연출했지만,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좀 다르다. 문화사적인 작품인데.

▲ 차별화 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블랙머니와 같은 작품들은 한 사건을 풀어가면서 관객과 대화한다면, ‘헐리우드’나 ‘하얀 전쟁’은 현대사 속 커다란 기간에 대한 일을 다룬다. 시간상의 긴 구간 속에서 그리고 그 맥락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 것이다. 이야기 자체는 결과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정치사회에 대한 질문이다. ‘헐리우드’의 경우 우리가 어느새 미국 문화 속에 젖어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지배력 속에서 살아왔던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한다. 작품 속 등장하는 인물들 삶에 대한 시간 차이일 뿐이지, 사회고발적 질문에 있어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 다 자식 같겠지만,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 부모 입장에서 자식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건 가장 불쌍한 자식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영화, ‘추억의 빛’(1984년작)이다. 평단에선 좋게 봤는데, 흥행엔 실패했다. 흥행에 실패한 요인은 잘 모르겠다. 사회고발이기보단 젊은이들의 방황과 상실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안 먹히는 내용이어서 흥행에 실패했을 수도 있겠다(웃음).

 

- 사회고발이 아닌 개인적 창작물로 멜로물이든 드라마든 순수 작가 입장에서 연출할 계획은 없는지.

▲ 그건 아티스트들이 하는 일이다. 저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지 않다. 사실 제 작품을 ‘사회고발물’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렇게 규정하기보단 ‘고발하면서 항상 질문하는 것’ 정도로 규정하는 게 듣기 좋겠다. 영화를 만들고 관객들이 감상을 하게 되면 ‘그거 아닌데’ 하고 우기는 사람도 있다. 제 말이 맞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채워줬다는 보람으로 작업의 성취도를 느낀다. 그동안 모든 관객과 모든 대한민국 국민에게 묻고자 하는 작품들만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생각이다. 아티스트라면 자기 멋대로 영화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런 입장에서 작품을 설계하지 않는다.

 

- 그럼에도 영감을 받았거나 본 받을만한 아티스트를 꼽자면.

▲ 장 뤽 고다르 감독 같은 사람 아니겠는가. 그런 류의 아티스트들이 제게 영향을 줬다. 훌륭한 아티스트들은 작품에 자극을 주는 사람들이다. 보통 대중영화는 낯선 형식이 될 수 없다. 낯선 건 대중들이 싫어한다. 아티스트들의 영화들이 대개 낯설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에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끊임없이 자극을 주는 사람들이다. 대중들 역시 같은 것을 매번 보는 걸 싫어한다. 많이 새로운 건 싫지만 조금은 새로워야 한다. 조금은 새롭게 한발자국만 나아가게끔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들이 많다. 물론 아티스트들은 서너 발자국씩 나아간다. 저는 그저 한발자국씩만 나아가며 대중들과 소통하려 노력하는 감독이다.

 

- 정치권이 어수선하다. 팩트 체크가 완전하진 않지만 향후 윤석열, 이명박, 박근혜 등과 관련한 시나리오도 염두에 두고 있는지.

▲ 그런 작품은 힘들다. 제가 만드는 작품이 관객들에게 어떤 감흥을 줘서 누굴 선택하는데 영향을 주는 건 괜찮다. 하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선거 국면에서 그런 류의 영화를 만들면 ‘목적 영화’가 되어버린다.

 

- 코로나 시대, 대체적으로 연극영화인들 현실이 어떤가.

▲ 힘들다. 다만 저는 운이 좋고 행복한 사람이다. 지난번에 찍었던 ‘소년들’의 경우 투자가 완료된 직후 코로나가 터졌기에 말이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 영화 업계에서 투자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게 ‘스톱’이다. 대개의 영화인들, 투자회사와 준비했던 작품들이 다 멈춰 방황하고 있다. 거기다가 그동안 있던 작품들이 개봉해도 관객이 극장을 찾지 않는다. 코로나가 종식되어야 모든 게 원상태로 돌아올 수 있겠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 정국을 보면 예전과 같은 형태로 회복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많은 영화감독들은 평소 잘 안 하던 방송시리즈를 연출하고 있다. 그것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본업에서 벗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저도 사실 영화 외에도 코로나 사태와 별개로 대하드라마를 연출하고 싶은 꿈이 있다.

 

- 흥행이 될만한 영화들도 극장에서 오래 상영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끊임없이 제작된다.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한국 현실도 그렇다. 영화산업의 저력으로 봐야 하는지.

▲ 얼마전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의 흥행 여부가 판단 기준이 되지 않을까. 평가가 엄청 좋은 영화다. 이 영화가 어떻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과연 관객들이 이 코로나 상황에서 이 영화를 사랑해줄까, 얼마나 봐줄까. 이 영화 관객수가 코로나 시대의 극장 관객수의 기준이 될 것 같고, 코로나 시대 영화산업의 현실을 반영할 것 같다.

 

- 극장이 아니어도 인터넷으로 시청하는 경향이다. 수익 쪽에서 영화인들 현실이 힘들 것인데, 감지덕지라는 표현을 써도 될는지.

▲ 영화를 보는 방법이 바뀌는 건 당연하다. 패턴이 다양해진다. 예를 들어 대형 티브이나 컴퓨터로 영화를 보는 게 잘못 된 게 시청법이 아니다. 시청은 어떤 식으로든 가능하다. 다만 모가디슈와 같은 스펙터클 있는 작품은 대형스크린에서 보는 맛이 있다. 히치콕의 영화는 심리전이니까 티브이로 봐도 무방하다. 앞으로 그런 구분 하에서, 영화의 성격에 따라서 플랫폼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 영화계, 이처럼 어렵다. 정부 차원에서 어떤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 정부에서 창작자들에게 기본소득을 줘야 한다. 창작자들이 창작 멈추지 않게 서포트 해달라는 게 영화인들의 요구다. 지급은 수익모델이 안 생겨 염려되지만, 사실 이건 예전부터 주문해온 것이다. 영화배급, 상영, 제작, 투자 등을 하나의 라인으로 하는 건 반드시 깨져야 한다. 독점은 위험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독재가 오래 못가는 건, 자기가 잘 하는 줄 알고 밑도 끝도 없이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그게 독재고 기업의 생리도 똑같다. 스스로 견제를 받아야 발전하지, 혼자 일등이라며 더 이상 넘볼 게 없다고 여기면 발전이 없다. 독과점 문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영화를 만드니 거기에 대한 대안도 필요하다. 이번 코로나 사태 때문에 넷플릭스나 왓쳐 등이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데 거기에 대한 대처도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에 빠져있다. 애플도 곧 들어온다고 한다. 한국정부도 거기에 적극적으로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

 

- 영화인들 문제를 넘어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사업이 선진국들과 비교되기도 한다.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 우리 현실 어떤가.

▲ 문화예술에 대한 복지나 지원은 애초에 없었다. 확대되어야 한다. “예술은 니가 좋아서 하는 것이지 누가 시켰냐?” 이런 말을 하는 모자란 정치인들이 많다. 문화강국이 세계리더 국가가 되는 시대가 되어있다. 아직도 문화예술을 그런 식으로 폄훼하면 이 시대의 리더가 될 수 없다. 문화를 적극 지원하는 건 그 나라가 부자 되는 지름길이다. 많은 정치인들은 문화에 대해 무지하다. 대부분 정치인들이 그렇다. 문화예술을 어떻게 성장시켜야 할지 어떻게 대안을 마련해야 할지 모른다. 한국문화가 융성할 수 있는 방법을 잘 모른다. 문화예술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 못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대중 대통령이 유일하게 문화대통령이었다. 그 분은 문화가 경제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한국영화도 크게 성장했다. 김 대통령은 영화 검열을 없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했고 거기다가 지원까지 했고, 창작물 작업에 정부가 간섭 못하게 했다. 올드보이, 취화선, 기생충 등이 칸 영화제에서 상 받은 것도 김 대통령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정권이 바뀌면서 좀 희석되었다. 지금이라도 빨리 많은 정치인들이 문화예술에 대한 개념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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