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 우크라이나 대통령 공식사이트(ze2019.com), 디자인=이주리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밤하늘을 획획 가로지르는 그것은 얼핏 유성 같았다. 하지만 유성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유성 치고는 그 높이가 너무 낮았고, 아련한 은빛 낭만이 없었다. 아련한 은빛 낭만은커녕 시뻘건 욕망이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넘실거렸고, 비명과 죽음의 냄새가 마치 사막 한가운데서 일어난 회오리바람처럼 내 영혼을 덮친다는 느낌이었다.

러시아의 예견된 우크라이나 포격이 시작되던 그날, 로켓포가 휙휙 정신없이 날아가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화약을 생각했다. 웃음과 기쁨과 환희를 불러내는 에너지원이었던 화약, 그것을 공포와 눈물의 씨앗으로 변환시킨 이후 인간 세상, 이라기보다 지구는 멸절 수준의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중국 사람들이 맨 처음 화약을 만들어냈을 때, 놀기 좋아하는 귀족들이 화약으로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고자 했을 때, 그 시절에 생전 처음 폭죽놀이를 접한 사람들은 아마도 기절초풍 수준의 천국 같은 것을 체험했으리라 여겨진다.

뭔가가 뻥, 소리를 내며 연기와 함께 솟아오르고, 이어서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수많은 불꽃이 흩뿌려진다. 이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일단 놀라고,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눈만 깜빡거리고, 그러다가 불현 듯 긴장이 풀리면서 와아 이거 재밌다, 신기하다, 소리와 함께 환희의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날 이후 폭죽놀이는 중국인들의 전통이 되어갔다. 크고 작은 모든 행사에서 폭죽놀이는 필수항목이 되었다. 이 훌륭한 놀이수단이 침략과 약탈과 노예사냥을 취미처럼, 직업처럼, 일상사로 행해 오던 자본제일주의자들의 천국 유럽으로 흘러들어갔을 때 그것은 곧바로 총이 되고 다이너마이트가 되고 대포가 되어 오늘날의 미사일에까지 이르렀다.

미사일, 이 끔찍한 녀석은 눈도 없는 것이 눈을 가진 사람보다 훨씬 정확하게, 빠르게, 신속하게 날아가서 커다란 건물을 무너뜨리고 사람을 대량으로 쓰러뜨린다. 이 무시무시한 무기가 특히 무시무시한 이유는 사람을 죽이면서도 사람을 죽인다는 인식을 거의 못 갖게 한다는 것이고, 죽는 사람은 죽으면서도 어디서 날아온 무엇에 내 목숨이 끊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게 그냥 죽어야만 한다는 것이니, 한 마디로 말해서 윤리라든가 도덕 뭐 이런 것들이 들어설 자리가 티끌만치도 없다는 점이다.

칼이나 창 또는 화살 따위가 살상무기의 전부였던 시절에 전쟁은 자기가 죽인 사람의 얼굴과 그 공포에 질린 표정을 기억할 수 있었고, 그래서 전쟁 임무를 마치고 귀환한 뒤에는 그 얼굴을 잊지 못하고 남몰래 괴로워하는 인간미라는 것이 제법 있었지만, 미사일 시대의 전쟁은 모든 것이 기계적으로, 스마트하게 척척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이루어지는 까닭에 인간미라는 것이 끼어들 틈은 일 센티미터도 없다.

전쟁 국면에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게 있다면 오직 하나, 피비린내와 비명소리 뿐이다. 죽은 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옛날에도 붉었고, 지금도 붉다. 죽은 자의 가족이 부지불식간에 지르는 비명소리는 옛날에도 처절하게 공허했고, 지금도 처절하게 공허하다.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러시아에 대해 국제사회는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 우선 두 나라는 처음부터 두 나라였던 게 아니다. 키예프 공국을 같은 조상으로 둔 같은 나라였고, 같은 민족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같거나 비슷한 문화를 향유해 온 사람들이다. 철갑군단 몽골군의 침입을 받았을 당시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냐 그냥 편하게 항복을 하고 말 것이냐 하는 문제로 서로 다투다가 ‘우리 헤어져’, 하고 선언해 버린 게 두 나라의 역사이고 보면, 국제사회의 비난과 각종 제재는 향후 커다란 채무관계로 결산되면서 국민들의 자존감을 형편없이 떨어뜨려 놓을 것이다.

이른바 국가의 최고 지도자는 자국의 이익과 안녕과 미래의 번영을 제1 가치로 치기 마련이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봤을 때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은 무시무시한 호랑이가 문 앞에 와서 도사리고 앉아 있는 꼴이 돼버린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틈만 나면 ‘우리 이제 곧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할 거다, 가입할 거야’하고 외쳐 왔다. 외치기만 했을 뿐 실제 행동에 나서지는 못 하고 머뭇거림으로 일관해 왔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불확실성만 나날이 키워가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입장에서 봤을 때 괴물도 참 희한한 괴물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못지않게 광대한 땅을 갖고 있고, 그 땅은 거대한 보물창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각종 광물자원이 풍부하게 묻혀 있으며, 지질 또한 좋아서 검은 흙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비료 같은 것을 뿌리지 않아도 작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유럽 최대의 곡창지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삶은 십 년 전이나 오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거의 없이 참혹하게 기아선상을 헤매고 있다는 표현을 써야만 할 정도로 가난하기만 하다.

일상이 돼버린 가난을 타개하고자 국민들이 소환한 사람이 바로 현 대통령 블로디미르 젤렌스키이다. 1978년생 으로 알려져 있는 젤렌스키는 코미디언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대통령 역할로 각광을 받았고, 시나브로 국민적 영웅이 되었으며, 마침내는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다.

유명한 사람을 정치 지도자로 호명하는 것은 아마도 여기나 저기나 같은, 현대사회의 특징인가 보다. 적어도 옛날에는 유명하다 해서 무조건 중요한 자리에 앉히거나 추앙하지는 않았다. 일례로 중국의 공자는 그 자신 정치를 하고자 했고, 제자를 수백 명씩 데리고 다닐 정도로 당대 사회 최고의 유명 인사였지만, 그 유명세가 정치판 등장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어쨌든 현대사회는 그렇다. 일단 유명세를 탔다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검증과 비판을 업으로 삼는 언론조차도 부화뇌동에 가담하고, 어떤 경우에는 언론 자신이 앞장서서 저 사람 유명하니까 정치도 잘 할 거야, 하고 국민을 선동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정치력이 부재한 대통령 젤렌스키가 불러온 비극이라고 보는 게 아마 거의 정확할 것이다. 대통령에 취임한 젤렌스키가 큰 관심을 갖고 추진한 정책은 국민의 삶을 어떻게 상승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코미디언 시절 친구들을 열심히 불러 모으는 일이었다. 누구는 장관을 하고 누구는 차관을 하고 또 누구는 공기업 사장을 하고, 심지어는 고도의 수집력과 분석력을 필요로 하는 정보기관의 수장마저도 코미디언 출신으로 채웠다.

코미디언 출신이라 해서 장관 차관을 못 하라는 법이야 없겠고, 정보기관 수장을 못 한다는 법 또한 당연히 없지만, 문제는 아무런 준비도 공부도 없이 덜컥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소꿉놀이, 또는 소년들의 전쟁놀이 수준이었던 거다. 나날이 복잡해져 가는 국제관계 속에서 이런 아마추어들이 뭘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비정한 얘기가 되겠지만 결국은 그 나라 국민들 자신이 선택한 불행인 셈이다.

대통령 선거 당시 젤렌스키에게 투표한 사람 비율이 거의 팔십 퍼센트에 육박했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십 퍼센트 중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것도 사실은 희한한 일이다. 쓸 만한 일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대통령 지지율이 어떻게 이십 퍼센트 중반 수준을 유지하는 걸까.

해방 이후 한국 정치사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에도 유명세 하나만 갖고 정치판에 뛰어든 사례는 숱하게 많다. 물론 단 한 명도 성공하지는 못했다. 개인적인 이권이나 찾아서 동분서주하다가 어떻게 그만둔 지도 모르게 정치판에서 그 이름이 사라졌을 뿐이다. 그나마 성공 비슷한 일을 했다고 쳐줄 만한 사람을 들자면 아마도 국회의사당에 똥물을 뿌려서 국회의원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준 조폭출신 국회의원 김두환 정도일 것이다.

유명인사 출신으로 가장 처절하게, 가장 치사하게, 가장 비열하게 망한 정치인을 들자면 영화배우 출신 성남 시장 이대엽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그는 기초단체 중 재정 자립도 일 이위를 다툴 정도로 튼튼한 성남시를 빚더미에 앉혔고, 공무원 인사권을 아내에게 넘겼으며, 각종 인가 허가에 현금이 오가는 대단히 희한한 거래를 아예 제도화시켜 버렸다. 그리하여 그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과 측근들이 대거 수사선상에 오르는 진풍경을 낳았다.

나중에 후임 시장 이재명이 밝힌 바에 따르면 6급에서 5급 승진은 삼천만 원이요, 5급에서 4급 승진은 오천만 원, 4급에서 3급 승진은 팔천만 원 등등으로 아예 가격표까지 메겨져 있었다는 얘기가 공무원 사회에 떠돌았다고 하니, 국가 재정이 매우 빈한했던 시절 매관매직을 정부 정책으로 시행했던 조선왕조 말기의 선례를 따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국가의 최고 리더가 뛰어나게 영민하고 청렴할 필요도 없이 그냥 평균치의 상식만 유지하고 있어도 국민은 최소한 평균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이 말은 너무나 평범해서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권한이라든가 권력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상기하고 보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마을 이장만 시켜놔도 갑자기 엉뚱해져서 호령질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경우 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가 최소 2만에서 3만 개라고 한다. 대통령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다 알아서 임명장을 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른바 측근 그룹, 또는 비서진에서 검증을 한 것이니 그를 믿고 따라주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측근이나 비서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사적 감정이 공적 이익을 앞서거나 정신이 부패한 자가 있다면 어떤 결과를 낳을까.

정치인의 무능과 무지는 죄악이다. 대통령의 무능과 무지는 죄악 중에서도 죄악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가 특별히 정신적으로 부패했다고 볼 만한 증거는 하나도 없지만, 무능하고 무지하다는 증거는 차고도 넘치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그는 사람 보는 눈이 없었다. 이것은 무능이다. 또한 그는 국제관계의 복잡한 디테일을 파악하는 머리가 없었다. 이것은 무지이다.

무지하고 무능한 사람을 국가 최고의 살림꾼으로 뽑아놓은 나라의 국민들은 후회하겠지만, 후회는 항상 때가 늦어 있기 마련이다. 때늦은 후회의 물결, 이것은 두 말이 필요 없이 언론의 책임이다. 유명한 사람을 무조건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떠들어댔던 언론, 그러나 그들은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선동과 선전에 능숙한 언론은 또 다른 선전과 선동으로 책임소재를 다른 데서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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