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자나 상관의 비행을 폭로만 해서야
전임자나 상관의 비행을 폭로만 해서야
  • 박석무
  • 승인 2021.12.13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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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다산 정약용

[위클리서울=박석무] 『목민심서』가 공직자들이 행해야 할 일들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집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편이나 어느 항목 하나라도 중요하고 값지지 않은 내용이 아닌 것이 없지만, 오늘의 세상으로 보면 「예제(禮際)」편의 내용 또한 지나쳐서는 안될 부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제’란 예의바르게 상호간에 교제함을 뜻하지만, 목민관이 상관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동료나 선후배와 어떻게 교제해야 하는지, 어떻게 아랫 사람들을 거느려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공직자로서 예의바른 상하 관계, 상호 존중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는 뜻입니다.

다산은 말합니다. 예제의 기본은 신중한 자세와 공손한 행위라고 했습니다. 엄숙하고 겸손하고 온순하여 감히 예의를 잃지 않으며, 화평하고 통달하여 서로 걸리고 막힘이 없게 하면 대체로 정과 뜻이 서로 소통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옛날로 보면 정승·판서의 위계가 있고, 당상관·당하관의 서열이 있고, 참상관·참하관의 신분과 계급이 명확하게 구별되는 관료사회이지만, 계층과 계급 사이에 공통적으로 통하는 에티켓은 신중함과 공손함입니다. 이거야말로 오늘날에도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이야 상명하복의 관계로만 관료사회를 설명할 수 없지만, 옛날에도 다산은 상명하복이 올바른 예제라고만 말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일반적으로 상관과 하급관료와의 관계는 하관은 상관을 잘 모시고 명령에 따라야 하지만, 상관의 명령에 따르기만 하고 잘 모시기만 하는 일이 옳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다산은 지적했습니다. 바름(正)과 공(公)으로 상관을 대하면 되지, 상관을 잘 섬겨 두 사람이 결탁하면 좋은 일이 아닌 경우도 있다고 했으니, 얼마나 옳은 판단인가요. 상관의 명령이 공법에 위반하고 민생에 해가 되는 일이라면 일체 응하지 않는 태도가 옳다고 말한 다산의 주장에 마음을 기울여야 하지만, 그런 관계에서도 역시 공손함, 신중함, 예의바름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동료와의 관계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이웃 고을의 목민관들과의 관계, 전임·후임 목민관들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지켜야 할 도리는 반드시 지켜야 할 예제입니다. 다산은 송(宋)나라의 부요유(傅堯兪)가 서주(徐州)를 맡아 다스릴 때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습니다. 전임자가 축낸 군량미를 대신 보상하던 중 끝내기 전에 파직을 당합니다. 부요유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전임자의 잘못을 막아주다가 여려움을 당했는데도 끝내 변명하지 않고 파직을 달게 받아 드렸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당대의 학자 소강절(邵康節)은 그러한 행실에 높은 찬사를 바쳤답니다. “흠지(부요유의 자)여! 맑으면서도 빛나지 않고, 곧으면서도 격하지 않으며, 용감하면서도 온공(溫恭)하구나. 어려운 일을 해냈도다.(欽之 淸而不耀 直而不激 勇而能溫 果以難耳)”

벼슬살이에 바르게 처신하기가 그렇게 어렵습니다. 전임자의 잘못까지 폭로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흠을 메우려다가 파직을 당해도 변명이나 불평을 하지 않는 태도에 그만한 찬사를 바쳤다면, 그런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상하 간에, 동료 간에, 이웃 간에 공손하고 삼가는 자세로 임하고, 전임·후임자의 비행에도 적절히 대처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올바른 예제이건만, 자신을 고관에 임명해준 상관을 헐뜯고 욕만 퍼부으며 인기를 얻은 정치인이 세상을 휘졌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비행도 과장하고 왜곡해서 터드리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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