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와인이야기-2]

ⓒ위클리서울 /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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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박재현] 요리를 자주 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나마도 레시피를 잘 따르지 않지만 요리책은 자주 들여다 본다. 브리야 사바랭의 ‘미식예찬’ 같은 음식문화사 책이나 ‘세상에서 가장 쉬운 ***요리책’, ‘고기굽기의 기술’, ‘파스타의 기술’ 같이 두꺼워서 다 읽기도 힘든 책들을. 

사실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요리 책을 읽고 나서 직접 굽고, 삶고, 찌고, 익혀봐야 하는데 그런 행위들은 생략하고 눈으로만 훑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끔은 소매를 걷어 부친다. 재료부터 사고 본다. 요리한다고 큰 소리는 쳤는데, 부엌에 덩그러니 혼자가 된다. ‘백지의 공포’를 아시는가? 말과 생각이 활자로 옮겨지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어떤 것부터 어떻게 해야하나? 공포에 가까운 감정이다. 식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떨어져서 그럴까? 차려준 것만 먹거나 이미 조리가 된 간편식만 먹다 보니 가공되지 않은 원재료를 보고는 몸이 굳어서?

그럼에도 요리를 완성까지 이끄는 원동력은 ‘호기심’이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들이 어떻게 그 식감과 형태를 띠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 가령 요즘은 다들 흔하게 요리하는 파스타만 해도 호기심을 가지니 달리 보인다.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엔 뭐가 들어가는가? 알싸한 마늘, 유들유들한 올리브 오일, 허여멀건 면수, 소금, 후추 그리고 건면이다. 

불에 익히고 삶고 데치면 각각의 재료들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 마늘의 알싸함은 사라지고 향긋함이 남고, 느끼한 오일은 매끄러운 느낌을 주고, 면수는 뻑뻑함을 없애 주고, 소금과 후추는 맛의 중심을 잡아준다. 호기심이 즐거움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와인도 음식이다. 날것의 포도가 발효 과정을 통해 향미 가득하고 밀도 있는 ‘마시는’ 음식이 된다. 

프랑스어 ‘마리아쥬(mariage)’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사전적 의미는 ‘결혼’이지만 음식과 와인이 환상적으로 어울리는 상태를 말한다. 음식과 술의 '궁합’이라는 우리 표현도 충분히 멋지지만. 

와인을 자주 드시지 않는 분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흔한 마리아쥬가 있는데, ‘육류에는 레드 와인,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이다. 정작 나는 ‘묻지마 식 중매’라고 생각하는데, 육류만 보더라도 종류가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굽느냐, 삶느냐, 튀기느냐 등 익히는 방식에 따라 식감과 풍미, 형태가 달라지지 않는가. 또 더해지는 양념 (소스)에 따른 맛의 변화는 또 어떻고. 어류는 또 그 종류가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는 공식은 잊어버리고, 그 자리에 호기심을 채워 넣자. 내가 먹는 음식이 무슨 재료이며 또 어떤 방식으로 조리되었는가? 소스는? 각각의 재료 맛과 그것들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 느껴지는 맛은? 여기에 달지 않은 레드 와인을 곁들이면? 새콤하고 청량감 있는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면 어떨까?

‘그냥 술 한잔 하면서 입이 심심하니 먹는 건데, 뭐 그렇게 호들갑을 떠나?’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와인을 마시는 이유, 그 즐거움 중 하나는 즐길 수 있는 다양성일 것이다. 호기심을 품고 음식과 와인을 함께 곁들인다면 맛을 경험하는 폭이 넓어지고 즐길 수 있는 풍미가 다양해질 것이다.

박재현 (주)인디펜던트리쿼코리아 전략기획팀 팀장
박재현 (주)인디펜던트리쿼코리아 전략기획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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