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 홀이 그녀를 원하는 이유 - 비올리스트 김남중
카네기 홀이 그녀를 원하는 이유 - 비올리스트 김남중
  • 우정호 기자
  • 승인 2022.01.18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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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인터뷰①] 비올리스트 김남중

[위클리서울=우정호 기자]

서초구의 한 아트홀에 울려 퍼진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그랜드 탱고(Le Grand Tango)’. 연옥에서 출발한 단테를 천국으로 이끄는 듯한 비올라 소리 앞에서 십 대에서 육십 대에 이르는 연령과 성별을 불문한 전 관객이 베르길리우스 혹은 베아트리체에 이끌려 숨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감정을 분출하는 인간의 새로운 기관계 중 하나가 비올라로 지정된 듯, 김남중의 비올라 소리가 춤추는 이 장엄한 ‘그랜드 탱고’ 안에는 서정, 연민, 피학, 가학, 자비, 그리고 위트마저 들어있었다. 2014년 뉴욕 카네기홀, 2015년 베를린 필하모닉 홀, 2018년 러시아 글린카 콘서트 홀 등에서 독주회를 개최하고 비올리스트로는 최초로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의장에서 독주 연주를 가진 한국을 대표하는 비올리스트 김남중. 1월의 어느 날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 그녀의 개인 연습실과 인접한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김남중 @jeremyvisuals 제공
ⓒ위클리서울/ 김남중 @jeremyvisuals 제공

천국과 연옥을 오가는 비올라 소리

“비올라는 수많은 표정과 색깔을 가졌는데도 세간의 인식은 그 일부만을 취하곤 해요. 그런 인식을 깨기 위해 지금껏 여러 실험적 무대를 가져왔어요. 보통 비올라와 첼로의 듀오 공연은 많이 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지난달엔 클래식 기타와 듀오 공연을 만들어 본 거예요. 또, 비올라가 잔잔하지만은 않은 악기라는데 초점을 맞춰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난달 19일, 서초구 방배동 리한아트홀에서는 비올리스트 김남중과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지형의 듀오 리사이틀이 펼쳐졌다. 이날 공연에선 아스토르 피아졸라와 에이토르 빌라 로보스의 주옥같은 곡들이 비올라와 클래식 기타의 듀오곡으로 편곡돼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제 비올라 소리가 유난히 다른 비올라 소리와 다르다는 평가를 많이 들어요. 보통 이렇게까지 ‘세지는 않다’고 하기도 해요. 너무 거칠었나? 하지만 그게 비올라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얘가 순한 줄만 알았더니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네?’하고 생각되는 점, ‘나도 으르렁 거릴 줄 알아’하고 말하는 듯한 점이요.” 

그녀는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배려의 태도, 어투. 이렇게 스스럼없는 클래식 연주가를 본 적이 없다. 예민함을 온몸으로 타인에게 나타내기 위해 25시간을 고민하다 더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아티스트들, 불친절이 카리스마로 포장된다고 굳게 믿는 록밴드 멤버들, 세상에 없는 얘기들을 주야장천 늘어놓으며 방어기제를 쓰는 문인들이 널린 시대에. 그녀는 분명 다른 종족의 예술가였다.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분방함과 모험심을 가진 클래식 아티스트.

“원래 첼로 곡인 피아졸라의 ‘그랜드 탱고(Le Grand Tango)’를 비올라로 어레인지 했어요. 작년이 피아졸라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라 그를 기념하면서 셋 리스트에 넣기 시작했죠. 아무래도 곡이 인상이 센 편이라 그런지 공연이 끝나고 피아졸라 곡들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해주셔요. 너무 제 연주가 피아졸라만을 떠올리게 될 거 같아 조심스러운 마음은 있어요. 제 다른 공연에서 매번 연주하는 곡은 아닌데도 말이에요.”

“근데 피아졸라 곡들은 그 자체로 비올라 같기도 해요. 곡들이 도전적이면서 연주하기에 많은 여백을 둬서 연주자가 할 수 있는 다양성을 더 많이 열어두기도 했고요. 슈베르트나 바흐 같은 클래식 곡들과 달리 애드립도 여럿 넣을 수 있어요. 피아졸라의 곡들은 플룻이나 바이올린으로는 많이 공연하는데 비올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더라고요. 지난 공연 셋 리스트에 들어간 ‘탱고의 역사 (Histoire du Tango)’ 중 'Cafe 1930's', 'Night Club 1960' 같은 곡들이 특히 그랬고요. 듀오로 무대 위에 올랐던 박지형 씨도 바이올린이나 다른 악기와 협연은 해봤는데 비올라랑 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래요. 바이올린은 높은 음역만 내고 첼로는 낮은 음역만 내는데 비올라는 위로 올라갔다 아래로 내려왔다 하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서 너무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활화산 같은 연주 퍼포먼스 중간 그녀가 혼자 짓던 희미한 미소. 그 찰나에서 몇 가지를 읽을 수 있었다. ‘당신들의 마음을 내 소리로 동하게 할 수 있다’는 베테랑 연주자의 자신감. 혹은 하이 포지션과 로우 포지션을 오가며 기타리스트와 전쟁 같은 동행을 이어가던 중 협연에서의 합에 대한 만족감.

“곡이 끝날 때 마지막 음이 끝나고 그 소리는 사라졌지만 공기는 남아있는 그 순간이 저는 너무 좋아요. 그 소리가 공기 안에서 숨 쉬며 맴돌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의 말도, 글도 사실 어떤 무드 안에 떠 있고 소멸하지 않는 법이니까. 연주하면서 그런 공기가 느껴지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웃음 짓게 돼요.”

“곡 하나를 연주할 때 이게 하나의 연극 같다는 생각도 해요. 곡도 극이고, 기승전결이 있으니까. 연주 중간에 웃음 지었다면 아마 다음 대사는 웃음 짓는 장면이어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거예요. 그 이전에 감사한 마음이 크게 드러나서 미소가 번졌을 수도 있어요. 내 무대를 이렇게 앞에 찾아서 보러 와 주시고, 여기 보이는 모든 분들이 다 내 편 같고, 감사하고 행복하고. 저는 어떠한 곡이 길고 짧고를 떠나 그 모든 순간이 전부 감동으로 올 순 없다고 생각해요. 그중 한 파트라도, 1분이라도, 1초라도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관객 전부에게도 아니고 그중 열 명이라도 한 명이라도 감동할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연주해요.”

전 세계 수십 개 국, 수많은 인종을 연주로 감동시킨 이 연주자의 겸손을 보고 있으면 유튜브 구독자 몇 십만 명을 가진 유튜버가 한 다리 건너 하나는 있는 것 같다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한편, 리한아트홀에서의 기타리스트 박지형과 협연한 지난 공연 중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탱고의 역사’ 중 ‘Night club 1960’을 비올라와 클래식 기타의 유니즌 플레이로 화려하게 마쳤을 때 관객들은 잔음이 사라질 3초도 견디지 못하고 환호했다. 관객 중엔 ‘오선지’ 디자인의 마스크를 쓴 오세훈 서울시장도 있었다. 


 

ⓒ위클리서울/ 김남중 @jeremyvisuals 제공

비올리스트 김남중

한국을 대표하는 비올리스트 중 하나로 우뚝 선 김남중. 그녀가 비올라에 처음 매료된 점은 무엇이었나? 바이올린과 첼로보다는 ‘덜’ 알려진 상대적으로 수수한 이 악기에.

“‘내가 비올라를 정말 좋아해’하고 생각하면서도 ‘왜 좋아했나?’하고 요즘 들어 다시 생각해 봤어요. 현악기라고 하면 보통 한국에선 바이올린을 가장 많이들 시작하는데 저는 그만큼 높은 음색보다는 우연히 듣게 된 비올라의 음색이 저를 편하게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고 금새 거기 빠지게 됐어요. 제 성향에도 맞다고 생각하고. 남들과 다른 걸 한다는 데서, 비올라가 흔하지 않은 악기라 더 끌린 것도 사실이에요. 비올라는 악보 도면도 다른 클래식 악기들과 차이가 있어요. 높은 음자리표, 낮은 음자리표가 아닌 그 사이에 있는 ‘가온음자리표’를 보거든요.”

“비올라의 성격 자체도 저와 맞았어요. 남의 얘기 잘 들어주고, 조율해 주고, 분위기 전환시켜 주고, 조성을 바꾸기도 하고, 오케스트라에서도 실내악에서도 가운데 앉고. 전체 음을 조율하는 악기다 보니 다른 악기에 비해 앙상블을 경험할 기회도 더 많아요. 중음 포지션이기 때문에 다양하게 섞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고. 어떻게 들으면 수수할 수 있지만 나름 파워도 있고, 거친 면을 보여줄 수 있고, 비올라만 낼 수 있는 어떤 아픔 같은 허스키한 소리도 있어요.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엄마 같은 역할을 하고.”

아방가르드 음악의 대부이자 록 밴드 벨벳언더그라운드의 주축 멤버였던 ‘존 케일’이 비올라 연주자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역시 클래식이 아닌 록 음악에서조차 비올라가 가진 무수한 가능성을 발견했던 게 아니었을까. 비올라를 이용한 여러 실험적 무대를 만드는 김남중 처럼.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현악, 비올라 학사에 이어 인디애나대학교 대학원을 전액 장학금으로 입학 후 졸업한 그녀는 비올라로는 ‘1등’ 밖에는 거의 해본 적 없는 것과 다름이 없다. 보수적 사회에서 가장 큰 가치로 치는 ‘1등’의 영예에도 그녀는 스스로를 ‘어떠한 천재적인 재능 같은 것 보다는 인정욕구에서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아타 아라드(Atar Arad)는 그녀를 첫 한국인 제자로 삼았다. 

“사실 저는 배우는 과정이 너무 신나고 재밌고, 뭘 고치지 않기 위해 욕심을 부리지는 않아요. 이게 맞으면 바로 받아들여 해보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선생님 너무 무서워, 눈도 못 마주치겠어’하는데, 저는 오히려 제가 모르던 새로운 얘기들을 해주니까 너무 신나는 거예요.”

”아타 아라드 선생님은 저를 보고 ‘스폰지 같다’고 하셨어요. 가르치면 그대로 바뀌는 점이 너무 좋다는 거예요. 제가 연주에 감정을 담을 때 ‘색깔이 굉장히 많은 크레파스를 쓴다’고 하신 점이 기억에 남아요.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난 건 저의 큰 복이죠. 러시아의 국보급 비올리스트 블라디미르 스토피체프 선생님께서도 절 많이 예뻐해 주셨어요. 제가 애교를 부리는 성격도 아닌데 레슨에 너무 진심으로 임하니까, ‘이 시간 동안 정말 많이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전해진 거죠.”

그녀를 세계적 비올리스트로 이끈 재료들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모험가적 자질이 아니었을까? 타고난 음악적 재능은 차치하고.

“요즘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많이 보이는데, 저는 가끔 제가 그 속 캐릭터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비올라를 연주하는 본 캐릭터가 있지만, 다른 사람의 글이나 음악에도 들어가 보고 제 분야와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 이성적, 감성적인 새로운 에너지들을 받고. 스스로 호기심 많고 편견이 적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편이고. 그런 점들이 연주와 창작 활동에 녹아들고 있는 거겠죠.”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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