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밀가루의 맛을 좋아해

여행을 하며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들 중 하나는 내가 음식을 거의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이와 굴을 먹지 못한다는, 영양적인 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한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국이 꼭 있어야 밥을 먹을 수 있다든지,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든지 하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음식을 구별 없이 느끼는 것도 아니다.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한다. 절대적 기준에서는 맛없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 알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나는 남들보다 혀가 덜 민감한 사람이라, 맛의 미세한 차이들을 명확히 구분해내지 못하는 사람인 듯하다. 요리사가 되고자 했다면 치명적 결함이었을 나의 혀는, 외지를 돌아다니며 밥을 맛있게 먹기에는 딱 좋은 혀였다. 남들이 낯설어하는 다양한 향신료나 맛들도 내게는 그저 흥미로운 정도. 너무 짜지만 않으면 나는 웬만하면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고기가 없어도 괜찮았고, 한식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터키를 여행할 때는 한 달 넘게 케밥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지방색이 담긴 음식들을 찾아다니며 즐겁게 다 먹었다. 여행자에게도 덕목이 있다면 나는 적어도 혀에서 만큼은 재능이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고, 이상한 향신료를 잔뜩 뿌려 먹을 때마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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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빵에 별 다른 양념 없이 이것저것을 싸서 먹는 걸 그래도 가장 좋아한다. 터키 음식을 가장 좋아했던 이유이기도 한데, 인도를 여행할 때는 ‘짜파티’라고 부르는 빵을 가장 좋아해서 사실상 몇 달 내내 먹었다. 우리가 인도 식당에서 흔히 보는 ‘난’은 짜파티의 조금 고급 버전이다. 짜파티는 화덕에서 굽지도 않고, 가정에서 가스레인지로 휙휙 구워낼 수 있다. 슈퍼에서 파는 짜파티 믹스를 물에 섞어 치대고 잘 핀 후에 가스레인지에 올려 적당히 구워내면 끝이다. 다른 재료는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북인도 쪽에서는 짜파티로, 남인도 쪽에서는 로티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어느 쪽이 되었건 인도에서 밥을 먹을 때면 늘 짜파티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짜파티나 밥과 함께 간단한 커리를 곁들이는 것이 곧 집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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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사람들은 정말 매일 카레만 먹나요? 내가 그들의 생활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아니므로 단언할 수야 없겠으나, 커리를 그만큼 자주 먹기는 한다. 커리는 일종의 ‘양념’이라는 말처럼, 혹은 그보다는 조금 더 구체화된 말로 사용되고 있어서, 그들의 음식에는 늘 적어도 ‘커리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이 국을 매일 먹고, 양념된 음식을 매일 먹는 것처럼. 그래도 그들이 집에서 자주 먹는 ‘알루 고비’즉 감자와 콜리플라워가 들어간 커리는 생각보다 3분 카레와 맛이 흡사했다. 3분 카레도 카레가 맞구나, 본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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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푸르에서 머물던 게스트하우스는 저녁마다 이른바 ‘쿠킹클래스’를 열었다. 짜파티와 커리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수업이라고 했다. 참가비는 없다. 좋아하면 한 번 만들어 보는 게 맞겠다 싶어 신청했던 그 수업은 사실 수업이라기 보다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저녁을 만드는 일을 돕는 것이었다. 아무도 신청을 안하길래 알아봤어야 하는데, 어느새 직원 하나와 나 둘이서 짜파티와 커리를 만들고 있었다.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짜파티 만드는 법은 확실히 배웠다. 서툰 내가 밀대를 제대로 굴리지 못해 원형이 되지 못하고 이상한 모양으로 일그러진 짜파티들이 한쪽에 쌓여 갔다. 콜리플라워를 썰고 또 썰면 옆에서 직원이 슈퍼에서 사온 향신료 세트를 넣어 커리를 끓이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둘러 모이고, 주방에 있는 나를 보더니 이 사람은 왜 이러고 있냐고 묻다가 웃었다. 봉사 아닌 봉사인가. 수업 아닌 수업인가. 짜파티는 맛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단지 밀가루 맛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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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만남은 짜파티처럼

게스트하우스 테라스에 둘러 앉아 그 짜파티와 3분 카레 맛이 나는 알루고비를 함께 먹었다. 여덟 명은 되었나. 오다 가는 사람들도 그냥 같이 앉아 먹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 사장은 30대에 적당히 성공한 호쾌한 사업가 상이었는데 자꾸 자신의 호쾌함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몇 분에 한 번 꼴로 박장대소를 했고, 그 밑의 직원들은 장단을 맞추며 농을 부리고 찬합에 담긴 짜파티를 하나씩 꺼내 커리에 찍어 먹었다. 탄수화물로만 구성된 그 저녁 식사가 나는 싫지 않았다. 네 얼굴이 이 짜파티 만하다고 서로 놀리고, 대머리 영국인이 자신의 머리에 짜파티를 올리고 무슬림들의 모자를 따라하면 다들 웃겨 죽었다. 밤은 점점 새까매지고, 불빛은 여기저기서 새어나오고, 사람들은 둘러 앉아 짜파티를 먹는다. 손으로 먹는다. 수저를 쓸 때도 있긴 한데 대부분의 경우 정말 손으로 먹는다. 물론 손을 잘 씻고 먹는다. 이 문화에는 완전히 적응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손으로 먹으면 편한 점이 있다는 걸 느낄 수는 있었다. 식기를 치울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본격적으로’ 먹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음식과 나의 사이에 거리낄 게 전혀 없는 것 같은 이상하고 자유로운 기분. 오른손에 든 짜파티로 그릇의 커리를 쓸며, 왼손으로 업무 전화를 받는 안경을 쓰고 와이셔츠를 입은 지적인 직장인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일상적인 모습인 데도 여유롭고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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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들은 저녁을 늦게 먹는 경향이 있어서, 짜파티 식사가 끝나니 이미 거의 밤이었다. 그 자리는 곧 맥주나 한 잔 하고 싶은 투숙객들이 적당한 의자를 골라 앉아 한 두 마디씩 던지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는 자리가 되었다. 아까 내가 만든 못난 짜파티를 자신의 머리 위에 올리고 농담을 하던 영국인은 맥주를 한 두 잔 하더니 말수가 더 늘어났다. 그는 뉴캐슬 출신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그의 발음이 좋았다. 처음 들어보는 억양이어서 거의 알아듣지 못했으나 그의 말투와 태도에는 어딘가 그를 계속 궁금하게 했다. 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퐉투리(factory)에서 하루하루 의미 없이 구르던 그는, 노동자의 삶의 굴레에서 조금 벗어날 수는 없을까 생각하며 여행비를 모았다고 했다. 그리고 향후의 일정을 정하지 않고 우선 인도로 왔다고. 여기서 일정을 정하지 않고 이곳저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고 행사에 들러리를 서기도 하면서 살고 있다고. 언제 돌아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직 언제를 가늠하고 싶은 때는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카리스마 있는 유형도 아니고, 진솔하고 진중한 유형도 아니고, 약간 허술해 보이는 깡마른 시골 영국인이었는데, 그가 특이한 발음으로 그의 삶을 이야기하던 순간은 매력적이었다. 그는 다음날 서부 사막 지역 쪽에서 열리는 낙타 축제를 향해 사라졌다. 무언가 어색하기도 하고, 진지하기도하고, 사랑스럽기도한 가벼운 웃음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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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짜파티 식사 이후의 술자리에는 내 2층 침대의 1층을 쓰고 있던 여자도 있었다. 같은 침대를 쓰고 있었지만 제대로 말을 튼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키가 그다지 크지 않은 그녀는 내가 보기에는 퍽 전통적으로 보이는 옷을 입고 전문직들이 쓸 것 같은 반무테 안경을 쓰고 침대에 반 쯤 누워 노트북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재야의 주식 고수거나, 명철한 작가거나, 프리랜서 회계사 같은 것은 아닐까 상상했다. 내 상상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던 게, 그녀는 인도의 서쪽 해변의 작은 주인 ‘고아’ 출신으로, 그쪽 회사의 회계 담담직인데 지금 자이푸르에 출장을 나와 있다고 했다. 하도 나라가 넓어 그런지, 출장 와 게스트하우스에 장기 투숙하는 인도인들을 많이 보기는 했다. 심지어 다른 지역에서 유학 와서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치 다른 나라에 넘어 오듯 사는 걸 볼 때마다 인도의 크기와 문화 차이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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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때와 다르게 술자리에서 그녀는 무척 쾌활했다.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북한 문제와, 한국의 징병제와, 고아 주에서 태동한 인도 사이비 교주와, 한국 영화에 대해서, 아마도 김기덕과 봉준호에 대해서…. 고아 주 출신인 그녀의 모국어는 영어였다. 이곳 북인도 사람들의 투박한 부산스러움이 조금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던 그녀는 작은 화로 앞에서 나와 함께 오래 맥주를 마셨다. 이곳은 참 넓어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짜파티를 먹을 수 있구나. 각자의 삶을 잠깐 밀대로 펼쳐 보이듯이. 그리고 커리처럼 섞여 있다 입 속으로 사라지듯이. 각자의 오른손을 들고. 오른손으로 커리를 먹고. 자이푸르라는 혼잡한 대도시는 내게 조금 어렵고 버거웠는데, 그 구석에 모인 사람들과의 만남은 짜파티처럼 쉽고 넓적하고 또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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