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인도 첸나이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인도를 맺는 첸나이

첸나이의 밤은 생각보다 서늘했고 사람들은 게스트하우스의 옥상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실은 옥상이라고 부르기에는 무언가 애매한 점이 있었는데, 올라가는 길이 허술한 철제 사다리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숙소의 구조는 마치 비둘기집처럼 위로 갈수록 하나씩 옥탑이 생기는 구조였다. 2층과 3층에 사람들이 묶는 방들이 있고, 그 위층에는 방들과 작은 옥상이, 그 위에는 또 하나의 옥상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하는 그 마지막 옥상이 있었다. 새와 고양이가 높은 곳에 앉아 풍경을 관망하며 쉬는 것처럼,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맨 끝의 옥상에 올라가서 맥주를 마셨다. 앉아 있다가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옥상의 테두리 끝에 모두 앉아 있었다. 아무리 위험해도, 사람들은 가장 높은 옥상으로 가서 앉는다. 혹은 그저 위험하기 때문에 그곳에 간다. 분명 술 취한 누군가가 그 삐걱거리는 철제 사다리를 헛디뎌 떨어졌을 게 확실해 보였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하나 둘 모여 있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점차 커져갔고 멀리서 볼 때 그들은 꼭 비둘기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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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내가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맥주 한 병을 겨우 사온 밤이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술을 먹고 싶었다. 올라가보니 맨 끝의 옥상은 생각보다 꽤 넓었다. 오래 전에 친척들이 살았던 집의 옥상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었다. 역시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지 초록색 방수 페인트로 덮여 있지 않다는 것을 빼면, 그 네모난 직사각형 모양의 공간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기에는 충분히 넓은 곳이었다. 나도 난간에 걸터앉는다. 맥주를 따고 첸나이에서 보낸 며칠을 생각한다. 인도에서 머무는 마지막 도시가 된 첸나이. 인도의 동해안을 볼 수 있었던 첸나이. 해변의 모래사장이 세로로 너무 길어서 마치 사막 같았던 첸나이. 서부극의 한 장면처럼 모래 광야의 한 군데에 멀뚱히 서 있던 쓰레기통들. 유랑하는 서커스단이 짐들을 다 내팽겨 치고 방금 떠난 듯, 펄럭거리는 낡은 포장마차와 잡동사니들이 굴러다니는 모래밭들. 직사로 내리쬐는 햇볕. 모래의 끝에서 돌연히 시작되는 바다에 다가가 몸에 물을 적시며 웃고 있던 사람들. 그들이 몸에 감고 있던 화려한 무늬의 옷감들. 흙바닥에서 파리로 덮인 생선들을 팔고 있던 수산 시장의 모습. 예수의 제자 토마스가 흘러 들어와 순교를 했다는 곳에 세워진 성당들. 북적거리는 사람들. 내게 혐의 없는 미소를 지어 주었던 릭샤 기사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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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커다란 인도 땅의 이른바 거점 도시들을 지나쳐 오며 반 시계 방향으로 거의 한 바퀴를 다 돈 셈이었다. 여행자가 여행지를 떠날 때 보통 느끼듯이, 이곳이 인도의 마지막이라는 게 잘 믿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내게 첸나이는, 첸나이 자체라기보다는 인도가 끝나는 도시, 인도의 전체적인 느낌을 맺어주는 도시였다. 사람들이 더럽고 위험하다고 질색을 하는 인도. 그들의 말은 절반 정도 맞다. 다만 틀린 절반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하루하루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무척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며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와 문화 속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하루하루가 너무 많았다.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내가 살아가는 한국과 내가 자주 보고 상상하며 접해왔던 유럽 사이에는 너무 넓은 땅이 있었다. 그 넓은 땅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내며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아시아를 돌아다니며 새삼스레 종종 느껴왔는데, 인도는 정말 커다란 세계처럼, 하나의 작은 세계처럼 느껴져서 나는 인도에 와서야 인도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인도에 가고 싶었지만 인도를 찾지 못했던 콜롬버스와 반대로, 나는 어쩌다 아무 곳에 왔는데 인도를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해야할까. 내가 알던 방식과 다르게 사는 한 명의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만, 내가 알던 방식과 다르게 사는 세계를 발견하는 것은 분명히 쉽지 않다. 내게 인도는 그래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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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구와 비둘기의 밤

물론 돌아와서 한 생각이다. 첸나이의 옥상에 앉아 나는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밤이 서늘했고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바다가 가까이 있다는 생각은 이상한 위안이 되었다. 결국은 그저 사람이 사는 곳. 사람이 앉아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 바람이 냄새를 운반하는 곳. 그곳에 앉아 사람들이 내뱉는 말소리를 듣고 주변의 풍경들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곳. 나는 첸나이의 옥상에 편안한 얼굴로 혼자 걸터앉아 있었다. 그때 링구가 내 곁에 와서 옆에 앉아도 되냐고 수줍게 물어보았고, 그가 내 옆에 앉았다. 링구가 내게 오기 전까지 나는 외롭다고 느끼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막상 그가 오니 지금까지 내가 외로워 하고 있었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링구는 매끈한 대머리의 20대 청년이었고, 원래 대머리인지 개성의 표현인지는 끝내 물어보지 않았지만 정말로 머리가 매끈매끈했다. 밤의 불빛들이 그의 머리에 반사되어 빛이 났고 그의 순한 이목구비는 어딘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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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구는 여행객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지방에서 대도시 첸나이로 막 유학 온 대학 신입생이었다. 아주 먼 곳은 아니고, 차로 세 네 시간쯤 걸리는 근처 남부의 도시에서 왔다고 했다. 자기도 오늘 첸나이에 처음 왔는데, 앞으로 1년 동안 이곳에 살며 대학을 다닐 거라고도 했다. 다른 지방에서 출장 온 인도 사람이 게스트하우스에 장기 숙박하는 경우는 왕왕 봤는데, 대학 신입생이 1년 동안 게스트하우스에 살며 학교를 다니는 상황은 처음 보았다. 종종 있는 일이냐고 물었는데 링구는 가끔 자기같은 학생이 있기는 하다고 대답해주었다. 아무튼 그는 막 큰 도시에서 도착했고, 앞으로 막 시작할 학교 생활 때문에 무척 들떠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링구가 살면서 처음 만난 외국인이었다. 그러니까 링구는, 지방에서 대도시로 처음 올라왔던 링구는, 내가 너무 신기했던 것이다. 게스트하우스에는 당연히 다른 외국인도 많았지만 우연히도 내가 바로 링구가 마주친 첫 외국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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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떠 있는 그와 함께 보낸 밤은 기분이 좋았다. 링구는 한국에 대해, 정확히 말하면 인도가 아닌 것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계속 물어 보았다. 지나칠 정도는 아니었고, 나보다 덩치가 컸던 링구가 꼭 귀여운 사촌동생이나 눈이 커다란 대형견처럼 느껴졌다. 그도 나처럼 맥주를 좋아 했다. 우리는 함께 앉아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 호의를 가졌을 때 할 법한 대화들을 나누다가 지난 삶과 앞으로의 삶도 조금씩 말하며 밤을 보냈다. 맥주를 더 사러 갔다 오기 위해서 함께 그 허술한 철제 사다리를 내려갔고, 술을 파는 곳까지 걸어갔다. 혼자 다녀오겠다고 하는 나에게 링구는 자신이 꼭 같이 가야한다며 따라 왔다. 지방에서 올라온 링구는 그날 나보다 대도시 첸나이를 더 무서워했던 것 같다. 서울 가면 코 베인다는 믿음은 여기라고 또 다르지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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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도 먹고, 간이식당에서 인도식 볶음밥 비리야니에 커리를 얹어 배를 채울 겸 먹었다. 노른자가 상당히 올바르게 퍼져 나갔고, 무엇보다 거리와 맞붙은 식당의 편안한 분위기가 좋았다. 링구도 맛있어 했다. 전혀 상관 없는 풍경이었는데 테이블의 색깔이나 조명 때문인지, 아니면 이 상황 자체 때문인지 서부 영화에 나오는 간이 매점에서 길 가다 만난 사람과 허물 없이 친해져, 여정을 함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첸나이에서 처음 만난 우리. 나는 내일 첸나이를 떠나고 링구는 첸나이에서 꽤 오래 살아갈 것이다. 링구는 고향 이야기를 많이 했다. 고향 마을의 풍경과 가족들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꼭 다시 첸나이에 오라고. 내가 너를 고향 마을에 데려가서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알려주겠다고. 너를 반기는 가족들이 좋은 음식을 끝없이 내어줄 것이라고. 너는 환대 받을 것이고 나는 기쁠 것이라고. 링구는 들떠 있었다. 그는 당장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랬다. 그와 맥주를 마시며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나는 생각했다. 링구는 나를 잊을 것이고, 또 알아서 잘 살아갈 것이다. 내가 만약 언젠가 첸나이에 다시 온다고 해도, 우리는 오늘처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너무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만난 오늘이 너무나 특이한 각자의 상황 속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사심 없이 기쁠 수 있었다. 물총새가 그려진 맥주병을 부딪히며 우리는 잠깐의 하루를 나누어 가졌다. 시작하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이 들뜬 기쁨과 평안한 회상을 나누어 겪을 수 있었다. 비둘기들이 앉아있을 법한 옥상에서.

링구는 그 이후로 게스트하우스에서 숱하게 많은 외국인들을 만났을 것이다. 나는 내가 지나온 모르는 얼굴들을 다시 생각해본다. 너무 넓었던 첸나이의 모래 사장을 헤맸던 것처럼, 떠올랐다가 지워지는 그들의 얼굴을 생각한다. 그 얼굴들을 가끔씩 꺼내 만지면서 나는 여행을 기억한다. 그렇게 하면, 여행은 계속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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