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찢어버려라
돈을 찢어버려라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1.10.2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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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요즘 우리나라 대한민국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절로 뭉클, 뭉클해진다. 가짜와 진짜가 확연하게 구분되는 이런 날이 오기도 하는구나. 이런 시절이 올 수도 있었구나, 하는 감격스러움에 자다가도 웃음이 벙긋, 벙긋 피어난다는 느낌이다.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했던가. 하루는 스물네 시간이 아니라 이백사십 아니 이천사백 시간쯤 되는 것 같다. 아침과 저녁이 다른 것은 온도나 풍경뿐만 아니라 사람들 마음인 것 같기도 하다. 거짓과 참이 뒤엉켜서 맹렬하게 싸우는 모습이야 뭐 새로울 것도 없다지만, 거짓이 비루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판판이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일찍이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보니 그야말로 감격시대가 도래하는 것만 같다.

하루는 꿈에서 어머니를 보았다. 인생 말년에 무엇인가 요긴한 것을 보았던 것으로 여겨지는, 돈만 보면 찢어버리는 방식으로 나를 놀라게 하셨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십 년이 훨씬 넘은 며칠 전 꿈에 생생한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말은 한 마디도 없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만 보는 그 얼굴에 피어난 미소가 모나리자, 혹은 성모마리아, 혹은 석가모니의 그것인 것만 같아서 나는 긴장되고 있었고, 엄숙해지고 있었다.

꿈에서 깬 뒤에도 나는 꿈속에서처럼 긴장하고 있었고, 엄숙해 하고 있었다. 엄숙한 마음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끄덕거리기를 몇 번이나 했다. 잠에서 깨면 습관적으로 마셔 온 커피 생각도 나지 않았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이제야 뭔가를 제대로, 올바르게 알 것 같은 느낌이어서 가슴이 뛰었고, 숨도 쉬기 어려웠다.

어머니가 꿈속에서 그 자애로운 미소의 방식으로 내게 해주신 말씀은 혹시, 혹시 ‘돈이나 버는 일 따위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은 내 아들아 고맙다’,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어머니가 살아계실 당시에는 물론 이런 생각 꿈에서도 해보지 못했다. 생각은커녕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나는 다만 슬펐을 따름이었다. 내 어머니가 이제는 돈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치매상태가 깊어졌구나 하는 슬픔 때문에 다른 아무것도 생각해볼 수 없었다. 가끔은 억울하기조차 했다. 그렇게도 열심히 성실하게,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며 온건하게 살아오신 내 어머니를 왜 하필 치매 따위가 넘본단 말인가 하는 억울함 때문에 분노마저 치밀었다.

사람이 돈을 찢는다는 것은 분명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종이를 찢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어리둥절함이, 충격이 거기에는 있었다. 누가 보는 데서 찢는 것도 아니었다. 찢은 것을 보란 듯이 아무렇게나 버려 놓지도 않았다. 방안 청소를 하다 보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꼬깃꼬깃 뭉쳐진 작은 물체가 나오곤 했다. 어찌나 힘껏 뭉쳤는지 잘 펴지지도 않는 그것을 어렵게 펴 보면 돈이었다. 가끔은 찢은 돈을 입안에 넣고 씹어서 삼켜버리는 방식으로 숨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까지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어쨌든 어머니는 중증치매 진단을 받은 지 일 년여 뒤부터 돈만 발견하면 찢었다. 다른 종이는 찢지 않으면서 돈을 찢는다는 것은 분명 돈을 알아본다는 증거였다. 돈이라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도 인식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왜?

돌아보면 어머니는 여섯이나 되는 새끼들 먹여 살리느라 악착같이 쉴 틈이 없이 일을 하면서도 돈에 매몰된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변변한 땅뙈기 하나 재산으로 갖고 있지 못한 살림이다 보니 농촌에 살면서도 내 농사보다는 남의 농사에 집중해야 하는 이른바 날품팔이 인생이었다. 사람 세상에는 어디에나 허랑방탕한 사기꾼은 있기 마련이어서, 가끔은 인건비를 떼이기도 했다. 인건비를 떼이고도 달려가서 돈 내놓으라고 소리를 치는 법이 없었다. 떼인 것은 떼인 거지 뭐, 하는 표정이었고, 다른 사람이 그 사람 험담이라도 할라치면 그 사람도 사정이 있었겠지 뭐, 하는 식이었다.

 

어머니가 찢은 돈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인생이란 재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라는 철학이라도 완성한 것처럼 여겨지는 어머니의 그런 담담한 태도는 뭐랄까, 어머니가 자식들한테 굳이 그런 가르침을 주고자 하지 않았어도 자식들은 어느새 그것을 배우고 있었다. 소설이나 영화 또는 드라마 같은 데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내 가난을 자식들한테까지 물려주지는 않겠다는 의지 같은 것을 어머니가 한 번이라도 표명하셨다면 우리 형제들도 가난을 약점으로 파악하고 의기소침해 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머니는 단 한 번도 가난 앞에서 비굴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 형제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가난을 절친한 벗처럼 인식하게 되었다. 적어도 황당한 감언이설로 남의 것을 빼앗는 기술이나 개발하는 천박한 삶을 살지는 않게 되었다. 면밀히 따지고 보면 적당한 가난만큼 행복한 삶도 없다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는 정도까지는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가끔, 부자들이 재산을 놓고 골육상쟁을 벌일 때, 혹은 유명인사들이 돈 때문에 잔머리를 열심히 굴리다가 덜컥, 감옥을 가는 상황이 되었을 때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지껄일 수도 있게 되었다.

“천하는 공물이다. 천하는 공공재산이어서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가 소유권을 주장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이것은 물론 내가 생각해낸 말이 아니었다. 고전에서 배운, 너무나 흔한 진리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천하공물 사상은 인류가 지금까지 생산해낸 모든 고전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에 하나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이런 사상을 처음 접한 것은 가슴이 펄떡거리는 청년 시절 ‘흥사단’을 드나들면서부터였다. ‘흥사단’은 대한민국 역사에 등장하는 ‘흥사단’을 모태로 출범한 단체로, 흥사단 고유의 목적사업 외에 대중강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비교적 온건한 주역이라든가 논어에서부터 맹자의 과격한 혁명사상은 물론이요, 플라톤의 철인정치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까지, 인간이 두루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다룬 모든 텍스트를 망라하고 있었다. 이 모든 텍스트에서 액기스를 빼내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이런 말이 된다.

하늘에 달과 별을 내 것이라고,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는 개인이나 단체들이 출몰해서 쟁투를 벌이는 날 인류는 마침내 공멸하고야 말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건강해야 오래 산다는 말이다. 건강하지 않으면 그 자체의 모순 때문에 파국을 면하기 어렵다는 거다. 인간이 종종 범하는 모순 중에 최악의 것은 아마도 탐욕이라는 이름의 그것일 거다. 하루에 삼 킬로그램의 음식물도 소화시켜내지 못하는 인간이 천만 톤의 음식물을 쌓아놓고 있으면서 더 많이 쌓아놓고자 난리법석을 떤다. 그러다가 폭삭 망한다.

망하는 줄 알면서도 망할 짓을 하다가 망하는 인간의 탐욕은 불꽃을 보고 날아 들어가서 타 죽는 불나비와도 같다. 이런 이치를 간파한 수많은 왕들이, 수많은 정치인들이 나는 그러지 않겠노라 선언하고 맹세하고 선서까지 했지만,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역사에도 천하공물 사상을 주창한 사상가나 정치인은 숱하게 많이 등장한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로 정여립이 있다. 정여립은 대동계를 조직해서 왕과 평민이 다르지 않고, 달라야 할 이유도 없다는 사상을 전파하다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종교를 등에 업고 등장한 전봉준 역시 처참한 죽임을 면하지 못했다.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나라를 팔아서라도 응징한다는 권력자들의 권위의식은 천박하지만 뿌리가 깊었다.

세월이 흘러 천하공물 사상은 토지공개념이라는 말로 슬쩍 바뀌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공산주의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지만, 공산주의 역시 탐욕이라는 이름의 자체 모순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인류사에서 가장 지저분하게, 그러면서도 가장 코믹하게 망한 정치사상을 찾기로 하자만 아마 공산주의를 첫 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이다.

목소리가 지나치게 높으면 가짜이기 마련이다. 공산을 소리 높여 외친 자들은 왕조정치를 부정하고 탄핵하면서 왕조 못지않은 세습과 장기독재를 획책했고, 재화는 공평하게 필요한 만큼씩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수뇌라는 자들은 돈을 저장하는 창고를 따로 두어야 할 정도로 뼛속이 먼저 썩어버린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썩어빠진 자들 때문에 공산이라는 매우 아름다운 단어는 지하로 묻히거나 숨어들어가야만 했다.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천하공물이니 토지공개념이니 하는 말은 금기어가 되고 말았다. 그런 말을 입에 올리면 즉각 너 공산주의자지? 하는 질문과 함께 탄압을 받고, 핍박을 받다가 쓸쓸한 최우를 맞이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그리하여 인간의 탐욕은 매우 합법적으로 날개를 달고 훨훨 날기 시작했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다. 아무나 자유스럽게 욕망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지의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치철학이 기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신자유주의라고 하니 뭔가 대단히 새로운 게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아무나 자유롭게 돈만 벌면 된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무나 자유롭게’라는 말의 의미는 매우 포괄적이어서, 다소 극단적으로 정리하자면 투기든 사기든 도둑질이든 현행법의 그물에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바야흐로 잔머리 굴리기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별별 희한한 사기 기술이 등장해서 서민들의 피를 빨아대기 시작했다. 부동산 가격은 날로 달로 치솟았고, 이런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아서 무슨 꼴을 볼 것이냐 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사람은 많은데 땅을 적다. 재화는 한정돼 있는데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갖고자 온갖 술수를 부리고, 못 가진 사람은 장기라도 팔아야만 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인류는 그야말로 멸절되고 말 것이다.

이때 한 사람이 등장했다. 인구 백만 남짓의 기초자치단체를 관리하는 그는 꾀돌이 중에 꾀돌이였다. 이 꾀돌이는 공산이니 토지공개념이니 하는 자극적인 용어를 입에 담지도 않으면서 그에 못지않은 정책을 개발하고 수립하고 실행해서 일정 부분 성공을 거뒀다. 그가 만일 공산이라든가 토지공개념 같은 정리된 용어를 사용했다면 기득권자들이나 기득권자들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언론이 융단폭격을 퍼부었을 것이고, 그러면 그의 정책은 성공 근처에도 못 가고 주저앉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이제 인구 백만이 아니라 인구 오천만의 대한민국 전체를 관리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다. 만약에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많이 가졌으면서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자들의 탐욕은 저지되고 말 것이다. 많이 가진 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한 셈이다. 그리하여 꼬집고 할퀴고 물어뜯고 온갖 난리법석을 피워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득권자들과 그 하수인들이 난리법석을 피우면 피울수록 그들이 그동안 감춰두고 있었던 비루한 과거가 하나씩 둘씩 나 여기 있어요, 하는 듯이 드러난다.

이런 신기한 상황을 목도한 우리의 꾀돌이는 아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삶이란다. 무슨 마음으로 어떻게 사느냐가 돈보다 천 배, 만 배 중요하단 말이다. 너희들 돈 많이 가졌지? 쓰지도 못할 돈 또한 엄청나게 많지? 넘쳐나는 돈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기는 또 싫지? 그렇다면 찢어버려라. 돈을 찢어버리란 말이다. 그러면 너희들의 삶도 행복해질 것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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