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베트남 닌빈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닌빈의 보트

그날은 거의 바람이 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람이 불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강의 표면은 무척이나 매끄러웠고, 그 위를 유유히 나아가던 보트가 떠오른다. 삼각형 모양의 황색 갓을 쓴 사람들이 보트 위에서 강 아래를 유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가에서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 수풀들을 헤치며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사람의 손으로 직접 노를 저어 나아가는 보트들이 관광객을 태우고 조용히 나아갔다. 매끄러운 물의 표면이 부드러웠다. 언덕들 사이로 이따금씩 붉은 햇볕이 내리쬐었고, 중간 중간 멈추어 서는 곳은 드문드문 물가에 위치해있던 오래된 사원이나 궁궐이었다. 중국풍 같기도 했으나 처마의 분위기에서 확실하게 다른 느낌이 났다. ‘논라’라고 불리는 베트남 갓을 쓴 사람들이 풍경과 잘 어울렸고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그 모든 풍경을 보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2시간 동안 그저 물길을 통과하는 일. 오랜 세월 동안 이곳에서 있었을 일들의 기억이 묵묵하고 매끄럽게 자리 잡고 있는 물길을 지나쳐 가며, 그날의 날씨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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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이라고 부르기에 망설여지는 지형이었다. 거대한 언덕들이 우뚝하니 솟아 있고 그 아래로 습기를 머금은 땅이, 그 사이사이로 수많은 물길이 있었다. 강이라기보다는 지형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수로 같았다. 물길은 실제로 하나의 길이었다. 그 길을 통해 흘러 들어가는 물로 넓은 논이 펼쳐져 있었고 이제 여행객들은 이 기묘한 동시에 편안한 풍경을 둘러보기 위해 보트를 탄다. 누군가는 육지의 하롱베이라고 이곳을 부르는 듯 했다. 어쩌면 중국의 장가계 같기도 한 풍경. 협곡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협곡이라는 말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풍경이었다. 물과 함께 아래로 유유한 것들은 납작하게 낮았고, 그 위로 서있는 바위와 언덕들은 느슨하게 높았다. 베트남의 지난 왕조들이 이곳에서 시작했다고 했다. 이미 시절을 겪어낸 고도들은 한적하고 편안하다. 지난 기억들이 묵묵하지만 우직하게 서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저 지금의 수도에 비해 사람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온갖 사람과 오토바이로 가득 차서 사람 하나하나가 인파를 만들었던 수도 하노이에 비해 오래된 물의 고도 닌빈의 모습은 그야말로 매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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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하롱베이에 가고 싶었다. 학교 다닐 적에 아주 잠깐 베트남어를 배우기는 했어도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아는 곳이라고는 하노이와 호찌민, 하롱베이 정도가 전부였다.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다낭도 알고는 있었다. 이렇게 말하니 사실 꽤 많이 알고 있었나 싶지만, 고백하건데 나에게 베트남은 오토바이가 많고 과일이 싼 곳 정도의 인상을 넘어서지는 못했었다. 분단과 전쟁과 식민과 이념의 역사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그들에게는 이미 지나간 일이 아닌가 싶어 크게 관심을 두지는 못했다. 가족여행 삼아 우연히 방문하게 된 하노이였기에 베트남을 천천히 둘러볼 생각도 아니었다. 하노이에 간다. 하노이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시간이 되면 특이하게 생긴 것 같은 하롱베이에도 간다. 하롱베이는 어딘가 이름도 귀엽고 바다 위에 솟은 산들의 사진은 신기해 직접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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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적인 풍경

모두가 알다시피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족 여행의 경우, 조금 더 그렇다. 이유는 모른다. 우리 어머니의 주장대로 자식이 부모의 어떤 부분을 결국 빼닮기 마련이라면, 계획의 문제에 있어서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정확히 반반씩 닮은 것 같다. 아버지는 특히 여행 중에는 계획에 빈틈이 없어야 하는 사람이고, 어머니는 계획 없음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다. 나는 큰 계획을 세워 놓고 계획이 없는 듯이 사는 사람이다. 각기 다른 성격은 알다시피 단점을 보완해주고 장점을 보충해준다. 그러나 반대로 단점을 보충해주고 장점을 가리기도 한다. 몇 번 시도해보지 않았던 우리 가족의 해외여행은 어느 정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계획이 틀어지고, 계획의 의의에 대해 어떤 갈등을 겪고, 그러나 결국 어떤 좋은 것을 경험했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여행 며칠간의 마지막 날 즈음 되면 적응을 다 마치게 되고, 집으로 돌아가면 여행지에서의 며칠 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그 일들은 추억할 만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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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롱베이는 우선 너무 멀었다. 하노이에서 4시간 정도 걸리니 이동만 해도 시간이 꽤 들어서, 간다면 그곳에서 숙박을 해야 했다. 여행 일정이 길지 않았으니 숙소를 옮기는 것은 분명 품과 노력과 체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하롱베이에 무엇이 있는지도 잘 모른 채, 그저 바다 위에 솟아있는 언덕이라는 특이한 풍경을 보기 위해 그곳에 갈 필요는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사실, 그러니까 거길 왜 가야하는지를 스스로 납득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기 전에 알 수도 있고, 갔다 온 후에 알 수도 있지만 왜 떠나야하는지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알 수 없다면 여행은 갈 이유가 없다.

‘거길 왜 가야해?’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다음 문제는 ‘이왕 여기 온 김에’ 문제다. 시간과 돈이 모두 많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여행은 한정된 돈과 시간을 때려 넣는 행위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일상의 날들이 아니다. 집 근처 산도 평생 안 가볼 수 있지만, 여행지에 가면 계속 되뇌게 된다. 남은 평생 다시 이곳에 올 수 없을지도 몰라. ‘오로지 한 번’이라는 생각. 이왕 품을 들여 온 김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아야 한다. 적어도 평범한 날들과는 달라야 한다. 이런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들 다른 방식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여행이 길어질수록 여행은 일상을 닮아가지만 짧은 여행의 경우 여행은 일상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무엇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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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까지 온 김에 하노이에만 있기엔 아쉬웠다는 이야기다. 이상한 말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왕지사 베트남까지 먼 길을 왔는데 더 다양한 것을 보고 싶었다는 마음이라고 쓰면 조금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너무 먼 곳은 안 되고, 하노이와는 또 달라야 하고, 어떤 좋은 느낌을 주어야 하는 곳이면 좋고. 차를 빌려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닌빈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대안이었다. 다녀오는 길에 택시 기사와 불편한 상황을 겪기는 했어도 돌이켜 기억해보면 닌빈에서 보낸 하루는 좋았다.

그 얕은 협곡의 물길만으로도, 그곳에 내리쬐던 햇볓 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또 그곳에서 보았던 거대한 사원에 이어져 서있던 수많은 불상들도 떠오른다. 아시아에서 가장 크게 조성된 절이라고 했던가. 사람은 거의 없고 부처가 많았다. 생각해보니 보통은 부처가 많이 없고 사람이 많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불교는 역설을 좋아하니 오히려 넓고 좋았다. 오래된 고도에서 풍기는 베트남의 과거를 엿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당신이 아는 베트남보다 더 깊고 다양한 베트남이 있다고, 이렇게 특이한 지형이 있고, 이렇게 편안하게 있기 좋은 곳이 있다고, 닌빈은 말해주는 것 같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계획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계획이 헝클어질 때 때로는 더 좋은 것들을 마주칠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작은 보트 위에서 만졌던 물의 촉감을 기억한다. 내 뒤에서 웃고 있던 부모님도 기억한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 가족은 그곳을, 추억할 만한 장소로 기억한다. 여전히 계획을 짓고 계획을 무너뜨리는 하루하루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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