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주나 – 세계여행] 뉴욕3

모두가 정상인 뉴욕 지하철 역을 지나가는 사람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뉴욕이 그냥 좋다. 도착하자마자 지나가던 사람과 부딪치고, 그 사람에게 (살면서 실제로는 처음 듣는) 미국 욕을 먹은 뉴욕이 좋다.

혼자 욕하면서 걷는 사람, 노래 부르면서 걷는 사람, 딱 봐도 마약에 취한 사람, 블루투스 스피커를 목에 걸고 주변인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노래를 들으며 걷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주변 사람, 지하철에서 이어폰 속 음악에 심취해 자신만의 무대인 거처럼 춤을 추는 사람. 내가 제일 정상 같은 뉴욕이 좋다.

악취를 풍기는 지하철이 시도 때도 없이 멈추고 언제 출발하는지 왜 멈췄는지 이유도 말 안 해주는 뉴욕이 좋다.

20불짜리를 음식을 시켰는데 세금 붙고, 팁이 붙어서 최소 25불을 내야 하는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 같은 뉴욕이 좋다.

세금 때문에 얼마가 나올지 헷갈리는데 계산할 때마다 캐셔와 뒷사람이 무서워서 동전을 세고 있을 수 없기에 언제나 지폐를 내밀어 지갑에 동전이 가득한 뉴욕이 좋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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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해도 한국에는 없었던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 하지만 여전히 이 정도 규모는 없는 듯 하다. 3층짜리 매장에 메뉴판만 3개.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내가 뉴욕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뉴욕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거 같아서이다. ‘이상하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정상적인 상태와 다르다.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르다.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다.’ 그 누구도 뉴욕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서 뉴욕이 좋은 거 같다. 내가 제일 정상 같아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모두가 정상이었고 그 어떤 모습도 의심스럽지 않은 곳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곳. 그래서 뉴욕이 좋다. 눈치 볼 필요가 전혀 없는 곳, 그냥 내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곳, 내가 지금 이 순간 원하는 행위를 하면 되는 곳. 어떻게 이런 뉴욕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뉴욕에서 7일을 머물며 볼드랍을 제외하고는 굳이 계획을 세워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마지막 날이 되니 아쉬워졌다. 그래서 예전에 뉴욕을 왔을 때 못해봤던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도서관 가기, 예쁜 지하철역 찾아가기 등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뉴요커와 여행자 사이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그런데 못해 본 것들이 계속 나왔다.

봄과 여름 사이에 다시 와서 하루는 온종일 뉴욕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하루는 루프탑 재즈바에 앉아서 칵테일을 마시고, 하루는 센트럴파크에서 피크닉을 하고싶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샌드위치를 먹고, 누워 있고, 아무것도 안 할 거다. 그러면 아무것도 안 했다는 생각에 또 오고 싶어지겠지? 한때 뉴욕에서 세 달 살기를 꿈 꾼 적이 있는데 평생 그 세 달을 조금씩 채우면서 사계절 다 느껴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뉴욕과 이번 시간은 안녕을 했다.

어느 날, 내 SNS의 일기를 열심히 읽는 친구가 물었다. “주나야, 보통 세계여행을 하면 그렇게 이것저것 일이 많이 생기는 거야? 아니면 유독 너에게 더 많이 생기는 거야?”, “음 글쎄? 아마 둘 다 인 듯 해.”

파리 공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행 티켓을 받으려 하는데 뉴욕에서 나오는 티켓을 요구했다. 예상했기에 당황하지 않고 뉴욕에서 토론토로 가는 버스를 저렴한 날로 끊었다. 그 사이 직원이 바뀌었고 티켓을 보여주니 같은 아메리카 대륙이라고 토론토에서 다시 나오는 티켓을 끊으라고 했다. 무슨 말이지? 미국과 캐나다가 대륙은 같지만 다른 나라인데? 아시아, 동남아, 유럽에서는 한 번도 그런 요구를 받아 본 적이 없다. 다른 나라로 넘어간다고 하면 그냥 끝이었다. 그리고 나는 캐나다에 도착하면 발급받을 수 있는 1년 짜리 워킹홀리데이 비자 서류가 있었다. 비자 취득 조건이 적혀져 있는 종이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안 된다고 파리로 3개월 안에 돌아오란다. 무슨 말이지? 그럼 파리에서는 살아도 된가는 건가? 미국에 불법 체류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뉴욕에서 딱 일주일을 머물고 캐나다로 넘어가서 지내다가 1년 안에 나올 거라고 했다. 그럼 차라리 캐나다에서 1년 안에 나오는 티켓을 끊겠다고 하니 절대 안 된다고 3개월 안에 나오란다. 답답한 마음에 그럼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더니 마음대로 하란다. 너무 답답했지만 발권은 해야 했기에 토론토에서 한국행 비행기 중 무료 취소 가능 티켓을 알아보는 사이 또 직원이 바뀌었다. 급하게 하다보니 자꾸 결제 오류가 나고 내가 타야 하는 비행기는 1시간 후인데 구매할 티켓 발권 완료가 2시간 후에 된다기에 말을 했다. “나 이거 비행기 결제했어. 발권은 2시간 후인데 어떡하지?” 뉴욕행 티켓을 받았다. 발권 확인도 하지 않을 거면서 왜 계속 비행기 티켓을 주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결국 비행기를 탑승해야 하는 시간에 출국심사를 하는 줄에 서 있게 되었고 또 미친 듯이 뛰어갔다. 이게 나의 세계여행 중 10번째 나라에서 생긴 11번째 공항 에피소드이다. 아무리 일찍 가도 자꾸만 일이 생긴다. 재밌다. 재미있는 걸 보면 여행에 미친 게 분명하다.

 

어떻게 뉴욕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무료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이면 언제나 걸음을 멈추어 소중한 사람들에게 영상통화를 건다. 그곳이 타임스퀘어라니 굉장하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그냥 좋은 뉴욕. 택시 색도 예쁘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그렇게 도착한 뉴욕에 있던 새해 첫 날 아침,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 준아야~ 2월에 어디에 있을 거 같니~ 캐나다 가니~

주나 : 토..(론토)

엄마 : 엄마는 설날에 너 있는 곳 가려고~

주나 : ?????

엄마 : 차례는 아빠가 알아서 지낸대~

주나 : ?????

엄마 : 기경이(여동생)한테도 오라고 했어~

주나 : ?????

엄마 : 비행기표 알아봐줘~

호주에 사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나 : 너 올거야?????

동생 : 아.. 몰라...

주나 : ?????

동생 : 이번주에 차 사려고 했는데..

주나 : ?????

동생 : 오빠(남편)가 너무 싼 건 위험하다고 못 사게 하는데….

주나 : ?????

동생 : 차 못 사고 가는거지 뭐….

 

봄과 여름 사이에 다시 와서 하루는 온종일 뉴욕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싶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항상 혹시 누구랑 같이 다니는 거 아니냐고 의심받게 만드는 독사진. 지나가는 사람 혹은 삼각대가 함께 한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브루클린 브릿지를 걸어서 건너려고 했는데 추워서 다음으로 미루었다. 이렇게 또다시 뉴욕에 올 이유 만들기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둘 다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갑자기 온다고? 역시 그 엄마의 그 딸들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여행을 떠난 후 한국에서 혼자 명선투어를 다니고 있다. 본인 입으로 명선투어라고 사진 보낸다. 퇴직을 하면 혼자 여행을 갈 거라 연습을 하는 거라며 유명한 가게에 가서 혼자 치킨도 드셨다. 하루는 엄마가 가족 채팅방에 ‘명선투어2’라며 사진을 올렸길래 누가 찍어줬냐고 물어보니 지나가는 사람이 찍어 줬단다. 남들이 나에게 하는 질문을 처음으로 내가 해봤다.

아무튼 엄마는 미국으로 여행을 오기로 했다. 미국에 온다며 들뜬 엄마는 채팅방에서 자꾸 “헬로우”와 “땡큐”라고 말했다. 33년 동안 김가네 명절을 지낸 장손 며느리의 첫 명절 탈출 여행인데 좋은 곳에 가고 싶었다. 여동생이 미국 동부는 와봤기에 같이 서부 쪽으로 가기로 했고, 덕분에 난 토론토행을 잠시 보류하고, 미국에 더 머물며 엄마와 동생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러한 이유로 일단 뉴욕에서 제일 가까운 필라델피아로 향했다. 이렇게 계획 변경이 너무 쉽게 가능한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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