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너무 깔끔하게 빈 집
너무 깔끔하게 빈 집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또 한 채의 집이 비었다. 시골 마을에서는 하나도 낯설지 않은, 매우 익숙한 일이지만, 그런데도 빈 집을 볼 때면 항상 가슴 한쪽이 뭉텅 베어져 나간 것 같은 느낌으로 어쩔 몰라 하게 된다. 친숙하면서도 낯선 이 당혹스런 느낌의 정체를 알게 되면 나는 바야흐로 도사라도 될 것 같지만, 그러나 자신은 없다.

주인 없는 집의 적막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적막은 지붕 위에, 그 집 앞 골목의 공기 속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보고자 해서 본 것은 아니고, 느끼고자 해서 느낀 것도 아니었다. 누가 나에게 그 집이 비었다고 알려준 것도 아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이 누구인지도 나는 모른다. 갯벌에서 함께 일했던 ‘아짐씨’가 오늘 김장 품앗이가 있다고, 심심하거든 놀러 와서 수육도 먹고 김치도 가져가라는 말을 듣고 가던 중에 발견한 정물화 같은 풍경일 뿐이었다.

누구인지 그이는 아마도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기가 살았던 집 청소에 전력을 다했던 모양이다.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먼지 한 톨 찾아볼 수 없이 깔끔한 것이 이래도 되는가 싶기조차 하다. 빈 집이 너무 깔끔하니 뭐랄까, 오싹한 느낌마저 있다. 이 오싹하게 깔끔한 적막이 아마도 낯선 나에게 이 집에 살던 사람이 얼마 전에 죽었어요, 하고 멀리서부터 전해주고 있었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또 한 사람이 가셨구나, 하는 마음으로 잠시 묵념이나 하고 돌아섰겠지만, 이번에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때문에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깔끔하게 빈 집 마루 위에 열린 곶감이 나를 묶어놓고 있었다. 아니다. 곶감이 열렸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곶감을 깎아서 말리는 중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곶감이 빈 집 마루 위에 열렸다고 말하고 싶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없고 곶감만 말라간다
사람은 없고 곶감만 말라간다.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빈 집에 곶감이 열렸다.

그래, 사람이 없는 집에 곶감이 열렸다.

살던 사람이 곶감을 깎아서 걸어놓고 돌아가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보기에는 집의 깔끔함이 뭐랄까, 형용모순 같은 느낌이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오래된 깔끔이었다. 마루에 쌓인 먼지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마당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대번에 먼지가 느껴지고, 고양이가 놀았던 흔적까지 마루에 도장처럼 찍혀 있었다. 그러니까 옆집이나 아랫집 혹은 뒷집에서 잠시 빈 집을 빌리고 있을 개연성이 높았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은근 궁금하기도 했지만, 굳이 누구에게 물어서 알아내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었다.

가슴에서 쏴아, 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바람 소리를 가슴에 가득 안은 상태 그대로 돌아서서 김장 품앗이가 진행 중인 집을 찾아 나섰다. 한 집을 지나고, 두 집을 지나는데 갑자기 와자자,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짐씨’들의 이런 웃음은 대개 누군가의 흉을 제대로 보고 있을 때 나온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어서, 이야기의 내용도 모르면서 벙긋벙긋 웃어가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정다운 풍경이, 싱싱한 그림이 한눈에 확 들어왔다. 시뻘겋게 버무려놓은 양념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마당 바닥에 비닐포장을 깔고 둥글게 모여 앉아 절인 배추 갈피마다에 그 시뻘건 양념을 넣고 있는 풍경은, 그것은 두 말이 필요 없는 그림이었다. 그 상태 그대로 뚝 떼어다가 액자 속에 넣어서 천장에 붙여두고 싶은 그림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고 신기하게도 남자는 한 명도 없다. 왜 없지? 의문이 슬쩍 들기는 했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물어보는 순간 어디서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올 것 같은 두려움이랄까 걱정이랄까 하여튼 염려되는 바가 어쩌면 내 안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로서는 남자가 한 명도 없는 그 자리가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바야흐로 청일점이 되어, ‘아짐씨’들 속으로 끼어 들어갔다.

 

품앗이 김장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아자씨, 우선 이것부터 한 입.”

하면서 누군가 시뻘겋게 물든 배춧잎 한 장을 꼬깃꼬깃 접어서 내민다. 얼결에 손을 내밀어 받으려 하니 “아니, 아니, 손으로 받지 말고 입만 벌려-어,” 한다. 순간 부끄러움이랄까 민망이랄까, 하여튼 뭔가가 나를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았지만 용기마저 죽지는 않았다. 입을 크게 벌려서 그것을 받아먹는데 느낌이 달다. 달게 삼키고 나서 달다고 했더니 다른 ‘아짐씨’가 내 것도 하면서, 또 한쪽의 금방 버무린 배추김치를 꼬깃꼬깃 접어서 내민다. 이번에는 손을 내밀지 않고 바로 입을 벌렸다.

“간이 어찌요? 짜? 안 짜?”

“아니, 안 짠데요. 맛있어요.”

맛있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또 한쪽의 시뻘건 배추김치가 내 앞으로 쑥 들이밀어진다. 내가 주는 것도 먹어보라는 것이다. 그것을 입으로 받아먹고 나니 또 한쪽이 들이밀어진다. 그렇게 연거푸 네 쪽인가 다섯 쪽인가를 받아먹고 나니 입안이 아릿아릿하다. 맵다. 입안이 훅훅거린다. 불이라도 난 것 같다. 어느새 눈물까지 찔끔 나왔다. 그렇지만 나는 맛있다고 말해야 한다. 실제로도 맛있다는 느낌이 내 몸을 관통한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맛있는 것, 그것이 김장 현장에서 먹는 김치의 맛이 아닐까 하는 개똥철학까지 생겼다.

좋은 날이었다. 갯마을답지 않게 바람이 한 점도 없었다. 햇빛은 눈이 부시게 맑고, 공기는 상쾌했다. 10월 같은 12월이었다. 10월에는 그렇게도 춥더니, 12월에는 이렇게도 푸근한 이유는 대체 뭐냐. 어쨌든 뭐 그랬다. 좋은 날이었다. 주인이 커피를 끓여 내 왔다.

 

김장양념
김장양념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아자씨, 나도 커피 마시고 자픈디?”

“에? 물론 그러서야지, 드세요.”

“아이고 참말로, 멕여 달란 말이제.”

그러자 여기서 저기서, 이 ‘아짐씨’도 저 ‘아짐씨’도, 이구동성으로 커피를 먹여달란다. 이게 대체 뭔 소린가 하고 보니, 그게 또 그렇다. 모두가 하나같이 분홍색 고무장갑을 끼었는데 김장 양념이 묻어서 시뻘겋다. 커피 한 잔 마시자고 고무장갑을 벗었다가 다시 끼는 게 번거롭다는 거다. 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입이 안 보인다. 입을 가린 마스크를 아래로 내리고, 그 입에 커피 잔을 누군가 대 주어야 하는데 그 일을 나더러 해달라는 거다.

그런데 고무장갑 한 번 벗었다가 다시 끼는 게 그리도 어려운 걸까? 한참이 지난 뒤에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거. ‘아짐씨’들 나이가 다들 그쯤에 와 있는 것이다. 쪼그려 앉아 있는 무릎이 아프다고, 허리가 아프다고 죽는 소리를 하면서도 잠시 일어서서 운동을 하기는 또 성가셔서 그냥 있어 버리고 싶은 그 나이 말이다. 설령 잔인무도한 왜구가 쳐들어와서 칼을 높이 들고 내리치려 한다 해도, 지금 하고 있는 김장이나 끝내놓고 죽겠다고 할 것만 같다.

그러고 보니 지금 하고 있는 김장도 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하는 ‘정통 김장’이 아니었다. 절임 배추를 파는 데서 사다가 하는 김장이었다. 배추를 다듬고 소금에 절여서 씻어내는 일이 전에는 힘들면서도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절여놓은 배추를 사다가 하는데 그마저도 어쩌면,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단다.

사실은 이삼 년 전부터 김장 같은 거 이제 그만 한다는 생각을 해 왔었다. 생각을 그렇게 하면서도 안할 수가 없었다. 버릇이, 습관이, 관행이 그렇게 돼버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울 사는 자식들에게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시누이와 시동생, 언니, 동생, 삼촌 등등 김장 김치를 보내줘야 할 일가친척이 전국 각지 도시마다에 포진해 있었다.

언제부터 그들에게 김치를 보내기 시작했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하여튼 그렇게 돼 있었다. 이제 그만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실천하자니 아무래도 섭섭하고, 실제로 안 보내면 오해라도 할 것만 같고, 그래서 억지로, 억지로 몸을 움직여서 김장이라는 것을 하기는 하는데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그래서 올해는 김치를 택배로 보낼 때 “내년에는 김장 안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잉?”하는 말을 전화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란다. 실제로 그런 통보를 할 수 있을지 여부는 물론 아무도 모른다.

 

완성품
완성품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오매 더워라. 아자씨, 나 더워 죽겠네.”

다시 또 웃어야 할 일이 생겼다. 자연이 준 선물이다. 시간이 열 시를 넘어 열한 시, 태양이 정수리에 꽂히고 보니 너도나도 덥다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뭐, 선풍기라도 내 오라고요?”

“아니 그것이 아니고, 옷 좀 벗겨달라고.”

“어매 이 아줌마 시방 먼 소리여, 나더러 옷을 벗겨달라고?”

나도 모르게 한 소리가 튀어나오고, 그 순간 웃음벼락이 터진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신박하다. 내 입에서 어떻게 저런 신통한 소리가 나올 수 있었을까. 대견하기까지 하다. 물론 실제로 옷을 벗겨달라는 건 아니다. 내복 위에 조끼를 입고 그 위에 두꺼운 패딩을 입었는데 그 패딩의 지퍼를 아래로 내려달라는 정도이다. 그렇지만 한 마디 더 안 보탤 수가 없다.

“아따 참말로, 외간남자에게 옷을 다 벗겨달라니 이것이 뭔 망령이여?”

또 한 번의 폭포수 같은 웃음이 터졌다. 웃음과 함께 별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진짜로 내 옷 한 번 벗겨볼 거냐고 덤빈 ‘아짐씨’가 누구였는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누군가의 탄식 같은 한 마디에 웃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는,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는 기억은 남아 있다.

“아이고 참말로, 노망은 들지 말고 죽어야 할 텐디.”

그래, 그것이 있었다.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연치에 이르러 있는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저렇게 김장은 끝났다. 끝났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너도나도 한 마디씩 쏟아낸다. 다리가 아프다고, 무릎이 아프다고, 허리가 아프다고, 온 몸이 쑤셔서 못 살겠다고 한 마디씩 하면서도 몸을 놀리지는 않고 뒷설거지에 나선다.

삶아놓은 수육으로 점심을 먹고, 김치 한 통을 얻어 들고 나오는 내 발걸음이 가벼웠던가? 무거웠던가? 돌아오는 내 눈에 다시 또 예의 빈 집이 들어왔다. 곶감이 말라가는 빈 집 앞에 또 한참을 서 있자니 노망은 들지 않고 죽어야 할 텐데 걱정이라던 말이 생각났다. 돌아보면 내 어머니도 그것이 걱정이었다. 중증치매 진단을 받기 전까지,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말을 노래처럼 하셨더랬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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