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함피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코로나의 시작은 버스에서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을까. 그럼 이 지겨운 바이러스는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건지. 생소한 이름으로 시작해 우리의 일상을 마스크로 입 막은 코로나는,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이제는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결국 언젠가 우리는 마스크를 벗고 일상을 회복하겠지만, 또 인간의 역사에서 반복되듯 우리는 이 재난을 잊고 또 하루를 살아가겠지만, 적어도 이 2년 넘는 마스크의 시간은 한 개인의 기억 속에서도 역사의 기록에서도 지우기 힘든 얼룩인 동시에 하나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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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아직 모르지만 시작은 분명하게 기억한다. 효진과 나는 인도 남부 내륙의 함피에서 며칠을 보낸 후 슬리핑 버스에 올라탔다. 두 명이 타서 누우면 꽉 차 거의 움직일 수도 없는 버스의 한 칸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다른 칸들도 사람으로 가득 차 있는지 밤 버스의 내부는 북적거렸다. 나란히 누워 천장에 발을 올리기도 하고 살아온 이야기며, 사람 간의 관계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짜이 냄새와 각종 과일, 먹을거리들이 주렁주렁 걸려있던 휴게소를 지나치며 밤은 함께 지나갔다. 버스의 내부는 사람 냄새와 먼지로 가득했고, 창밖의 풍경은 해안으로 갈수록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었다. 내가 아침에 졸린 눈을 떴을 때, 효진은 좁은 틈에 가만히 앉아 창밖을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뒤통수가 보였다. 어떤 상념에 젖어있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몸이 힘들어 겨우 앉아 버티고 있었을 뿐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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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할 때까지는 누워서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정보를 찾아보거나, 뉴스를 보았다. 그때 효진은 내게 중국에 심각한 전염병, 무슨 폐렴인가가 퍼져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그러나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먼 대륙에서 종종 들려오곤 했던 바이러스 발발에 대한 뉴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흔한 세계뉴스 같았다. 중국 큰일이네. 곧 중국에도 가보고 싶었는데, 한동안 가기 힘들겠네, 그런 말 이상의 말은 없었다. 대강 넘긴 이 뉴스가 앞으로의 일상과 계획을 흔들어 놓을지 우리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 아마 코로나가 중국의 지역 전염병 정도로 종식되었다면 나는 이 장면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그 대수롭지 않았던 좁은 슬리핑 버스 칸에서의 이야기는 내게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 뉴스를 보기 이전의 상태로 한동안 돌아가기 힘들 것이기 때문에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던 순간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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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상황은 곧 한국의 상황이 되었고, 외국인 친구들은 한국을 걱정했고, 곧 외국의 상황은 한국의 상황보다도 심해졌다. 코로나 초기에 나의 건강을 염려했던 몇몇 외국인 친구들은, 금세 자기 방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인도를 출국할 때 즈음에는 한국에서 몇 명의 확진자가 막 발생하는 상황이었는데 골동품 가게에서 만난 인도인 아저씨들은 내게 진지한 얼굴로 지금 한국에 가면 위험하다고, 차라리 인도로 망명을 신청하라고, 한국 정부도 이해할 거라고 말했다. 망명은 무슨 망명이에요 아저씨, 대답하고 내가 인도를 떠난 지 몇 달 후에 인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내가 지나온 도시들에서 시신을 단체로 불 태우는 사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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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무서운 점은 사람이 그렇게 죽어나가도 체감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전 세계에서 코로나로 500만 명이 넘게 죽었다. 그 중 인도에서는 50만이 죽었다. 가끔씩 연락이 닿는 인도 친구들은 내게 말한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 우리는 잘 지내. 관광객은 거의 오지 않지만 사람들은 예전처럼 똑같이 지내. 나는 그들이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또 그들이 정말 잘 지내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지만, 정말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는 게 이상할 때가 있다. 사실 나 또한 그렇고. 사람이 그렇게 죽어도 우리는 잘 모른다. 잘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때로 그 사실은 새삼 놀랍다. 일상은 바뀌었지만, 죽은 자들을 뒤에 두고 계속 굴러간다. 잡음을 내며 계속 구르면서, 그 틈바구니에서 쓰러졌을 수많은 사람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그런 죽음은 이미 도처에 있었을 것이다. 다시 되물어야하는 질문이 있고 그 질문에 섞여 들어있는 누군가의 목숨이 있다. 자주 잊어버리지만 이따금씩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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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돌과 히피들

효진과 함께한 함피는 내가 코로나를 아예 몰랐던 마지막 여행지가 되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바라나시였다. 바라나시는 분명 마법의 도시라고, 네가 직접 가보면 알 거라는 스페인 아저씨의 말대로인지, 그저 바라나시가 여행자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도시여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바라나시에서 만난 여행자들을 다른 곳에서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처음 만났을 때 효진은 핑크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옆 침대에 누워 있던 한 남자는 이 게스트하우스에 한 싱가포르 ‘처자’가 묵고 있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내가 침대에 누워 싱가포르인과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방문이 벌컥 얼렸다. 그곳에는 핑크색 긴 바지를 입고 후드티를 입은 호쾌한 한국인이 서있었다. 경쾌한 인사말, 안녕하세요! 알고 보니 싱가포르인이 아니라 싱가포르에서 일했던 적이 있는 사람. 그녀는 자꾸 내면으로 졸아드는 나에 비해 시원시원하고 낯을 잘 가리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녀는 이곳저곳의 정보와 이 사람 저 사람을 소개해주며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동시에 무리에 완전히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시간을 잘 지켜내는 편인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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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 바라나시를 떠났고 효진은 근교에 있는 명상 센터에 들어갔다. 일주일 넘게 하루 종일 명상을 하는, 초기 불교의 수행법을 따르는 센터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내가 네팔을 지나 인도로 돌아와 인도 남부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을 때, 효진이 남부의 도시 중 한 곳에서 요가를 배우며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 일정이 맞아 우리는 함피에서 다시 만났다.

함피를 도시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함피는 15세기 경 번성했던 인도의 힌두 제국 비자야나가르의 옛 수도로, 그 유적이 상당수 남아 있는 거대한 터다. 그러나 흔한 공터나 유적터는 아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이 지대에 그대로 남아있는 사람보다 큰 수많은 돌들이다. 5m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거대한 돌덩어리들이 무심하게 그대로 툭툭 쌓여있고, 그 돌들이 평야를 이루고 산을 이룬다. 이 돌무더기에 건설되었던 거대한 제국의 석조 건물과 탑들은 아직까지도 골조를 유지한 채 남아있다. 사막도 황야도 아닌 돌의 들판. 유럽에서 인도로 여행 온 히피들은 이 기이한 풍경이 마음에 들었는지 함피의 강변을 따라 한 생을 즐기러 머물다 갔다. 아직까지도 그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어 거대한 돌로 둘러 쌓인 전원적인 함피 마을에는 한참 늘어져 있고 싶은 여행자를 위한 곳들이 많다. 매직머쉬롬과 대마초 마크로 장식되어있는, 장발의 손님들이 머무는 당장 요가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곳들. 과거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곳에서 과거의 시간과 무관한 지금의 안식을 찾는 사람들의 풍경. 거대한 돌들은 위압감을 주는 대신 어딘지 원형적인 평안함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나는 이 기이한 풍경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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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 안 깊숙이 자리한 작은 숙소에서 효진과 다시 만났다. 새벽버스를 막 타고 내린 아침이었고, 먼저 도착해 짐을 푼 효진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 그녀는 빨간 바지를 입고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바로 앞에 있는 거대한 사원에서 코코넛 주스를 사들고 앉았다. 햇볕이 사원의 돌을 더 희게 비추었다. 맨발로 느껴지는 사원의 촉감이 좋았다. 우물 앞에 앉아 효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자기 이야기를 자기 식대로 잘 풀어나가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점차 부풀어 오르는 햇볕 속에서, 너무나도 낯선 풍경 속에서 나는 깊은 평화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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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갑자기 우리의 왼쪽으로 갑자기 콧등에 붉은 분을 칠한 코끼리 한 마리가 걸어 들어온다. 어떻게 코끼리가 여기 이렇게 나타나지. 너무 신기하다. 코끼리가 바로 앞에 있다. 그러나 충분히 나타날 수 있지. 아마도 관광객들을 위한 이벤트겠지만, 이곳은 함피니까. 정말 코끼리가 있을 수 있던 곳이니까. 코끼리는 터벅터벅 사원의 중심부를 향해 나아가고, 나는 지금 모든 걱정과 불안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던 함피의 날들을 떠올린다. 제국과 돌들과 히피들의 사이. 코끼리가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은 날들. 아직 우리가 바이러스와 무관하던 그 날들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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