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 사람들
우리 교회 사람들
  • 이선희
  • 승인 2021.09.07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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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어느 삶, 75년 : 3회

[위클리서울=이선희]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1
우리 교회에 다니는 연지 엄마는 마흔셋, 아니 마흔넷이 되었다. 그이는 처음 만난 5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 5년 세월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이건만, 처음 보던 날과 지금의 그이는 달라진 모습이 없다. 혀 짧은소리와 조금은 어눌한 말씨로 하루에 열 번을 만나도 반갑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해주는 연지 엄마, 아니 혜연 씨는 세 딸의 엄마다.

그이의 고향은 서울이건만 강원도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세 딸을 품은 그녀는 꾸밈이 없다. 화장품을 한 번 사봤는지, 미용실은 가봤는지. 고무줄로 질끈 머리를 묶고, 실내복 외출복 구분 없이 같은 옷을 입고 교회도 가고 시장에도 나간다. 또, 일을 참 열심히 한다. 그이는 밖에서도 집에서도 일거리를 쌓아놓는다. 그이가 사는 빌라 현관에는 어디선가 구해온 부업거리 박스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말 열심히 하네.”

가끔 칭찬을 건네면 기분 좋게 으쓱하며 “많이 벌지도 못해요”하고 수줍어한다. 하지만 어쩌다 그이의 집에 찾아갈 때면 종종 뒷걸음을 치고 만다. 현관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살림살이에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난장판이다. 이렇게 같이 살고 있는 연지 아빠도 성인(聖人)이다. 이제껏 부부싸움 한 번이 없었다고 한다. 그이의 남편은 현장 일을 다니며 자주 집에 거한다. 특히 요즘은 일이 없는 날이 많다고 한다. 아이들이 셋이나 되는데, 일이 줄어들어 늘 아이들에게 미안해한다.

나는 그들의 부모라도 되는 마냥 걱정을 키운다. 중학교 2학년 큰딸 연주, 초등학교 5학년 둘째 연희, 초등학교 2학년 막내 연지까지. 그런데 요 막내 딸아이가 엄마를 닮아 혀 짧은소리를 한다. 하여 작년부터 언어교정 학원도 다닌다. 감사한 것은, 아이들 모두 엄마를 닮아 무척 밝다. 역시나 하루에 열 번을 만나도 씩씩하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한다. 이대로 예쁘게만 자라 건강한 성인이 되어주길. 그들을 만나고 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이 가정의 복된 삶을 축복하며 기도한다.

 

#2
코로나 19로 어지러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월은 훌쩍 흐른다. 올해도 벌써 두 계절을 보내고 가을이 코앞이다. 오늘부터 3일 동안 계속 비가 온다는 뉴스를 들으며, 아침 일찍 병문안 나설 채비를 했다.

숙경 권사님은 칠십구 세이다. 7년 전에 영감님과 이혼을 했다. 사유는 의처증. 칠십이 넘어도 의처증이 있나 보다. 교회를 다녀와도 어느 놈을 만나와 왔느냐 다그치고 사람을 옴싹달싹 못 하게 한다고 권사님은 늘 내게 하소연을 했다. 정서 치료를 받자고 병원을 다녀오려 해도 도대체 영감님은 말을 듣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아들과 합세해 정신과 병원 직원을 대동해 요양원을 보냈다. 그러나 영감님이 얼마나 집에 가겠다고 졸랐는지 병원에서도 학을 떼며 도로 퇴원을 시켰다. 집에 돌아온 영감님을 더 극심한 의심과 의처증으로 권사님을 괴롭혔다.

그러니 남은 방법은 이혼뿐. 이혼을 하자 하니 나가 살 수 있게 집 얻을 돈이라도 내놓으란다. 집은 대출금이 아직 남았다며 어떻게 마련한 돈 2000만 원을 드렸다. 영감님은 방을 얻고 수급자로 신고를 해서 노령 연금과 수급비로 살았다. 권사님은 이제 속이 후련해 살 것 같았다.

그로부터 2년 뒤 권사님은 암에 걸렸다. 그것도 췌장암. 난감했다. 꽤 오래 들어놓았던 암 보험도 진단 얼마 전에 해약을 했단다. 왜 이리 일이 꼬이고 사는 게 힘이 드는지 문병을 간 내게 하소연을 하셨다. 정말 마음이 아팠다. 그나마 차상위 가정으로 신고가 되어 있어 다행히 병원비는 많이 나오지 않았다. 하던 일도 다 내려놓고 오직 암 투병에만 신경을 썼다. 수술도 하고 입원도 해서 몸조리 후에 퇴원을 했고, 몸을 살피며 교회를 다녔다. 죽음을 앞둔 자의 마음으로 아주 성실히, 이렇게.

그 후로 세월이 흘러 또 한 오 년이 지났다. 요즘은 식사도 잘 못 하시며 바짝 말라갔다. 웬걸 지난 암이 폐로 전이되어 폐암 선고를 받았다. 몸무게는 고작 42kg밖에 되지 않으며 기름진 음식은 몸이 받지를 못하고 배가 아파 설사를 한단다. 나는 늘 항상 기도한다. 불쌍한 우리 삶이 그저 따뜻한 밥과 행복한 웃음소리로 채워질 수 있길.

 

#3
은숙 씨는 어려서부터 너무 가난해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그래 일찍 결혼을 했는데 남편 역시 가진 것이 없고 배우지 못해 별 볼일이 없었다. 이집 저집 셋방으로 전전하며 어렵사리 아들, 딸 삼 남매를 두었다.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날품팔이부터 식당, 공장을 옮겨 다녔고, 겪어보지 못 한 일이 없었다. 말 그대로, 뼈가 부서지게 피눈물 나는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은숙 씨는 한 남자를 만나 춤을 배우게 되었다. 그간 살아온 삶에 비하면 너무 재미있고 즐겁고 행복했다. 그 뒤에 남편과는 이혼을 했다. 아이들은 다 자라 모두 제 짝을 만나 결혼도 하고 직장도 다녔다. 은숙 씨는 평생에 제일 즐거운 60대를 보내며 알뜰하게 벌어 행복하게 살기를 결심했다. TV 홈쇼핑에서 예쁜 옷을 팔면 나한테 부탁하여 옷을 샀는데, 얼마 전엔 멋진 밍크 코트도 주문했다. 그런데 다른 곳에 쓰는 돈은 아주 인색했다. 예를 들면 계단 청소비라든가 정화조를 치는 것, 옥상이 새어 수리를 하는 비용을 가지고 반장과 다툼을 하며 싸웠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다.

은숙 씨는 아파트 청소 일을 하고 있다. 하루에도 계단 몇 층씩을 오르내리며 발바닥이 붓고 안 아픈 곳이 없다 한다. 애인이란 남자는 집에 와서 한 10여 일을 있다 가곤 한다. 기왕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좋을 것을!

곧 은숙 씨의 칠순이 온다. 내게도 당연히 초대장을 주었는데, 무슨 백화점인지에서 칠순 잔치를 성대하게 치룬 것을 다녀왔으나 그 애인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친척들과 자녀들이 있어 부르지 못 한 것 같다.

어느 날인가 은숙 씨가 멀리 이사를 가던 때 우리는 마당에서 벌레 난 쌀을 고르며 대화를 나누었다. 은숙 씨 이제 인생 살면 몇 십 년을 더 살겠지요. 교회는 계속 다니세요. 예수님을 믿고 남은 생 잘 살아보아요. 은숙 씨도 알겠다며, 자기는 이사할 집에서 제일 가까운 교회를 다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예수님은 그곳에도 계시니까요. 그래도 가끔 만나 밥이라도 먹읍시다. 나는 문득 몹시 서운해지며 그녀와의 이별이 아쉬웠다.

그 후에 은숙 씨는 가까운 교회에 주일마다 예배에 잘 참석하고 있다며 가끔 안부를 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식이 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은숙 씨의 옛 이웃을 만났는데, 은숙 씨가 하늘나라로 떠났단다. 자녀들은 나를 모르니 연락이 없을 수밖에.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이제 칠순이 지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왜 벌써 떠나야했는지. 내가 모르는 큰 지병이 있었는지. 슬펐다. 눈물이 난다. 잠시 살고 갈 것을, 그렇게 고생만 하고 살다 갔다. 이생의 삶은 너무 허무하지만, 그녀의 영광된 새 삶을 위해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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