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깥, 바깥의 한국
한국의 바깥, 바깥의 한국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1.08.27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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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포카라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모두들 그곳에 머물렀어

인도에서 잠깐 동행했던 백은 한국인을 특히 좋아하는 한국인이었다. 같이 다니는 내내 그녀는 자신이 지나쳐온 여행지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했다. “미얀마의 바간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특히 밤에는 정말 아름다워. 벌판에는 수없이 많은 불탑들이 늘어서 있고, 한국인들은 밤마다 불탑에 기어 올라가 은하수를 본다. 악수하는 사람들. 키스하는 사람들. 여행지의 로맨스들.” 백은 미얀마에서 받은 인상 속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특히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게 있지. 백의 마음을 이해했지만 백의 마음은 지겨웠다. 그녀가 다른 한국인들을 만나 같은 스토리를 같은 플롯으로 또 반복해 이야기할 때면 더더욱. 낭만은 힘이 세서 자꾸 반복되는지, 백의 여행-로맨스-판타지는 계속되었다. 그런데 밤에 불탑에 올라가는 거 미얀마에서 불법 아니야? 차마 묻지 못했다. 낭만은 가벼운 금기를 넘어서며 단단해지는 법이니, 백은 대꾸 없이 웃었겠지만.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바라나시로 향하는 기차에서 백은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내 몫까지. 그곳은 바라나시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곳으로 유명했다. 사실상 한국인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라고. 백은 어쩌면 두 번째 바간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외국에서까지 한국인을 많이 만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왕 만난 백과 같은 도시에서 따로 머무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무심코 따라갔다. 실은 외로운 마음에 따라가고 싶었나. 개똥과 소똥을 잘 피하는 백은 정사각형 박스 모양처럼 생긴 이상한 백팩을 매고 골목길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그리고 그 끝에 그 숙소.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게스트하우스에는 역시 한국인들이 많았다. 도미토리의 한 침대를 차지하고 있던 마크와, 분홍색 바지를 입고 나타난 효진, 벙거지 모자를 쓴 택, 하얼빈에서 유학을 했다는 하얼빈을 포함한 몇 명. 한국인이 나가면 다른 한국인이 묵었다. 며칠 지내는 동안 한국인은 줄어들고 다시 불어났다. 언제나 한국어는 일정하게 머물렀다. 외국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 한국어를 쓰면 동양 사람을 만나 사투리를 마음대로 쓰듯 편안했고, 그들과 맥주를 마시고 밥을 먹고 그들을 따라 한식당에 가서 굳이 커리를 시켜 가장 늦게 나온 음식을 먹는 미련한 짓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편한 동시에 이상하게 불편하고 어색한 마음으로. 이곳이 꼭 한국의 바깥인 동시에 바깥의 한국 같았다고 해야 할까. 바라나시인 동시에 가평 같았다고 해야 할까. 낯선 것과 익숙한 것들이 한국이라는 이름 아래 묘하게 섞여 났다. 이럴 거면 왜 우리가 바라니시에서 있어야해? 사실 그냥 내 길을 갔으면 되는데 막상 모이니 불편하면서도 떠나기 어려웠다. 어쩌면 내가 한국인을 피했던 이유는, 내가 그들을 잘 못 떠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나는 곧 네팔로 가서 산행을 할 계획이었다. 공교롭게도 이곳에 머무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네팔에서 산을 탄 이후로 바라나시로 온 사람들이었다. 나와는 방향이 반대인 셈. 효진과 택 모두 별 정보도 없이 산행을 준비하는 내게 정보를 일러주었다. 한 번 해낸 사람들의 자랑스러운 등산 충고도 내게 충분히 도움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포카라에 가면 윈드폴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라는 조언이 가장 도움이 되었다. 모두들 그곳에 머물렀어. 거기 가면 등산 장비들도 무료로 빌려준다고. 사장님이 참 좋다고. 가면 안부 꼭 전해달라고. 나는 발목에 안부 편지를 묶어놓은 전서구처럼 윈드폴로 향했다. 한국 사람들을 뒤로한 채, 다른 한국인들을 향해.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호수의 사람들

아마도 윈드폴이 이곳의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까닭은 등산 장비를 무료로 빌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아침에 한식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고, 근처의 한식당과 연결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여행 다니며 한 번도 ‘한인 민박’에 묵어본 적이 없었으니 윈드폴은 내가 겪은 유일한 한인 민박이다. 부부 사장님이 어린 딸을 데리고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안나푸르나를 트래킹하고 싶어 포카라를 찾는 많은 한국 여행자들이 이곳에 들렸다. 하나하나 다 알려주고, 장비도 빌려주고, 또 산에 가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정보도 얻고, 필요하지 않은 물품도 교환하고, 입에 맞지 않는 네팔의 음식 대신 한식을 충분히 먹을 수도 있는, 그야말로 포카라에서 한국인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나도 이곳에 히말라야를 트래킹하기 위해 들렸다. 등산화조차 없고 산행 정보도 정확히 알지 못했던 내게는 딱 필요한 공간이었다. 굳이 한인 숙소에 머물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더 나은 선택지가 없었다. 결국 이곳의 도움을 받아 일정이 비슷한 사람들을 구해 함께 히말라야에 6일 걸리는 트래킹을 다녀왔고, 다녀와서 며칠 더 머물렀다. 지금 와서 생각한다. 그냥 산에 오르지 않고 이곳에 쭉 머물렀다면 어땠을까. 산에 가야만 했을까? 결국 돌이켜 기억나는 것들은 윈드폴 근처에서 보낸 며칠의 하루들인데. 지리산보다 5배 정도 크게 느껴졌던 안나푸르나의 계곡을 비집고 올라갔던 걸 후회하지는 않지만, 산 풍경보다 좋았던 것은 멈춘 듯 흘러가는 포카라의 바람, 페와호에 일렁이는 물결의 모습,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새벽 버스에서 내려 커다란 배낭을 맨 채 내려 오래 걸어야 했던 포카라의 아침 풍경은 이상하게 평화로웠다. 수많은 등산객들이 모이는 관광도시이기도 하니 돈 냄새만 가득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었는데 게스트하우스가 위치한 표지판과 호수 변의 풍경은 어릴 적 보았던 유원지를 닮아 있었다. 녹슨 철로 만들어진 나름 큰 크기의 관람차가 빠르게 돌아가고, 먼지가 앉았다 사라지기를 무던히 반복했을 것 같은 작은 범퍼카들이 나무 펜스를 지나 놓여 있었다. ‘디즈니랜드’라고 누군가 대충 적어 놓은 것 같은 표식. 낚시하는 사람들과 수영하는 아이들과 요가에 열중하고 있는 히피 스타일의 여행자들. 차분하고 조용한데, 죽어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풍경. 커다란 호수의 물결을 잔잔했고, 때로는 멀리 설산의 봉우리들이 보였다. 처음 숙소에 들어설 때부터 사장님은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내가 바라나시에서 만난 효진의 소개로 왔다고 말하자, 효진의 친구였냐며 환하게 반겨주었다.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독특한 사람이 많았다고 해야 하나.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잠시 머물다가는 등산객들 말고도 이곳에는 오래 묵고 있는 장기 체류자들이 많았다. 한 달, 아니면 몇 달을 더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불교를 배우기 위해 인도에 갔다가, 식당에서 처음 말을 건 이가 기독교로 개종하라고 권유한 것을 일종의 계시로 이해하고 기독교로 개종한 아저씨. 팔에 십자가 문신을 한 아저씨는 대머리에 수염을 길게 기른 도인의 풍모를 하고 있었는데 눈빛이 따뜻하고 말이 신중한 사람이어서, 그의 일화는 하나도 우습지 않았다. 세계여행을 하는 중에 이곳에서 어쩌다 몇 달씩 머무르고 있는 부부, 또 그런 방식으로 이곳의 일상을 함께 하고 있는 내 또래의 여자애, 누군지는 잘모르겠으나 가끔씩 커다란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하는 어떤 아저씨. 지긋하고 따듯하게 맞아주었던 사장님 내외, 함께 등산했던 정원사 형과 기상 예보관 형, 군 입대를 막 앞둔 준씨. 등산보다는 여기서 이어지고 있는 일상이 있다는 것이, 그 차분한 일상이 나른하고 평화로워 기억에 남는다.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다른 벽 없이 호수로 바로 뚫려있는 1층 소파에 그저 오래 앉아 있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무던히 편안하구나 생각하면서. 왠지 며칠 더 있다가도 좋을 것 같았다. 이렇게 앉아 있고 책을 읽고 어딘가에서 밥을 먹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도 할 수 있다면. 며칠을 묵어도 한 달을 묵은 것 같다면, 한 달을 묵어도 고작 며칠을 묵은 것 같을까.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오래 머물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일상은 늘 이어지기에 일상이고, 이곳에 일상에 스며든 순간 시간은 하루 흘러 다시 하루일 테니까. 호수 변에 자리한 윈드폴은 차분한 일상이 지나가기에 알맞은 자리였다. 호수, 귀엽고 커다란 개들, 멀리 돌아가는 관람차,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빛. 모든 것이 계속 이대로 지속될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관람차의 느지막한 움직임.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포카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흘러들어와 호수처럼 고여 있는 사람들. 다시 흘러가는 지류들. 페와, 페와. 아름답지만 어딘지 조금 슬픈 이름. 호수 변에 모인 호수같은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지나 또 살고 있고, 포카라의 관람차는 철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한국의 바깥에도 바깥의 한국이 있구나. 그리고 그 바깥의 한국은, 낯선 것들을 익숙한 것으로 좀먹는 한국이 아니라 낯선 땅에 들어선 사람들을 묵묵히 들이는 사람들의 한국. 외국에선 한국인이 싫었는데, 그건 얼마나 내 제멋대로의 생각이었던지. 누구나 저 마다의 이름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무엇으로 흘러온 걸까 페와, 나는 몸보다 큰 배낭을 메고 여기까지 왔어 말 못하는 들판의 나무들, 나뭇잎 하나까지도 견딜 수 없이 무거워서스위치를 끄고 주저앉아 너의 깊은 눈동자를 향해 돌을 던진다 돌 하나에 사람 하나 돌 하나에 사람 하나,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이름들 너는 눈 속에 저렇게 큰 산을 품고도 그 눈을 감는 법을 모른다.

- 안희연, <페와>,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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