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일반 노동자의 한 달 임금을 다 갖다 바쳐도 구입할 수 없다는 이른바 명품 구두를 삼천 켤레도 넘게 소장했던 여자, 삼천 켤레의 구두 하나만으로 세계적인 명사 반열에 올랐던 그녀, 철권통치를 거론할 때면 으레 등장하는 남자 필리핀 대통령 마르코스의 아내, 그녀의 아들이 필리핀 차기 대통령으로 매우 유력하다는 외신이 속속 나온다. 독재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층의 무차별적 지지에 힘입은 바 크다는 해설도 붙었다.

 

다큐멘터리 '이멜다'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다큐멘터리 '이멜다'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집단지성이라는 말이 21세기를 관통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회의식이 취약한 대중의 정서란 아무래도 개돼지에 버금가는 걸로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야유성 짙은 평론이 생각나기도 하는 이 우울한 외신은 뭐랄까, 외신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아내와 장모의 기상천외한 잔머리 굴리기를 천재적인 재테크 기술로 파악하고 벙긋벙긋 웃기나 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특수부 검사 출신의 남자, 정치를 가족 사업으로 파악한다는 속마음까지도 과감하게 드러낼 정도로 용감무쌍한 남자, 이렇게도 거칠게 단순한 사나이가 군통수권을 비롯한 거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의 대통령으로 취임한다면 무슨 기이한 일이 벌어질까?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꼭 그런 꼴이었다. 설마 저런 사람을 대통령으로까지 밀어 올리지는 않겠지, 하면서도 전개되는 상황은 매일 매 시간 예사롭지 않았고, 어지럽던 내 머릿속은 바야흐로 들끓어대기 시작했다. 자기 돈을 자기 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그 주장의 거짓말 확률이 99퍼센트 이상이라는 합리적 추론과 증언이 파다한데도 대통령으로 당선돼서 별별 못된 짓을 다하다가 감옥으로 직행한 이명박 시대를 살아온 내 머릿속이 들끓어대지 않는다면 그것도 아마 이상할 것이다.

문제는 생각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내 역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생각의 홍수, 아니 생각의 폭풍 속에서 나는 날마다 어지러웠다. 어떤 때는 생각 없는 생각에 빠져서 허둥거리다가 여기가 어디지? 깜빡 정신이 돌아와서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내가 지금 꿈속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판타지 속을 헤매고 있는가, 어리둥절해 하는 이른바 ‘멍때림’의 시간도 많아졌다. 심지어는 운전을 하면서도 생각 없는 생각, ‘멍때림’에 빠졌다가 좁은 농로 가의 전봇대와 팔짱을 끼기도 했다.

 

내 멍때림의 흔적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내 멍때림의 흔적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뿌직, 소리가 들리는 순간 놀라서 좌우를 둘러보니 13년 경력의 내 자동차는 이미 전봇대와 한 몸이 돼 있었다. 그때 얼결에 가속페달이라도 밟았다면 나는 아마 지금쯤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죽지는 않았다.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가서 보니 후시경이 무참하게 부러졌다. 전선에 매달려서 덜렁거리는 것이 흡사 내 팔이라도 부러진 것 같았다. 문짝은 참혹하게 으스러지고 찢어져서 열리지도 않았다. 흔들어보고, 발로 걷어차 보기도 했지만 꼼짝도 안 한다. 이게 대체 뭔 빌어도 못 먹을 꼴이란 말이냐, 웃다가 울다가 온갖 감정을 교대로 드러내가며 카센터로 달려갔다.

보기에는 간단할 것 같지만 아니란다. 문짝 두 개를 통째로 갈아야 한단다. 새것으로 갈자면 가격이 암만이라서 망설여졌다. 카센터 매니저는 폐차장에 비슷한 모델의 문짝이 있는지 알아보겠다며 여기저기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중고 문짝 두 개를 사다가 달았다. 그런데 색깔이 서로 달라 도장을 해야 할 판이었다. 도장에 드는 비용을 듣고 나니 또 고민이 생겼고, 색깔이 다르니 보기에 썩 좋다는 등의 여우같은 핑계거리를 만들어서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오매, 아니 왜 차를 장애로 만들었어?”

누군가 나를 보며 키득거렸다.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었다. 나중에야 알아듣고 나도 역시 킬킬거렸다. 킬킬대다 보니 문득 내가 멀쩡한 자동차를 장애로 만든 범죄자가 돼버렸다는 느낌이어서 우울했다. 그렇게, 우울한 범죄자의 마음으로 또 다시 길을 나섰다. 딱히 어디랄 것도 없이 그냥 나선 길이었다. 목적지는 가면서 생겼다.

동학농민군 훈련장.

 

동학혁명깃발
동학혁명깃발 내 멍때림의 흔적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훈련장표석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훈련장표석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무엇인가 같은, 내 역량으로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나를 괴롭힐 때면 가끔 찾는 곳이었다. 무장면 구수네에 있는 이 훈련장을 복원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내가 도시생활 그만두고 고창으로 온 직후부터였다. 문화원 사무국장을 따라서 처음 가보았을 때 훈련장 터는 마을 사람들의 텃밭이거나 논이었다. 가시연꽃으로 유명한 상하면 용대 저수지 인근에서 밤마다 죽창을 다듬었다는 현지 주민의 얘기를 들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예전에는 그런 얘기 입도 뻥긋하기 어려웠다지만, 독재가 어지간히 제압된 민주정부 시절이기에 그런 정도의 얘기는 이제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김영삼의 문민정부에서 동학농민군에 관한 심층 조사가 시작되었고, 김대중의 국민정부에서 기념사업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즈음 고창의 훈련장 복원 문제 또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농민들과 정부 당국자들의 대립은, 그것은 요즘 같은 민주적 관념으로는 도대체가 상상조차 해볼 수 없는 먼먼 옛날의 판타지 같은 것이었다. 못 먹어서 피골이 상접한 농민들이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이면 남몰래 하나둘씩 모여서 죽창을 다듬고 그것의 사용 방법을 익히는 장면을 상상해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느새 그 시절로 돌아가 있곤 했다.

무슨 대단한 부자가 되게 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날마다 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해 달라는 것도 아닌, 내 손으로 농사지은 곡식을 절반만이라도 내 식구들이 먹게 해 달라는 요구 아닌 청원을 당시의 권력자들은 무차별적인 살육으로 답했다. 그마저도 자기들은 능력이 없어서 못하고 왜구들에게 맡겼다. 바다 건너 왜구들을 불러다가 청부 살육을 감행하고, 그리고 그 왜구들에게 나라를 통째로 빼앗겼다. 아니 갖다가 바쳤다.

당시 정권이 조금만이라도 진지한 자세로 민심에 귀를 기울였다면, 그만한 정도의 식견과 인간애를 갖춘 집단이었다면 한일합방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동아시아의 판도 또한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굶주린 농민들의 들고 일어남을 군란이나 정변과 같은 하극상 개념으로 파악해서 그냥 때려잡을 생각만 했던 당시 권력자들은 정치가라기보다 무지에 무능에 무식까지 장착한 사적 욕망의 덩어리들이었다.

권력이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하는 성찰은 영점 일도 없는 이들 사적 욕망의 덩어리들 속에서 최고 통수권자인 왕은 바보가 되어갔다. 왕은 이제 명목상의 권력만을 갖고 있을 뿐 실질적인 권력행사는 하나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왕을 그런 바보로 만든 선두 주자는 왕의 아내였다. 그녀는 자신의 친정 식구들을 어떻게 하면 더 큰 부자로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에 치여서 나라의 미래나 백성들의 안위 따위는 걱정할 틈이 없었다.

 

동학의길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동학의길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동학관련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동학관련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하나도 친정이요 둘도 친정, 열을 생각해도 친정 일가붙이들의 이익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먼저 고민하고 판단하는 그녀에게 왕이라는 존재는 안하무인, 거추장스런 존재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왕은 있으되 이름만으로 존재했고, 공식적인 직함은 하나도 없는 왕의 아내가 왕 노릇을 하는, 형식과 내용이 철저하게 괴리된 소꿉장난 같은 정치놀음 끝에 왕의 아내는 자기가 불러들인 왜구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하고, 나라는 필연적으로 멸망의 수순을 밟아나갔다.

그 뒤로 120여 년 세월이 흘러간 오늘, 역사는 반복된다는 격언이 어쩌면 그리도 똑 들어맞는가 싶은 일이 벌어지려 하는 중이다. 그 어떤 꿈도 희망도 전망도 없이 오직 하나 ‘정권교체’라는 구호 아래 진행되고 있는 이 숨 막히는 상황의 중심에 한 여인이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격언을 굳이 차용하지 않더라도, 각종 보도와 증언과 재판 기록 등 공문서에 남아 있는 그녀의 지난 행적을 종합하면 향후 이 사람이 무슨 일을 벌일 것인가 정도는 금방 유추해볼 수 있다.

일단 이 여인에게서 그 무슨 국가관이나 역사관, 민족의식이나 사회의식 따위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시니컬하다고나 할까. 아니면 강력한 이기주의? 이력서에서 전문학교나 상업학교 경력을 일반학교 경력으로 고쳐놓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그녀는 손으로 일하는 사람을 천민으로 파악해서 멸시하는 뭐랄까, 계급의식이 매우 강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자기 자신이 무슨 귀족 출신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하급 공무원이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이후 그녀는 외가에서 자라다시피 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사랑이란 대체로 무한한 것이기 마련이어서, 그녀는 아마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그녀 특유의 세상을 깔보고 낮춰보는 극단적인 냉소주의와 이기주의는 형성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세상 뭐 어려울 것 있겠어? 중요한 건 또 뭐야? 그런 건 없어. 나는 나이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면 되는 거야.

 

사죄 기자회견하는 김건희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사죄 기자회견하는 김건희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사람은 누구나 사춘기 즈음에 이르면 이만한 정도의 시니컬한 감정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철이다. 세상과 부딪히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좌절도 하고, 배신도 경험하고 등등 몇 가지 단계를 거치는 동안 사람은 자연스럽게 진지해지기 마련이다. 내가 최고는 아니라는 자각, 내 주변에 다른 사람도 있다는 인식, 내가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면 나도 아프게 될 수 있다는 주제파악 능력이 생기면서 보편적인 인격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중요한 과정을 건너뛰었다. 타인의 눈물을 짜내는 방식으로 상당한 재물을 축적한 어머니가 옆에 없었다면 그녀가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냉소주의와 이기주의를 장착한 사람으로 고착화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돈이라면 지옥도 마다지 않을 정도의 어머니는 그녀의 옆에 있었고, 그녀는 어머니의 눈부신 약탈 기술을 보면서 세상을 더욱 만만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삼십대 초반 나이에 벌써 자신의 경력을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회사의 기획이사로 기재할 정도로 대담해졌고, 그녀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돋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엉터리 학력과 엉터리 논문으로 교수 행세를 하고 다녔는가 하면, 다른 사람이 받은 상을 자기가 받은 것으로 둔갑시키는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행적을 보이다가 마침내 거기,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어떨까. 그녀는 왕의 권한을 마음껏 휘둘렀던 120여 년 전의 왕비처럼 대통령의 권한을 마음껏 휘둘러볼 수 있을까? 집단지성의 시대 21세기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그녀는 수많은 사회과학도와 정신병리 학자들의 연구주제로나 적합하고, 매우 통속적인 기네스북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로 만족해야겠지만, 혹시 또 아는가. 저 유명한 ‘개돼지’의 논리가 느닷없이 강력하게 작동해서 그녀에게 그런 권한을 쥐어줄지.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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