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얼룩을 들여다본 날
내 마음의 얼룩을 들여다본 날
  • 김혜영 기자
  • 승인 2022.01.03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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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탐방기] 3회
ⓒ위클리서울/ 정다은기자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얼룩을 보고 시가 떠올랐다

유난히 상쾌한 샤워를 마친 한낮, 기분 좋게 들어간 방에 하얀 얼룩이 있었다. 슬리퍼에 뭐가 묻었나 싶어 발바닥을 들여다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문득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샤워 전엔 없던 얼룩이었다. 내가 묻어온 것도, 흘린 것도 아니기에 마치 스스로 탄생한 얼룩 같았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김선재 시인의 시 ‘얼룩의 탄생’이 떠올랐다. 그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누군가 발등에 흘리고 간 눈물 같은 얼룩이 돼야지
눈에서 눈으로 전해진 풍경이 소식이 되는 날

두 번 다시 더해지지 않을
얼룩이 될 거야

 

본래 얼룩은 섞인 자국이라는 뜻과 더러워진 자국이라는 뜻이 있다. 전자는 더러움과 상관없이 그저 뭔가가 섞여서 남은 흔적 따위를 의미하지만, 후자의 더럽다는 말은 너무 강한 힘이 있어서 전자의 의미에도 영향을 미치곤 한다. 얼룩이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부정적인 뉘앙스가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시의 얼룩은 그렇지 않다. 나이테를 보고 나무의 세월을 떠올리듯, 얼룩이라는 흔적과 자국을 통해 누군가의 슬픔을 본다. 그 어려운 일을 헤아리도록 도와주는 것이 얼룩이다. 곧 눈에서 눈으로 전해진, 눈물 같은 흔적으로 누군가를 알게 되는 아름다운 일이 가능해지기에, 화자는 그 진한 얼룩이 되고자 한다. 얼룩이 되고 싶다는 다짐은 누구나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인처럼 진실한 이만 꿈꿔볼 수 있다는 점에서 화자는, 시인은 이미 얼룩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참 고귀한 얼룩이다.
 

더러움은 어디서 왔을까

시를 읽기 전엔 얼룩이라는 말을 잘 몰랐다. 어릴 적 얼룩덜룩 송아지를 묘사할 때 접한 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통 뭐가 묻었다는 표현을 대신 사용해왔다. 콕 집어 얼룩이 생겼다고 말하는 건 어딘가 실례인 것 같았다. 부정적이어서 낯설게 된 단어인 만큼, 내 방의 얼룩이 어디서 생겼는지를 신기해하는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단은 불쾌했고, 찝찝했다. 그렇게 깨끗한 방도 아니면서 무엇인지 알지도 모르는 얼룩은 더럽게 느껴졌다.

일단 휴지로 닦으면서 얼룩의 정체를 알아내려 했지만, 약간 투명하면서도 기름처럼 매끈거리는 성질이 있다는 것 말고는 후보군을 좁히지 못했다. 내 방에 원래 있는 물질은 아니고, 가족 중 누군가 들어왔다가 흘린 게 분명하다는 정도였다. 내가 없던 시간에 방에 들어온 것도 석연치 않은데, 뭘 흘려놓고 닦지도 않았다는 점에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럴 땐 공간에 대한 애착이 집착처럼 강해지곤 한다. 감히 내 방, 내 공간에, 허락도 없이, 책임감도 없이. 휴지를 던지듯 버리고 다시 방문을 열었다. 그 순간, 침대 위의 하얀 얼룩이 보였다. 옆엔 축축하게 젖어있는 가방도 있었다. 며칠 전 두유를 넣어놓은 가방이었다.

뒤늦게 침대로 달려가 이불과 매트리스에 묻은 두유를 한참이나 찍어 눌러가며 닦아냈다. 딱딱한 책상을 닦는 것처럼 쉽지는 않았다. 이미 흡수된 상태라 달리 방도도 없어서 미약한 효과라도 있기를 바라며 울렁이는 매트리스를 꾹꾹 눌렀다. 내 속을 누르는 느낌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

가끔 자신이 엎지른 물을 닦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린다. 내가 저지른 상황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며 제 손으로 직접 수습하는 사람의 마음. 주문을 걸 듯 떠올리는 그 이미지는 그렇게 비참하고 속상한 사람이 되기 싫다면 무언가에 최선을 다하라는 채찍질로 사용되곤 했다. 이렇게 대충 일하다가는 엄청난 실수가 발생해서 낭패에 빠질 테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에 집중하라는 식. 고작 두유 하나를 쏟은 게, 아니 엎지른 것도 아니고 가방 안에서 터져버린 게 뭐라고 이런 상념에 빠지는지 우스울 것이다. 이 사소한 사건에 이토록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엎지른 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껏 알지도 못했던 것을 그 순간에야 느꼈기 때문이다. 그건 아무런 죄 없는 가족에게 한없이 각박했던 마음. 그 기준을 스스로에게 돌려야한다는 사실이다.

시인의 얼룩과 내 방의 얼룩은 이렇게나 다르다. 내 일상은 예술영화를 보고 작가들의 글과 지식인의 말로 교양을 듬뿍 채우는 것으로 이뤄지지만, 그 결과로 내 몸에서 배출되는 건 그렇지 못하다. 얼룩이 되겠다는 다짐은커녕, 방바닥에 더러운 얼룩을 만들고 마음의 얼룩을 지우지도 못한다. 시인의 몸은 대체 어떤 구조로 이뤄져있을까. 어떤 운동이 그런 근육들을 만들었기에 선하고 양심적인 사고회로를 지닐 수 있었을까. 그 마음은 내가 결코 갖지 못할 것이라서 더욱 속상했다.

가족을 의심하며 속으로 성을 냈던 내 모습은 정말 직시하기 어렵다. 타인의 방을 가장 많이 드나드는 사람이 나라는 걸 잊고 어떻게 그런 속 좁은 생각을 했는지 믿기지 않는다. 간혹 하릴없이 인터넷을 들여다보다 몇몇 사람들을 한심한 부류로 단정하고 나는 저 정도는 아니라며 위안하는데, 그게 얼마나 무의미하고 오만한 짓이었는지를 깨닫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은 오직 겉으로 내보인 것들뿐이다. 내가 선택한 모습만 봐온 지인들이 해준 긍정적 평가에 쉽게 의지하며 나는 그 정도는 되는 좋은 사람이라 착각했다. 그러니 나만 아는 생각, 속으로 내뱉은 말이라고 이대로 넘어가진 말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할 때다. 이걸 고치지 않으면 닦아도 닦는 것이 아니다.
 

데미안이 알려준 세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는 끝없는 자아비판이 있다. 자신이 얼마나 유약하고 어리석은지, 못되고 충동적인 기질은 얼마나 비겁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를 적확하게 짚어낸다. 못된 친구와 어울리며 경험한 세계와 자신의 전부였던 평화로운 가정 안의 세계를 대비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전자에 이끌렸던 충동성과 후자에 느꼈던 불만, 오만과 같은 모순적인 감정을 하나하나 뽑아내 분류한다. 이 지난한 과정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주해야 하는 것들이라서 시대를 불문하고 읽히는 소설이 되었고, 뒤늦게 나에게도 적용되었다.

화자는 어린 시절 크로머라는 인물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지긋한 고통을 겪는다. 우연히 알게 된 데미안은 마치 구원자처럼 그 고통을 말끔히 해결해주는데, 화자는 데미안에게 크게 감사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당시에는 그럴 여력이 없었고, 지금 돌이켜봐도 어린 아이에게 감사를 강요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은 그와 더 가까워질 수 없었던 두려움과 현실에의 안도 때문일 것이라 냉정하게 분석하기도 한다. 앞서 못된 친구의 세계와 평화로운 가정의 세계를 이분했던 화자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데미안의 세계가 너무나 혼란스럽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두 세계 사이를 오가는 방황은 언젠가 끝날 것이 명확했고 늘 정답이 정해져있었지만, 선을 향하는 것 같으면서도 일탈적인 데미안의 세계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데미안에게 감사하지 못했다. 겹겹이 쌓인 마음을 차례대로 풀어헤친, 너무나 성실하게 탐구적인 묘사다.

지나치게 솔직한 마음들이 자세하게 열거된 소설을 읽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던 이유가 바로 이 자아비판 때문이다. 범인을 잡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힌 형사처럼 자신이 했던 언행과 속으로 한 상념을 죄다 샅샅이 파헤치고 분석하는 화자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독자들이 그가 알을 깼다는 점에 주목하며 용기에 영감을 얻곤 하지만, 나는 그가 알을 깨기 전 자신의 부정한 속내를 직시했던 과정들에 사로잡혀 함께 고통스러웠다. 나의 경우, 주체적인 삶을 사는 건 쉬웠다. 자유에 관한 욕망은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이지만 선하고 양심적으로 사는 것은 오로지 내가 노력해야 하는 마음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마음에 도달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하기 이전에 내가 그 마음을 진정으로 원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욕망에 충실한 삶, 성취와 일탈로 범벅이 된 삶만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저 영화와 책을 통해 배우기를 멈추지 않기를, 삶을 되돌아보고 방향을 고민하기를 계속해야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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