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로 맺히지 못한 질문
물음표로 맺히지 못한 질문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2.02.21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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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의 책 읽는 일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김남주 역, 민음사

 

ⓒ위클리서울/ 책=민음사, 이미지=pixabay.com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이 작품이 결코 물음표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안 되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안 되고 오로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여야만 한다는 것. 사강은 왜 그토록 점 세 개의 말줌임표를 중요시 했을까? 읽기 전에도 이 묘한 점 세 개가 가장 눈에 띄었다. 책 제목에서 보기 힘든 수상한 말줄임표. 또 숱하게 들어 본 유명한 제목. 한 번은 읽어봐야지, 읽어봐야지 하다가 최근에 프랑스 여성작가의 소설이 궁금해져 곧 읽으려던 중, 지하철역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스마트 전자도서관이라는 신기한 기계를 구경하며 이것저것 눌러보다 추천도서로 선정되어 있는 이 책을 다시 마주쳤다. 운명의 징표라고 생각하여 다음날 도서관을 찾았다. 마침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듯한 완전히 새 판본의 새 책이 있었다. 감각적인 형광색의 표지.

표지만큼이나 감각적인, 사랑에 얽힌 세 연인의 마음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흔하게 접해온 사랑 이야기다. 프랑스 파리판 부부의 세계다. 결혼한 커플은 아니니 사랑과 전쟁이라고 해둘까. 거칠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덩치 큰 남자 로제와 열렬하고 긴 연애를 해오던 39살의 폴은, 멋대로 구는 로제가 점점 견디기 힘들어진다. 정확히는 로제가 자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껴 힘들어한다. 로제는 언제나 폴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폴은 속수무책의 고독에 빠져간다. 그러다 불쑥, 폴에게 열렬한 사랑에 빠진 14살 연하의 시몽이 나타나고, 시몽은 지칠 줄을 모른다. 사실 로제는 이미 젊은 여자와 외도 중. 편안한 사랑과 강렬한 쾌락이라는 구질구질한 선택지 속에서 로제가 방황하는 동안, 로제의 외도를 알아차린 폴은 시몽의 구애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쉽사리 지울 수 없는 로제와의 기억. 시몽은 기댈 수 있는 남자가 아니라 품을 내어 주어야 하는 아이 같다. 폴은 끝내 로제에게 다시 향하고, 그들의 연애는 다시 반복된다. 오늘도 일 때문에 늦을 것 같다는 폴을 향한 로제의 핑계어린 말투의 반복도 함께.

많이 본 도식이다. 남자에게 기대던 여자. 점점 더 소홀해지며 외도를 일삼는 남자. 고독을 느끼는 여자.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된 젊은 남자. 흔들리는 여자. 남자의 외도를 알아차린 여자. 젊은 남자를 사랑하게 된 여자. 그럼에도 충족되지 않는 무엇. 그리고 다시. 성별을 바꾸어도, 말이 된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연애' 관계 속의 불륜의 일반학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만 읽으면 사강의 이 소설은 뻔한 사랑 이야기에 그쳐버리고 말 것이다. 물론 사랑 소설이 나쁜 것도 아니고, 이 소설이 통속 사랑 소설이 아닌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사랑과 전쟁'으로 요약되지 않을 만한 감정에 대한 섬세하고 예리한 서술들이 곳곳에 있고, 나아가 한 사람이 어떻게 '관계'를 통해, 고통스럽지만 차마 거부할 수 없는 관계를 통해 삶을 굴려오고 있는지를 넌지시 알려준다. 끈질긴 사랑은 왜 끈질긴가. 사강은 그 집요한 사랑의 굴레를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흔들리는 폴의 마음을 통해서.

로제는 폴의 사랑을 조금씩 빗겨 나가는 방식으로 폴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빗겨나감이 폴에게 결여를 주고, 그 결여가 사랑을 추동한다.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사람, 그러나 빠져나가기에 다시 붙잡을 수 있는 사람. 내가 바라고, 사랑하게 만드는 사람. 그가 이기적인 것 다 알면서도, 같이 보낸 오랜 세월의 두께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 만남의 두께에는 그들이 주고받았던 떠남과 붙잡음의 시간이 나이테처럼 새져 있을 것이다. 떠남과 돌아옴이 반복되어 이제는 편안해진 어떤 관계. 결여와 충족으로 이루어진 이 관계는 오랜 시간 끝에 쉽게 닦이지 않는 물집처럼 단단해졌다.

로제에게서 벗어나 젊은 연인 시몽과 만나기로 한 폴은 짐짓 사랑에 빠진 듯 자신을 속이지만, 사실 자신이 로제를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몽은 자신을 배려하고, 모든 것을 맞춰주고,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려고 하지만, 오히려 틈이 없다. 더군다나 둘은 14 살차이. 아무리 프랑스라고 해도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린다. 아무리 서로 살을 부대껴도, 다른 이들의 수군거림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시몽이 잘 눈치 채었듯, 사람들의 말과 나이 차이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폴의 사랑은 차라리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사랑에 가깝다는 것을 시몽은 눈치 챘다. 폴은 자신을 아프게 하는 로제와의 사랑을 진짜 사랑으로 기억하고 이해한다.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는 시몽의 사랑은 결여의 구석이 없고, 따라서 욕망의 구석도 없다. 시몽이 계속 엄청난 미남임이 강조되는 것은 이게 통속 로맨스이기 때문이 아니라, 폴에게 결여를 주지 못하는 시몽의 상황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폴은 시몽이 잘생긴 것을 알지만, 다른 이들과 달리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끝내 폴은 로제에게 되돌아간다. 로제는 돌아온 탕자의 얼굴을 끝마치고, 속죄하는 얼굴이 된다. 그러나 그들의 오랜 관계가 그렇게 쉽게 변할 리 없다. 이 소설이 겨냥하고 있는 곳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다시 연인이 된 폴과 로제는, 다시 그들의 상황을 반복한다. 아니, 반복할 것이다. 소설은 로제가 전에 굴었던 방식 그대로를 보여주는 데서 끝나기에. 이 끈질긴 관계는 완고하게도 닫혀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폐곡선이다. 그 관계의 완고한 물집을 때로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운명적 사랑에 젊은 운명적 사랑이 침투하려다가,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 물집 같은 사랑이 얼마나 끈끈하고 끈적한지, 사랑이란 얼마나 반복을 좋아하는지를 몰래 보여주는 소설이다.

결국 시몽이 폴에게 물었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은 그 완고한 사랑의 방문에 끼어 들어보려는 노크 소리였다. 바로 그 완고한 사랑 바깥의 것에 마음을 주겠냐는 표식 같은 질문. 폴은 이 질문으로부터, 자기 마음속에도 로제 바깥의 세계를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때부터 폴은 시몽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그러나 폴은 자기 사랑의 바깥을 슬쩍 둘러보다가, 다시 그 완고한 사랑의 닫힌 문 안으로 들어 가버렸다. 그러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과적으로 없는 셈. 질문에는 답변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에 물음표는 붙을 수 없는 것이다. 차라리 답변 없이 잦아든 그 쩜쩜쩜만이 사랑이라는 연못에 던져진 조약돌의 파문처럼 계속 쩜쩜쩜. 동심원을 그리면서 사랑이라는 깊은 마음속으로 천천히 떨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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