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우리집 우편함
우리집 우편함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대통령 후보로 나선 윤석열이 툭툭 던지는 메시지는 어지럽게 현란하고 섬뜩하고 파괴적이다. 어떤 말이건 일단 접하고 나면 여간해서 지워지지 않고 가슴에서 그리고 머릿속에서 꿈틀거린다. 꿈틀거리는 그것의 이미지는 지옥과 연옥의 개념을 생생하게 제시한 단테의 ‘신곡’을 떠올리게 하고, 유겐트를 창시한 히틀러를 연상케 하는가 하면, 마오쩌뚱의 아내 강청이 주도한 홍위병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네 편’과 ‘내 편’의 구분을 명확하게 해서 ‘내 편’은 조건 없이 끌어안고 ‘네 편’은 조건 없이 멸절시키고자 했던, 사람이야 백만 명이 죽건 천만 명이 죽건 아랑곳없이 자신의 분쟁 취미를 극한으로까지 끌어 올렸던 아돌프 히틀러와 강청, 그러고 보면 그들은 죽은 사람이 아니었다. 죽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기관총과 탱크와 커다란 칼을 갖고 전쟁놀이에 몰두하는 아이들은 지금도 어디에나 있다.

대단히 두꺼운 책 ‘전쟁론’을 쓴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전쟁은 정치의 한 수단이다. 대단히 많은 이유와 핑계와 논리가 전쟁에 붙어 있지만 정밀하게 분석해보면 죄다 정치집단이 사용한 수단의 하나일 뿐이라는 거다. 전쟁을 채택한 정치집단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수단은 놀랍게도 가성비가 높고, 비용은 대단히 저렴하다.

미래가 막막해서 불안한 젊은이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이고, 이들의 감정을 툭툭 건드려서 뭔가 한 번 제대로 뒤집어보자,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놓기만 하면 된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이 몇십 만 혹은 몇 백만 명이 죽는다 해도 정치집단 자신에게는 거의 아무런 피해도 발생하지 않는다. 설령 가시적인 피해가 다소 있었다 해도 금방 확충할 수 있게 돼 있다. 전쟁이 터지자 한강다리를 끓고 한달음에 부산까지 갔다가 다시 대전으로 가서 선무방송을 하고 다시 부산으로 달아난 이승만의 사례는 클라우제비츠가 말하는 전쟁과 정치의 관계를 극명하게 확인시켜준다

한반도에 또 한 번의 전쟁이 마침내 터지고야 말 것인가?

어지러운 마음으로 자동차를 끌고 뒷산에 올랐다. 장작을 거둬들이기 위함이었다. 내가 이 마을에 들어오던 해에 심은 편백나무 장작이었다. 잡목은 경제성이 너무 없다고 모두 베어 넘기고, 군청 직원들까지 동원해서 심은 편백이었다. 심은 뒤로 십 년 너머 이십 년 가까이 방치하다가 작년 봄에서야 솎아내기 겸 다듬기를 했는데 내 입장에서 보자면 보물도 그런 보물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막 주워서 자동차에 싣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통째로 넘어져 있는 나무에서 가지를 쳐내고,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잘라낸 그것을 어께에 메고 비탈진 나무들 사이를 오르거나 내려가자면 낑낑, 소리가 절로 나오고, 땀방울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발바닥이 흥건하게 젖어 있어버리는 사뭇 험난한 작업이었다.

운전석 뒤 의자를 자빠뜨리면 제법 널찍한 화물칸이 만들어지는 자동차 ‘투산’에 한가득 편백나무 장작을 싣고 돌아기까지 아마 세 시간쯤 걸렸을 것이다. 뭔가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해냈다는 기분이었다. 기분 좋게 마당으로 들어서는 내 눈에 낯선 우편물이 보였다. 우편함에 꽂혀 있는 그것은 일단 그 고급한 외양이 낯설었다. 거의 매일 한두 통씩 꽂혀 있는 우편물을 빼내서 뜯어볼 생각도 없이 폐기처분해 온 내 눈에 그것은 확실하게 이채로운 물건이었다.

요즘 도시에도 그런 우편물이 배달되는지 여부는 모르겠으나, 시골에는 정체불명의 우편물이 곧잘 배달된다. 고추건조기를 새로운 기술로 만들었다느니, 벌초용 예치기가 개발돼서 소개한다느니, 지붕 위에 태양광 패널을 덮으면 소득이 얼마라는 등, 심지어는 건강검진을 자기네 병원에서 받으라는 것까지, 다종다양한 우편물이 꽂히는데 특징은 내 이름과 주소가 바르게 적힌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발신인은 주소와 상호와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지만, 수신인은 언제나 ‘세대내 투입’ 아니면 ‘세대주 귀하’로 돼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집배원은 뭉텅이로 들어온 홍보용 우편물을 마치 전단지 배포 알바처럼 집집마다 한 통씩 꽂아놓고 다닌다는 얘기였다. 그런 우편물은 한눈에 척 봐도 그냥 그 신분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흔해빠진 백색 봉투에 글자 몇 개가 사무적으로 찍혀 있으니 뭐랄까, 표정도 영혼도 없다는 느낌이어서 발견하는 순간 흥미는커녕 하품부터 나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가 보낸 우편물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그런 허접한 선전물에 익숙한 내 눈에 비친 그날의 그것은 일단 사무적으로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백색 봉투가 아니었다. 꽤나 고급스런 색깔이 입혀 있었고, 나름의 정성까지 깃들어 있어 보이는 그것은 일언이 폐지하고 내 가슴속에 은밀히 숨어 있던 설렘이며 낭만이며 야릇한 연애감정 따위들을 모조리 들쑤셔놓기에 충분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함부로 거칠게 막 빼내기도 어려웠다.

뭘까. 뭐지?

누굴까 누구지?

의문이 없을 수 없었다. 이제 다시는 내 인생에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포기했던 설렘과 낭만과 판타지와 연애감정 따위들이 한꺼번에 왁, 하고 부활해서 내 가슴을 마구 두드려댄다는 느낌이었다. 그랬다. 그것은 연애편지 같은 내밀한 뭔가를 연상하기에 충분한 디테일이 있었다. 부드러운 색깔의 봉투에 인간미가 물씬 풍겨나는 필기체의 글씨가 수줍다는 듯이 얼핏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경건하게 심호흡까지 해 가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우편함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글자가 확실하게 보이는데 그 이름이 윤석열이다.

이게 뭐냐?

흔해빠진 수식어 기절초풍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정말로 기절에 초풍까지 해 버렸는가? 아니다. 그 직전에서 우뚝 멈췄다. 그리하여 다시 보았다. 윤석열이 틀림없다. 윤석열이라는 이름 석 자가 날 좀 봐 줘, 하는 투로 우편함에 꽂힌 채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잘못 배달된 것인가 했는데 아니다. 꺼내들고 보니 내 이름 김수복이 틀리지 않다. 주소도 번지수까지 정확하다. 우편번호 역시 내 집을 가리키고 있다.

내 개인정보가 어떻게 이 사람들 손에 들어갔지?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보았다. 안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았다. 전라도에 주소를 두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윤석열 명의의 우편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농촌 관련 무슨 특별보좌관 직함의 임명장까지 배달되었다고, 웃겨 죽겠다고 킬킬거렸다.

이 사람이 정말로 대통령을 하겠다는 건가?

새삼스런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우편물의 내용은 굳이 뜯어볼 필요도 없이 알겠다는 느낌이어서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쓰레기통도 아니고, 아궁이도 아닌, 책상 위에 곱게 모셔두고 틈날 때마다 힐끗 쳐다보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눈을 깜빡거리며 한참씩 지그시 바라보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툭툭 쳐보기도 하고, 별별 짓을 다 해가며 윤석열이라는 성명과 보이지 않는 씨름을 했다.

이 사람이 대통령 의자에 앉아서 결재하고 싶은 내용은 뭘까?

이 사람이 그동안 제시한 비전이 뭐지?

설마 개구쟁이 사내아이의 억지 떼쓰기 같은 것은 아닐 테고, 어쨌든 내심 궁금해서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보기 시작했다. 삼십 년 전에 냉동됐던 사람을 누군가가 해동시켜서 떠들게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진지하게 유포되고 있었다. 삼십여 년 전부터 이미 실행하고 있는 정책을 자기가 대통령 되면 곧바로 시행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으니 삼십 년 전 사람이라는 거다.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이른바 본부장 비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픈 마음으로 대통령 자리를 탐한다는 주장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본인과 부인과 장모가 그동안 해온 주가조작이며 사기며 온갖 못된 의혹을 법률적으로 완벽하게 처리하는 게 ‘윤석열 대통령 시대’의 일차적 과업이라는 거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윤석열 본인이 내놓은 공약이 아니다.

공약이라 할 만한 것은 역시 대 북한 선제타격과 사드 추가 배치 정도인 것 같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제로인 이 공약은 두 말이 필요 없이 미래가 막막한 젊은 층을 겨냥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젊은이들이 구체적으로 전쟁을 희구하는 것은 아니라 해도, 뭔가 확 뒤집어졌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 열망이 아차 하는 순간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분석은 글쎄, 애써 하고 싶지 않거나 설령 전쟁이 터진다 해도 뭐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심사들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동네 편백숲
우리동네 편백숲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사실 전쟁만큼 젊은 층들에게 희망적인 요소도 많지 않다. 최소한 근대 이전까지의 전쟁은 그랬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장에 투입된 지휘관들이 병사를 효과적으로 지휘하는 삼대 요소가 있으니 약탈과 방화 그리고 강간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물리적으로 보는 집단은 부자와 여성이다. 부자와 여성은 전쟁이 발발하는 순간 제1 타깃이 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뱅이로 살다가 결혼도 못해보고 가난뱅이로 죽게 돼 있는 게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층들은 전쟁이 발발하는 순간 강간을 꿈꾸고 약탈과 방화의 판타지 속으로 들어간다. 이 욕망의 판타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한다. 그 주인공이 젊은이들 자신인 것이다. 이것이 클라우제비츠가 말하는 ‘전쟁은 정치의 한 수단일 뿐’이라는 분석의 핵심이다.

이런 전쟁을 대통령 후보 윤석열이 정말로 구상하고 있는지 여부는 물론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그가 내놓은 선제타격이니 사드 추가배치니 하는 공약의 진정성 여부도 애매하다. 결과적으로 공약다운 공약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건 뭔가. 그냥, 무작정, 대통령을 하겠다는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인가?

아,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마침내 공약다운 공약이 하나 나왔다. 지금까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신분이었던 윤석열이 본선 후보로 등록 완료한 그날, 첫 일성으로 수사기관에 관한 로드맵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얼핏 한 번 듣기만 해도 공약이행 백 퍼센트가 확실하게 될 것 같다.

현직 검사관련 사건을 직접 수사하게 돼 있는 공수처 법을 대폭 손질해서 검사를 손대지 못하게 한다는 게 그 하나요, 검찰총장을 지휘하게 돼 있는 법무장관의 권한을 없애는 것이 그 둘이요, 검찰에서 사용하는 모든 예산을 법무장관의 감독 없이 검찰이 단독으로 책정, 집행하게 한다는 게 그 셋이다.

이건 뭐지?

보고 또 봐도 이해가 안 된다. 납득이 안 간다. 그런데도 떠오르는 그림 하나는 있다. 국민의 세금을 멋대로 마음대로 사용하는 집단이 생긴다는 것은, 이것을 풀이하자면 이런 말이 나온다.

검찰왕국.

아, 역시 그렇구나. 콩 심은 데 콩 나오고 팥 심은 데 팥 나오는 것이구나. 검사 생활 삼십여 년, 그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오직 하나 검사일 뿐이고, 검사들의 안일한 미래일 뿐이고, 국민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로구나.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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