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디자인=이주리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하늘 아래 완전한 창작은 있을 수 없다는 말도 있듯이, 잘 만들어진 소설이나 영화는 그 스토리의 원형 서사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원형은 수천 년 전의 신화나 전설일 수도 있고, 백여 년 전이나 오십여 년 전, 심지어는 당대 사회의 어떤 사건이나 현상일 수도 있다. 2022년 대한민국 제 20대 대통령 후보로 나선 윤석열 부부와 그 가족 그리고 측근들의 언행은 매우 특이해서 창작하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가슴에 한가득 설렘을 품고 있다는 얘기가 자꾸 들려온다.

나 또한 창작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고 보니 머리와 가슴이 다함께 바쁘다. 무당무(巫)자 제사장이 임금왕(王)자 왕을 겸했던 고대 사회가 홀연 부활해서 무인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현대사회를 쓰러트리려 한다는 게 내 느낌이고 보니 안 바쁠 수가 없다.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이렇게도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훅훅 달아올라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떤 날은 타임머신을 탄 것도 아니련만 저 까마득한 열 살 전후의 소년 시절로 돌아가 있기도 했다.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이 응? 사람이 먹을 밥을 죄다 먹어치워 버렸으니 고려가 안 망할 수 있었겠느냐.”

작은 나방이처럼 흩날리는 눈발을 무연히 바라보고 있던 어느 순간 갑자기 그런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뭐냐. 어디서 들려온 소리야? 깜짝 놀라서 후딱 일어서고 보니 나는 어느새 호기심이 강물처럼 넘쳐흘렀던 소년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그 시절에 나는 겨울만 되면 서당을 다녔다. 세 살 적부터 외할머니가 계신 절간 생활을 했던 내가 여섯이나 일곱 살 즈음부터 절간을 싫어하기 시작했고, 집으로 돌아와서 시작한 게 서당 공부였다. 절간을 멀리하게 된 근본 동기는 중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절간 생활을 하던 유소년 시절의 나는 아무 데서나 불쑥 나타나는 부처나 문수 혹은 지장보살 같은 환상을 보곤 했었다. 오솔길을 걷노라면 길가의 바위에서 홀연 부처가 마치 문을 열고 나오듯이 생생한 그림으로 나타났고, 아무 생각 없이 산을 보고 있노라면 산 정상에서 석가모니의 자애로운 미소가 커다랗게 떠올라 왔고, 연못가에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어느새 연꽃 가득 문수보살이나 지장보살 같은 얼굴이 앉아 있는 식이었다.

그런 나를 중들은 아마 꿰뚫어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당시만 해도 중이 스스로를 스님이라 칭하는 식으로 자신을 높이지 않고 겸손하게 중승(僧)자를 붙여서 소승이라 하거나, 아니면 간편하게 그냥 중이라 했었던 까닭에 나는 지금도 중을 만나면 중을 만났다고 하지 스님을 만났다고는 하지 않는다. 아무튼 내 어린 시절에 중들은 나를 일러 꼬마중이라 불렀고, 팔자가 그렇게 돼 있으니 지금 당장 승복을 입히는 게 옳지 않겠느냐고 외할머니에게 충언을 하곤 했다.

“내가 중 팔자라고? 쳇.”

내가 구체적으로 그런 반감을 가졌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절간은 더 이상 나의 놀이터가 아니었다. 초파일 같은 대형 행사가 있을 때 연등을 달고 다니는 등의 잔심부름까지 마다하지는 않았지만, 절간 자체가 좋아서 찾아가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글쎄 뭐랄까, 달아나고 싶은 마음?

아마 그것이었을 게다. 빡빡 밀어버린 머리에 치렁치렁 늘어진 가사 장삼을 걸친 중의 모습이 그리 크게 나빠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 자신이 그런 행색을 한다는 문제에 이르러서는 그만 으으, 소리가 절로 나오던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반야심경을 한 글자도 안 틀리게 염불 투로 읊어대며 목탁도 제법 두드렸던 내가 승복을 입은 나 자신의 모습은 왜 그리도 싫었던 것인지, 그 이유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할아버지가 한평생 서당 훈장을 하셨던 까닭에 한문 공부는 아마도 내 유전인자에 살짝 뿌려져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방안의 도배지가 온통 한문 붓글씨 연습에 쓰인 신문지들이어서 친숙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고, 우리 집에서 다섯 집 건너에 서당이 있었다. 훈장은 우리 할아버지의 제자였던 분으로, 당신도 농사를 짓는 까닭에 12월에서 4월까지 농한기 한철만 서당 운영을 하는데 이십 리 밖에서 어른들이 찾아올 정도로 명성도 제법 높았다.

아침 해가 떠오른 직후부터 저녁 해가 질 때까지 운영되는 서당은 코흘리개 아이부터 오십이 넘은 아저씨들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뒤섞여 있어서 흥미가 매우 진진했다. 훈장이 아랫목에 결가부좌로 앉아서 일 미터도 넘는 길이의 담뱃대를 쪽쪽 빨고 있고, 꼬마들이 천자문이나 학어즙 따위를 들여다보며 큰소리로 읽거나 붓으로 쓰고 있는 그 옆에서 조금 더 큰 형들이 허리를 좌우로 흔들어가며 명심보감이나 소학을 읽어대고, 그 윗대는 대학이나 중용 같은 것을 읽거나 쓰고, 아저씨들은 시경이니 서경이니 춘추, 역경 따위들을 뒤적거리고 있으니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당 공부가 만약에 오늘날 학교의 학제처럼 또래들끼리 모여 앉는 식의 격리된 시스템이었다면 내가 별 흥미를 느끼지는 못 했을 것이고, 기억에 아로새겨진 일화도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소년 시절의 나는 이를테면 쓸모도 없이 웃자라 있었던 셈이다. 또래 아이들과의 놀이는 어쩐지 시시해서 함께 어울리는 것 자체가 지루했지만, 나보다 한참 선배인 형들이나 아저씨들 틈에 끼여 있노라면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

서당은 통상 두 시간쯤 내리 공부를 하고 삼십 분쯤 쉬는데 이 시간 속에 보물이 있었다. 꼬마들은 딱지나 구슬치기 따위로 쉬는 시간을 그야말로 쉬지만, 형들이나 아저씨들은 쉬면서 다른 흥미진진한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이를테면 해서는 안 될, 보아서는 안 될, 훈장님에게 들키면 대통으로 머리통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얻어맞게 돼 있는 금서랄까 불온문서랄까, 아무튼 정통 공부와는 완전히 다른 볼 것과 읽을 것을 형들과 아저씨들은 가슴에 품고 다니며 서로 자랑들을 해대는데 그 내용이 날마다 달랐다.

‘어우야담’ 같은 음담패설이 가득 들어차 있는 책을 품고 다니는 형이 있는가 하면, 다리가 여섯에 팔이 셋이요 눈알이 여섯인 괴물이 그려져 있는 등 온갖 괴물 그림으로 가득한 ‘산해경’ 같은 판타지를 품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고,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이슬과 빗물만 먹으며 정진한 끝에 마침내 신선이 되었다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도가의 책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고, 지은이가 무명씨로 돼 있는 역사서를 품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지은이가 무명씨로 되어 있는 역사서의 주인공은 성격이 대체로 비분강개 형이어서, 너는 이놈아 고려가 어째서 망했는지 알고나 있느냐 같은 호통소리가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곤 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뭐랄까. 이성계가 고려를 뒤집어엎고 조선을 건국한 뒤에 고려의 학자들이 울분을 참을 길이 없어서 무명씨라는 이름으로 멸망의 원인을 따져보는 소설을 썼다고나 할까 뭐 그런 것인 셈이었다.

그런데 그 스토리가 지루하지 않고 살아서 역동적으로 꿈틀거린다는 느낌이 있었다. 고려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의 왕이 있고, 왕의 부인이 있고, 부인은 은밀하게 만나는 애인이 따로 있는데 그 신분이 중이다. 왕비의 은밀한 애인이 중이다 보니 전후 내막을 모르는 왕은 차츰 중의 포로가 되어간다. 왕이 중의 포로가 되었으니 관료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 고개나 회회 저어댄다.

중은 이제 옛 동료 중들을 관청으로 불러들이고, 관료들은 차츰 중을 왕 이상으로 받들어 모시게 된다. 중이 출세하는 세상이 되고 보니 여기서 저기서 일하기 싫어하는 사내들이 절간으로 몰려들고, 공부도 안 된 땡중이 대거 방출되는데, 이 땡중들은 탁발을 핑계로 이 마을 저 마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재물을 뜯어내고, 눈에 드는 여자애를 발견하면 서슴없이 끌어간다. 이런 세월이 십 년, 이십 년, 먼지처럼 쌓여가는 동안 나라는 통째로 병들어 버렸다. 이러니 고려가 안 망할 수 있었겠느냐, 하는 것이다.

마오쩌뚱은 종교를 일러 아편이라 했다지만, 착취와 약탈을 매우 자연스럽게 합법적으로 물이 흐르듯이 할 수 있게 하는 장치라는 해설을 부록으로 첨부해야 할지도 모른다. 불안과 공포와 우울과 고독 같은 인간의 감성 영역을 관리하겠다고 나선 종교는 그 자체가 이미 권력이다.

종교가 행사하는 권력은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애매모호하다. 너는 나를 믿어야 한다는, 나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협박과 위협이 부드러운 말 속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협박과 위협은 전혀 협박과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부드러운 위로의 말 한 마디에 자살 충동이 사라지고, 내일은 분명히 잘 될 거라는 예언 한 소절에 절망이 벌떡 일어서기도 하는 것, 그게 아마 종교의 권력과 일반 권력의 차이점일 것이다.

무엇보다 종교는 화려하다. 색깔이 화려하고, 언어가 종횡무진 화려하다. 대부분의 종교가 채택하고 있는 화려한 색깔 앞에 나서고 보면 그 현란함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어지러워진 마음속으로 화려하게 위협적인 ‘말씀’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고, 이해도 잘 안 되지만 뭔가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이렇게도 해석이 가능하고 저렇게도 해석이 가능한 것, 종교 언어의 핵심이랄까 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윤석열 후보 아내 김건희 씨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윤석열 후보 아내 김건희 씨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 즉시 자기가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리라 다짐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김건희씨의 언행은 종교가 갖고 있는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려하게 위협적인 말이 그렇고, 무엇보다 눈이, 눈 속에서 이글거리는, 활화산 같은 욕망의 에너지가 그렇다.

“내가 권력을 잡으면 그것들 절대로 가만 안 두지”라고 기자에게 호언장담한 그 호언장담은 결코 호언장담만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대통령 당선 확정이 되면 다음 날 즉시 은밀하게 잡아다가 혀를 뽑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알렉산더의 생모가 그랬듯이 다리를 자르고 팔도 자르고, 눈알을 뽑고 혀를 뽑아서 돼지우리 속으로 던져놓고 보라, 여기에 인간돼지가 출현했도다, 하고 구경꾼들을 불러 모을지도 모른다.

학력과 경력을 부풀리느라 열심히 잔머리를 굴리는 자잘한 디테일과, 오천만 인구를 품고 있는 나라를 통째로 먹이치우겠다는 장쾌하게 거침없는 스케일이 병존하는 캐릭터, 이런 성격의 이런 사람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이것이야말로 가히 초대형 블록버스터라 할 만하지 않을까? 그들이 실제로 대통을 할 수 있느냐 여부와는 상관없이, 아마도 그런 창작물은 결국 나오고야 말 것 같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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