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도쿄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부드럽고 매끈하지만

7층짜리 돈키호테가 있다고 차차가 내게 처음 말해주었을 때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내게 돈키호테는 사람들이 오사카 여행에서 동전파스라든지, 처음 보는 위장약 같은 것을 사오는 일본 만물상 같은 곳이었다. 잘 정비된 화려한 개울인 도톤보리에, 커다란 관람차가 건물 외벽에 붙어 있던 바로 그 건물. 내가 생각하는 돈키호테는 오직 그곳이었고, 다른 돈키호테가 있다고는 왜인지 생각도 못 해봤다. 해외여행을 꿈꿔오던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애들은 어떤 의례처럼 오사카에 갔고, 타코야키를 먹었고, 달리는 구리코상도 보고, 꼭 돈키호테에 들려서 무언가를 바리바리 사와서 나눠 주었다. 나도 그랬다. 나도 오사카의 명물이 돈키호테인 줄 아는 무얼 모르는 어린 관광객이었다. 그때 사온 동전파스를 다 쓰기는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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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 잡화상이라고 부르면 맞을 돈키호테의 본점은 도쿄에 있다. 7층짜리 건물이라고 했고, 지하도 있다고 했다. 내가 바로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차차가 말했다. 그가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지 몇 달쯤 된 때였다. 그가 과연 잘지내고 있는지 이따금씩 생각했는데 그 붐비는 돈키호테에서 일을 하고 있다니. 인파로 가득 찬 매점 한 구석에서 바코드를 찍고 있을 차차를 상상했다. 차차는 내게 말해주었다. 그곳에서 집도 잘 구하고, 일도 잘 구하고, 어떻게든 잘 살아가고 있다고, 집 주변을 산책하며 좋은 곳들도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고, 단골 술집이 생겨서 들어가면 사장님이 알아본다고, 근데 모르겠다고, 사실 여기 왜 왔는지 가끔 잘 모르겠는 때가 있다고, 외국에 일하러 온 김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즐겨야 한다는 강박과, 쳇바퀴 굴러가듯 돌아가는 일하는 일상 사이에서 혼란을 느낀다고, 그래도 아직은 이곳에 정을 붙이려 한다고. 그가 이런 저런 말끝에 언제 한번 놀러오라는 말은 붙였던가. 아마도 언젠가 놀러가고 싶다는 말을 먼저 꺼낸 쪽은 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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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며칠 안 되어 도쿄로 날아간 것이 나였다. 차차가 보고 싶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컸지만, 그가 이야기해준 일본에서의 일상을 나도 친구의 눈을 빌려 한번 직접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는 어디 멀리 호주나 뉴질랜드에 있는 게 아니라 일본에 있었고, 나도 마침 일을 하며 모아둔 돈과 잠깐의 여유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여형 중의 가장 흥미로운 여행 중 하나인, 친구 사는 낯선 곳에 놀러가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곳에 가면 거기서 살아가는 친구의 눈을 잠깐 빌려 세상을 볼 수 있다. 낯선 곳에 어떻게든 뿌리 내리려 분투하는 친구의 일상에 잠시 내 일상을 덧댈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서, 도쿄에 갔다. 원래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해보지 않았던 도쿄였는데. 차차가 시부야 돈키호테에서 열심히 쳇바퀴를 굴리고 있을 도쿄는 충분히 궁금한 도시였다. 가끔은 차차가 부드럽고도 매끈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 그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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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깜짝 놀랍게 차가워

퇴근하는 직장인들로 가득 찬 신주쿠역 플랫폼 안에서, 인터넷이 안 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를 오랜만에 체감하며 차차를 기다렸다. 내가 인터넷 연결을 안 해놓아서, 차차와 나는 구두 약속으로 만나야 했다. 내 도착 시간을 대충 어림짐작한 이후에 신주쿠역 몇 번 플랫폼 오른쪽 끝인가에서 만나자고 약속이 되었다. 일본다운 아날로그식 약속처럼.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어디를 기준으로 오른쪽이고 왼쪽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에 휩싸였다. 이럴 때면 으레 그렇듯 차차와 나는 반대편으로 갔고, 지하철의 와이파이를 겨우 잡은 내가 차차에게 연락했다. 무슨 운명의 만남처럼 플랫폼의 끝과 끝에서 걸어오고 나서야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알던 것보다 눈에 띄게 말라 있던 차차의 모습, 그가 나를 향해 걸어와 멋쩍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차차는 조금 더 단단해 보이기도 했고, 어딘지 조금 지쳐 보이기도 했다.

차차와 도쿄에서 보낸 며칠 동안, 나는 차차의 일상을 같이 겪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가 니시오기쿠보라는, 중심지에서 조금 먼 곳에 얻은 자취방에서 자고, 그가 어떤 음식을 해먹는지를 보고, 그가 좋아하는 아담한 술집에 가고, 그가 일하는 곳에 가보고, 그가 그곳의 제복 입은 경비 아저씨랑 어떻게 이야기를 잘 나누는지를 보고, 그가 잠시 살아가고 있는 도쿄라는 도시를 보고, 그런 일들을 했다. 나에게 도쿄는 차차의 도시였다. 차차가 사는 도시. 차차의 눈을 한번 거쳐 보아 그런지, 기대도 안했던 도쿄는 벌써부터 내게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는 이곳에서 살아가느라 무진 애를 썼을 텐데, 나는 그가 힘들게 얻은 도쿄와의 정을 너무 빨리 얻은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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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숙한 일본어로 일을 해내는 차차의 모습은 멋있었고, 나에게 ‘츠케멘’ 발음을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던 차차의 노력이 즐거웠다. 우리는 지하철에 앉아서 자꾸 츠케멘-, 츠케멘- 연거푸 말했고 일본인들은 궁금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지하철 1호선에 앉은 일본인들이 칼국수- 칼국수- 이러고 있는 셈이었을 테니 안 쳐다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자꾸 계속 츠케멘, 내가 발음할 수 없는 발음을 따라하고 싶었다. 비슷하지만 완벽하게 똑같이는 따라할 수 없었던 그 발음. 일본은 언제나 내게 한국과 미묘하게 달라서 매력적이고, 그 미묘함을 따라가다 보면 아예 달라서 신기하고 무섭기도 했던 곳이었는데, 차차와 앉아서 그런 발음을 연습하고 있으니 신나기만 했다. 차차의 일상도 구경하고, 관광객인 나를 위해 차차가 데려다 주었던 몇몇 유명한 곳들을 보았다. 도쿄는 번잡한 동시에 세련된 구석이 있었다. 구석구석마다 서울에는 없는 취향들과 마주쳤다. 아마도 차차의 도움 때문에 그렇게 느꼈으리라.

그러나 차차의 눈빛에는 일정량의 그늘이 있었다. 그는 확실히 지쳐 보였고, 혼란스러워 보였으며, 때로는 반쯤 젖은 카스테라처럼 보였다. 처음 방을 구해 들어왔을 때 형광등도 달려 있지 않은 텅 빈 방에서 외롭게 앉아 있었다는 차차의 이야기를 들었고, 보내고 있는 하루하루 속에서 잘 건져지지 않는 의미들과 분투하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어디를 가도 고민은 따라다녀서, 이번의 고민은 도쿄의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번잡하고 외롭고 정돈된 동시에 복잡한 마음의 옷을 입은 채로. 나는 차차가 그의 습기를 낯선 땅에서 잘 털어내기를, 이미 잘해온 것을 되돌아보고 계속 잘해나가기를, 그가 일상에서 길어내는 소중한 것들을 계속 잘 찾아내기를 조용히 바랐다. 부드럽고 매끈할 줄 알았지만 가끔은 깜짝 놀랍게 차가웠던 그의 하루하루, 차갑기만 할 줄 알았는데 손 대어보니 부드러웠던 어떤 하루하루, 그 교차하는 일상 속에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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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나기 전날 저녁에 차차와 나는 어느 강변을 따라 도쿄를 걷기 시작했다. 에어팟을 한 쪽씩 나누어 끼었더니, 같은 노래를 들으며 걸을 수 있었다. 괜스레 생각나는 노래들을 내가 틀었고 우리는 점점 말이 없어지더니 노래만 들으면서 거리를 걸었다. 이상하게 그날 들었던 노래들은, 그냥 노래가 아닌 것처럼, 단지 귀로 들리는 게 아니라 누군가 직접 내 몸에 직접 노크하는 것처럼 울렸다. 그중 하나의 노래는 장기하의 ‘살결’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부드럽고 매끈하지만, 가끔은 깜짝 놀랍게 차가워 -

누군가의 살갗을 쓰다듬어 본 사람이라면, 그게 얼마나 뜨거워질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차가워질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둘 다 그런 것을 생각하며 도쿄를 계속 걸었다. 해가 져서 밤이 어두워질 때까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게 막 걷다가 많이 어두워져 이제 돌아갈까 하며 모퉁이를 돌았을 때 갑자기,

붉게 빛나는 도쿄타워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이렇게 붉고 따뜻하게 빛나는 철골이 여기 있어. 차가운 철골의 빛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생명이 내는 빛처럼. 차차와 나는 멍하게 도쿄타워를 향해 걸었다. 나는 그 빛나는 타워가, 낯선 땅에서 어떻게든 뛰고 있는 차차의 심장처럼 느껴졌다. 차차가 몰래 밖에다 내어 놓은 거대한 심장. 그 차가운 철골이 그토록 따뜻하게 보였던 것은 당연히 차차 때문일 것이다. 그 철제타워가 계속 그렇게 있듯, 차차의 마음도 계속 나아갈 것임을 나는 그때 알고 또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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