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한육감' 이준수 대표 인터뷰 -1

한육감 이준수 대표 ⓒ위클리서울 /한육감
한육감 이준수 대표 ⓒ위클리서울 /한육감


[위클리서울=우정호 기자] '육식'과 '스타일’이 한 문장 안에 있는 게 온당한가? 자르고, 썰고, 가르고, 씹고, 뜯는 야만적 행위와 미적이고, 예술적이고, 우아하고, '격조'와 '형식' 같은 단어들을 떠오르게 하는 명사가 함께 있는 것이?

'동물의 왕국'에서 본 육식의 광경을 떠올린다. 톰슨가젤 사냥에 성공해 입 주위에 뻘겋게 피를 묻히고 살점을 우적우적 씹는 치타의 얼굴. 황금빛 털과 검은 눈물자국을 가진 치타가 밝은 갈색과 흰색이 섞인 톰슨가젤의 몸통에 이빨을 박았을 때 흐르는 붉은 피. 컬러의 조화와 대비로는 스타일리쉬할 수 있겠지.

한국의 육식 문화는 어떤가? 가운데 뚫린 원탁에 둘러앉아, 흉기와 다름없는 숯불 통을 옮기는 고깃집 직원의 위협을 피해 가며, 고기를 불판에 올린 지 5초 만에 '내가 고기인지 먹고 있는 게 고기인지' 모를 만큼 냄새 가득 배인 옷을 입고, 검게 그을린 불판을 응시하며 소주잔 부딪히는 고깃집의 광경. 이게 스타일리쉬해 보이나?

전쟁 같았던 국내 육식 문화에 르 코르뷔지에와 같은 혁신과 명확한 지향점으로 새로운 발상을 불어넣은 사람이 있다. 육식 문화에 스타일을 입힌 '한육감'의 이준수 대표를 광화문 디타워에 있는 한육감에서 만났다.

 

한육감 내부 전경 ⓒ위클리서울 /한육감
한육감 내부 전경 ⓒ위클리서울 /한육감

'소고기 사업 방정식' 벗어난 파격 행보로 광화문 터줏대감 된 한육감

블랙과 골드가 적절히 배합된 그야말로 격조 있는 한육감의 룸. 왕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광화문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창을 내다보고 있는 사이, 청년이라기보다 동그란 소년 같은 이준수 대표가 들어왔다. "그 가방 멋있네요. '마르니', 제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에요." 화려한 프린트의 하와이안 셔츠와 흰 안경태. 그는 음식점 사장이 아니라 초감각적인 편집 디자이너 같았다. 

"코로나 때문에...이 장사 하는 사람들이 정말 힘들죠 뭐." 그의 입에서 '장사'라는 단어가 나오고 나서야 외식사업가의 번뇌가 느껴졌다. 평일 점심시간, 한육감은 빈 테이블이 거의 없었다.

”점심 매출로는 임대료 내기도 힘들거든요. 작년 5인 이상 집합 금지 이후 직장가에 저녁 회식이 막히면서 타격이 커졌어요. 거리 두기 4단계로 3명도 모일 수 없으니 더 힘들어졌죠. 코로나가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힘들지만. 한육감을 2014년에 오픈하면서 '10년 동안 이어갈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봤는데 이렇게 어려울지는 몰랐네요. 제대로 싸워볼 수도 없는 코로나라는 상대 앞에서."

외식업자들이 꺼내고 싶지 않은 단어 1순위인 '코로나'라는 단어를 뱉으며 그는 거의 초월적으로 웃는 듯 보였다. 광화문과 서울로에 대형 평수의 레스토랑을 연, 작년 여름 디타워 4층에 또 하나의 대형 레스토랑을 낸 성공한 사업가가.

"좋은 고기를 싸게 팔면 된다. 소고기 사업의 방정식이에요. 우리가 그 방정식을 따라갔냐고요? 2014년 1월, 그랑서울에 한육감을 오픈했을 때 주위에서 걱정 섞인 얘기들이 많았어요. 큰 한우전문점을 운영하는 사장님도 한육감을 보고 '너 이렇게 하면 망한다'고 하셨죠. 사업 방정식을 따라가지 않는 게 모험적으로 보였겠지요." 
 

광화문 디타워 5층에서 바라본 한육감 외부 전경 ⓒ위클리서울 /우정호 기자
광화문 디타워 5층에서 바라본 한육감 외부 전경 ⓒ위클리서울 /우정호 기자

‘한육감’은 한식과 양식의 경계를 허물고 한우에 대한 전문성을 살린 스타일리시한 레스토랑으로, 지난 2014년 오픈 이후 GS건설, 교보생명, KT, SK그룹 등 광화문 직장인들의 불길 같은 입소문을 탔다. 코스요리로 회식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에 '광화문 회식장소 1순위’로가 더해져 본 적 없는 유명세를 떨쳤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에도 선정된 한육감은 현재 서울로의 지점과 광화문 본점이 있다.

“그랑서울에는 이미 2개의 잘나가는 소고기 전문점이 있었어요. 좋은 고기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파는 '투뿔등심'이 있고, 고급화 전략을 펼치는 '벽제갈비'. 돌파구가 필요했어요. '코스 메뉴를 만들자'고 생각했죠. 한우 구이를 코스 요리로 만들고, 거기에 양식의 모양새를 덧씌우고, 토마호크 스테이크 같은 메뉴를 보여주자. 그랬더니 반응이 빠르게 왔어요. '고기 먹고 나면 냉면 아니었어?'하던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데 수프도 나오고, 디저트까지 이어지는 코스요리를 접하니까 새로웠죠. 자리가 스무 석이었는데 전화가 하루에 120통이 오는 거에요."

이준수 대표는 고깃집 테이블의 혁명을 일으켰다. 한우고깃집에서 고기를 자르기 위해 쓰는 가위를 테이블에서 치우고, 고기를 굽는 수고와 '몇 인분 시켜야 할까?'와 같은 고민들을 고객들에게서 떼어냈다. 코스 요리를 주문하면 식사 예산 설정이 쉽다는 점은 직장인들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했다.

“우리는 다른 방식을 택했어요. 고기를 파는 걸 형식의 변화와 스타일링으로 풀어내자.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고기와 와사비를 같이 낸 건 한육감이에요. 나고야에 가서 와규 초밥을 맛봤을 때, 다른 소고기에 비해 풍미가 떨어지는 안심에 와사비를 얹는다는 아이디어가 괜찮았어요. '소고기와 와사비. 이거 잘 어울리는데?'하면서 국내에 도입했죠. '손님들에게 안심은 와사비와, 등심은 씨겨자와, 소금은 골고를 찍어 드시면 됩니다'하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일반화돼서 웬만한 고기집에서는 와사비를 함께 내오죠.” 

“이럴 줄 알았으면 고추냉이 장사를 할걸”하며 웃는 이 대표는 식문화에 변혁을 주고 육식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이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비싼 고기를 비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건 무슨 의미가 있나? 그게 장사인가?' 의구심이 들었어요. 적어도 싼 고기를 비싸게 만들거나 비싼 고기를 싸게 만들어야 의미가 있지. 고기의 등급이라는 것, 어느 지역의 고기라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지인들에게 농담 삼아 이렇게 얘기해요. '서울대 들어가면 그냥 서울대생이지 전라도에서 왔든 경상도에서 왔든 그게 중요하냐? 횡성한우가 맛있다고? 횡성한우도 미제 사료 먹어'".

라틴아메리카를 다녀온 사람들, 특히 유학하고 온 사람들은 '아르헨티나 고기가 세계 최고'라고 입을 모아 말하곤 했다. 근데 우리나라에선 '난 한우 아니면 안 먹어'할 만큼 한우가 최고 아닌가? 미국인들은 미국산 소고기가 최고라고 하지 않나? 호주 사람들은 호주가 최고라고 하고? 그렇다면 리히텐슈타인 사람들도 자기네 소고기가 최고라고 하는 거 아닐까.

"'소고기 장사하면 아르헨티나 고기를 먹어봐야 한다'는 얘긴 저도 많이 들었어요. 직접 가서 먹어보니 잘 숙성된 한우 2등급 고기 같았죠. 한우 맛있죠. 근데 일본 소는 한국보다 마블링이 뛰어난 점도 있고 갈비는 미국산도 나쁘지 않고. 방목 환경이 좋은 아르헨티나 소는 또 다른 특성을 가졌죠. 브라질 소고기도 맛있다고 하고. 누군 이탈리아 비스떼까가 최고라고 하죠. 물론 맛있어야 할 수 있겠죠. 그 먼데 비행기 타고 갔으니까. 진부한 얘기지만 어디에서 누구랑 먹느냐가 가장 중요한 거 아닐까요." 

스타일로 승부한 한육감은 직장인들, 특히 금융맨들에게 소문이 빠르게 버지면서 1년 반 만에 '거의 바로 옆' 건물인 디타워에 2호점을 냈다. 

"디타워에 2호점은 2015년 8월에 오픈했으니 굉장히 짧은 시간에, 그것도 바로 근처에 내 버린 거죠. 그랬더니 또 말들이 많았어요. '바로 옆에다 내면 어떡하냐',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하면서. 물론 생각보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갔죠. 여기서 뛰어 내리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가 농담으로 맺었지만, 그랑서울에서 200미터가 채 되지 않는 디타워에 2호점을 오픈했다는 건 파격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실패라는 게 두렵지 않거나 그런 단어가 사전에 없는 사람처럼.

"한육감은 고기를 파는 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파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파는 요리가 한식인지 양식인지 일식인지 구분하기보단 이 공간을 즐겼으면 하는 게 저의 가장 큰 목적이에요. "한육감의 1대 셰프로 모셔왔던 분은 국내 몇 없는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를 졸업하셨고, 가나아트센터의 '빌'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계셨어요. 그분의 요리도 훌륭했지만 큐레이터들이 선정한 그림들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그 공기가 저를 크게 만족시켰어요. 그러면서 '아 이게 바로 외식업의 본질이 아닐까? 공간을 판매하는 것이?'하는 생각이 확신으로 발전했죠."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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