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출발 직전
출발 직전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하늘에 달이 샐쭉하게 토라진 사람의 얼굴처럼 작아지면 물이 나가는 거리도 짧아진다. 물 나가는 거리가 짧아지면 갯벌에 밥줄을 걸어놓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타들어간다. 달이란 으레 그런 것이려니, 나갔던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고 다시 나가는 이치도 으레 그런 것이려니, 하면서도 아이고 어쩔까, 어쩔까 하는 마음은 또 어쩔 수 없다.

지난 번 조금 때는 물이 너무 멀리까지 나갔다. 들어오는 물도 많았고, 나가는 물도 역시 많은 것이 마치 조금 때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보름 동안 계속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고 다시 돌아온 조금은 완전히 달랐다. 흡사 지난 조금 때 못다 한 일을 이번 조금에 끝내야겠다는 듯이, 또는 조금이라 해서 다 같은 조금은 아니라는 걸 과시라도 하듯이, 바닷물은 갯벌을 푹 잠겨놓은 채 밖으로 내놓지를 않았다.

그 바람에 이틀을 연이어 놀아야만 했다. 그것이 또 하필이면 법정공휴일 플러스 대체휴일과 겹쳤다. 법정공휴일은 세관, 특히 검역담당 공무원들이 근무를 안 한다. 당연하다. 이 당연한 일은 중국의 바지락 수출업자들도 당연히 알고 있다. 평상시는 조금 때 중국의 바지락이 대량으로 들어와서 한국산 바지락을 대체해 왔지만, 이번에는 이것도 저것도 모두 한꺼번에 중단돼 버린 것이니, 바지락으로 메뉴를 특화해 온 음식점부터 젓갈공장 그리고 중간 상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 몸으로 안절부절 못해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전국적으로 아마 수천, 아니 수만 대의 휴대폰이 하루에만도 수십 아니 수백 건씩의 통화를 했을 것이다. 거기 상황은 어때? 여기는 너무 안 좋네. 아이고 큰일났네. 이걸 어째야 써 응? 이렇게 저렇게 오간 급박한 문답들을 만약에 외계인이 있어서 감청이나 도청을 했다면 아마도 전쟁이 터졌나? 했을 것이다.

사실로 그것은 전쟁이었다. 당면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가 없어서 모든 결정과 판단이 보류되거나 정지된, 그러면서도 어떤 방향으로든 결정과 판단을 가능한 한 빨리 해야만 하는 전쟁이었다.

 

출발
출발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물은 점점 깊어져가고
물은 점점 깊어져가고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조석표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학의 이름으로 산출된 통계수치일 뿐이었다. 평상시에는 이 통계수치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고 안정감도 있지만, 비상시에는 그 어떤 과학적 방식으로도 포착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천문 지리 등 자연 속에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었다.

그 무엇인가를 잡아내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감이었다. 감은 여러 사람의 경험이 모여서 산출해내는 또 하나의 통계였다. 오늘은 될 것 같은데? 그렇지? 맞아. 삼 년 전인가 오 년 전인가 하여튼 그때도 오늘과 같았어.

이렇게 해서 고민은 끝났다. 나가자. 일단 나가고 보자. 불확실을 희망으로 치환하는 이런 결정은 위험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지만, 위험은 갯마을 사람들 유전자에 오래 전부터 새겨져 있는 일상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고스란히 받아 안아야 하는 위험이기는 하지만,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목숨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목숨보다 더 중하게 보존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는,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만큼의 생물을 대주어야 한다는, 반드시 대주어야 한다는 신용의 문제, 라기보다는 차라리 자존이라고나 해야 할, 일반적인 거래관계에서의 신용과는 격이 다른, 보다 깊고 무거운 문제가 걸려 있었다.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만큼의 생물을 대주지 못했을 경우에 치러야 할 미안감, 죄라도 지은 것 같은 마음, 이런 부채감을 갖지 않고자 하는 심리가 작동하면서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어쨌든 결정은 내려졌다. 전화기가 울어대기 시작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인력소개 업체 전화기에 불이 붙었다. 그 다음은 오래 전부터 함께 해 온 이웃 사람들을 찾는다.

“오늘 야간작업 나갈 거니 시간 맞춰 나오시오 잉?”

 

해는 떨어져 간다
해는 떨어져 간다.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마음을 적시는 색깔
마음을 적시는 색깔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출발 시간은 오후 다섯 시로 일단 정했다. 작업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는 시간은 여덟 시 전후였다. 물때가 명확한 평상시라면 두 시간이나 한 시간쯤 전에 들어가지만, 평생을 갯가에서 살아온 사람조차도 물때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세 시간이나 여유를 두기로 한 것이다. 여유 시간은 트랙터에 탄 채로 물속에서 감옥살이라도 하듯이 보내야 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여름날의 오후 일곱 시 전후는 아직 햇발이 짱짱한 시간이지만, 가을날의 여덟 시 전후는 깜깜 암흑이다. 또한 여름날의 오후 다섯 시는 대낮이지만, 가을날의 오후 다섯 시는 애상한 센티멘털을 불러오는 시간이었다. 하늘에 태양은 미끄럼이라도 타듯이 속속 내려앉고, 노을이라는 이름의 오렌지 빛 감상이 바닷물을 적신다.

“아아 참, 저 색깔 좀 봐라.”

“아이고 참말로 미치겠네.”

“오매 눈물 나오는 것 보소.”

덜컹거리는 트랙터 안에서 저마다 한 마디씩 중얼거리고, 저마다 한두 번씩 눈을 끔뻑거리고, 남몰래 가만히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련만, 바닷물 속을 더듬더듬 천천히 기어가는 트랙터 안에서 보는 노을은 어찌 그리도 매번 삶의 근원 같은 것을 돌아보게 하는 싱숭생숭함을 가득 품고 있는 것인지, 제아무리 악독한 사람이라도 금방 선해질 것만 같다.

앞서 가던 트랙터가 멈췄다. 물이 너무 깊어서 더 이상은 전진을 못 한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는 없다. 평생을 갯가에서 살았으니 알 법도 하건만,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지는 것이 바다, 자연, 뭐 그런 것들이다. 어쩔 수 없다. 저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너무 작다는 것을, 실감하고 인정하며 가만히 한숨이나 내쉬어야 한다.

물은 더디다. 나가는 것도 같고 멈춰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들어오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손에 닿는 아무것이나 검불 같은 것을 바닷물에 띄워본다. 물에 뜬 그것의 움직임에 따라 물이 나가는지 안 나가는지, 나간다면 어느 정도의 속도로 나가는지 계산해보자는 것이다.

 

노을도 지고 새도 돌아가고
노을도 지고 새도 돌아가고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나가긴 나가지?”

“금매, 나가기는 나가는 것 같은디.”

“아이고 속 터져라 커피나 마시자.”

바지락 양식업 면허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중개를 겸하기도 이른바 업자들 중에 사려가 깊은 사람은 커피를 잔뜩 끓여서 보온병에 담아 오기도 한다. 대책 없이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달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이 커피는 인기가 매우 높다. 커피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면 앞에서 뒤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속을 허위허위 달려오면서 나도 한 잔, 나도 커피, 하고 외치는 그 모양 자체가 구경거리이다.

“아 너그도 커피 좀 갖고 다녀라.”

“바빠 죽겄는디 그럴 시간이 어딨어.”

“누구는 뭐 안 바쁘고 널널해서 커피 끓여 온다냐.”

“히히히.”

“그나저나 너그는 오늘 몇 개 갖고 나왔냐?‘

“시상에나 오늘 같은 날 백이십 개를 달라고, 사정사정 하는 것을 간신히 팔십 개로 줄였는디, 팔십은커녕 오십 개나 캐면 성공일라나 모르겠네.”

그러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지만, 그 사람만 그런 사정인 것은 아니다. 물속에서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백 대도 넘는 트랙터 중에 어느 한 대도 여유는 없다. 한숨을 크게 푹푹 내쉬느냐 목구멍으로 그냥 삼키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업자들 간에 주고받는 이런 근심 가득한 대화를 오랜 세월 함께 해 온 한국인들은 그 뜻이 무엇인지 다 알아듣는다. 알아들을 뿐만 아니라 이심전심 또한 작동이 된다. 그래서 그날 인건비가 없을 수도 있다는, 바닷물 속에서 커피나 한 잔 마시고 그냥 돌아가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각오까지도 속으로 하게 된다. 그렇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아니다. 전혀 아니다.

 

밤 바다에서 불을 켜고 물때를 기다린다
밤 바다에서 불을 켜고 물때를 기다린다.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외국인 노동자들은 아무 걱정도 근심도 없다. 상황을 모르니 이심전심 같은 것이 작동될 까닭도 없다.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그렇다. 정확한 수치를 댈 수는 없지만 열 명 중에 일곱 내지 여덟 명쯤 될까? 아마 그럴 것이다. 숫자로만 보자면 압도적인 셈이다. 때문에 한국어보다는 외국어가 더 많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열심히 대화를 하며, 열심히 담배를 피운다. 업자들에게는 이 또한 부담이다.

한국인은 사정을 잘 알아주기 때문에 작업을 못했을 경우 인건비를 건너뛰어도 된다는 묵계가 오래 전에 형성되어 있지만, 외국인들은 아니다. 게다가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섭외해서 데려온 것도 아니다. 소개업자에게 전화를 해서 몇 명 보내 달라고 한 것일 뿐이니, 그날 작업을 했건 못 했건, 이유 불문하고 인건비를 송금해야 한다.

“아이고 속 터져라.”

정말로 속이 터져버린 것이나 아닌가 싶을 정도의 비통한 소리가 여기서 저기서 터져 나온다. 그런데도 물은 그저 의연하기만 하다. 나가는 듯이 멈춰 있는 듯이 조금씩, 아마도 십 분에 일 밀리미터씩밖에 안 나가는 것 같다. 이렇게도 애간장이 터지는 것만 같은 시간이 또 있을까 싶다.

드디어 해도 완전히 떨어졌다. 오렌지 빛 노을은 사라지고, 어둠이 몰려온다. 하늘에 달도 없는 그믐날이었다. 트랙터는 하나 둘 불을 켜기 시작했다. 이렇게도 어두운 밤에는 물이 들어오는데도 물이 들어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트랙터와 함께 수장되기도 하고, 나중에 깜빡 알아차리고 트랙터는 버린 채 허둥지둥 간신히 도망쳐 나오기도 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도 언제인가는 그런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하면서도, 갯벌에 목숨을, 생계를 걸어놓고 있는 사람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의연하게 바다를 드나들어야만 한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