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와인이야기-14]

ⓒ위클리서울 /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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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박재현] 우리들 각자는 봄이 다가옴을 느끼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필자가 봄의 시작을 느끼는 것은, 다시 길어진 해 덕분이다. 겨우내 어둡기만 했던 아침 5시~6시 언저리 시간이 3월이 되자 차츰 달라진다. 여전히 어둑어둑하지만 어둠 속에 뭔가 밝음을 품고 있는 어둠이다. 몸이 반응을 하며 하루의 시작이 빨라지고 뭔가 경쾌하다. 이번 주부터 다시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이렇듯 봄이 온다는 것은, 그저 겨울이 가고 다른 계절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가짐과 다시 딛고 일어섬을 요구하는 것이다. 챙길 것도 할 일도 다시 많아진다.

와인업계에는 매년 봄이 찾아오면 해마다 열리는 ‘이상한’ 와인 장터가 있다. 전 세계 와인업자들과 와인 전문가들의 입과 귀를 한껏 긴장시키는 앙 프리머(En Primeur)라는 와인 선물(先物) 구매 시장이다. 와인 종주국 프랑스를 대표하는 보르도의 고급 와인들이 거래되는 시장이다. 흔히 샤또(chateau, 성, 城)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최상급 와인들이다. 와인을 얘기할 때 ‘샤또’란 와이너리, 양조장과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해도 별 무리가 없다. 포도원과 양조 설비를 갖춘 양조장을 의미하며, 역사가 오래되고 인지도가 높은 일부 ‘샤또’들은 실제로 물리적인 성(城, chateau)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샤또’들도 존재한다.

이 와인 장터가 특이한 점은 바로 참가자들의 거래방식이다. 앙 프리머 거래의 대상이 되는 고급 와인들은 최소 2년에서 이 보다 더 오래 시간이 흘러야 우리가 사 마실 수 있는 상태로 시장에 나온다. 다시 말해, 병에 담겨 라벨을 붙이고 와인 가게 진열대에서 팔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앙 프리머 거래는 와인이 병에 담겨 유통되기 훨씬 전에, 여전히 불안정한 미완성의 상태•오크통에서 숙성 중인 ‘미생’의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와인 생산자인 ‘샤또’가 미완성 와인을 오크통에서 덜어 내어 잠재적인 와인 구매자들을 대상으로 시음회를 진행하고 가격을 결정한다. 실제 완성품의 와인은 2~3년 후에 구매자에게 전달된다.

이해를 돕고자 시간을 구성하면 이렇다.
2022년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에, 2021년 가을에 수확하여 담근 와인을 앙 프리머 거래 시음용 와인으로 준비하여 와인 비평가들, 네고시앙 (보르도 현지 와인 중개상, 도매상), 와인 수입업자 등을 대상으로 거래 전 시음을 한다. 이미 짐작하겠지만, 이때의 시음 와인은 ‘절임배추’다. 최소 2년이 지난 뒤 에야 고급 와인은 가까스로 제 모습을 갖추었다고 판단되어 비로소 병에 담겨 출시된다. 최종적으로 소비자인 우리가 사 마시게 될 와인이 ‘김치’라면, 앙 프리머 거래는 ‘절임배추’를 심도 있게 먹어본 뒤에 ‘김치’의 맛을 추측하여 ‘절임배추’ 시기에 미리 ‘김치’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혹여나 ‘김치’의 맛이 ‘절임배추’ 시기에 추측했던 것보다 못하다고 하더라도 이미 치른 값을 돌려받거나 깎아 달라고 할 수 없다. 이 독특한 방식의 거래를 그냥 재밋거리로 넘겨버릴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최종 소비자로서 지불하게 될 와인 가격이 이미 이 ‘절임배추’ 거래로부터 결정되기 때문이다.

코로나 3년 차가 되는 올해, 원자재 가격 상승•연료비 상승•인건비 상승•물류 불안•인플레이
션으로 인하여 생산지를 불문하고 이미 와인 가격이 오르는 모양새다.
세계 와인의 메카라고 인정되는 프랑스의 보르도, 여기에서 곧 있을 앙 프리머 거래에서 어떤
전망들이 오고 갈까 궁금하다. ‘절임배추’ 값이 많이 오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박재현 (주)인디펜던트리쿼코리아 전략기획팀 팀장
박재현 (주)인디펜던트리쿼코리아 전략기획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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