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선 일이고
머선 일이고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1.11.25 09: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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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얼마 전 난타 동아리 수업으로 출강하는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축제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작품 마무리가 한창이었다. 예전에는 전 학년이 강당에 모여 동아리별로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맘껏 뽐내는 축제였지만 작년부터 영상으로 대체하는 온라인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영상으로 대체한다고는 하나 발표회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은 나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느끼긴 마찬가지. 그 날도 무대 매너와 작품마무리에 열을 올리며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조금 까다로운 동작이 있었는데 몇 번이고 합을 맞추며 반복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뒷줄에 몇몇 학생들이 집중을 하지 못하고 소곤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수 년 째 중학교에 출강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춘기 절정에 도달해 있는 중학생들에게 지적질을 한다는 것은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 라는 명대사가 있는 것처럼 용기를 내어서 물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수업시간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강사로써의 본분을 망각하는 처사라는 생각도 들었다.

“왜? 거기 뒷줄 머선 일이고?”

“네? 아하하하하.”

엄마야, 참말로 이게 무슨 일인지 평소에는 대답도 잘 안하던 학생들이 내 질문에 쑥스러운 듯 막 웃었다. 그 웃음 뒤에는 떠들어서 죄송하다는 몸짓과 함께 특정 동작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부연 설명을 곁들인다. 나의 사투리가 웃겼다는 애교 섞인 답 까지 해줬다.

아, 그러니까 아이들이 웃은 이유는 머선 일이냐며 물어 본 내 사투리가 웃겼다는 이야기다.

나의 고향은 대구이다. 20여 년을 대구에서 살다가 본의 아니게 서울로 상경한지 수 십 년이 흘렀다. 고향에서 지낸 세월보다 서울에서 살아 온 시간이 더 길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생경했다. 도시는 거대해 보였고 사람들은 바쁘게 걸어 다녔다. 젊은 시절이었기 때문에 서울살이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람들이 바쁜 만큼 나도 빠르게 뛰어다녔고 복잡한 지하철 노선이나 버스 노선도 잘 외워서 타고 다녔다. 그렇지만 단 하나 정말 적응하기 힘든 것이 있었으니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이었다.

서울말은 알아듣기에도 무척 빨랐고 억양도 익숙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발음이 어려웠다. 서울 사람들은 경상도 말이 빨라서 알아듣기 힘들다고 하지만 정작 대화를 하다보면 한 번은 꼭 되물어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서울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억양이 달라서이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평서문이나 의문문 모두 끝이 내려가는 경상도 말과는 달리 끝을 올려서 어미(語尾)를 장식하는 서울말은 흉내를 내는 것도 어색했다. 한 번은 큰 맘 먹고 끝을 올리는 서울말을 구사해 보았지만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두근두근 나대기 시작했다. 게다가 같은 사물을 표현하는 단어도 경상도와는 완전히 달랐다. 대구에서 ‘정구지’라고 불리는 채소를 ‘부추’라고 했으며 비오는 날이나 명절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인 ‘찌짐’을 서울에서는 ‘부침개’라고 했다. 교차로를 뜻하는 ‘네거리’는 ‘사거리’라고 했으며 신체의 일부를 뜻하는 ‘등’을 ‘덩더리’라고 말했더니 도대체 그게 뭐냐고 되물어본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투리 단어들은 그냥 바꿔서 말하면 되었다. 부추를 표현하는 단어가 어디 정구지 뿐이겠는가. 북한에서는 ‘부루’라고 불린다니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서 통용되는 단어를 사용하면 의사소통에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악마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으니 발음이 문제였다. 특히 쌍시옷 발음은 경상도 사람들에게는 헤어 나올 수 없는 함정과도 같았다. 나는 분명히 쌀가게에 가서 쌀을 산다고 말을 했는데 듣는 사람은 살가게에 가서 살을 산다고 듣는 것이다. 그러면서 살가게가 뭐하는 곳인지를 궁금해 하는 것이다. 이건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왜 쌀을 쌀로 듣지 않고 살로 듣느냔 말이다. 그래서 ‘쌀’을 말 할 기회가 생기면 특히 신경을 써서 입술 주변의 피부조직과 안면 근육 전체를 움직여 입술을 한껏 양 옆으로 찢어 말했더니 더 이상의 오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일상의 단어에서 쌍시옷이 포함된 단어가 많지 않아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팔자 주름이 지금보다 더 깊어졌을 것이다. 내가 쌍문동에 살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이 후로 나는 경상도의 억양과 사투리 단어들에서 탈피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혼자서 이랬니? 저랬니? 라며 말끝을 올리는 연습도 했고 ‘으’ 발음과 ‘어’ 발음의 구분도 확실히 하려고 애를 썼다. 그 결과 지금은 내가 대구 출신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아보지 못한다. 살짝 남아 있는 억양이 티가 나기는 하지만 서울사람 다 됐다고 초등학교 동창들이 말 해줄 때는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경상도 사투리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막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았다. 아마 경상도 출신의 한 방송인이 대놓고 구사하던 사투리가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그 방송인은 분명 ‘은지원’이라고 말했겠지만 사람들에게 ‘언지원’으로 들렸을 것이고 ‘스텝’이라고 말했겠지만 내 귀에도 ‘서텝’이라고 들렸다. 한 때는 지방 출신 연예인들도 데뷔를 하려면 표준어 연습을 엄청 한다고 들었다. 사투리를 구사하면 아무래도 좀 어색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세상이 좋아져서 사투리가 시청자들에게 임팩트 있게 다가와 호응을 얻고 자막으로 표현도 해주니 경상도 출신인 나로서는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그 방송인이 자주 표현하는 문장 중에 ‘무슨 일이니’의 방언인 ‘머선 일이고’가 유행이 되어서 심심찮게 등장한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놀라운 일이 있거나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릴 때 ‘머선 일이고’ 라고 한다. 나도 물론 자주 애용한다.

어디 그 뿐인가. 경상도 출신답게 입에 짝짝 달라붙는 찰진 말투로 머선 일이고 뿐만 아니라 다른 사투리도 이제는 떳떳하게 애용한다.

“자, 수업 시작하입시데이.” - 자, 수업 시작 합시다.

“머라 캐쌌노?” - 뭐라고 하는 거니?

“꼬치장에 삭삭 비비가 함 무바라.” - 고추장에 싹싹 비벼서 한 번 먹어 봐.

“와이카노?” - 왜 그러니?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좀 우습고 어색하기는 하다. 사투리라고 해서 창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역의 특색 있는 언어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인데 젊은 시절의 나는 괜한 자격지심으로 감추려 했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후회가 된다. 같은 대한민국이지만 제주 방언은 도대체 알아듣기 힘든 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제주 출신의 한 가수는 지역 방언을 제목으로 한 노래를 유행시킨 적도 있지 않은가. 감수광이라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 난타 동아리 학생들에게 “머선 일이고” 했을 때 아이들이 웃은 이유는 그것이 자주 쓰이는 유행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겐 유행어라기보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쓰던 일상의 언어였고 그리움이다.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는 사투리가 창피해서 숨기기 급급했고 죽어라 표준어 연습을 했지만 이제는 사투리가 유행이 되고 아무데서나 사투리를 내뱉어도 알아듣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 방송인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심정이다.

어쩌면 학생들에게 나는 유행에 민감하고 유행어를 잘 구사하는 센스있는 선생으로 비춰졌을 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유에서건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기쁘다.

“그런데 여러분, 느그들 그거 모르제? 내 사실은 갱상도 출신인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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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ru 2021-11-25 17:23:06
저도 경상도 출신인데, 어렸을때는 서울 친구들이 억양이 다른 날 보고 왜 웃는지 몰라서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나이를 먹고 나니 경상도 사투리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지역 사투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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