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뻔이의 작업준비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이틀 동안 안 보이던 그가 왔다. 인력소개소에서 운영하는 자동차 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반갑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묻지도 않은 말을 꺼낸다.

“한국, 코리아, 좋아요. 감사해요.”

이제 갓 말을 배운 아이의 옹알이 같은 말을 하고 있는 남자, 코로나19 백신 접종완료 베지를 들어 보이며 싱글싱글 웃고 있는 서른한 살의 남자, 닳고 닳은 문명의 때가 아직은 끼여 있지 않은 그 웃음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해맑고 진지해서 와락 껴안아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는 아직 한 가지 더 남아 있다는 듯이, 장갑을 벗고 손등을 쓰윽 내밀어 보이며 소리 없는 미소를 짓는다.

10시 56.

이게 뭐냐? 무슨 암호문 같다. 간첩들이 활용하는 난수표 같기도 하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알 수가 없는 그것은 확실히 숫자의 비밀이라 할 만하다. 방역 당국에서 정한 지침에 따르면 백신 접종 후 삼십 분 동안은 경과를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돼 있다. 요컨대 삼십 분 동안은 백신을 맞았어도 안 맞은 거나 다름없고, 심한 경우 안 맞은 것보다 훨씬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그러므로 삼십 분 동안은 다른 사람과 접촉을 해서는 안 되고, 병원 밖으로 나가서도 안 된다.

그러니까 그의 손등에 적힌 숫자는 병원 밖으로 나가도 되는 시간을 간호사가 계산해서 적어놓은 것이다. 그는 그것이 감격스럽고, 너무도 신기해서 떼버리지도 않고 두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자랑삼아 보여줄 목적으로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가 그날 출발 전에 다시 붙이고 나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백신접종 완료 증거를 오래오래 가지고 다니며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뭐 그랬다. 그가 보여주는 손등의 숫자를 보고 나니 문득, 불현 듯 손바닥에 임금왕자를 써 가지고 다녔던 대통령 예비후보의 얼굴이 떠올라 온다. 아이고 참, 나도 웃긴다. 이게 무슨 방정맞은 사고방식인가. 이런 엄숙한 상황에서 그런 코믹한 자의 얼굴이 왜 하필 떠오른단 말이냐. 기분이 확 구겨져서 고개를 회회 저어대는데 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음표를 마구 던진다.

 

갯벌에서 뻔이
갯벌에서 뻔이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어어? 아파요? 어디?”

“아니, 아니 너가 존경스럽다고.”

나는 그의 정확한 이름을 모른다. 모르지만 뻔이라고 부른다. 처음 만나던 날 이름을 물었을 때 그 자신이 나? 뻔, 뻔,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동료들 역시 뻔이라고 부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태국이 국적인 사람들의 이름은 대체로 그런 것 같다. 뻥, 항, 낫, 깡, 떵 등등 우리 식으로 해석하자면 매우 간명하고, 그 어휘가 조금은 웃기기도 해서 이름을 언급할 때마다 잠깐씩 웃음을 머금곤 한다.

이 사람의 얼굴을 보기 시작한 지도 벌써 삼 년이 넘었다. 갯벌에서 외부 사람을 필요로 하는 시기는 가을 한철이니까 날짜로만 치자면 일백 일 남짓 정도이지만, 햇수로는 어쨌든 삼 년을 넘긴 셈이다. 이렇게도 오랜 시간 함께 작업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 칠팔 년 동안 고창의 곰소만 갯벌을 거쳐 간 사람들은 매우 많고 국적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일 년 이상 체류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만나서 얼굴 익히고 정이 들 만하면 헤어지는 게 그들과 우리의 관계였다.

베트남이 국적인 사람들이 아마 가장 길게, 이 년 가까이 우리 곁에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갯벌 작업이 한창인 10월에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사후에 그들이 추방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크라이나 국적 사람들은 일 년이 채 안 돼서 우리 곁을 떠났다. 심지어는 같은 민족이라 언어와 식습관이 거의 같은 연변에서 온 사람들도 일 년이 채 안 돼서 인사도 없이 떠나 버렸고, 고려인으로 통칭되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사람들 역시 불법체류 딱지를 온 몸에 붙인 채로 숨어 다니다가 추방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몸을 피해가곤 했다.

숨을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고,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말이 좀 되려는지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 누가 출입국 관리소에 신고를 해서 호송차량이 들이닥칠지 몰라 전전긍긍해야 하는 삶이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그들은 항상 작은 가방에 여권과 전화기와 담배 그리고 현금을 담아서 허리에 차고 다녔다. 조짐이 수상쩍다 싶으면 즉각 튀어야 하는 우리의 독립 운동가들이, 군사독재 당시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사람들이 아마 그런 삶을 살았으리라.

 

뻔이의 작업시작
뻔이의 작업시작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잠자리에서도 긴장을 풀지 않고 있다가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벌떡 일어서야 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는 필수 중에 필수였다. 어디서 누가 잡혔단다, 이제 곧 너희들 쪽으로 특사경이 들이닥칠 수도 있다. 지난 세기에 이런 정보는 비둘기 아니면 심부름꾼 꼬마들이 전해 주었겠지만, 21세기 현대사회에는 스마트폰이라고 하는 매우 훌륭한 도구가 있어서, 신분이 불안정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누구나 없이 그것을 보물처럼 끼고 다니며 틈만 나면 심각한 표정으로 들여다보며 담배 연기를 뻑뻑 뿜어낸다.

담배와 스마트폰이 없으면 하루를 살아내기도 어려울 것 같은 사람들, 사람으로 사람 나라에 왔지만 사람 자격을 인정받지 못해서 걸음걸이조차 슬퍼 보이는 사람들, 이런 불안정한 삶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뭔가 획기적인 변화 내지는 전환이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것이 왔다. 어느 날 갑자기 도둑처럼, 강도처럼 들이닥쳤다. 나중에 코로나19로 명명된 그것이 어디서 무슨 바람을 타고 왔는지는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막강한 전염력을 과시하는 그것의 출현을 바란 사람이 세상천지 누구 있을까마는, 어쨌든 그것은 왔고, 그것은 초기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의 신분을 강하게 흔들어 놓았다. 비행기와 여객선이 운행을 중지하면서 그들을 잡으러 다니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 활동을 중단했고, 쫓겨나지 않으려고 숨어 다니던 그들은 이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가 없는 기묘한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또 그것이 왔다. 여기서, 저기서, 전국 도처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집단감염이 속속 보고되기 시작했고, 당국은 비상이 걸렸다. 사실 그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어촌에서나 산촌에서나 신분이 불안정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는 숙소라기보다 헛간에 가까웠고, 그마저도 수용소를 방불케 했다. 열 평 남짓한 빈 집이나 창고 혹은 비닐하우스를 대충 개조해서 열 명, 스무 명, 제한 없이 있는 대로 들어가서 복작거리는 게 다반사였다.

미처 몰랐던 사실을 발견한 방역 당국은 여기가 바로 사각지대였구나, 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정확한 사실 파악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계를 극복하고자 선택한 것이 문자 발송이었다. 외국인 노동자 여러분께서는 강제 추방이라든가 그 어떤 법률적인 불이익도 가하지 않을 테니 즉각 백신 접종 신청을 하시라는 내용의 문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발송되었다. 국적이 대한민국이고, 어느 나라에도 없다는 주민등록증까지 갖고 있는 내게도 그런 문자가 사나흘에 한 번씩 들어올 정도였다.

 

접종완료
접종완료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처음에는 기연가미연가 의심을 풀지 못 하고 망설이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은 차츰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얼굴을 내밀고, 전화번호를 공개하고, 숙소까지 공개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어날 즈음 유언비어 유포 전문가가 등장했다.

백신을 맞으면 안 죽고 산다더냐? 너희는 어차피 죽게 돼 있어 인마, 하는 식의 비웃음과 조롱이 한껏 담긴 유언비어를 열심히 유포한 사람은 자기소개를 집사라고도 하고, 권사라고도 하고, 장로라고도 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직분과 신분을 가공하는 걸로 유명세를 오랫동안 타 온 남성이었다. 자기는 모태신앙이라서 그 어떤 위험에도 안전하다고 자랑하기를 직업처럼 하고 다니는 걸로도 유명한 그는 언변 또한 좋아서 누구든 붙잡고 십여 분 정도는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마구 지껄일 만한 말솜씨가 있었다.

이런 사람의 얘기는 대체로 허무맹랑해서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지만, 실상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보물은 언제나 남모르게 숨어 있는 법이라는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었다. 보물이 꼭꼭 숨겨져 있듯이, 좋은 말도 숨어 있어서 열심히 듣고자 하는 사람의 귀에만 들린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은 아마도 보물로 여겨지기도 할 것이었다.

사람 목숨은 사람이 주재하는 것이 아니다. 보라. 의사도 어쩌지 못해서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사람 목숨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 관리하는 거다. 백신? 그따위 거 천 번을 맞은들 안 죽을 것 같은가?

면밀히 따지자면 이런 말은 사실 유언비어라고만 말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이런 유형의 유언비어는 근거가 전혀 없는 것만도 아니었다. 이른바 언론이라고 하는, 불안과 공포를 강조하는 기사일수록 조회수가 오르는, 그에 따른 수익 또한 증가하는 것이 분명한, 그래서 열심히 가짜뉴스를 생산해내고픈 유혹을 받는 매체 종사자들, 그들이 쏟아낸 기사라는 이름의 문장을 잘라내고 덧붙이는 방식으로 그는 편집해서 갖고 다니며 선전선동 내지 전도를 하는 것이었다.

 

주의시간
주의시간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이런 방식의 질 나쁜 전도는 대개 실패하기 마련이지만, 결과를 보자면 실패 확률은 십중팔구에 불과한 것이라, 십 중에 일이 정도는 제법 성공을 하는 것이어서, 그가 다니는 교회의 신도는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최소한 오 퍼센트는 늘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니 어쩌랴. 그는 백신 접종 반대 운동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가 없게 돼버린 셈이었다. 알고 보면 이 사람의 주된 관심이 외국인 노동자들인 것만도 아니었다. 언제 자기 나라로 돌아갈지, 언제 추방될지 알 수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량 설득해 낸다 해도 그가 볼 만한 이익은 사실 하나도 없었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백신 접종 참여 열기가 내국인들에게까지 미치면 어쩌나, 그 결과로 교회 신도수가 도로 줄어들면 어쩌나 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이른바 정론직필을 주장하는 일부 기자들은 이런 내용을 열심히 기사화해 낸다. 그러면 사회 혼란이 극심해지기를 바라는 일부 정치인들이 이것을 받아서 나라가 곧 망하게 생겼다고 걱정하는 척을 열심히 한다.

코로나19 정국을 거치면서 내가 발견한 것은, 우리 사회에 세 종류의 명백한 악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극소수 종교인과 대다수 언론인과 다수의 정치인들, 이들은 분명 국민의 불안과 공포를 먹고사는 악귀들이라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이런 생각에 근거를 제공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악귀들 자신이라는 점이 나는 지금 신기할 따름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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